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활 수단이 부족한 상태. 빈곤은 어떤 지역의 주민 전체에 만연되어 있지만, 한정된 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주기적 빈곤 과 이와는 상대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기본적인 생활 수단이 부족한 상태가 이어지는 '집단적 빈곤' 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 방식 면에서 차이가 있고 비교적 영속적인 것으로, 풍요로운 사회 상황에서도 개인 또는한 가족이 기본적인 생활 수단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를 특별히 '개별적 빈곤 이라고 한다.
〔성서에서의 빈곤〕 성서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출애굽기의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는 구약성서를 해석하는 열쇠인데,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키는 징표는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돌봄으로써 드러난다. 이 계약은 안식년에 종들에게 자유를 주어 내보내고, 놀린땅에서 나는 소출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출애 20, 22 이하). 어떠한 법률도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그들에게 불리하게 정의를 왜곡하면서 시행되어서는 안된다. 토지는 영구 소유지로서 사고 팔 수 없었으며(레위 25, 23), 희년에는 이미 양도된 토지라 할지라도 본래의 소유자에게 되돌려 주어야만 하였다. 본래 야훼의 뜻에 어긋나는 군주제의 등장은 예컨대 아모스에 의해 단죄된 계급 차별과 농촌 빈곤을 빚어 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편에 나타나는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의 불의 앞에 무력화되어 유일한 희망인 하느님께 겸손하게 의지하였다. 신명기 15장 4절의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은 사회 경제의 개혁이며 동시에 계약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빈곤을 야기한 불의를 심하게 비난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스스로 택한 가난의 생애이며, 예수는 자신의 설교와 행동에서 자신을 소외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다. 그가 행복하다고 선포한 '가난한 사람' 과 이 말이 지니고 있는 영적 차원은, 물질적 조건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내면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억압당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계시지 않는 하느님의 정의로,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방법으로 말미암아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다. 예수에 의해 선포되고 완성된 하느님 나라는 세상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과의 관련으로 정의 내려지고 이들을 통하여 오는 것이다. 제자로서의 철저한 삶은 모든 것을 버림을 뜻하므로, 하느님과 재물 사이의 근본적 선택이 필요하다(루가 16, 13).
사도 행전은 재화의 공동 소유를 강조했다(2, 44-45 ; 4, 36-37).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금 사업에 많은 애를 쓰면서 고린토인들에게 그것은 그들의 사랑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척도라고 하였는데(2고린 8, 8), 빈곤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가 성찬례에서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 것에서 전반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1고린 11장). 또 야고보 사도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이었고, 교회나 사회 생활에서 부자들은 비난을 받았다(2, 5-6).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내용은, 교회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살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의 가르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 빈곤 문제에 대한 교회의 현대적 가르침은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의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에서 시작되었다. 도시 무산(無産) 계급의 상태에 큰 충격을 받은 레오 13세 교황은 "비참하고 절박한 상태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신속하고 적절한 구제책이 강구되어야 한다"(2항)고 촉구하였다. 이 회칙은 대체로 부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적정 임금의 원리를 지지한 면에서는 개척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칙은 시장 세력들이 노동자로 하여금 정당한 몫보다 낮은 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폭력과 불의의 희생자가 된 것" (34항)이라고 선언하였으며, 교황은 만일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치게 불평등하다면 이들의 합의만으로 그 합의의 정당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가르침으로써 경제적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주장을 배격하였다.
또한 비오 11세 교황(1922~1939)은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이와 비슷한 도덕적 분노를 표시하면서(64~67항), 경제적 자유주의 구조가 이러한 고통을 초래하였다고 밝히고(11항, 95항), 도덕적 권고의 차원을 넘어 "제도의 개혁과 도덕의 혁신" 을 촉구하였다(84항, 105~106항, 138항). 그리고 1937년에 발표한 회칙 <디비니 레뎀토리스>(Divini Redemptoris) 50항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바로 파멸을 초래하는 영향력을 지닌 '불의한 경제 체제' 라고 밝히고, 자본주의의 폐해뿐만 아니라 그 이념적 기초까지 "경제 생활의 올바른 질서는 자유 경쟁에 맡겨질 수 없다" (95항)며 배격하였다. 교황은 '협동 조합주의'(corporatism)에 대해서 어느 정도 호의적이었지만, 그의 구상은 계급의 장벽을 뛰어넘는 '직능 조합주의' (voca-tionalism)였고(90~92항), 임금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 극대화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81항)고 하였으며, 노동 조합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노동 조합을 가난한 사람들의 수호자라고 하였다(34~39항, 94항).
