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아나 Bibiana(?~?)

글자 크기
6
성녀. 로마의 동정 순교자. 간질병자들의 수호 성인. 비비아나(Viviana)라고도 한다. 축일은 12월 2일. 비비아나의 역사적인 생애 기록이나 순교 시기 및 장소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6월 26일이 축일이지만 역사적 확실성이 없는 성인의 생애를 기록한 《요한과 바오로의 수난기》 부록에 피메니우스(Pimenius, 혹은 Pigmenius)라는 사람이 작성한 비비아나의 수난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수난기에 따르면, 비비아나는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로마 총독 플라비아노(Flavianus)의 딸로 율리아누스 황제(361~363)의 박해 시대에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추방된 후 죽임을 당한 데 이어 어머니 다프로사(Dafrosa)마도 참수형을 당한 후 자신의 집에 매장되었으며, 전 재산을 빼앗기고 동생 데메트리아(Demetria)와 함께 황제의 법정으로 끌려갔다가 동생도 심한 공포로 곧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비비아나는 부도덕하고 신심이 없는 한 부인과 강제로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동정을 빼앗기 위해 몇 차례 시도하다가 실패한 그 부인에 의해 벌로 심한 매를 맞고 4일 뒤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와 동생의 시신은 어머니 곁에 나란히 묻혔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성녀의 유해가 모셔진 로마 에스귈리네(Esquiline) 언덕에 심플리치오 교황(468~483)이 성 비비아나 대성전을 봉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성녀 비비아나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 후 교황 호노리오 3세(1216~1227)는 성 비비아나 대성전을 복구하였으며, 교황 우르바노 8세(1623~164) 때 비비아나와 그녀의 동생과 어머니의 유해가 발견되자 교황은 건축가 베르니니 (G.L. Bernini, 1598~1680)에게 이 대성전을 수리하게 하는 한편, 제대에는 성인들의 조각상을 세웠다. 이 대성전은 교황 레오 3세(795~816) 재임기에 봉쇄 수도원의 성당이 되었다가 1439년 2월 2일 교황 에우제니오 4세(1431~1449)에 의해 성모 마리아 대성전(Santa Maria Maggiore Basilica)의 부속 성당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비비아나의 이름은 《아도(Ado)의 순교록》과 《로마 순교록》, 그리고 일반 달력에도 수록되어 있었는데, 처음으로 《로마 미사 경본》에 등장한 것은 1474년이었다. (→ 수호 성인)
※ 참고문헌  G. Bardy, 《Cath》 2, pp. 12~13/ A.P. Frutaz, 《LThK》 2, p.416/ 《EC》, p. 159/ 1, p. 679/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Saints, Great Britain, 1983, p. 32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