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애〕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빈(Wine)의 부유하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가정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14세 때까지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린츠와 베를린에서 공부한 다음, 1908년부터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프로펠러의 고안과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읽게 된 러셀(B. Russell)과 화이트헤드(A.N. Whitehead)의 공저 《수학 원리》(Principles of Mathmatics, 1903)로 인해 철학으로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되었다. 결국 1911년에 공학 연구를 포기하고, 프레게(G. Frege)의 권유로 1912~1914년 케임브리지에서 러셀, 무어(G.E. Moore)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오스트리아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포병 부대에서 근무한 그는, 1916년에 러시아 전선에서 떨친 용맹으로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후 장교 훈련을 받고 1918년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근무하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이 전쟁 기간 동안 논리학과 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였는데, 이 논고가 1921년에 출판된 《논리철학 논고》(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이다.
1919년에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철학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물려준 막대한 유산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 철학 공부를 포기하고 약 5년 동안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정원사나 건축가로도 활동하였다. 1929년 케임브리지로 돌아간 그는 철학 강의와 토론을 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저서와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1939년에는 무어가 맡고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철학 교수직을 승계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런던에 있는 가이스 병원과 로열 빅토리아 병원 등에서 자원 근무를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에도 철학 문제에 대한 사고와 저술을 계속하였다. 1944년 가을에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교수직을 맡았지만 1947년 말에 그만둔 후, 아일랜드 서부 해안가의 한 오두막에서 혼자 살면서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다. 1949년 가을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조금도 개의치않고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1953)의 집필에 더욱 몰두한 그는, 결국 1951년 4월 29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사망할 때까지 몰두하였던 작품은 2년 뒤에 출판되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작품과 사상〕 《논리 철학 논고》 : 75쪽 분량에 불과 하지만 언어의 본성, 논리학 · 윤리학 · 철학, '말할 수 있는 것' 의 한계, 인과성과 귀납, 자아와 의지, 죽음과 신비, 선과 악, 종교 또는 신비주의에 관한 비평 등의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었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하여야 한다" 로 끝을 맺었다. 이 책이 추구하는 핵심적인 물음은, "어떻게 언어가 가능한가?" , "언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어떻게 어떤 사람이 일련의 단어를 입 밖에 냄으로써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를 이해할 수 있는가?" 등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무언가를 말하는 문장(명제)은 '실재의 그림' 이고, 그 그림은 명제의 의미를 '보여' 주며, 또한 세계의 어떤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그림 이론' (picture-theory)은 종이 위에 쓰여진 기호들과 외부 세계의 어떤 상황 사이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실재에 공통적인 이 형식 자체는 표상될 수 없다.
《논리 철학 논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언어의 한계에 대한 생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언어는 외적으로는 그 언어가 가리키는 실재 세계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며, 내적으로는 수학의 함수 관계처럼 언어와 언어 사이에는 진리 함수적 관계가 형성된다. 먼저 언어와 세계의 외적 관계는 언어의 각 요소와 세계의 각 요소 사이에 1 대 1 대응 관계가 성립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언어와 세계가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지님으로써 언어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그림'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언어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영역은 자연 과학적 명제의 세계로 제한되고, 이 한계를 벗어난 언어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언어와 세계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들은 철학적 주장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말할 수 있는 것' 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말할 수는 없으나 보여지는 것(논리학, 윤리학, 미학, 삶과 죽음, 그리고 하느님등에 관한 사고)은 모두가 객관적인 세계 밖에 있다는 의미에서 초월적(transcendent)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과학적 언어, 즉 그림으로서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에 또한 초월적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종교, 가치, 삶의 의미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말해 왔다. 그러나 《논리 철학 논고》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들은 말할 수 없는 것, 다만 보여질 수밖에 없는 '신비적인 것' 의 영역에 있으므로, 철학은 전통적인 철학이 견지해 왔던 태도, 즉 말할 수 없는 것까지 말하려 하던 오만 혹은 과대 망상적 태도를 버려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의 철학을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철학의 많은 문제들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란 주장이다. 