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루터파 교회의 신학자. 신약성서 학자. 공관 복음서에 대한 양식 비평을 도입하였으며 바르트(K. Barth)와 더불어 변증법적 신학의 수립에도 참여하였다. 하이데거(M. Heidegger)의 실존 철학의 개념을 이용하여 실존주의 신학을 정립했고, 탈신화론,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문제로 격렬한 신학적 논쟁을 일으켰다. 주저로 《공관 복음전승사》(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Evangelien, 1921), 《요한 복음 주석》(Das Evangelium des Johannes, 1941), 《신약성서 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등이 있다.
〔생애와 저술〕 1884년 8월 20일 올덴부르크(Olden-burg)의 비펠슈테데(Wiefelstede)에서 태어나 1903년 그곳에서 인문 고등학교를 마친 뒤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의 부친 아르투르(Arthur Bultmann)는 루터 교회 목사였고 그의 조부는 서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봉직하였으며 그의 외조부도 목사였다. 처음에 불트만은 튀빙겐대학에 진학하여 세 학기를 마치고 베를린 대학과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에서 각각 두 학기씩을 마쳤는데, 대학 시절에 그에게 특별히 영향을 준 신학의 스승은 튀빙겐 대학의 교회사학자 물러(K. Müller), 베를린 대학의 구약학자 군켈(H. Gunkel)과 교의 사학자 하르나크(A. Harnack), 마르부르크 대학의 신약학자 월리허(A. Jülicher)와 바이스(J. Weiss) 그리고 조직 신학자인 헤르만(W. Hermann)이었다. 그리고 졸업 후 그는 올덴부르크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1906~1907) 교사로 근무하였다.
불트만에게 신약학자의 길을 걷도록 격려한 교수는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을 지정하여 준 바이스였다. 1907년 가을부터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학위 공부를 시작하여 1910년에 논문 <바오로의 설교 양식과 견유학파 및 스토아 학파의 논쟁 화법>(Der Stil der paulinischen Predigt und die kynisch-stoische Diatibe)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불트만은, 월리허 교수의 제안과 지도를 받아 1912년에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의 석의학(釋義學)〉(Die Exegese des Theodor von Mopsuestia)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1912~1916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약학 분야의 강사로 있었다. 바이스의 후임으로 하이트뮐러(W. Heitmüller)가 마르부르크 대학에 왔을 때 불트만은 그와 깊은 교분을 맺으면서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실천 신학 교수이며 주간지 《그리스도교 세계》(Die Christliche Welt)의 편집인인 라데(M. Rade)와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라데를 중심으로 한 교우 관계를 통하여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에 젖어 들었던 불트만은, 1916년 가을 부레슬라우(Breslau) 대학의 조교수로 초빙되어 1920년까지 이곳에서 활동하였는데, 1921년에 발간된 그의 《공관 복음 전승사》는 이곳에서 집필한 것이었다. 1920년 가을 부세(W. Bousset) 교수의 후임으로 기센(Giessen) 대학의 정교수로 초빙되어 갔다가 이듬해 가을 하이트윌러 교수의 후임자로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1930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1951년 은퇴 교수가 되기까지 계속해서 마르부르크에 남아 있었다.
마르부르크 시절에 인간적 교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학문적으로 토의를 함께한 동료 교수들 가운데에는 신약학자 조덴(H. von Soden)과 구약학자 휠셔(G. Hülscher), 바움가르트너(W. Baumgartner)가 있고, 조직 신학자 오토(R. Otto)와는 학문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었다. 특히 1922~1928년 동안 철학자 하이데거와 더불어 나눈 학문적 교류는 불트만이 실존주의 신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1920년대는 기존의 자유주의 신학과 새로 등장한 변증법 신학 사이에서 불트만의 독특한 신학적 입장이 점점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였다. 이와 관련된 주요 논문으로는 <자유주의 신학과 최근 신학 운동>(Die liberale Theologie und die jüngste theologische Beweg-ung, 1924), <하느님에 관하여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Welchen Sinn hat es, von Gott zu reden?, 1925), <신약학에 미치는 변증법 신학의 의의>(Die Bedeutung der dialektischen Theologie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1928)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칼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방법론에 대한 불트만의 동조점과 차이점은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제2판에 대한 여러 번에 걸친 서평(ChrW 36, 320 ~323. 330 ~334. 358~361. 369~375)과 1926년에 발표한 <칼 바르트 : 죽은 자들의 부활>(Karl Barth : Die Auferstehung der Toten)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1926년에 출판된 《예수》(Jesus)라는 단행본에서 불트만은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를 탐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다루었다.
