현세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원히 죽지 않고 현재의 존재를 지속하고 싶은 열망이 반영된 관념.
① 종교학에서의 불사불멸
불사불멸은 의학적인 방법이나 다른 현세적인 방법에 의해서 추구되는 경우도 있으나, 흔히 특정한 종교적 수련이나 신앙과 관련되어 추구되는 종교적 이상(理想)으로서 더 보편화되어 있다. 각 종교의 전통에서도 비록 세부적인 내용이나 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그 기본적인 의도나 종교 심성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육체와 삶이 그대로 보존되고 연장되는 형태의 불사불멸을 추구하기도 하고, 비록 현재의 삶이 끝나는 것은 인정하지만 현세 이후에 현세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영원한 삶을 확증함으로써 불사불멸의 바람을 추구하는 형태, 그리고 이 둘과는 또 다른 관념적인 방법으로 불사불멸의 바람을 이룩하고자 하는 형태 등 그 구체적인 유형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고 유한한 인간 존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이 가장 깊은 종교 심성의 하나로서 표출되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불사불멸' 은 죽음의 문제, 더 나아가서 현세적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를 종교적 차원의 문제로 승화시켜 해결하고자 하는 추구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종교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추구의 배경〕 불사불멸을 추구하는 배경인 삶〔生〕과 죽음〔死〕의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은 문제이다. 따라서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구극적(究極的)이고 절대적인 해결을 제시하고자 하는 종교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시대적 · 사회적 · 문화적 다양성만큼 다양한 생사관이 제시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심의 깊이를 반영해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은 결국 죽음' 의 문제로 압축된다. 인간은 태어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유한성을 본능적 · 숙명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의 위기와 두려움을 자신의 가장 큰 문제로 여기게 된다. 자신의 현 존재가 언제인가는 끝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끝남 이후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큰 불안과 공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현세 모습에 대한 만족도나 현세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것들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죽음은 자신에게서 그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가고 그 모든 것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종말' (終末)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는 '종말' 에 대한 저항으로서 인간은 가장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어떠한 형태로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에 집착하게 된다. 결국 죽음의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많은 사색의 여지를 제공해 왔으며, 죽음의 문제와 연관하여 자신의 존재를 연장시키거나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불사불멸의 추구는 인간에게 가장 유혹적인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유형별 구분〕 불사불멸을 추구하는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공통적인 요소에 따라 유형별로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육체적 삶의 존속을 믿고 죽음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이는 육체적 생에 대한 집착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관념적이 아닌 실제적인 영생(永生)의 추구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중국 도교 전통에서의 불사(不死) 추구인데, 어떤 신비한 장소〔靈山〕를 찾아가 불로 장수(不老長壽)의 약초를 구한다든지, 금단 조정(金丹調整)의 비법을 터득하여 죽지않는 영원한 몸을 만들고자 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일단 현재의 육체는 죽지만 머지않아 어느 특별한 때에 다시 소생하리라는 믿음으로 죽은 몸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였던 고대 이집트의 풍습 역시 이러한 유형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둘째, 현세의 죽음 후에 영혼의 영생을 믿는 입장이다. 죽음을 불가피한 사실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영속성(永續性)을 바라는 입장으로, 가장 일반적인 종교적 생사관의 유형이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 존재를 육체와 영혼으로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에 근거한다. 분명 육체는 죽어 없어지는 것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더 근원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게 된다는 믿음이다. 그 이후의 영혼이 어떤 양상으로 존재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고대인의 신앙이나 샤머니즘에서와 같이 영혼이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아 있는 인간의 세계에 관계한다는 설명도 있고, 그리스도교의 천국이나 불교의 극락 정토와 같은 피안(彼岸)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의인(義人)들의 영혼은 이들 피안의 세계로 가서 지복(至福)의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설명도 있다. 이처럼 현세와는 다른, 죽음 이후의 내세를 제시함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불사불멸의 바람을 달성하고자 하는것이 많은 전통 종교에서의 보편적인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은 단지 삶에 대한 집착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의 의미를 변화시킴으로써 현세 삶의 의미까지도 변화시키려는 유형이다. 즉 죽음이란 그 이후가 불안한, '막연한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적인 세계 혹은 완성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순간적인 절차일 뿐이라는 믿음을 갖게될 때, 더 이상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아울러 현세적으로 유한한 존재가 더 이상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에서 영원한 존재로 승화되는 보장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영혼 불멸과 피안의 세계가 존재함을 믿음으로써 불사불멸의 이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삶이 흘러 들어갈 영원한 삶의 흐름을 믿는 입장이다. 자신의 죽음에 따른 소멸은 인정하면서 영원히 존속하는 다른 어떤 것과의 밀접한 관계에 따라 영원한 삶을 지속한다는 관념을 지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혈족들이 이어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생각과 같은 것이다. 즉 간접적으로 불사불멸의 이상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관념성이 강하고 종교성은 희박한 유형이다.