즉 그의 견해는 종교와 윤리, 예술의 근본 문제 등의 침묵의 영역 앞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철학하는 자의 성실한 자세라는 것이다. 결국 철학이 해야 할 일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어 주고, 누군가가 그 경계를 넘으려 할 때 그가 언어를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해 주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만의 독특한 생각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에서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경계를 규정하는 일과 언어를 통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에 몰두하였다. 여기서 그는 언어의 한계는 그것의 내적 구조에 의해 확정된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하여 언어의 기능을 묘사적 성분들로 한 정지었다. 이 책에 포함된, '보여 주는 것' (Zeigen)과 말하는 것' (Sagen)에 관한 주장은 러셀의 '유형 이론' 과 철학의 존재론적 명제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보여주는 것' 의 세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첫째는 명제 의미에 대한 그림 이론의 기초가 되는 '외적인 보여 줌' 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며, 둘째 내적인 보여 줌' 은 존재론적 모사(模寫) 이론의 기초로 더 이상 문장을 통해서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신비적 보여 줌' 인데 문장을 통해 말할 수도 없으며 보여 줄 수도 없는 표현 불가능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견해는 이성에 관한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 (transcendental Idealism)을 변형시켜 언어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철학적 주장이 '선험적 언어주의' 이다. 선험적 언어주의는 이론적 측면 뿐만 아니라 실천적 측면에서도 비트겐슈타인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론적으로 볼 때 '철학은 어떤 학설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를 밝혀 내는 활동의 일종이다' 라는 주장이 이 '선험적 언어주의' 로부터 도출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연 언어 속에 이미 완전하게 질서를 이루고 있는, 그리고 질서를 이루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의 구조를 밝히는 일을 자신의 언어 분석의 목표로 정하였다.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수행함에 있어서는, '과학 언어' 특히 물리학과 수리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과학 언어의 발전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특히 헤르츠(Hertz)와 볼츠만(Boltzmann)의 연구 성과들, 프레게의 '개념 문자' 표기법,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 진리표(Truth-table)이론, 논리적 진리와 확률의 의미를 결정하는 방법들, 논리적 그림 이론, 논리적 의미론(semetics)에 관한 일련의 문제들도 그의 논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그의 《논리 철학 논고》는 진리 함수 이론과 언어가 실재의 그림이라는 사고의 종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철학적 탐구》 : 1929~1933년 사이에 새로운 철학적 견해를 구상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후기 철학의 중심 작품인 《철학적 탐구》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저작은 그의 희망대로 사후에 발간되었는데, 이전의 《논리 철학 논고》의 견해들을 비판하면서 모든 표상이 공통된 논리적 형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가정을 거부함으로써 '말해질 수 없는 것' 에 관한 견해도 포기하였다. 《철학적 탐구》의 철학적 관심 중 뚜렷한 특징 하나는 개념이 어떻게 행위와 그에 대한 반응과 연결되는가, 즉 인간의 삶에서 개념이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목표는 개념들의 기능과 유의미성이 만져 볼 수 없는 정신 영역에서가 아니라 그 개념들이 끼여들어 있는 여러 다른 맥락(context), 즉 인간 삶의 형식(foms oflife)에서 생겨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사물(things)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facts)로서 분석된다는 것이다. 세계는 사실로 나눌수도 있고, 대상물로 나눌 수도 있고, 또한 사건으로도 나눌 수 있다. 또 다른 무엇으로 나눌 수도 있다. 이렇게 세계를 타당한 여러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세계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언어 자체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하여 《논리 철학 논고》의 견해를 파기함으로써, 논리적원자론에서의 명제를 포함하여 본질적 구조로의 최종 분석마저 파기하였다.
《철학적 탐구》는 무엇보다도 논리적 원자론이라는 존재론적 기초의 극복에 집중되어 있다. 즉 정확성의 이상을 포기하고, 언어의 일차적 기능으로서의 기술적 기능에 대한 완고한 독단을 제거하는 데 집중되었다. 언어 비판이라는 그의 주된 관심사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그의 언어 이해는 언어 행위와 언어의 외적인 사회적 행위라는 포괄적인 맥락까지 연결되어 "하나의 언어 행위는 삶의 형식의 한 부분" 이라고 정식화하였다. 《논리 철학 논고》에서 모든 이름은 사물을 가리키고, 모든 명제는 사태를 가리킨다는 진리 대응설이, 일상 언어의 기술적 분석적 방법을 이용한 《철학적 탐구》의 '말놀이' 를 통하여 언어는 반드시 일 대 일의 대응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한 낱말이 놀이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며, 또한 낱말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낱말의 기능이 다르듯 한 가족을 이루는 낱말들도 각기 그 기능이 다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말놀이' 에는 '유사성' 이 있으며, 그 말놀이 속에 사용되는 낱말에도 '가족 유사성'이 발견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어떤 낱말의 대상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낱말이 사용된 맥락 속에서 그 낱말의 기능을 찾고, 사용자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의 혼란은 언어의 기능을 살피지 않고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언어를 올바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서 인류를 괴롭혀 온 수많은 철학적 문제들이 해소된다고 주장하였다.
