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지타 Birgitta(1303~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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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지타 성녀.

비르지타 성녀.

성녀. 비르지타회(Birgittini)의 창립자. 신비주의자. 스웨덴의 수호 성인. 축일은 7월 23일. 1303년에 스웨덴 우플란드(Upland) 지방의 웁살라(Uppsala)에서 우플란드 총독 비르거(Birger)와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인게보르크 (Ingeborg) 사이에서 태어나 12세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 그때부터 계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14세 때 훗날 네레시아 지방의 총독이 된 18세의 울프 구드마르손(Ulf Gudmarsson)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그중 하나가 성녀 가타리나(1331~1381)이다. 1335년부터 2년 동안 스웨덴의 젊은 왕 막뉴스 2세(Magnus Ⅱ )의 궁궐에 들어가 왕비인 나무르(Namur)의 블랑쉬(Blanche)의 시녀로 생활한 비르지타는, 이때 초자연적인 계시를 체험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무절제한 생활을 바꾸려고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막내 아들 구드 마르(Gudmar)의 죽음을 계기로 남편과 함께 스페인의 콤포스텔라(Compostela)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여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이 1344년에 알바스트라(Alvasrta)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사망하자 수도원 근처에서 금욕과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이때에도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은 그녀는, 수도원장 올랍손 (P. Olapson)에게 자신이 체험한 계시를 이야기하였는데 그는 이 내용을 라틴어로 기록해 두었다.
〔활동과 업적〕 비르지타는 자신이 받은 계시에 따라 1346년에 밧스테나(Vadsena)에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 수도회' (Order of the Most Holy Savior)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처음에 16명의 수녀승과 25명의 수도승이 모여 은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건물 두 동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성당이 그곳에 세워졌고, 수도회 수입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1349년에 수도회 설립 허가를 받고 이듬해 성년(聖年)을 맞이하기 위해 로마로 간 비르지타는, 이후 이탈리아와 이스라엘 성지 순례 기간을 제외하고는 사망할 때까지 로마에서 생활하였는데, 그녀는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모두 사랑과 관심을 보였으며, 집 없는 이들이 거처할 집을 마련하는 등 빈민 구제에도 힘썼다.
비르지타는 당시의 교회와 정치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도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막뉴스 왕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이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려 하자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였으며, 나폴리와 키프로스(Cyprus) 귀족들의 좋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그리고 당시 아비뇽에 거주하고 있던 교황 글레멘스 6세(1342~1352)에게 자신의 환시 내용을 밝히면서 로마로 돌아와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도록 권고하였으며, 교회 내의 개혁을 촉구하였고 주교와 수도원장들의 악습을 비판하였다. 1370년에 교황 우르바노 5세(1362~1370)로부터 자신이 세운 수도회의 설립 인가를 받은 비르지타는 1373년 7월 23일 로마에서 사망하였으며, 교황 보니파시오 9세(1389~1404)에 의해 1391년 10월 8일 시성되었다.
〔저서 및 평가〕 비르지타의 구술로 기록된 《계시》 (Revelations)는 1492년에 총 8권으로 편집 · 발행되었다. 비르지타가 받은 계시의 내용을 먼저 서술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편집된 이 책은 그녀의 생애를 네 시기, 즉 스웨덴에서의 생애(1344~1349) , 로마에서의 생애(1350~1363), 순례 여행 시기(1364~1370) 이스라엘 성지
순례 시기(1372~1373)로 구분하였으며, 형식은 주로 비르지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환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파스카 신비의 의미와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한편 비르지타의 구술 내용은 시성 심리 과정 때와 콘스탄츠 공의회(1414)와 바젤 공의회(1431)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신학자들은 비르지타가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 반면, 다른 학자들은 그녀의 체험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교리에 부합된다고 하였다. 마침내 《계시》를 세심히 검토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이책을 신자들이 읽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 비리시다 ; → 스웨덴 ; 신비 신학)
※ 참고문헌  M.S. Conlan, 《NCE》 2, p. 7991 H. Jägerstad, 《LThK》, p.486/ 《EC》, p. 196/ 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pp. 70~71/ Enzo Lodi, Saints ofthe Roman Calendar, trans. by Jordan Aumann, O.P., pp. 193~194/ D.H.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1987, pp. 70~7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