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테를리, 디모테오 Bitterli, Timotheo(1905~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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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테오 비테를리 몬시뇰.

디모테오 비테를리 몬시뇰.

몬시놀.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초대 왜관 수도원장. 초대 왜관 감목 대리. 제2대 덕원 면속구 및 함흥교구장 서리. 제3대 연길교구장 서리. 세례명은 디모테오. 한국명은 이성도(李聖道) 1905년 5월 12일에 스위스 솔로트룬(Solothrun) 주(州)의 로르(Rohr) 지방에서 태어나 그곳의 초등학교와 사르넨(Sarnen)의 베네딕도회에서 운영하는 중 ·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27년 10월 1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이듬해 10월 11일 유기 서원을 하였다. 그후 뮌헨(München)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는데, 1932년 3월 6일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여름 뮌헨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해 8월 15일 한국 선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던 슈미트(C. Schmid, 金時練) 총아빠스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함부르크(Hamburg)를 출발하여 11월 9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덕원(德源) 수도원에 파견되어 한국어를 배운 비테를리 신부는, 1933년 초 덕원 본당 다베르나스(L.d'Avernas, 羅碧宰) 신부의 보좌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는 슈넬(S. Schnell, 成來純) 신부의 후임으로 덕원 신학교에 파견되어 교리 · 독일어 · 라틴어 등을 가르쳤고, 이어 원산(元山) 본당 주임 담(F.Damm, 卓世榮) 신부가 수도회 업무차 일본에 체류하자 1940년 6월부터 본당 사목을 대신 맡기도 하였다. 이후 고원(高原) 본당 주임(1942~1944), , 나남(羅南) 본당 주임(1944~1946) 덕원 본당 주임(1946~1947) 등을 역임하였고, 1947년 10월에는 모스크바 주재 스위스 대사관의 도움으로 본국 휴가를 허가받아 출국하였다가 한국 전쟁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 뉴저지(New Jersey) 주에 있는 뉴톤(Newton)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독일어를 가르쳤다.
한편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 수도회는 1949년 5월 덕원 수도원이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폐쇄되면서 수난을 겪어야만 하였으며, 한국인 수사들은 각기 흩어져 남하한 뒤 공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테를리 신부는 1951년 미국을 방문한 슈미트 총아빠스로부터 다시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한국 공동체를 세우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총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그 해 12월 미국을 출발하여 1952년 1월 25일 한국에 재입국하였고, 부임 직후부터 수도원 건립을 우선 과제로 삼고 2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여러 가지로 노력한 결과 1952년에는 왜관에 새 정착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6월에는 이곳으로 이주를 하였다. 이주에 앞서 5월 9일 교황청으로부터 덕원 면속구와 함흥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그는, 7월 6일 왜관 수도원장 착좌식을 가졌으며, 1953년에는 왜관 지역이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면서 초대 감목 대리로 임명되었고, 1954년 4월 9일에는 연길교구 교구장 서리로 임명됨과 동시에 몬시놀 칭호를 부여받았다.
비테를리 몬시놀은 이후 수도원의 기틀을 다지는 데 노력하여 1955년 7월 3일 왜관 성당 뒤에 187평의 수도원 건물을 완공하여 축복하였고, 1958년에는 서울 장충동(奬忠洞)에 부지와 가옥을 매입한 후 이를 분원 겸 신학원으로 이용하였다. 한편 1955년 4월 1일에는 순심(純心)고등학교를, 1961년에는 순심중학교를 각각 인수하였으며, 1960년에는 분도출판사와 인쇄소를 설립하면서 아울러 철공소 · 목공소 · 농장 등도 마련하였다. 그러다가 1964년 4월 1일 왜관 수도원이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자 수도원장직을 사임하고, 서울 신학원 원장(1964),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련원 지도 신부(1968. 12~1974. 9)를 거쳐 1975년에 휴가차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베네딕도회 부산 분원 내에 있는 명상의 집에 머무르다가 1981년 6월 29일에 덕원 면속구 및 함흥교구장 서리직을 사임한 데 이어 1983년 3월 25일에는 연길교구장 서리직을 사임하였다. 1982년 5월부터 경북 칠곡군에 소재한 파티마 결핵 요양원 내의 사제관에서 거주하던 비테를리 몬시놀은, 1990년 6월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경북 칠곡군 석전면 중지리(中旨里)에 있는 왜관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이성도 ; → 베네딕도회 ; 연길교구 ; 순심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향잡지》 923호(1940. 6. 12), p. 16 ; 1167호(1965. 6), pp. 12~13/ P.H. Walter, 정학근 역, 《승리의 십자가》, 분도출판사, 1973/ 천주교 왜관 교회, 《倭館半世紀》, 197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1/ 왜관 성 마오로 플라치도 수도원, 《옛 등걸에 새순이》, 분도출판사, 1985/ 一, 《死亡者 名簿 1910~1989》, 분도출판사, 1990/ 부산성 베네딕도 수녀원, 《은혜의 60년》, 1995/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