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여 년 동안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왔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 가운데 하나. 고대 근동의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인 비블로스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레바논의 지중해변에 위치한 대표적인 국제 무역항으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히브리어 또는 페니키아어 '그발'에서 유래된 아랍어 '주바일' (Jubail)로 불린다. 《페니키아 역사》를 저술하기도 한 2세기의 비블로스의 역사가 필로(Philo)에 의하면, 가나안의 최고신 엘(El), 또는 이에 상응하는 그리스 신인 크로노스(Kronos)가 성벽을 쌓고 비블로스를 처음으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성서의 언급과 지명〕 '그발' 로 불렸던 비블로스 사람들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 재목과 돌을 다듬는 사람들로 동원되었으며(1열왕 5, 18), 조선(造船) 기술자들로서 특별히 아스팔트 등으로 방수 처리하는 기술자로 묘사되기도 하였다(에제 27, 9). 그리스어 비블로스(βύβλος)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papyrus scroll)를 의미하는데, 이는 아마도 이집트와 밀접한 무역 관계에 있었던 비블로스가 이집트로부터 수입한 파피루스 줄기로 종이(파피루스)를 대량으로 만들어 지중해권의 중심지에 수출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집트는 파피루스를 비롯하여 금이나 삼베 등을 수출하였고, 비블로스는 성서에서 백향목이라고 알려진 잣나무 등의 목재와 송진 등의 수액을 이집트로 수출하였다. 기원전 1950년경부터 유래된 <시누헤(Sinuhe) 이야기>에서 이집트의 고위 관리였던 시누헤는 망명지로 비블로스를 선택하였고, <웬-아문(Wen-Amon)의 이야기>에서는 기원전 1100년경 카르나크(Karnak)의 아문 신전 관리였던 웬-아문이 제의용 선박 제조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기 위하여 비블로스로 떠나면서 겪게 되는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굴과 유적〕 비블로스에 대한 관심과 고고학적 발굴은 1860년대 프랑스의 페니키아 탐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르낭(E. Renan)에 의하여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어 1921 ~1924년에는 몽테(P. Montet)가 신전 등을 발견하였고, 1928년 이래 1970년대 말 레바논 전쟁 때까지는 레바논 정부의 고고학성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공동 주관으로 뒤낭(M. Dunand)에 의해 조직적인 발굴이 진행되어 모두 29개에 달하는 주거층들을 확인하였다.
비블로스 최초의 주거 역사는 토기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4500년경에 돌 조각으로 바닥을 포장한 단칸방 구조의 집터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주거층 무덤에서 빗살무늬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동석기 시대(기원전 3500~3000)에는 1,200여 기의 독널 무덤(jar burial)이 특징적이다. 비블로스는 레바논 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2300)부터 막강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발전되었는데, 성벽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 망대가 이어져 있었고, 각각 항구쪽과 내륙쪽의 성문인 서문과 동문이 있었다. 특히 비블로스는 이집트의 왕조 시대가 시작되면서 나일 강 교통에 필수적인 대규모의 선박들을 건조하기 위한 목재(잣나무 등)를 수출하기 위한 항구 도시로 발전되었다. 이 시대의 주거층 발굴에서는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 제4 왕조의 중요한 파라오들인 쿠푸(Khufu), 카프라(Khafra), 멘카우라(Menkaura), 우나스(Unas), 사후라(Sahura) 등의 장식 벽판(catouchc)과 당시의 상형 문자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이집트의 하토르(Hathor) 여신의 영향을 받은 바알라트 그발(Baalath Gebal) 여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졌으며, 기원전 2600년경에는 바알라트 그발 여신 신전과 거룩한 호수(sacred
lake)를 사이에 두고 이른바 "기역자 형태의 신전"(L-shaped Temple)이 새로 건설되기도 하였다.
초기 · 중기 청동기 시대 사이의 과도기(기원전 2300~2000)에 시리아 광야 지역에서 이주한 아모리 민족의 유 입으로 파괴되었던 비블로스는, 이집트의 중왕국 시대와 병행하는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1600)에 와서 지중해의 크레타를 비롯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이집트식 석관(石棺)에 매장된 지하 묘지가 발견되었으며, 레셉프(Reshep) 신을 섬기던 신전으로 추정되는 26개의 오벨리스크로 세워진 '오벨리스크 신전' 이 새로 건설되었는데, 이 신전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바알라트 그발 여신 신전 터에 세워졌던 것이다.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600~1200)에는 주변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히타이트 세력의 영향을 많이 받았 고, 철기 시대(기원전 1200~539)에는 이집트에서 수입한 파피루스 줄기를 가공하여 만든 파피루스 종이의 수출항으로 유명해졌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아히람(Ahiram) 왕의 석관을 들 수 있는데, 이집트에서 수입한 현무암 석관에 이집트식 연꽃 무늬와 히타이트 스타일의 사자상과 시리아 스타일의 밧줄 무늬, 그리고 관 뚜껑에 초기(기원전 11세기)의 페니키아어로 추모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비블로스의 국제적 명망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877년에 아시리아의 앗슈르나시르팔 2세는 비블로스를 함락시키고 조공을 받았으며, 비블로스의 성벽이 페르시아 시대(기원전 539~332)에 보강된 흔적이 있고, 기원전 5세기 비블로스의 왕 예하우밀크(Yehawmilk)의 석비가 발견되었다. 기원전 200년경 셀레우쿠스가 비블로스를 그리스식 도시로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며, 로마 시대(기원전 64~서기 330)에는 신전과 회랑이 딸린 중앙 대로(cardo) 님프 신전(nymphaeum), 로마식 극장 등이 골고루 갖춰진 도시로 발전하였다. 당시 이곳은 아도니스(Adomis)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이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순례지로도 유명하였다. (→ 고고학, 성서의)
※ 참고문헌 W.F. Albright, The Phoenician Inscriptions of the Tenth Century B.C. from Byblos, 《JAOS》 67, 1947, pp. 153~160/ ㅡ, The Eighteenth-Century Princes of Byblos and the Chronology of Middle Bronze, 《BASOR》 176, 1964, pp. 38~46/ M. Dunand, Fouilles de Byblos, vols. 5, Paris, 1937~1958/ ㅡ, Byblos : Its History, Ruins, and Legends, Beirut, 1968/ N.J. Idejian, Byblos through the Ages, Beirut, 1968/ M.S. Joukowsky, The Oxford Encyclopedia ofArchaeology in the Near East, vol. 1, 1997, pp. 390~394/ P. Montet, Byblos et I'Égypte : Quatre campagnes de fouilles a Gebeil 1921~1924, Paris, 1929/ E. Renan, Mission de Phénicie, Paris, 1864/ R.L. Roth, Gebal, 《ABD》 2, PP. 922~923/ O. Tufnell · W.A. Ward, Relations between Byblos, Egypt and Mesopotamia at the End of the Third Millennium B.C., Syria 43, 1966, pp. 165~241/ W.A. Ward, Egypt and the East Mediterranean in the Early Second Millennium B.C., Orientalia 30, 1961, pp. 22~45, 129~155/ ㅡ, Egypt and the East Mediteranean from Pre-Dynastic Times to the End of the Old Kingdom, Joumal of Economic and Social History ofthe Orient6, 1963, pp. 1~57. 〔金聲〕
비블로스 〔히〕גבל 〔그〕βύβλος 〔영〕Byb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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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로스의 유적지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