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

謙遜

〔라〕humilitas · 〔영〕hum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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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두치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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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두치오 작).

〔그리스도교 전통에서의 겸손〕 겸손이란 라틴어 '후밀리스' (humilis)를 번역한 것으로 대지(humus)에 가까워서 비천하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두 발을 닫고 사는 땅, 곧 대지는 낮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서 생명을 베풀어 준다. 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도 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구약 : 구약성서에서 겸손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가져야 할 기본 자세로 드러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고 구원의 약속까지 은총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겸손은 원래 '가난하다' 또는 '압박받는다' 는 뜻을 지닌 '아나브 ('ānaw) 또는 '아니' (ānî)에서 발전된 개념이다. 가난은 바빌론 유배시기를 계기로 하여 경제적 가난뿐 아니라 마음의 가난함과 온유함도 가리키게 되었다.
구약에서 겸손은 의인(義人)이 지닌 기본적 성품의 하나로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춘다는 뜻이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을 다 채운다. 겸손한 사람의 대표적 예는 민수기 12장 3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anaw) 사람이었다. 땅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 지도자였던 모세는 무엇보다도 겸손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모세가 겸손하다는 것이 이렇게 강조된 것은,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과 능력 때문이라는 자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것을 (아모 6, 8 ; 예레 13, 16 ; 이사 49, 13 ; 61, 1 ; 미가 6, 8
등) 계속 촉구하고 있다.
삶의 경험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구약의 지혜 문학에서 겸손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바르게 아는 것, 그래서 하느님의 우주적 질서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선 잠언을 위시한 지혜 문학에서는 하느님께서 "교만한 자를 업신여기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지혜 3, 31 ; 11, 2 ; 시편 25, 9 ; 욥기 22, 29)는 격언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겸손이 곧 슬기요, 교만은 무지라고 정의되고, 지혜야말로 축복과 생명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구약 안에서 인간적 요소가 가장 큰 지혜 문학에서조차 겸손이 높이 평가된 것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보다 하느님 대 인간의 관계에서 한 인간이 갖는 태도가 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전도서 3장 17절 역시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느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심판하신다" 고 말하여, 하느님의 섭리 안에 사는 인간의 모습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시편의 작가는 하느님 앞에서 갖는 자신의 마음을 "젖 떨어진 어린아이,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은 평온합니다"(131, 2)라고 묘사하였다. 교만이 하느님을 거스르게 하는 가장 근원적 악이라면, 겸손은 하느님을 따르게 하는 인간의 기본적 덕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구약의 묵시 문학이 발전되면서 부각된 종말적 구원자도 겸손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가 9, 9) .
신약 : 신약성서에서 보이는 겸손의 개념은 전체적으로 구약의 것을 계승하고 있다. 단, 하느님의 아들이 스스로를 낮추심으로써 겸손의 극치를 몸소 실천했다는 신앙에서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는 온유하고(praús) 겸손하기(tapeinòs)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 29)라고 가르쳤다. 겸손한 예수의 모습은 복음서에서 보여 준 그분의 활동 생활 곳곳에서도 드러나며, 그것이 하나의 상징으로 집약되는 것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는 때(마르 11, 7)와 게쎄마니 동산에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성부의 뜻대로 하시기를 기도하던 때이다(마르 14, 36). 하느님 앞에서 보이신 예수의 이런 겸손에 기초를 두고 사도 바울로는 예수가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립 2, 8)는 비움(Kenosis)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늘 나라를 받아들이고(마르 10, 15), 겸손한 자를 들어올리시는(루가 1, 48)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불리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자신을 하느님 앞에 낮추는 겸손의 삶이어야 한다. 하느님 앞에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세리와 같이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8, 13) 하고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런 겸손의 자세는 자연히 대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다고 했다(1고린 13, 4).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 바울로는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지내고 서로 존경하는 데 앞장서시오"(로마 12, 10)라고 형제애의 실천에서 보여야 할 겸손의 덕을 권장하였다.
