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론

決疑論

〔라〕casuistica · 〔영〕casu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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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원리를 개별적 사례에 적용시키는 방법론. 결의론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casuistry' 는 사례(case)를 뜻하는 라틴어 'casus' 에서 파생된 용어로서, 신학뿐 아니라 법학 · 심리학 · 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쓰인다. 신학에서는 윤리신학의 일부 또는 도덕적 원리들을 개별 사례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필요성〕 계시 진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윤리적 가르침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인간 행위의 제규범을 계시 진리의 관점에서 밝히고자 하는 윤리신학은 일정한 방법을 필요로 한다. 우선 계시 안에 발견되는 윤리적 가르침을 확인하고 수집, 정리해야 한다(실증적 방법). 그러나 이러한 실증적 방법은 윤리적 가르침을 단순히 조망해 보는 것으로 그친다. 윤리적 가르침을 더욱 깊이 학문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 (사변적 · 조직적 방법). 그리고 계시 진리가 내포하고 있는 윤리적 가르침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른바 결의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곧, 계시 진리의 빛으로 개별적인 사례 또는 경우를 밝혀야 한다. 결의론적 방법은 윤리적인 삶을 구성하는 윤리적 진리를 해명하고, 다양한 개별적 윤리 문제들간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현실로 부각되는 윤리적 문제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결의론은 인간이 자신의 구체적인 행위 또는 행위의 상황을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도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을 철저히 통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구체적 상황에서 윤리적 진리에 입각한 행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윤리의 규범이나 원리에 대한 인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위에 구체적인 상황에 따르는 다양한 윤리적 관심사와 요구를 서로 비교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윤리 판단에 어떤 원리나 규범이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사전에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리와 규범으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에로 접근하는 길이 단축되고,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서도 적절한 도움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리와 규범은 구체적인 상황으로부터 자극이 주어질 때 본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또한 추상적인 원리나 규범을 다룰 때에는 그것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결의론은 윤리의 규범이나 원리가 일상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인생 체험과 예지의 도움을 받아 이론과 실천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결의론은 기계적 또는 자동적으로 원리나 기준을 적용시킬 수 있는 선결단(先決斷)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역 사〕 모든 규범 윤리가 결의론의 적용을 필요로 하는 한 예수의 복음 선포 역시 결의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성서의 윤리 역시 항상 구체적인 삶에 주목함으로써 결의론의 활용을 암시하고 있다(루가 20, 20-26 ; 마르 2, 23-28). 그리스도교는 이교도의 세계 안으로 확산되면서 이른바 양심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특히 사도 바울로는 결의론을 이용해서 양심의 문제를 해결했다(1고린 7-8장). 교부들의 가르침에서도 우상 숭배, 병역 의무, 유행, 연극, 박해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결의론적 요소들이 발견된다. 결의론은 6~11세기 동안 개별 고해와 관련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6세기부터 아일랜드와 영국 지역을 중심으로 개별 고해가 확산되기에 이르렀고, 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성찰 목록도 등장하였다. 라테란 공의회 제4차 회기(1215)는 1년에 한 번씩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의무화시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러한 결정은 고해성사 집전 사제들에게 결의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16~17세기에 나타난 독특한 현상으로는 윤리신학의 독자적인 출발을 들 수 있다. 윤리신학, 즉 양심의 판단 사례를 연구하는 과정의 개설은 결의론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울러 결의론을 학문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될 교재로 윤리신학 교과서들이 개발되었는데, 이들은 매우 실천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이 시기가 결의론의 황금 시기였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얀세니즘 (Jansenism)과 개연주의(Probabilism)와 관련된 논쟁으로 말미암아 결의론의 황금 시기는 중단되었다. 논쟁에 휘말린 윤리신학자들은 윤리의 원리를 심화시키는 작업을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윤리신학은 단지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에게 요구되는 지식의 제공이라는 수준으로 격하되고 말았고, 최소한의 결의론을 지향하게 되었다. 결국 결의론은 구체적인 생활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고, 비현실적인 과정만을 토론하는 상황이 되어 심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18세기 중엽 독일의 튀빙겐(Tibingen)에서 시작된 윤리신학의 개혁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이 시기의 윤리신학은 주로 결의론의 안내에 해당하는 역할 수행에 그치고 말았다.
〔현 황〕 오늘날 결의론의 반대자들은 더 이상 결의론을 '이완주의' 라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결의론이 엄격주의로 기울어지는 경향이었다고 비난한다. 상황 윤리를 주장하는 일부 집단은 결의론을 비현실적이고 비복음적인 궤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윤리신학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결의론의 고유한 자리는 윤리의 영역이 아니라 법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신학에서는, 결의론이 복음을 율법주의 시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의론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톨릭 윤리신학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시도된 윤리신학의 개혁 움직임과 관련해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율법주의, 최소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결의론이 지니는 위험성과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결의론의 유용성과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결의론을 올바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도 행해지고 있다. 윤리신학의 개혁과 관련된 움직임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결의론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현실적 삶의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현실 상황과 관련된 결의론을 시도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 가〕 결의론이 사례의 수집이나 체계화를 통해 아주 세부적인 사항에까지 독특한 법 체계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든지, 또는 모든 가능한 사례를 남김없이 규정 지음으로써 행위자의 행동의 자유와 그 결과인 책임의 여지를 박탈할 경우에는 논쟁의 소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집착한 나머지 보편적 근본적인 정신을 간과할 수도 있다. 그 결과 결의론은 윤리신학과 교의신학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파괴하고, 윤리신학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내용을 율법화시켜 단순한 죄론(罪論)으로 귀착시킬 위험성이 있다. 아울러 결의론은 인간의 내면적 지향보다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객관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결의론은 그것이 유용하게 활용되기만 한다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결의론은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의식과 원칙의 적용에 있어서 요구되는 유연성을 부여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결의론은 윤리신학의 유일한 방법론이 아니기 때문에, 결의론을 올바르게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의 활용 가능성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를 지나치게 중시하여 보편을 외면한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일회적이고 반복될 수 없는 상황은 물론 있을 수 있으나 그 상황마저도 보편적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결의론은 윤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해답을 스스로 찾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 얀센주의 ; 율법주의)
※ 참고문헌  F. Böckle 《LThK》/ E. Hamel, 《NCE》 3/ Herg. H. Rotter · Günter Virt, Neues Lexikon der christlichen Moral, Innsbruck Tyrolia, 1990, pp. 362~364/ J.C. Mohr. Die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Bd. 3, Tübingen, 1963, pp. 1166~1171/ J.F. Childress · J. Macquarie, 《WDCE》/ K. Hörmann, 《LChM》/ K. Rahner · H. Vorgrimler, Kleines theologisches Wörterbuch, Friburg i/Br, Helder, 1961, p. 194. 〔安明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