불트만은 루터의 두 왕국설과 자신의 실존주의 신학의 노선에 입각하여 일생 동안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초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서 교회를 정치의 시녀로 변질시키려 하였을 때에는 이에 단호히 맞서서 이른바 "바르멘 선언"에 서명하고 고백 교회 운동에도 가담하였다. 1940년대에 불트만은 학문적으로 최고의 완숙기에 이르렀는데, 《요한 복음주석》과 《계시와 구원 사건》(Offenbarung und Heilsgesche-hen)이 1941년에, 《신약성서 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제1차 분배본과 《고대 종교들 가운데서 발생한 원시 그리스도교》(Das Urchristentum im Rahmen der antiken Religionen)가 각각 1948년과 1949년에 출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1950년대 초반에 걸친 성서 해석상의 뜨거운 쟁점은 이른바 탈신화화 논쟁이었다. 그런데 이 탈신화화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계시와 구원 사건》에 실린<신약성서와 신화론>(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이라는 논문이었다. 이 논문이 발표된 때는 제2차 세계대전중이어서 크게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전후에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1951년에 《신약성서 신학》 제2차 분배본이 나오고 1953년에 《신약성서 신학》 제3차 분배본이 나옴으로써 불트만의 최대의 신학적 업적인 《신약서 신학》이 완간되었으며, 1950년에 발표된 <해석학의 문제>(Das Pro-blem der Hermeneutik)는 성서 해석학의 이론을 명쾌하게 제시한 탁월한 논문이었다. 1950년대 들어 불트만은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 강사로 초빙되었다. 1951년 미국 예일 대학에서 행한 강연 자료가 1958년에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론》(Jesus Christ and Mythology)이라는 소책자로 발간되었으며, 1955년 에든버러 대학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의 강사로 초빙되어 강연한 자료는 1957년에 《역사와 종말론》(History and Eschatology)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나이가 80세 고령에 접어든 1960년대에는 저술이 급격히 줄었으나, 1960년에 소책자로 발행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원시 교회의 그리스도 선포의 관계》(Das Verhältnis der urchristlichen Christusbotschaft zum historischen Jesus)는 주목할 만하다. 1953년을 기점으로 불트만 학파 내에서 역사적 예수 문제에 대한 불트만의 노선에 반대하여 역사적 예수를 새로이 연구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글은 불트만이 그의 제자들이 일으킨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하여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1967년에는 그의 마지막 저술 《세 요한 서한주석서》(Die drei Johannesbriefe)가 출판되었다. 1960년대에 나온 주요 논문으로는 <그리스 사상과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역사 이해>(Das Verständnis der Geschichte in Griechentum und Christentum, 1961),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제거되었는가?>(Ist der Glaube an Gott erledigt?, 1963), <하느님 사상과 현대 인간>(Der Gottesgedanke und der moderne Mensch, 1963), <하느님의 의>(dikaiosyne theou, 1964), <묵시사상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모태인가?>(Ist die Apokalyptik die Mutter der christlichen Theologie?, 1964) 등을 들 수 있다.
〔신학 사상〕 신학적 원칙 : 불트만은 일생 동안 자신의 신학적 입장과 방법론을 일관되게 고수한 학자였다. 그의 사상에는 발전과 심화는 있으나 극적인 단절이나 방향 전환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성서학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서 본문을 분석하는 데는 철저하게 역사적 · 비판적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는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의 현존 분석 방법을 이용하였다. 역사적 · 비판적 방법은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그는 이것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실증주의적 역사관과 내재적 신관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의 기초가 자유주의 신학 자체 안에 이미 있음을, 특히 스승인 바이스와 헤르만에게서 그것을 발견한 그는, 이를 계승하였다. 1917년에 발표한 논문 <신약성서의 종교에 대한 종말론의 의의>(Die Bedeutung der Eschatologie für die Religion des Neuen Testaments)는 그가 변증법적 신학을 접하기 이전에 이미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 세계를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922년에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 제2판의 발간을 계기로 불트만은 변증법 신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1928년에 이 운동과 결별한 것도 불트만에게서 어떤 입장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학의 철저한 일관성 때문이었다. 역사적 예수 연구문제와 관련하여 1953년의 이른바 후기 불트만 학파와의 논쟁에서도 불트만은 자기의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였다.