넷째, 영원의 체험에 따라 생사의 문제와 단절하고자하는 입장이다. 앞의 세 가지 유형이 시간의 흐름선상에서 불사불멸을 달성하고자 하는 입장인 데 비해, 이 유형은 현세의 삶 그 자체를 그대로 영원화(永遠化)하려는 입장이다. 현세의 삶을 무시간적(無時間的)인 한 순간한 순간으로 인식함으로써 현세적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그럼으로써 죽음의 공포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선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의식(意識)의 경지로 들어감으로써 절대적인 불사불멸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시간의 문제에 대한 상대적 의식뿐만 아니라, 현세적인 모든 상대적 가치들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절대 체험의 경지를 추구한다. 고통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죽음과 생명 등과 같은 모든 현세적 가치들의 상대성을 넘어서는 절대성의 무한한 세계를 깨달음으로써, 다만 상대성의 세계에서의 문제였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불교이다. 불교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사후의 존재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인식이다. 즉 삶에도 번민하지 않고 죽음에도 번민하지 않는 '생명' 에 대한 추구이며, 생사의 문제를 초월하여 사는 삶의 추구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주는 고통과 번민을 극복한 경지가 바로 불교의 이상인 열반(涅槃)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열반을 이룬 사람은 더 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결국, 상대적인 인식이나 가치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경지로, 완전한 불사불멸의 이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불교의 근본 개념인 공(空)과 연결시키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불교의 공 사상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으며(空) 따라서 낳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고(不生不滅), 그러므로 더럽혀진 것도 깨끗한 것도 없으며(不垢不淨), 더해졌느니 덜해졌느니 따질 것도 없다(不增不減) 결국 늙음도 죽음도 없고 또 늙음과 죽음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불교에서는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 처음부터 구별이 없는 것이다. 불교적 논리에 따르면 인간의 현실적 삶의 진상은 사실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헛된 현상〔假象〕일 뿐이다. 인간이 낳고 죽는다는 것도 그 실상은 헛된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인데, 그러므로 아쉬워 하고 집착하고 고통스러워 할 것 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의 죽음 인식에 따르자면, 죽음은 이 티끌 같은 세상을 탈출하여 영원한 자유인이 되는 계기이다. 인간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 우주 만물의 진상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나면 비로소 그들로부터 벗어난 자유인으로 해방되는 것, 이것이 불교적 불사불멸이다.
〔의 미〕 불사불멸이라는 개념이 지니는 의미는, 흔히 연상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흔히 '불사불멸' 이라고 하면 인간이 현세적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 결집되어 있는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어, 불사불멸의 이상을 단지 인간의 향락적 · 현세적 욕구의 산물로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불사불멸의 추구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면, 거의 모든 종교 전통에서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인 종교 이상이다. 인간의 현실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종교적 차원의 문제로 승화시켜 해결하고자 추구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종교성에 연관되는 종교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상은 달리 표현하면 인간의 제한적 조건들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완성' 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다.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각 종교마다 내세우는 궁극적 완성의 이상상(理像)은 죽음의 문제를 비롯한 모든 현세적 인간의 한계를 초극한 존재, 즉 불사불멸의 존재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 영혼 ; 죽음)
※ 참고문헌 W.R. Alger, A Critical History of the Doctrine of the Future Life, New York, 1981/ W. James, Human Immortality, New York, 1917/ J. Ries, Immortality, 《ER》 7, pp. 123~145/ 小口偉一 · 堀一 郎, 《倧教學辭典》, 東京大學出版會, 1989. 〔吳智燮〕
② 도교에서의 불사불멸
〔유 래〕 중국 및 동북 아시아의 토착 종교인 도교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전국(戰國) 중 · 후기 무렵인 기원전 3~4세기에 발해만 일대에서 유행하던 신선설(神仙說)을 원시 도교의 출발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신선설은 당시 방사(方士)라고 불린 주술사들에 의해 유포되었던 믿음으로, 인간이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육체적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삼신산(三神山) 곤륜산(昆侖山) 등 이역의 선산(仙山)이나 선인(仙人)들에게 있는 불사약을 얻어 복용하는 것인데, 전설 같은 이러한 일은 전국 시대의 제위왕(齊威王), 제선왕(齊宣王)으로부터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 등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추진되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불사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정신 및 육체 수련, 주술적 행사, 약물 복용 등에 의해 신선이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전자는 주로 제왕 · 귀족들에 의해 추구되었으나 한무제 이후는 사실상 시도되지 않았고, 후자는 이후 도교의 핵심 내용이 되어 여타 종교와 구분되는 독특한 불사 관념이 되었다.
