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 레옹 앙리 마리 Bloy, Léon Henri Marie(1846~1917)

글자 크기
6
레옹 앙리 마리 블루아.

레옹 앙리 마리 블루아.

프랑스 소설가. 평론가. 역사가. 논쟁가. 1846년 7월 11일 프랑스 페리괴(Périgueux)에서 태어나 18세 되던해 파리로 이주하여 건축 설계사로 생활하면서 바르베도르비이(J.-A. Barbey d'Aurevilly)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문인 그룹에 자주 참석하였던 블루아는, 그의 정신적 스승이자 문학으로 이끌어 준 스승이기도 한 바르베 도르비이의 감화를 받아 1869년에 유년 시대의 신앙이었던 가톨릭 신앙을 되찾은 뒤 열심한 신자가 되어 평생토록 고통과 가난을 통한 정신적인 성장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바르베 도르비이로부터 글을 쓸 때 강력하고 독자적인 주장을 가질 것, 절대적인 진리에 입각하여 판단할 것, 그리고 칭찬이나 비난에 구애받지 말고 냉정하게 글을 쓸 것 등 몇 가지 원칙을 전수받아 이를 일생 동안 충실히 이행하였다.
작가로서의 그의 생애는 비교적 늦게 시작된 편이었다. 1882년부터 내면 일기를 정기적으로 발표하였고, 1884년에는 평론집 《파괴자의 말》(Propos d'un entrepreneur de démolition)을 발표하면서 여러 신문사에 격렬한 논조의 기사들을 게재하였던 그는, 1866년에 그의 첫 소설이자 자서전적인 소설 《절망한 사나이》(Le déséspéré)를 완성하여 이듬해에 출간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블루아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90년경부터 끊임없이 저작 활동에 몰두하면서 특정한 문학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 가난한 삶, 종교적인 명상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계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극심하게 궁핍한 생을 보냈으며, 주위 사람들이 결탁한 공모에 휘말려 일생을 살았지만 만년의 블루아는 철학자인 마리탱 부부, 화가 루오(G. Rouault), 작곡가 오릭(G. Auric)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7년 11월 3일에 부르-라-렌(Bourg-la-Reine)에서 사망하였다.
〔작 품〕 평론가로서의 블루아는 졸라(E. Zola), 위스망스(J.-K. Huysmans) , 르낭(J.-E. Renan) , 부르제(P.-C.-J. Bourget) 등의 작품에는 혹평하였지만, 반대로 바르베 도르비이, 베를렌(P.-M. Verlaine) , 보들레르(C.-P. Baudelaire)에게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즉 그는 도전적인 언론인으로서 모든 자연주의 학파를 비판하면서 반사실주의(antiréalisme) 반자연주의(antinaturalisme)적인 입장을 지녔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청의 보수주의를 유물론, 민주주의, 실증주의와 더불어 맹렬히 비난했다. 반면에 소설가로서 그는 상상력을 통한 허구적인 요소보다는 주로 자신의 체험에 근거하여 실제 사건이나 인물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루었는데, 첫 소설인 《절망한 사나이》와 《가난한 여자》(La femme pauvre, 1897)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주인공이 곧 작가로 대체될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며, 때로는 역사나 가난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명상에 의해, 때로는 미래의 징벌을 예고하는 장광설(長廣舌)에 의해 소설의 흐름이 끊어지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블루아는 역사에 큰 관심을 보여 다소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어조로 역사를 서술하곤 하였다. 역사상으로 위대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때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인물에게도 관심을 쏟았던 블루아는 나폴레옹, 잔 다르크(Jeanne d'Arc), 루이 17세,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e Lorraine) 등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종교적이면서도 예언자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였다. 그가 남긴 그 밖의 작품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으며, 1892년부터 그가 사망하던 해까지 쓰여져 그의 사후인 1939년에 완간된 《일기》(Journal)는 미온적인 태도를 지닌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해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상과 문체〕 블루아의 다양한 문학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일관된 사상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의 작중 인물들을 규정 짓는 가장 큰 특색은 고통과 가난이다. 그는 인간이 고통과 가난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었으며, 인간이 살아가는 현 세상은 보다 고차원적이고 승고한 또 다른 세계를 상징하는 이미지일 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와 사물들은 반드시 무언가를 '의미하기' 마련이며, 그 결과 인류는 온통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과 문학의 임무는 외관 뒤에 숨겨져 있는 신비들을 해석하고 탐독해 내는 일종의 절대 탐구요, 진실에 대한 탐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블루아에게는 인간이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심은 없다. 그것은 예술가나 그리스도교 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기껏해야 언어를 통해서 가려진 신비의 실체를 암시하고, 그것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를 해독해야 할 암호로 여긴 블루아는 문학 작품에 성서 주석과 같은 성격과 역할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블루아가 구사한 문체는 매우 독창적이며 시적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그의 내적 요구로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체적 특성은 한마디로 거칠고 난폭하다. 또한 과장이 심하며 대조법이 많이 사용되었고, 신조어나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남용하면서도 구문론적인 파격은 가능한 한 피하였다. 전통적인 웅변 형식을 따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일종의 단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과격하고 난폭하다는 점은 그의 전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특징인 동시에 그가 지닌 감수성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보여지는 난폭성이란 마구잡이식의 난폭함이 아니라 정념으로부터 생긴 것이었다. 즉 현실과 희망 사이의 괴리, 그가 꿈꾸는 대상과 실제로 소유할 수 있는 대상 사이의 괴리, 혹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현실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등이 난폭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가 부르주아 사회와 가톨릭 교회 그리고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문인들을 대상으로 격렬하게 행한 논쟁들도 대립적인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절망과 체념의 산물일 뿐이다.
〔평 가〕 자신의 평론집과 일기에 붙여진 제목들처럼 '파괴의 집행자' 요 '절대의 순례자' 인 동시에 '배은망덕한 거지' 였던 블루아의 격렬한 글들은, 그를 프랑스 문단의 주류에서 배제시켰다. 그 후 그는 바르베 도르비이, 위스망스 등과 더불어 덜 중요한 작가군의 일원으로 치부되었다. 또한 그는 예수의 수난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자 하였던 가톨릭 신자이며, 문학 전반을 거부하고 오직 시인이 되기를 소망하였던 예언자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했지만, 긴장이 감도는 활기에 찬 문체와 바로크풍의 풍부한 어휘를 구사한 블루아는 다소 과장적인 은유를 통해 '견자' (見者)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Pierre Brunel etc, Histoire de la Llitérature frangaise, Bordas, 1972/ J.-P. de Beaumarchais · Daniel Couty · Alain Rey, Diction-naire de Langue frangaise, tome 1, Bordas, 1987/ Alain Rey, Le Petit Robert Ⅱ , Dicionnaires Le Robert, 1985. 〔曺圭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