역사적 · 비판적 방법과 실존론적 해석은, 불트만의 성서 해석이라는 열차가 그 위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영역에 설치된 두 궤도요, 그 성서 해석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차례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역사(驛舍)이다. 이 두 요소 외에 그의 성서 해석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결정짓는 요소는 성서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인간적인 어떤 요소나 역사 내적인 어떤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에 대한 전적인 거부와 심판으로 임하는 종말적 사건이다. 하느님 계시의 초월성에 대한 강조는 종교 개혁적 전통에 뿌리를 둔 것인데 불트만은 이것을 그의 가문의 루터교파적 종교적 분위기에서 이어받았다.
양식 비평적 연구 : 《공관 복음 전승사》는 슈미트(K.L.Schmidt)의 《예수 역사의 틀》(Der Rahmen der Geschichte Jesu, 1919)과 디벨리우스(M. Dibelius)의 《복음서의 양식사》(Die Formgeschichte des Evangeliums, 1919)와 함께 '양식 비평' (form crticism)이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탄생시켰다. 불트만은이 저서에서 공관 복음 안에 수록되어 있는 전승 자료들을 각각 그 문학 양식에 따라서 분류하고, 이 개개 자료들이 전해져 내려온 구전(口傳) 과정의 역사를 소급적으로 추적하여 그것들이 각각 생성되고 가꾸어진 원래의 '삶의 자리'(Sitz-im-Leben)를 규명함으로써 그 전승 자료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려 하였다. 전승 자료의 구전 단계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종래의 자료비평(source criticism)을 부정하거나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멈춘 곳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그 자료들의 구전 전승에 대한 역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전승사 연구는 자료 비평 작업의 계승이다. 자료 비평에 문학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전승사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두 연구 방법은 연구 원칙의 적용에 있어서 동일한 토대 위에 서있다. 양식사 연구는, 예수의 역사에 관한 전승 자료들은 예수의 역사 자체보다도 그 자료들이 유래된 삶의 자리에 더 종속된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예수의 역사보다도 '케리그마'(Kerygma)의 우위성(優位性)을 주장하였다. 양식사 연구는 역사 실증주의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과 역사 회의론의 허무로부터 벗어날 탈출구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종교사학적 연구 :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등장한 종교사학파의 연구 방법은 역사 비판적 방법의 연장(延長)이었다. 종교사학적 연구가 성서의 종교적 사상이 발생한 주변 세계의 문화 및 종교들과 관련시켜서 그것의 성립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양식 비평은 성서의 전승 자료들을 초대 교회 공동체의 종교적 · 제의적 삶의 현실과 관련시켜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본래의 의미를 밝혀 내는 것이다. <에픽테투스의 윤리적 교시에 나타난 종교적 동기와 신약성서>(Das religiöse Moment in der ethischen Unterweisung des Epiktet und das Neue Testament, 1912)는 불트만의 초기의 종교사학적 연구 논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변증법 신학이 태동한 직후와 그 이후에도 <요한복음 서론의 종교사학적 배경>(Der religionsgeschichtliche Hintergrund des Prologs zum Johannes-Evangeliun, 1923), <바오로에게 있어서의 윤리의 문제>(Das Problem der Ethik bei Paulus, 1924), <새로이 발견된 만대아 및 마니교의 자료들이 요한 복음의 이해에 미치는 의미>(Die Bedeutung der
neuerschlossenen mandäischen und manichäischen Quellen für das Verständnis des Johannesevangeliums, 1925), <원시 그리스도교와 종교사>(Urchristentum und Religionsgescichte, 1932), <요한 문서와 그노시스>(Johanneische Schriften und Gnosis, 1940) 등의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더욱이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요한 복음 주석》에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요한 복음의 종교사학적 배경을 규명하였다. <고대종교들 가운데서 발생한 원시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시 그리스도교가 후기 유대교 안에서 발생하여 동방 종교들이 유입된 헬레니즘의 정신 속에서 자라났음을 규명하면서, 원시 그리스도교의 특성은 그것이 생겨나고 자라난 종교적 · 문화적 주변 세계와의 비교를 통하여 드러난다고 하였다.
