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난, 패트릭(1901~1950)

Brennan, Pat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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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브렌난 몬시뇰.

패트릭 브렌난 몬시뇰.

몬시뇰.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제4대 광주(光州) 지목구장. 세례명은 파트리치오. 한국 성은 안(安). 1901년 미국 시카고(Chicago)에서 태어나 세인트 리타(St. Rita) 고등학교와 퀴글리(Quigley) 예비 신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922년 시카고의 뮌델레인(Mun-delein) 신학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교구 사제로 사목하다가 1936년에 아일랜드의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한 브렌난 신부는, 이듬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광주에 머무르면서 한국어와 풍습을 익혔다. 그러다가 1938년에 골롬반회에서 강원도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되자 그곳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으며, 1939년 4월 25일 서울교구에서 춘천(春川) 지목구가 분리 · 설정됨과 동시에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그 사목을 맡게 되면서 원주(原州, 현 원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일제 총독부에 의해 준적성국(準敵性國) 국민이라는 이유로 종교 탄압을 받은 뒤 이듬해 4월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귀국 후에 그는 군종신부로 유럽에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8 · 15 광복 이듬해 다시 한국에 파견된 브렌난 신부는, 1947년에 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시아 지부장으로 임명되어 중국 상해(上海)에서 거처하다가 1949년 11월 2일 제4대 광주 지목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몬시놀 칭호를 받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그 해 7월 24일 목포(木浦, 현 산정동) 본당 주임 쿠삭(T. Cusack, 高) 신부와 그의 보좌 오브라이언(J. Obrian, 吳)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수난을 겪었다. 전주를 거쳐 대전으로 이송되었다가 같은 해 9월 24일경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다른 외국인 성직자들과 함께 대전 목동(牧洞)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사살되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산정동 본당에서는 1978년 10월 22일 브렌난 신부를 비롯하여 쿠삭 신부와 오브라이언 신부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순교 기념비를 성당 구내에 건립하였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차기진, <6 · 25 사변과 천주교회의 순교자들>, 《사목》 189호(1994. 10),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26~35/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사, 1990/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편, 《原州教區三十年史》, 천주교 원주교구, 1996/ Jeremiah F. Kelly, The Splendid Cause(1933~1983), Columban Fathers, 1984/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Those who Journeyed with Us(Deceased Columbans 1918 ~1995), p. 110.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