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不義

〔라〕injustitia · 〔영〕in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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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는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형태, 즉 착취나 폭력 등으로도 이루어진다.

불의는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형태, 즉 착취나 폭력 등으로도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뜻한다. 이 용어는 성서에서 자주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보통 하느님의 정의에 위배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성서상의 의미〕 구약성서 : 구약성서의 초기 문헌들에서는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일을 정의로 여겼고,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불의라고 하였다(레위 19, 15). 처음에는 불의가 법률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었지만, 후기로 갈수록 신학적 성찰과 더불어 개인적 · 사회적 영역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편에서는 악인을 불의한 자라고 표현하였는데, 악인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거짓말을하고 흉악하고 포악한 자(시편 43, 1 ; 71, 4)이다. 예언자들은 사회의 불의로 말미암아 가난과 억압이 생겨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부정한 수법으로 재산을 모아 누각을 짓고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였으며(예레 22, 13), 호세아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파생되는 불의를 지적하였다(호세 10, 13). 악은 악을 낳고 그것은 불의한 구조를 영속시킨다. 에제키엘은 불의가 극에 달해 이스라엘은 곧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에제 7, 10 ; 9, 9).
잠언에서는 불의를 가난과 연결짓는 구절들을 많이 볼수 있다. "가난한 사람이 갓 일군 밭에서 소출이 많이 나도 정의가 사라지면 남아 나지 않는다"(잠언 13, 23). "정직하게 살아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재산을 쌓는 것보다 낫다"(잠언 16, 8). 여기서 불의는 재산의 축적과 관련된다. 즉 불의는 악의 세력과 제휴하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불의한 구조는 인간 스스로 깨뜨리고 나올 수 없는 악순환을 형성하여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신약성서 : 우리말에서의 '불의'라는 단어가 복음서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부정직'이나 '악' 혹은 '옳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아디코스' (ἄδικος)가 이에 상응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불의'를 표현하였다.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에게나 의롭지 못한(= 불의한) 사람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분"(마태 5, 45)이라 하였고, 바리사이파 사람은 스스로 불의(= 부정직)하지 않다고 기도하면서 의인임을 자처하였다(루가 18, 11)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죄 많은 세리가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바오로사도는 "나 역시 의인들이나 불의한(= 악한) 자들이나(다)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하느님께 걸고 있습니다"(사도 24, 15)라고 진술한다.
인간의 정의는 동태 복수법(同態復讐法)의 원칙을 따른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의 자비와 연결되어 있다. 성서에서는 인간의 가치 기준에 따른 정의와 불의의 개념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정의와 그 반대 개념인 불의가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불의의 개념이 문맥상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공관 복음서에서는 인간의 정의와 불의라는 관점에서 불의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바오로 서간에는 바오로의 신학적 틀에서 구성된 신학적 개념으로 변용되어 있다. 바오로는 '하느님의 의' 를 신학화하였고, 불의를 하느님의 의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우리의 불의가 하느님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한다면 우리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노를 쏟아내시는 하느님이야말로 부당하다(=불의하다)는 것입니까?"(로마 3, 5) "하느님이 불공정하시다고(= 불의하시다고) 해야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실상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기는 자를 불쌍히 여기겠고 가엾이 여기는 자를 가엾이 여기겠다'고 하셨던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요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로마 9, 14-16). 여기서 바오로의 신학 작업을 도식화할 수 있다. 인간의 정의와 불의는 하느님의 그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의 자비에 기초하고 있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곧 불의에 해당한다. 이러한 신학적 의미는 교회 문헌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사회 교리 문헌에 나타난 불의〕 사회 교리에 관한 교회 문헌들은 불의의 개념을 개인의 차원보다는 사회의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개인의 잘못보다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시 말해 현대는 불의한 사회적 조건들로 말미암아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시대이다. 불의는 개인의 인권을 제한하는 억압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빈곤 · 억압 · 착취 · 폭력 등을 일컫는다. 불의의 원인에 대해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팔십 주년>(Octogessima adveniens, 1971)에서 산업 사회의 지나친 경쟁과 성공욕 때문에 피폐된 인간성과 맹목적 이기심, 그리고 지배욕을 지적하였다(15항). 즉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본성을 가졌고, 존엄성과 권리 및 기본 의무를 가졌다. 그런데 불의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 대우를 받으며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늘어간다는 것이다.
1971년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 발표된 <세계 정의에 관하여>(Convenientes ex universo)에서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불의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현대 세계에서는 갖가지 형태의 불의가 난무한다. 새로운 산업 구조와 기술 혁신은 모든 재화와 권력과 결정권을 일부 정치가나 지배층에게 귀속시켰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계층의 분화가 구조화되면, 인권이 침해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사태들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 발전을 위해 노동자나 농민들은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되고, 차별 정책으로 인해 부당한 대 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 권력의 억압으로 희생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갖가지 억압과 특수한 환경과 현대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불의의 희생물이 되고 호소할 권리마저 박탈당한다(19항). 이처럼 정의의 침해는 개인의 인권을 제한하는 온갖 억압의 형태로 저질러진다(21항). 그리하여 경제적 불의와 사회 참여의 기회를 상실한다면, 우리는 기본적 인권과 시민권마저 박탈당하게 될 것(9항)이라고 주장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서한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에서는 국가간의 불의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산업의 발전은 공업국과 농업국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켰고, 그로 인해 국가간의 불균형은 날로 심해졌다. 국가들 사이에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불균형이 지나치면 긴장과 불화가 생기며 평화를 위기에 몰아넣는다(76항).
인간의 가치 기준에 따른 정의는 계층간 · 인종간 · 문화간 · 국가간의 불균형을 정당화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설정하고, 동태 복수법에 따른 정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동태 복수법의 원리만으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한다. 개인의 잘못을 떠나서 제도화된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억압당하고 착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류 공동체의 참다운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정의에 입각한 제도 개선이 요청된다. 재화의 균등한 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한다. 그리고 온갖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것은 곧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압받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고민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야할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 가톨릭 사회 교리 ; 가톨릭 사회 운동 ; 정의)
※ 참고문헌  J. Scharbert et al.,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Bd. 12, Walter de Gruyter, Berlin · New York, 1984, pp. 404~44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교회와 사회》, 1994/ 《사회 정의一가톨릭의 입장》, 가톨릭출판사, 1976. 〔姜永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