변증법적 신학 : 1920년에 고가르텐(F. Gogarten)이 <시간 사이에서>(Zwischen den Zeiten)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변증법 신학 운동의 출발점이다.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은 이 세계의 원인 · 결과의 연쇄 과정에서 파악될수 없으며 하느님은 심리학적 분석이나 역사학적 탐구를 통하여 접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고가르텐은 주장하였다. 역사학이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의 눈에 식별될 수 있는 하느님이라면 그러한 하느님은 우상일 따름이다. 인간의 행위가 그치고 하느님의 활동이 시작되는 때에만 참된 종교가 발생한다. 불트만은 이러한 주장에 즉각적으로 호응하였을 뿐만 아니라이 새로운 신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바르트 역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히 거부하고 절대 타자로서의 하느님의 신성의 복권을 부르짖었다. 불트만은 이러한 바르트의 입장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바르트의 성서 해석 방법에 대해서는 비판하였다.
불트만은 변증법 신학 운동의 초기에 참여하였지만 1920년대 말에는 변증법 신학과 결별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신학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 해석 방법론에 대한 차이로 인한 필연적 결과였다. 불트만은 계시와 믿음의 의미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불트만은 바르트가 역사적 비판과 언어적 비판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릇된 초자연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르트는 불트만이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주의로 회귀하려 한다고 응수하였다.
변증법 신학에 대한 불트만의 입장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불트만의 견해를 밝힐 때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트만이 변증법 신학 운동에 가담한 것은 그의 신학 여정에 있어서 돌발적인 변화도 아니며 자유주의 신학의 모든 유산으로부터 철저한 단절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 신학의 방법론에서 계승해야 할 요소가 무엇이며 극복해야 할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불트만은 <자유주의 신학과 최근의 신학 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이 사실을 잘 밝혔는데, 자유주의 신학의 공적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실상을 해명한 것과 교리적 독단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로운 비판 정신을 고취시킨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의 결정적인 과오는 역사 탐구가 신앙의 본래적 대상인 하느님께로 인도하리라고 착각한 데 있다고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느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세계 내적인 한 사건으로 환원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 비판적 방법은 변증법 신학에서도 계승되고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불트만은 1928년 "신약학에 미치는 '변증법 신학' 의 의미" 라는 강연에서 변증법 신학은 역사적 · 비판적 방법을 대치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변증법 신학의 동지들과 결별하였다.
역사적 예수 연구 : 이른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불트만의 입장은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관건이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 자유주의 신학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슈바이처(A.Schweitzer)가 1906년에 《예수의 생애 연구사》(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초판 서명은 Von Reimarus zu Wrede였으나 1913년 제2판부터 바꿈)를 발표함으로써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그때부터 1953년 후기 불트만 학파에 의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제기되기까지 근 반세기 동안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무연구(無硏究) 시대였다. 이때 불트만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역사적 예수 연구를 반대하였는데, 역사적 예수 연구는 자료가 없기에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신앙의 성격때문에 신학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앙의 대상은 케리그마에 제시된 그리스도이지 역사적 예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트만은 이 입장을 평생 동안 일관되게 고수하였다.
1926년에 불트만은 예수의 말씀을 실존론적으로 해석한 《예수》라는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예수의 말씀의 진정성을 판정하는 데는 그의 《공관 복음 전승사》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그 말씀의 실존론적 의미를 밝히는 데는 실존 철학을 이용하였다. 이 저서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역사적 예수의 생애나 인격에 대하여 기술하지 않고 역사적 예수의 말씀을 오로지 참된 실존 이해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였다. 역사적 예수에게서 신앙의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려는 태도이며 그것은 비신앙적이라고 공박한 불트만의 주장에 대하여 역사적 예수의 삶 속에서 케리그마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후기 불트만 학파의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무역사적(無歷史的)인 현대판 가현설에 빠지거나 '그리스도-이념'(Christus-Idee)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탈신화화 작업 : 불트만이 제기한 신약성서의 탈신화론적 해석은 오랫동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신화는 그의 정의에 의하면 신적인 활동을 인간적 행위에 유비하여 서술하는 표상 방식이다. 신약성서의 신화적 표상들은 그 당시 세계상의 산물로서 현대의 과학적 사고에 모순된다. 