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527~565)가 사망한 565년 이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까지, 슬라브 민족과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의 멜키트 총대주교좌를 제외한 동로마 제국 내에 비잔틴 전례 를 따르던 동방 교회.
명칭 : 기원전 676년 보스포루스(Bospous) 해협 남단에 있는 칼체돈을 점령한 메가라(Megara)인들은 기원전660년에 유럽 쪽 해안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그들의 원정군 대장이었던 비자스(Byzas) 장군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 (Byzantium)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유럽과 소아시아의 경계선에 있던 이 도시를 '새로운 로마' 로 정한 콘스탄틴 대제(324~337)는 330년에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본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s)이라이라고 이름붙였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 이후부터 동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비잔티움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비잔틴 교회의 역사는 동로마 제국의 역사와 일치한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제국으로 자처한 동로마 제국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비잔틴인이 아니라 '로마인' 이라고 불렀으며, 특히 황제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권력을 받았으며 모든 국민들이 하느님을 숭배하도록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로마 제국 황제들은 교회의 정책과 교리의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계속 관여하였고, 공의회와 교회 회의의 결정 사항을 제국의 법으로 집행하였으며, 심지어 몇몇 황제는 자신을 왕이자 사제로 여겨 비잔틴 교회의 수장으로 자부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와 교회를 일체로 본 동로마 제국의 방침에 따라 비잔틴 교회는 부분적으로 교회가 국가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시종일관 국가에 종속된 국가 교회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잔틴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남동부 유럽을 다스렸던 동로마 제국의 각종 제도가 로마적이었지만 주민과 언어, 문화는 그리스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업적 : 비잔틴 교회에서 가장 획기적인 업적은 슬라브 민족에 대한 선교이다. 비잔틴 교회는 9세기경부터 제국주변에 있던 중부 유럽의 불가리아인들과 러시아인들에게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선교사가 모라비아에 파견된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주교였다. 그들은 선교하면서 자신들이 창안한 치릴로식 문자를 사용하여 전례서를 슬라브어로 번역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의 발달한 법률과 문화 등을 함께 전해 주었다. 이들의 성공으로 불가리아(864)와 키예프 러시아(988)가 개종하였으며, 1220년에는 세르비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비잔틴 교회의 신학은 이 세상을 초자연 세계의 가현물로 본 영적인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다분히 신비적이고 그리스적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신 중심적 시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스 철학의 개념, 특히 신화(神化 deification)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했다. 반면에 비잔틴 신학은 전체적으로 조직적이지 않으면서 체험적 · 신비적 · 부정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였는데, 4세기경의 가빠도기아 교부들의 작품에서부터 발견되는 '부정 신학' (apophaticism)은 신학만이 아니라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비잔틴 신학은 특별히 수도원에서 발전되었으며, 동방 교회 전체의 신학으로 인정을 받았다.
비잔틴 신학의 독특한 형태는 그레고리오 팔라마스(Gregorius Palamas, +1359)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비 생활을 심오하며 새롭게 하고, 영성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헤시카슴' (hesychasm)이란 신비 신학을 발전시켰다. 헤시카즘은 내적인 기도와 마음의 고요함을 찾고자 하는 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중요한 영성적 전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사막의 교부들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헤시카즘은 수도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예수의 기도, 마음의 기도 등의 기도 방식과 기도하기 위해 앉는 자세, 호흡 등의 외적이며 신체적인 기술과 정신적이며 내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수도원 발전에 많은 영 향을 미쳤다.
성가 : 단성부(單聲部) 성가인 비잔틴 성가는 대부분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고대 그리스나 비잔티움 음악과의 관련은 없다. 여러 유형의 성가들 중에서도 트로파리온(troparion) , 콘타키온(kontakion), 카논(canon)이 대표적이다. 10세기경 이전에는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서 전래된 '에크포네티크기보법' 을 비잔틴 성가의 기보법으로 사용하였는데,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이 만든 이 기보법은 목소리의 상행 또는 하행 움직임의 방향만을 대강 표시한 것이었다. 10~12세기 비잔틴 성가의 네우마 표기법은 에크포네티크 기보법보다 좀더 구체적이었지만 리듬과 음정을 표기하는 데 있어 정확성이 부족하였다. 이것이 12세기 말부터 시작된 음높이를 지정하지 않고 앞 음과의 음정 관계만을 표기하는 중기 비잔틴 기보법으로 발전되었고, 현재도 그 원리가 그리스 음악에서 사용되고 있다.
초기 작곡가들은 시인이기도 하였는데, 6세기 초에 활동한 비잔틴 최고의 시인 로마노 멜로두스(Romanus Melodus)는 가수이자 콘타키온을 만든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크레타의 안드레아(660?~740?)는 카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수도승이자 신학자인 성 다마스커스의 요한(657?~749)은 카논을 작곡하였고 찬미가의 작사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부활 대축일의 카논과 성탄절 카논, 성령 강림 축일 카논, 주의 변모 축일 카논 등이 있다. 9세기에 활동한 수녀승인 카시아(Kasia)는 성토요일 카논과 여러 찬미가를 작곡하였으며, 이외에 대표적인 인물로 14세기에 활동한 요한 쿠쿠젤레스(J. Koukouzeles)가 있다. (→ 동로마 제국 ; 동방 교회 ; 동방 전례 ; 부정 신학 ; 비잔틴 예술 ; 신화 ; 헤시카즘)
※ 참고문헌 레이몬트 콧테 외, 이신건 역, 《고대 교회와 동방 교회》, 한국신학연구소, 1995/ M.J. Higgins, Byzantine Church, History of, 《NCE》 2, pp. 936~950/ J.M. Hussey, Byzantine civilization, 2, pp.950~958/ I. Thomas, Byzantine rite, chants of, 《NCE》 2, pp. 1011~1014/V Malanczuk, Byzantine Theology Ⅰ, 《NCE》 2, pp. 1014~1026/ I. Hutter, Early Christian and Byzantine, The Herbert Press, 1988/ G.P. Majeska, The Modern Encyclopedia of Russian and Soviet History, Academic International Press, 1977, pp. 74~80/ J. Meyendorff, Imperial Unity and Christian Divisions, New York, 1989/ ㅡ Byantine theology, New York, 1983, pp. 1~15/ ㅡ, St. Gregory Palamas and Orthodox Spirituality, New York, 1974, pp. 40~46, 56~84/ C. Jones · G. Wainwright · E. Yarnold, The Study of Spirituality, London, 1986, pp. 243~244, 246~2471 곽승룡, Christ in His Kenosis : Fullness according to the Later Dostoevsky, Dissertatio ad Doctoratum, Rome, 1995/ 곽승룡, 《아름다움의 사랑》, 만남출판사 1997. 〔郭承龍〕
비잔틴 교회 - 敎會 〔라〕Ecclesia Byzantina 〔영〕Byzantine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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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황제들은 국민들이 하느님을 숭배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