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 신행 秘訣信行

글자 크기
6
비결 신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감록》(왼쪽)과 '계룡산 천도설' 에 의해 특별한 장소로 규정된 계룡산 신도안의 신흥 종교촌.
1 / 3

비결 신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정감록》(왼쪽)과 '계룡산 천도설' 에 의해 특별한 장소로 규정된 계룡산 신도안의 신흥 종교촌.

미래에 대한 예언과 관계 있는 비기(秘記) 참설(讖說)을 믿는 일종의 신앙 형태. 비결 신앙(秘訣信仰), 감결신앙(鑑訣信仰), 감결 사상(鑑訣思想), 도참설(圖讖說), 참위설(讖緯說) 등으로도 불리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정감록(鄭鑑錄) 신앙이 있다.
〔연원과 수용〕 비결 신행은 중국 고대의 자연 철학적 우주론에서 비롯되었다. 전한(前漢) 시대의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는 〈춘추번로〉(春秋繁露), <헌책>(獻策) 등을 통해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 대한 인식과 천인 상여론(天人相與論), 음양 오행설(陰陽五行說) 등과 같은 자연 철학적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에 기초하여 당시인들은 인간의 운명과 자연의 상호 관계를 논하였으며, 자연계의 재이(災異)를 특정 인간사에 대한 조짐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념이 고대의 역사관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와 병행하여 진행된 역(易)의 복점화(卜占化) 및 자연 철학적 우주론의 변질 과정에서 파행적으로 도참설이 나타났다. 비기 참설이 나타난 시기는 1세기 초 전한 말의 애제(哀帝) · 평제(平帝) 때였으며, 후한(後漢)의 장형(張衡, 78~139)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도참설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자연에 의해 지배되며, 따라서 개인이나 사회의 운수도 자연계의 조짐을 통해서 미리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도참설은 삼국 시대에 한국에 전래되었는데, 백제 말기 의자왕(義慈王, 641~661) 때 나라의 멸망을 전하는 각종 망참(亡讖)들이 성행하였다는 기록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참설을 체계화시킨 사람은 신라시대 말기의 도선(道詵, 827~898)이다. 그 후 고려 태조왕건(王建, 877~943)은 도선의 도참설을 활용하여 고려의 기업을 다지려고 노력하였고, 왕건 이후의 고려 시대에도 풍수 도참설은 계속해서 위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묘청(妙淸)의 난(1135) 때 국도(國都)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에서 당시 고려 사회의 풍수 도참설에 대한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한편 15세기 조선 전기 사회에서도 비기 참설류가 성행해서 조정에서 이를 수습하여 소각한 기록이 나와 있다. 조선 후기에는 정조(正祖)가 <척참윤음>(斥讖綸音)을 발표할 정도로 비결 신행은 성행하였다. 특히 19세기에는 민중 저항 운동과 연결된 변혁 사상의 일종으로 기능하였다. 이 풍수 도참설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그명맥이 일부 유지되고 있다.
〔비결서의 종류〕 조선 후기에 성행하였던 비결서 가운데 현재 30여 종 이상이 전래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감록비결》(鄭鑑錄秘訣)과 《토정비결》(土亭秘訣)이다. 그 외에도 《정북창비결》(鄭北窓창訣),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윤고산비결》(尹孤山秘訣), 《서산대사비결》(西山大師秘訣), 《두사총비결》(杜師聰秘訣, 杜師忠秘訣), 《서계이선생가장결》(西溪李先生家藏訣), 《퇴계결》(退溪訣) 《도선비결》(道詵秘訣), 《의상대사비결》(義湘大師秘訣), 《동차비결》(東車秘訣), 《초창결》(草窓訣), 《일행결》(一行訣) 《청구비결》(青丘秘訣), 《필도요결》(八道要訣), 《청학동비결》(靑鶴洞祕訣),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화악노정기》(華岳路程), 《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 《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 《옥룡비결》(玉龍秘訣, 玉龍子記), 《징비기》(懲秘記), 《유산결》(遊山訣), 《양류결》(楊柳訣), 《상산결》(象山訣), 《낭산결》(浪山訣), 《무학연대》(無學筵對), 《오백논사비기》(五百論史秘記), 《삼도봉시》(三峰詩) 등의 비결서가 있다. 이 비결서들은 그 성질상 유교적 이념에 대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인쇄되지는 않았기에 필사본으로만 전래되었다. 그래서 그 내용에 첨삭이 가해진 여러 이본(異本)들이 있으며, 필사본에 따라서 출입이동(出入異同)이 많다.
