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받을 부채(負債, debt)를 비밀리에 사용(私用, appropiiation)하는 행위. 즉 배상을 청구(請求)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 채권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배상받을 수 없을 때, 채무자의 재화를 비밀리에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행위는 결과적으로 부채에 대한 비밀 징수(secret collection)와 같지만, 윤리적으로는 그 자체로 불법 행위이다. 왜냐하면 지불되지 않은 부채에 대한 구제책은 일반적으로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해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비밀 배상 관행은 소유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고, 당사자의 판단력 부족으로 인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큰 어려움이나 만연된 불의 때문에-예를 들어 심한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거나 법관이 뇌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을 때-그 당사자가 법에 호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윤리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서 비밀 배상을 정당한 행위로 허용하고 있다.
첫째, 부채가 정의(正義)에 입각하여 확실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그 권리 주장이 의심스럽거나 또는 그 주장이 정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신의(信義)나 형평(衡平) 혹은 사랑에 입각한 것이라면, 비밀 배상은 정당하지 않다. 둘째, 채권자가 심각한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달리 정당한 법적 보상을 받기가 불가능해야 한다. 만일 이 조건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교환 정의를 거스르는 죄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배상의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가능하면 배상 의무가 있는 재화와 동종(同種)의 것이거나, 적어도 유사한 종류의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물리적인 상해, 강간, 중상(中傷), 명예훼손 등으로 보상받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넷째, 채무자가 나중에라도 부채를 갚을 가능성이 전혀 없어야 한다. 만일 비밀 배상을 한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똑같은 부채를 보상받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채무자에게 비밀상환(秘密償還, occult restitution)을 할 의무가 있다. 다섯째, 비밀 배상으로 인해서 채무자 또는 제3자에게 그리고 공동선에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채무자의 생계 벌이에 필요한 재물을 차지함으로써 채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만일 채무자가 재난을 당하거나 궁핍하게 되어 부채를 갚을 능력이 전혀 없을 때, 비밀 배상을 해서는 안된다.
교황 인노첸시오 11세(1676~1689)는 "하인이 자신에게 지급된 임금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판단하였을 경우 비밀리에 주인의 재물을 훔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수 있다"는 명제(命題, proposition)를 단죄하였다. 그런데 윤리 신학자들은 이 단죄를 일정한 조건하에서 행해지는 비밀 배상에 대한 거부로 생각하지 않았다. 신학자들은, "연민(憐憫)에 의하여 계약되지 않은 고용인이 명시된 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일을 하도록 강요받거나 가외(加外)의 노동이 강요되었을 때, 고용주가 추가 지불할 뜻이 없다면 고용인 스스로 비밀 배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이는 궁핍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확실히 부당한 임금 계약을 부득이하게 체결하였을 경우에도 허용되었다. 그러나 고용인이 순전히 연민에서 채용되었을 경우, 또는 고용인이 자발적으로 낮은 임금으로 계약하였거나 계약된 것 이상의 일을 더 했을 경우에는 이런 권리가 성립되지 않았다.
벨기에 출신의 윤리 신학자 부키용(T.J. Bouquillon, 1842~1902)은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1896년에 발행한 《가톨릭 대학 잡지》(Catholic University Bulletin)에 게재한 논문에서, 비밀 배상에 관한 이러한 이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철학자들과 법학자들도 이 용어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비밀 배상 행위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로 인해 파생되는 악영향을 조심스럽게 보완하면서 명료성(明瞭性)을 갖추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내용은 성 이레네오(130~200)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 시대 이후로 항상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비밀 배상 행위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으나 그 의지가 없는 '채무자' 와 보상받지 못한 부채로 인해 침해된 소유권을 원상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채권자' , 이 두 사람이 비밀 배상 행위의 당사자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행위가 자신의 재화를 보호하기 위해 행해지는 '정당 방위' 에 근거를 두고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리 신학자들은 비밀 배상이 신중하게 고려되어 극히 예외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채를 정상적인 법 절차에 의해 보상받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공공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개인의 이익에만 치우칠 때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쉽게 편견을 가짐으로써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비밀 배상 행위는 절도 행위를 통해 타인의 부당성을 고발하여 자신의 권리 회복을 정당화하는 형태로 공동선에 위해(危害)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의 ; 절도)
※ 참고문헌 《DTM》/ F.C. O'Hare, 3, pp. 89~90/ H. Stapleton, 《CathEnc》 41 Karl H. Peschke, Christian Ethics : Moral Theology in the Light of Vatican Ⅱ, vol. 2 Special Moral Theology, Alcester ane Dublin : C. Goodliffe Neale, 1986(유봉준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ㅡ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의한 가톨릭 윤리 신학 : 社會倫理》 3, 분도출판사, 1992)/ Ⅰ. Tarocchi, 《EC》 4/ M. Vidal, L'Atteggiamento Morale 3 : Morale Sociale, Assisi, Cittadella Edittrice, 1981/ T. Goffi . G. Piana eds., Corso di Morale 3 : Koinonia(Etica della vita sociale), Brescia : ed. Queriniana, 1984. 〔李太成〕
비밀 배상 秘密倍償 〔라〕compensatio occulta 〔영〕occult compen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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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