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추기경. 예수회 신학자. 1846년 1월 12일 프랑스 모젤(Moselle) 지방에서 태어나 메스(Metz)와 보르도(Bordeaux)에서 공부하였으며, 블루아(Blois) 대신학교에 들어가 1869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2월 26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앙제(Angers)의 예수회 수련소에서 첫해를 보낸 후 1871년부터 프랑스 북서부 지방의 라발(Laval)에서 성서를 배우고 실습 생활을 하였으며, 1875~1878년에는 파리에서, 그리고 1878~1879년에는 라발에서 설교를 하였다. 1879년부터 앙제의 가톨릭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의 신학을 가르친 비요 신부는, 1882년부터는 저지(Jersey)의 예수회 신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였으며, 1885년부터는 파리에 머물렀던 1886년을 제외하고는 로마의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1910년까지 신학을 가르쳤다. 1910년에는 교황청의 고문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에는 교황 비오 10세(1903~1914)에 의하여 비아 라타의 성모 마리아(S. Maria in via Lata) 성당 명의의 부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러나 교황 비오 11세(1922~1939)에 의해 단죄된 '악시옹 프랑세즈' (Action Frangaise)에 동조하였다는 이유로 1927년에 추기경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로마 근처의 갈로로(Galloro)에 있는 예수회 수련원에서 생활하면서 이 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을 설득하였고, 교황의 뜻에 순명하 도록 하였다. 1931년 12월 18일 갈로로에서 사망하였다.
〔사 상〕 비요는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의 노선을 따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적 주제들, 특히 존재의 유비, 능동(act)과 가능(potency) 사이의 구별, 본질(essentia)과 존재(esse) 사이의 구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는 본질과 존재가 피조물에서는 구별되지만, 신에게서는 하나이며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에서 어떤 것도 신과 피조물에게 똑같이 귀속될 수 없다는 형이상학적 주장이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의 논문 <육화된 말씀에 대하여>(De Verbo Incarnato, 1892)에서 인성과 본성 사이의 구별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말씀의 본체(Esse Verbi)라고 정의하였다. 또 삼위 일체에 관한 논문인 <하나이며 셋인 신에 대하여>(De Deo uno et trino, 1895)에서는 관계 개념을 섬세하게 분석하면서 형이상학적인 개념들로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설명하였으며, 성체성사에 관한 논문에서는 회개로 인해 실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실체 변화(transsubstantiaio)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신자의 구원에 관한 논문에서는 윤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신자가 어른이라 할지라도 어린이로 남아 있기에 그들은 죽은 후 고성소로 간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견해는 다른 신학자들에 의해 점차 거부되었다.
그의 신학 사상은 당시의 자유주의와 근대주의에 대항하면서 전개되었다. 자유주의 안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에서 유래하고 무신론에 근거한 이단 사상을 보았으며, 개인의 자유를 인간의 지고한 선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공박하였다. 따라서 그는 민주주의적인 사상들과 이단적인 색채를 지녔던 프랑스의 시용(Sillon) 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비판적이었으며 근대주의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교황 비오 10세의 회칙으로 근대주의를 단죄하는 내용의 <파쉔디>(Pascendi 1907.9.8)에는 그의 사상과 신앙 형식, 심지어 그의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토마스주의자들을 전적으로 추종한 사변 신학자였던 비요는, 자유주의와 근대주의에 맞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사상으로 신학을 전개했지만, 실증 신학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신하기까지 하였다. (→ 신스콜라 철학)
※ 참고문헌 J. Galot, 《NCE》 2, pp. 557~558/ S. Tromp, 《LThK》 2, p.477/ H. Le Floch, Le Cardinal Billot, Paris, 1947/ J. Lebreton, 《Cath》 2, pp.61~63. 〔姜永玉〕
비요, 루이 Billot, (184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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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루이 비요 추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