〔내 용〕 비결서의 내용은 그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결을 분류할 때 득도(得道) 비결과 국사(國事) 비결로 나누어진다. 득도 비결은 초인간적 존재인 신선이 되는 방법을 서술하거나 개인의 운세를 예지(豫知)하는 등 개인적 능력과 관련되는 비결이다. 이 비결은 대부분 구전되는 것이기에 문자로 남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토정비결》과 같이 득도 비결의 변형으로서 개인의 운세를 예지하는 비결류는 문자로 기록되어 널리 전파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국사 비결은 왕조의 흥망, 도읍의 선정 등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예언을 뜻한다. 이국사 비결에서는 흔히 내우외환이 임박하였음을 강조하고 구명 도생(苟命徒生)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이 비결은 민중의 변혁 의지를 표출한 것이며, 미래 국가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정감록비결》을 들 수 있다.
〔예언 기법〕 비결 신행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방법으로는 직설법(直說法), 풍수법(風水法), 우의법(寓意法), 은어법(隱語法), 파자법(破字法) 등이 있다. '직설법' 은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서 사건을 서술하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방법이며, '풍수법' 은 풍수 지리학의 원리에 의해 인간사의 길흉 성쇠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원래 풍수에는 조상의 묏자리를 선정하는 음택(陰宅) 풍수와 집 자리를 선정하는 양기(陽基) 풍수, 국가의 도읍을 결정하는 국도(國都) 풍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음택 풍수와 관련된 비결이 특히 성행하였고, 일부 비결에서는 국도 풍수적 요소도 함께 발견된다. '우의법' 은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에 상응하는 뜻에 입각한 예언 방법이며, '은어법' 은 참요(讖謠)나 시구(詩句), 역수(易數), 은어(隱語) 등으로 표현된 난삽하고 애매한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파자법' 은 '목자망존읍흥' (木子亡尊邑興)이라는 이씨(李氏)가 몰락하고 정씨(鄭氏)가 출현한다는 설과 같이, 한자를 분해하거나 결합해서 미래에 관한 조짐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비결서에는 이와 같은 여러 예언의 기법들이 혼재(混在)해 있으며,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그래서 동일한 비결에 대한 해석이 시대나 해석자에 따라 차이가 나며, 새로운 해석들이 첨가되고 제시되면서 비결은 그 효력을 지속하고 있다.
〔《정감록비결》〕 한국의 비결서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저자로 도선, 무학, 정도전(鄭道傳), 정여립(鄭汝立)등 여러 인물이 논의되고 있으나 신빙도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특정 인물을 저자로 거론하기보다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 과정에서 몰락한 지식인 집단에서 창출한 것으로 여김이 더 타당할 것이다. 《정감록비결》은 지명에 대한 고증이나 서술되는 시대 상황에 대한 분석 등을 감안할 때 18세기 초엽을 전후한 시기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결에는 현실 제도와 체제를 부정하는 논리가 추상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일신을 보전할 방도를 찾고자 하는 일종의 피난(避難) 사상과 이상향(理想鄕)을 추구하는 의지가 들어 있다. 또한 당시를 전환기적 위기상황으로 규정한 이 비결에는 왕조 교체와 사회 변혁의 필연성과 우주론적 운세(運世)의 법칙을 결부시키려는 역성 혁명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임신기병설(壬申起兵說), 계룡산 천도설(鷄龍山遷都說) 및 정성진인 출현설(鄭姓眞人出現說)이 제시되었다. '임신기병설' 은 내우외환이 중첩되는 숙명적 위기 상황이 박두해 있음을 서술하였다. 