뷜토, 조제프 콩스탕 밥티스트(1901~1951)

Bulteau, Joseph Constant Bapti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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뷜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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뷜토 신부.

파리 외 방전 교회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요셉. 한국명은 오필도(吳弼道). 1901년 11월 5일 프랑스 뤼송(Luçon) 교구에서 태어나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27년 9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어 그 해 11월 12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주교관에 머무르며 한국 언어와 풍습을 익히다가 1928년 5월 21일 부산진(釜山鎮, 현 범일) 본당 주임으로 임명된 뷜토 신부는, 부임 직후 목조 성당을 벽돌로 개축하면서 내부 확장 공사를 실시하고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본당 내에 소화학원(小花學園)을 설립하였고, 야간에는 불우 청소년들을 위한 야학을 개설하여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교육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어 1932년 1월 17일에는 '천주 공교 협회'(天主公教協會)를 '부산 지방 재산 관리위원회'로 개편하여 합리적인 재산 관리를 도모하였고, 본당 월보(月報)인 <부산진 천주교 소식지>를 발행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30일에는 절영도(絶影島)의 조내기(潮落里) 공소가 청학(靑鶴) 준본당으로 승격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뷜토 신부의 활발한 사목 결과에 힘입어 1932년 부산진 본당의 교세는 전체 신자수 2,200여 명에 관할 공소가 17개소에 이를 정도로 신장되었다.
그 후 1938년 5월 본국으로 돌아가 10여 년 동안 의학을 공부한 뷜토 신부는 1950년 초에 다시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충남 아산(牙山)의 공세리(貢稅里)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과 의료 봉사활동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 해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인해 7월 12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다른 외국인 성직자 · 수도자들과 함께 서울 소공동(小公洞)의 삼화 빌딩에 감금되었다가 인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북한으로 이송되어 7월 19일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으며, 9월 5일에는 만포(滿浦)로, 이어 10월 8일에는 고산진(高山鎮)으로, 다시 초산진(楚山鎮) 등으로 끌려갔다가 11월 7일 중강진(中江鎮) 부근의 하창리(下昌里) 수용소에 수용되는 '죽음의 행진'을 겪어야만 하였다. 이 행진 도중에 겪은 고초와 수난으로 불토 신부는 1951년 1월 6일 옥중에서 순직하였다. (→ 범일 본당 ; 죽음의 행진)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 1988/ 《釜山宣教九十年史》, 천주교 범일 교회, 1979/ 天主教 釜山教區, 《教區年報》, 韓國敎會史研究所, 1984/ 天主教 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