신학 전통 : 교부 아우구스티노는 욥기에 대한 저술에서 "사람아, 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라. 겸손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25, 16)라고 하였다. 그는 당시 겸손을 경시하는 로마 제국의 전체적 풍조에 맞서 투쟁하면서 이 말을 했다. 인간이 자신의 본 모습을 알 때에 겸손할 수 있는데, 인간의 본 모습이란 창조된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겸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량(magnanimity)과 연결시켰다(신학대전 II-IL q. 12a. a. 3ad. 4). 아량이 교만을 극복하는 덕인 이유는, 사람이 덕을 닦는 행위에도 자아 의지와 교만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넓은 도량으로 자기를 비울 수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의 겸손은 비천함(lowliness)보다 자신을 비움(selfless)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겸손은 사랑의 그리스도교적 측면이며, 결국 아가페(agape)는 스스로를 낮추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사랑의 그리스도교적 측면으로 겸손을 중시한 것은 성서적 전통의 핵심을 잘 파악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스도교는 근원적으로 인간을 하느님 앞에 선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동아(東亞) 전통에서의 겸양〕 '겸' (謙)이란 중국의 가장 오래 된 사전인 《설문》(說文)에서 '경' (敬)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자신을 낮추어 남을 공경하는 것으로, 자연히 이런 사람은 일상사에 안정된 모습을 간직하게 된다. 겸과 다른 글자들을 합하여 다양한 복합어가 만들어졌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들면 겸손(謙遜), 겸양(謙讓), 겸허(謙虛), 겸덕(謙德) 등이 있다. 이런 복합어들의 의미는 서로 비슷하다. 겸손이란 스스로 낮춘다는 뜻이고, 겸양은 남을 앞에 세우고 자신을 뒤로 하는 것이며, 겸허는 마음을 비워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겸덕은 겸손의 덕을 말한다. 이런 복합어들은 한대(漢代)로부터 통용되었는데, 그보다 앞선 전국 시대에 겸이라는 글자를 자기 가르침의 핵심으로 채택한 사상가는 묵적(墨翟, 기원전 470?~391)이었다. 그는 겸(謙)과 별(別)을 대비시켜서, 유가는 자기 것과 남의 것을 차별하는 별애(別愛)를 가르치지만 묵가는 자기 부모와 남의 부모를 똑같이 아울러 섬기는 겸애(兼愛)를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전국 시대 중엽에는 묵가의 세력이 상당하여 맹자(孟子)가 가장 우려하던 학파였다. 그러나 한대에와서 유가가 국교로 확립되자, 묵가는 점차로 그 세력을 상실해 갔다. 따라서 한대 이후로 일반어로는 겸애(兼愛)가 통용되지 않게 되고, 겸은 다른 글자들과 복합어를 형성하면서 스스로를 낮춘다는 수양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유교 : 《주역》(周易)의 64괘(卦) 중에서 겸괘(謙卦, 15번째)가 있다. 겸괘의 모습은 대지 안에 산(山)이 있는 것으로, 군자가 안으로 스스로의 덕을 쌓으면서도 그것을 밖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하늘의 도는 가득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겸손하게 행동하면 어디에 처하든지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겸손의 덕을 극찬한다. 보통 《주역》의 다른 괘상(卦象)들은 처음이 좋으면 끝에는 나빠지고, 처음이 나쁘면 끝에는 좋아져서 만사가 시간 속에 그침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겸괘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좋아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는 만사가 형통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은 모든 덕목의 지침이며 종합으로 예(禮)를 제시하면서, 예가 있는 사람은 흥하고 무례한 사람은 망하게 된다는 교훈적 역사관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좌전》에서 예는 제사를 지낼 때 지켜야 할 종교적 의식일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과 사회 관계 전체에 있어야 할 바른 규범을 지칭했다. 그런데 《좌전》의 중심 사상이 되는 예의 실천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것이 비양(卑讓)이다(〈昭公> 2, 2). 비양이란 자신을 낮추어 자신보다 더 낮은 사람에게 자리를 사양하는 일로 덕의 참된 실천이라고 보았다. 《좌전》에는 자기보다 덕이나 능력이 뛰어난 형제나 인물에게 나라를 양보하고 제상 자리를 양보하는 예가 여러 번 나온다(<成公> 15, 3 : <襄公> 9, 1 등). 이렇게 서로 사양하는 덕을 실천할 때 그 나라는 흥성하고 화목하게 되어 예치(禮治)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한편으로는 《춘추좌전》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여 예(禮)와 양(讓)을 가지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태백> 1)고 하였다.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화살을 경주할 때와 같이 서로 사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으면 군자답다고(<팔일> 7) 칭찬하였다. 또한 그의 제자 자공(子貢)은 공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양(讓)을 쓰기도 했다(<학이> 10).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공자의 가르침 안에서 겸양이 지닌 위치는 보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인(仁)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해서는 안된다고(<위령공> 36) 했다. 