내우외환과 이에 따른 기병(起兵)을 논하는 것은 당시의 조선이 전환기적 시기에 처해있고, 무력에 의한 새로운 변혁이 진행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려는 시도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전화(戰禍)와 역질(疫), 기근(饑饉)이 범접하지 못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제시하였다. 또한 '계룡산 천도설' 에서는 계룡산의 형세를 전형적인 산태극(山太極) · 수태극(水太極)으로 보고, 우주의 중심인 태극이 표상된 특별한 장소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세워진 이상촌인 궁을촌(弓乙村)이 새 왕조의 수도가 되리라는 믿음을 표출시킨다. 감결에서는 이재궁궁(利在弓弓)의 개념이 강조되는데, 궁궁(弓弓) 혹은 궁을(弓乙)은 유학의 최고 범주인 태극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궁궁 혹은 궁을에 대한 이해는 우주 최고의 원리를 터득하고 실천한다는 철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룡산 궁을촌에 대한 발상은 현세를 비판하고 새로운 이상향을 추구하는 견해이며, 동시에 한양(漢陽) 중심의 이씨 왕조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정성진인 출현설'은 정진인(鄭眞人)의 출현을 대망하는 일종의 메시아니즘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말세가 쇠진한 다음에는 진인(眞人), 신인(神人), 장군(將軍), 이인(異人), 도령(道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출현하여 내우외환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것이라는 신앙이 드러나 있다. 진인 등에 대한 대망은 왕실을 비롯한 기존의 지배층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진 정감록 신앙은 조선 후기의 사회에 널리 신봉되고 있었다.
〔사회적 의미와 교회의 입장〕 비결 신행은 기존의 성리학적 이념과 사회 질서가 붕괴되어 나가던 조선 후기의 전환기적 상황에서 창출되었고 성행하였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부인하고 변혁을 추구하던 민중 사상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배층에서는 이를 사학(邪學)즉 반(反)유교적 사상으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다. 그러나 정감록과 같은 비결 신행은 조선 후기 변혁 지향 세력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예를 들면 1743년 무신란(戊申亂) 잔당들에 의한 변란, 1782년 문인방(文仁邦)의 거사 모의, 1785년 홍복영(洪福榮)의 역모 사건 등에서 비결 신행과 민중 저항 운동의 상관 관계가 확인된다. 또한 1811년 홍경래의 난, 1862년의 임술 농민항쟁 그리고 1872년 정만식(鄭晩植)의 역모 사건을 통해서도 비결 신행의 영향이 확인된다. 이렇듯 비결 신행은 사회 변혁의 이념으로 이용되었으며, 동시에 개인 구복적 차원에서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언 등을 통해서 성리학적 가치관을 실천적으로 거부하고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비결 신행은 조선 후기 변혁 사상의 일종으로 기능하였지만, 그 신행 자체가 점술적 신비성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 천주 교회에서는 정감록, 풍수 지리설, 토정비결 등과 같은 비결 신행을 일종의 점운술(占運術, sortilegim)로 파악하였으며, 이를 따르고 실천하는 것을 십계명의 제1 계명에 위배되는 행위로 인식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는 묏자리를 선정하는 음택 풍수 사상이나 세시 풍속화한 토정비결, 그리고 정도령의 출현을 대망하며 피난처를 구하는 정감록 신앙 등을 모두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로 경계해 오고 있다.
※ 참고문헌  安春根 編, 《鄭鑑錄集成》, 亞細亞文化社, 1981/ 申一撤 鄭鑑錄〉, 《韓國의 名著》, 玄岩社, 1970/ 車柱環, 〈秘訣輯錄〉, 《韓國의 道教思想》, 同和出版公社, 1984/ 尹亨重, 《詳解 天主教要理》 中, 京鄉雜誌社, 1958/ 梁銀容, 〈鄭鑑錄信仰의 再照明〉, 《傳統思想의現代的 意味》, 韓國精神文化研究院, 1990/ 高成勳, 〈正祖朝 鄭鑑錄關係 逆謀事件에 대하여>, 《歷史學의 諸問題》, 범우사, 1992/ 趙珖, 〈朝鮮後期 思想界의 轉換期的 特性〉, 《韓國史 轉換期의 문제들》, 지식산업사, 1993. 〔趙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