불트만은 신약성서의 신화적 표상 형식들을 객관적 구원 사실의 서열로 끌어올려서 신앙의 대상 또는 믿게 하는 수단으로 만드는 것은 지성의 희생(sacrificium intellectus)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약성서의 신화적 언명을 실존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탈신화적 해석은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표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실존론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신화의 이러한 실존론적 해석은 신약성서 자체 안에서 이미, 특히 요한 복음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실존주의 신학 : 불트만은 하느님의 말씀, 계시, 케리그마에 대한 해석의 목표를 궁극적으로 실존 해명에 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학은 실존주의 신학이다. 그는 하느님에 의하여 규정된 인간의 실존을 신학의 주제라고 하면서, 인간학적 관련에 있어서만 하느님은 신학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1940년대에 그는 요한과 바오로의 글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그 연구의 결실은 《요한 복음 주석》을 거쳐 《신약성서 신학》에서 종합되고 완결되었다. 신약성서의 핵심은 '케리그마' 이다. '케리그마' 는 그리스도 사건, 특히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하느님의 종말적 구원의 행위로 증언하는 선포의 말씀이다. 케리그마는 듣는 자에게 건네는 말(Anrede)이며 믿음으로의 부름(Ruf zum Glauben)이고, 믿음은 케리그마에 대한 응답이다. 케리그마는 믿는 자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케리그마는 믿는 자에게 미래를 향하여 실존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인간을 참된 자기 이해로 인도한다. 신약성서 신학의 과제는 케리그마를 그때그때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추구하는 것과 거기에서부터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어떠한 이해가 생겨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불트만은 신약성서의 문서들 중에서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인간 존재의 가능성으로 보여질 수 있는 하나의 독특한 실존 이해가 어떤 정도로 드러나는지를 물었다. 그는 하나의 새로운 자기 이해가 케리그마를 통하여 가능해지며 바오로와 요한에게서 더 직접적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보기 때문에 바오로 신학과 요한 신학을 신약성서 신학의 중심적 내용으로 다루었다. 이와는 달리 예수의 선포와 활동은 신약성서 신학 자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신약성서 신학의 전제들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불트만의 신약 신학에서 예수의 역사는 그 내용이 증발되어 버릴 위험이 내포되어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실존주의적 성서 해석은 시간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결국 가장 무역사적 성서 해석에 빠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평 가〕 불트만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20여 년 동안 독일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범위에서,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학계에서만이 아니라 초교파적 차원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불트만은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영향력은 성서학 분야뿐만 아니라 조직 신학, 해석학, 역사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미쳤다. 그는 엄격한 학자인 동시에 겸손한 신앙인이었고, 그의 학문과 신앙은 그의 삶을 이끌어 간 두 개의 수레바퀴였다. 그는 성서의 내용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는 일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는데, 탈신화론이나 실존론적 성서 해석은 이러한 그의 노력의 산물이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해결책이 비록 많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학의 광장에서 그의 중요성은 조금도 감소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가 제기한 문제는 현대인에게 절박한 것이며 그가 제시한 해결 방법은 진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 프로테스탄트 신학 ; 프로테스탄티즘)
※ 참고문헌 R. Bultmann,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 Göttingen, 1921/ 一, Jesus, Tübingen, 1926/ 一, Glauben und Verstehen, Bd. 1, Tübingen, 1933 ; Bd. 2, 1953 ; Bd. 3, 1960 ; Bd. 4, 1965/一, Das Evangeliun des Johannes, Göttingen, 1941/ 一, Das Urchristentum im Rahmen der antiken Religionen, Zürich, 1949/ 一,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Tübingen, 1953/ 一, History and Eschatoloy, Edinburgh, 1957/ H.W. Bartsch Hrg., Kerygma und Mythos, 1~6, Hamburg, 1948~1963/ C.W. Kegley ed., The Theology of Rudolf Bultmann, New York Harper & Row, 1966/ J. Macquarie, An Existential Theology, London, 1952/ 一, The Scope of Demythologizing, London, 1960/ H. Ott, Geschichte und Heilseeschichte in der Theologie Rudolf Bultmanns, Tübingen, 1955/ R. Marlé, Bultmann et I' Interprétation du Nouveau Testament, Paderbornae, 1967/ W. Schmithals, Die Theologie Rudolf Bultmanns, Tübingen, 1966/ O. Schnübbe, Der Existenzbegriff in der Theologie Rudolf Bultmanns, Göttingen, 1959. 〔金昌洛〕
불트만, 루돌프(1884~1976)
Bultmann,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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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루돌프 불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