한마디로 공자는 겸양이나 예를 인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였는데 인격 완성은 이런 부분적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자함' 〔仁〕 의 길을 온전하게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후에 주자(朱子)는 겸양은 '예지실' (禮之實)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유교 전통에서 겸양이 갖는 위치는 인의 표현인 예를 실천함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자세, 곧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인격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도교 : 노자(老子)는 겸(謙)이나 양(讓)이라는 용어는 쓰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자는 유가보다도 더욱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것이 얼마나 큰 효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보여 주며 결국 그것이 도(道)에 가까이 가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노자》(老子) 67장에는 노자가 보물로 여기는 삼보(三寶)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것은 자애로움(慈)과 검소함(儉) 및 천하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겸허함이다. 자애로움은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부드러우나 용기를 갖게 하고, 검소함은 자신의 씀씀이를 절약하여 부족한 이를 채울 수 있게 하며, 남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겸허함은 이기심과 사심을 비우게 하기 때문에 백성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게 한다. 노자는 물을 겸허의 상징으로 보고 물은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에 만물을 이롭게 하며 도에 가깝다고 하였다(8장). 방도 빈 공간이 유용한 것이고 그릇도 빈 데가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을 비우는 겸허함이 있어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겸허나 겸양이라는 복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노자는 그 덕의 의미를 가장 심오하게 파헤쳤다고 하겠다.
장자(莊子)의 좌망(坐忘)에 기초를 두고 도교 전통 속에서 발전된 수일(守一)의 수양법은 도에서 만물이 생성해 나온 과정을 되돌려서 모든 차별 의식을 소멸시키고 무(無) 또는 원초적 혼돈의 경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겸양이 하나의 덕목으로 중시된 것은 아니나 인간 사회의 차별적 가치관을 도라는 절대 규범으로 상대화시키고, 종국에는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도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겸허의 가장 근원적 의미를 포착했다고 하겠다.
〔현대 영성〕 서구에서는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인간이 홀로 모든 것을 만들고 통제할 수 있다는 현대적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전폭적인 기술 문명의 발전은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환상을 가능케 하였다. 따라서 겸손은 현대 과학 문명 안에서 경시되고 있다. 동아 사회에서도 공산주의 혁명과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투쟁 의식 또는 자신감이 극대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시대에 겸양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오늘날 인간은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서로를 해치며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가까운 사이일수록 받는 상처는 더 크다. 현대인에게 대화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참으로 들어주지를 못하기 때문이고, 이는 곧 마음에 빈 데가 없어서 수용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동양인의 마음 깊숙이에는 겸양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겸손과 동아 전통의 겸양을 접목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17세기 초 중국에 선교사로 온 디에고 데 판토하 (Diego de Pantoja, 1571~1618)는 《칠극》(七克)이라는 그리스도교 수양론을 썼다. 여기서 마테오 리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수덕론과 유교 사상의 조화를 시도했던 그는 칠죄종(七罪宗)의 첫 번째인 교만(傲者)을 극복하는 칠추덕(七樞德)의 첫째로 겸양(謙者)를 제시하였다. 판토하가 지혜는 자기를 아는〔知己〕 데서 시작하여 천주(天主)를 인식하는〔知天命〕 데서 끝난다고 한 점에서는 맹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자기를 모를 때 교만이 생기고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이라고 본 것은 그리스도교적 신학 전통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판토하는 이 두 전통을 결합하면서 겸덕을 높이고 겸양을 진복팔단의 신빈(神貧)과도 연결시켰다. 겸손을 사랑의 그리스도교적 측면에서 본 교부의 지혜와 자기 비움을 통해 도에 가까이 가려는 동아 전통의 통찰은, 인간성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 주어 현대인에게 겸손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
이다. (→ 군자 ; 예 ; 인 ; 천)
※ 참고문헌  諸槁轍次, 《大漢和辭典》 龐迪我, 〈七克〉, 李之藻 篇, 《天學初函》, 1629/ 김학주, 《묵자》, 민음사/ 《ET》/ Sung-Hae Kim, The Righteous and the Sage, Sogang Univ., 1985. 〔金勝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