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Victoria(?~250)

글자 크기
6
성녀. 로마의 동정 순교자. 축일은 12월 23일. 함께 순교한 성녀 아나톨리아(Anatolia)와는 자매간이다.
《성녀 빅토리아와 성녀 아나톨리아의 수난기》의 내용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지만, 두 성녀가 실존하였다는 근거는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 편이다. 수난기의 내용에 따르면, 아나톨리아는 아우렐리우스(Aurelius)라는 젊은 청년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는데,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동정과 독신 생활을 원하고 있던 아나톨리아가 이를 거절하자 청년은 자매인 빅토리아에게 그녀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동정에 대한 아나톨리아의 신앙에 감동을 받은 빅토리아는 오히려 자신의 약혼자인 에우제니우스(Eugenius)와 파혼을 하였다. 그 후 이 두 청혼자들은 두 자매를 감금하고 자신들에게 복종할 때까지 굶겼지만, 두 자매가 이에 굽히지 않자 이들이 신자라고 고발하였고, 결국 두 자매는 칼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다. 이 수난기에는 두 자매의 순교에 관한 사실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혼인에 관한 교의가 이 수난기에 나타나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결혼하지 말고 금육과 금주(禁酒)의 의무를 준수하라는 광신주의적인 '엔크라트' (Encratties)의 가르침에 가깝다. 두 자매가 실존 인물이라고 믿었던 성 베다(Beda, 673~735)와 셔버른(Shertome)의 성 알드헬름(Aldhelm, 639?~709)은 이들이 데치우스(Decius, 249~251)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순교하였다고 알고 있었으며, 성 알드헬름은 709년 동정에 관한 자신의 논문 <동정의 찬미>(De laudibus virginitatis)에서 성녀 빅토리아의 수난기를 인용하기도 하였다.
일부 순교록에서는 성녀가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황제 때 순교했다고 하였으며, 《예로니모 순교록》에는 두 자매가 7월 10일에 사비니스(Savinis)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로마 순교록》(Matyrologium Romanum)에 의하면 12월 23일 오늘날의 몬텔레오네(Monteleone)인 트레불라 무투에스카(Trebula Mutuesca)에서 데치우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 두 자매에 대한 공경 예식은 일찍부터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확산되었는데, 성녀 빅토리아의 그림이 라벤나(Ravenna)의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S. Apollinare Nuovo) 성당에서 발견되었다. 성녀의 시신은 827년경에 피체노(Piceno)로, 그리고 931년에는 파르파(Fara)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 아나톨리아)

※ 참고문헌  E. Day, 《NCE》 14, p. 650/ A. Amore, 《LThK》 10, p. 7741 David Hugh Farmer, Oxford 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 Press, 1992, p. 479.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