〔종교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실증주의를 탄생시킨 빈 학파의 정식 회원은 아니었지만, 빈 학파는 그의 저서 《논리 철학 논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의 사상이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을 그들과 같은 사고로 한정짓는 견해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곡해하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사실 이들의 신학적 명제나 형이상학적 명제를 배척하는 근거에 있어서는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다. 즉 논리 실증주의자들에게 신학적 명제 혹은 형이상학적 명제는 그 자체만으로 난센스이지만, 그는 초자연적 세계 혹은 신비적 영역에 대한 논리적 접근 불가능성을 지적하고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에 대한 입장을 그의 <강의와 대화>(Lectures and Conversation on Aesthetis, Psychology and Religious Belief, 1967)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종교적 신앙에 대한 존경과 경탄의 마음을 지녔고, 다른 종교인들의 태도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의 제자들이 믿는 "모든 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진실한 태도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둘째,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최후의 심판 · 용서 · 속죄와 같은 개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다. 또한, 이러한 개념들이 그 개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였다. 셋째, 이와 같은 입장을 그는 '삶의 형태' 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그의 <강연과 대화>에서는 "한 가지 삶의 형태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으로 극대화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은가?" 라고 역설적으로 반문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서에 관한 톨스토이의 종교적 작품에 대하여 지극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었다. 넷째, 비트겐슈타인은 신앙이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며, 증명의 영역이 아니라 각자가 지닌 삶의 양식에 대한 태도의 영역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인과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비종교인을 다 같이 비판하면서, 신앙이란 이해의 문제도 확신의 문제도 아니며,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신앙"이며, "삶 전체를 규제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힘"이라고 밝혔다. 다섯째, 종교를 "그림을 사용하는 것" 으로 비유해서 설명하였고, "문법으로서의 신학"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입장들을 고려한다면, 그의 사상을 논리 실증주의적으로만 해석하여 종교와 전혀 무관한 혹은 적대적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 그가 의미한 바는 '실재란 언어로 기술될 수 없다' 는 것이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이를 왜곡하여 '언어로 기술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로 뒤집어 놓았다. 더 나아가 《논리 철학 논고》에 나타나는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 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스럽다" (6. 44~45 ; 6. 522)는 언급,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기적이다" (Note-book, 20. 10. 16)라는 감탄의 단편들, "삶의 목적과 하느님 ··· 삶의 의미, 혹은 세계의 의미를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를 수 있다.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비유 또한 이통찰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도한다는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계의 사실들이 아직 개현되지 않고 있음을 본다는 뜻이다. 결국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삶이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나머지는 침묵이다"(Schriften 1, 165, 167 : Notebook 72, 73) 등등 그의 저서, 일기, 노트에 나타나는 종교적 성찰의 기록들은 그가 고뇌에 찬 구도자적 인간이었으며, 그의 사상을 반종교적 혹은 비종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옳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만이 아니라 종교에 미친 그의 영향 또한 지대하다. 왜냐하면 신학적 · 교의적 논의 자체를 구성하는 언어와 진술들에 대하여 다시 고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적 진술, 언어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논의는 극단적인 주장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다.
〔비평 및 평가〕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철학적 관심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언어가 인간 정신의 구체적 객관적 표현이라는 그의 통찰로부터 시작된다.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철학의 주요 탐구 대상으로 '이성' 이 차지해 온 위치를 '언어' 로 대치시킨 것은 그의 《논리 철학 논고》가 그 효시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성 · 의식 · 정신 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장인 "언어에 대한 비판"을 철학의 첫 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또한 언어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철학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철학자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의 철학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정확히 규정한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는 자신의 역작인 《철학적 탐구》마저 불완전한 것으로 여겼으며, 이를 완성하는 데 엄청난 정열과 정력을 쏟았으나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사고가 당시의 과학적 · 수학적 시대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낯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듯이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좀더 자각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철학의 본성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을 통하여, 철학의 많은 문제들은 인간 자신이 사고의 혼돈과 뒤얽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반면에 그가 밝힌 "침묵의 언어 영역"은 그 동안 소홀히 취급되어 왔는데, 그를 통하여 철학이 궁극적으로는 침묵을 지켜야 하는 지적 작업임을 확인받았으며, 그의 언어 분석을 통하여 '인공의 언어' 로부터 '일상의 언어' 를 거쳐 '침묵의 언어' 로 인도되었다. 이는 철학적 분석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세계가 무엇이며 어디인가를 정확히 보여 주는 전형적인 귀감이다. (→ 논리 실증주의 ; 분석 철학 ; 종교철학)
※ 참고문헌 엄정식, <분석과 신비 :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한 분석 철학의 재조명>, 《철학》 16집, 한국 철학회, 1981/ 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