〔개 념〕 도교에서의 불사 관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선'(仙)이라는 글자의 기본 의미는 "늙어도 죽지 않는것"(老而不死, 《釋名》)이다. 이 글자는 부수의 위치를 바꿔 '屳' 으로도 썼는데, 이는 사람이 산의 정상에 있는 형상이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산의 정상은 천계(天界)와 직결되는 곳으로 여겨졌기에 결국 이 글자는 불사의 존재인 신선의 상승적 · 초월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대(漢代) 이전 '선'(仙)의 고자(古字)는 '선'(偃)이었다. 이 글자는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동작을 표현할 때 '선선'(僊僊) 등의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때의 의미는 "날아오른다"(飛揚, 《說文解字》)는 뜻이므로, 신선이란 비상(飛翔)의 존재 또는 천상에서 노니는 존재로서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선을 우인(羽人), 우사(羽士) 등으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내 용〕 원시 도교의 신선설의 경우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후대의 도교에서는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단법(外丹法)과 내단법(內丹法) 두 가지가 거론되었다. 외단법은 일종의 연금술(鍊金術)로 수은 · 유황 · 납 등의 광물질을 재료로 하여 비금속(卑金屬)을 황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효력을 지닌 단약(丹藥)을 합성해 내는 것이다. 이 단약을 복용하여 평범한 몸을 불사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외단법이다. 이와는 달리 내단법은 밖에서 합성한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신체 내부의 단련 즉 호흡 수련과 명상에 의해 육체 및 정신의 갱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당나라를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은 외단, 그 이후는 내단의 시대로 갈라지는데, 이는 광물질 약재의 중독으로 인한 폐해가 점차 두드러지면서 외단에서 내단으로 관심이 전환된 것이라 여겨진다. 결국 도교에서의 불사 관념은 내단을 중심으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내단의 획득이 곧 불사의 달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내단 수행은 궁극적으로 성명 쌍수(性命雙修)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 수련은 명공(命功, 육체 수련)으로 시작하여 성공(性功, 정신 수련)으로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체내의 기운을 호흡법으로 조절하고 운용하는 것이 사실상 수련의 출발이다. 수련은 체내의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의 기운을 통합하여 완전 무결한 정신과 육체의 합체(合體)를 새로이 빚어 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용(龍)과 호(虎)로 상징된 체내의 두 가지 대립적인 기운이 조절되는데, 이 두 가지 기운은 각기 심부(心部)와 신부(腎部)에서 방출된다. 이를 화기(火氣)와 수기(水氣)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두 가지 기운은 결국 여성 원리인 감(坎)과 남성 원리인 이(離)의 작용에 의해 대립 · 극복 · 조화의 과정을 거쳐 체내에 영아(嬰兒), 혹은 성태(聖胎)라고 하는 작은 원신(元身)을 만들어 낸다. 이를 금단(金丹)의 형성, 즉 불사의 씨앗을 마련한 것으로 본다. 다시 일정 기간의 수련 후에 영아가 자신의 몸의 크기만큼 성장하여 옛날의 몸의 껍질을 벗고 순양(純陽)의 새로운 몸으로 탈화(脫化)하였을 때 불사의 경지에 들어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렇게 육체적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신적 완성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원상(原象)에 대한 명상을 통해 태극 및 음양 오행 등 우주 원리를 정관(靜觀)하거나 선행을 실천하고 자애심과 덕성을 함양하지 않으면 결코 진정한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융(C.G. Jung)은 신선의 이러한 정신적 경지를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되어 완전한 인격을 이룩한 상태, 개성화(individuation)의 궁극적 달성이라고 표현하였다. 결국, 영 · 육이 완전히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에서 벗어나 사념(思念)에 따라 형체를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도교)
※ 참고문헌 魏伯陽, 《參同契》/ 張伯端, 《悟真篇》/ 李養正, 《道敎概說》, 北京, 中華書局, 1988/ 정재서, 《불사의 신화와 사상》, 민음사, 1994/ C.G. Jung, Alchemical Studies,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Ltd., 1947. 〔鄭在書〕
불사불멸
不死不滅
〔라〕immortalitas · 〔영〕immor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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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불멸을 추구하는 배경인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깊은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