비오 12세 교황(1939~1958)은 사회 경제 문제보다는 정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였지만, 사유 재산권을 공동선에 종속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선임 교황들보다 더 발전된 이념을 제시하였으며, 종종 재화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훗날 비오 12세 교황은 서유럽에서는 빈곤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회에서 보다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Ad Petri Cathedram, 1959. 6.29)고 하였다. 그러나 1961년의 회칙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에서 교황은, 비록 여러 나라의 노동자 계층의 빈곤상을 감동적으로 요약하고는 있지만 산업 발전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68항, 154항, 163항). 교황은 분명히 재산이 보다 폭 넓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였고(115항), 군비 경쟁과 여러 나라의 국위 선양 사업이 빈곤 퇴치에 장애가 된다고 하였다(69항, 198항, 204항 ; <지상의 평화> 109항). 교회가 빈곤 극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교황은 이론적 차원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첫째, 교황은 현대 생활에서 '사회화' 가 심화하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 공동선(<어머니와 교사> 116~117항)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 증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어머니와 교사> 59~60항 ; <지상의 평화> 62항). 둘째, 교황은 '그릇된 철학적 이론들' 과 이것들에서 파생된 '역사상의 운동들' (<지상의 평화> 26항, 159항)을 분리하여 언급함으로써 좌익 세력과의 대화의 길을 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Gaudium et spes)은 제3 세계의 빈곤을 인식하고(69항, 71항, 86항), 모든 사람이 지상 재화를 이용할 권리가 있으며, 극단적인 빈곤의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취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69항). 또 국가들간의 교역 조건 평등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제창하였으며(63항, 85~86항), 일정한 상황에서 대규모 토지의 수용과 재분배는 옳다고 하였다(71항)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줄 의무를 지킴에 있어서 쓰고 남는 것만을 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69항)고 강조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서로 다르게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던 <노동 헌장> 19항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밝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에서 빈곤 문제가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3항) 이는 우선적으로 세력 불균형(58~60항)에 의해, 그리고 특히 빈곤한 나라들이 단일 농작물 수출에 만성적으로 의존하고(7항) 교역 조건이 악화되어 날로 더욱 빈곤해지도록 하는 신식민주의(52항, 57항)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교황은 "경제 발전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의무도 없다는 그릇된 사상"(26항)을 배격하였다. 이 회칙은 일종의 혼합 경제 체제를 주장하면서(33항),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폭력 사용의 유혹에 빠지기가 쉬운가를 이해하면서도 "명백한 폭군적 압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것은 더욱 커다란 불행을 초래한다고 충고하였다(30~31항). 이 회칙은 또 세계 기금 창설을 통한 국제적인 공동 계획(48~51항), 노골적인 경쟁에 대한 제한(61항), 실효 있는 국제 기구의 설립(78항), 군비 제한(53항) 등도 제창하였는데, 이 회칙이 제한하는 사회 변화 모델은 가난한 사람들 자신의 합의와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15항, 25항, 27항).
콜롬비아의 메데인(Medellin)에서 1968년에 개최된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CELAM) 제2차 총회에서는 빈곤이 "제도화된 폭력이라 할 수 있는 불의의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결론지었다(2, 16). 이 총회에서의 빈곤 문제에 대한 대응의 핵심은 "교회가 자발적이고 충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로 들어가 가난하게 되어 그것이 나타내는 악을 입증해야 한다"(14, 4)는 것이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그들의 문제들과 투쟁들을 우리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14, 10). <메데인 문헌>은 '하향식' 접근 방식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일반 대중 부문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역동적 행동에 의한 것" (2, 18)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총회는 빈곤에 대한 개념적 이해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변혁' 을 추구하였다.
교서 〈팔십 주년>(Octogesima Adveniens, 1971)에서 바오로 6세 교황은 정의로운 사회 건설과 관련된 정치 문제들에 언급하면서 진보의 신화(41항), 주도적인 경제 성장 모델(42항), 다국적 기업들의 정치 권력(44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문헌은 빈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중요한 방법론적 발전을 보여 주었다. 즉 그것은 권고적인 접근 방법에서 귀납적 접근 방법으로, '사회 교리' 에서 사회 분석으로 진전하였다. 왜냐하면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영원 불변한 구원의 말씀으로 비추어 주고,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반성과 판단과 행동의 지침을 발견하는 일은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4항)이기 때문이다. 이 문헌은 상황의 다양성을 대폭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기성품과 같은 해결책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접근 방법들이 많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고" , "연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는 "(23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문헌인 <세계 정의에 관하여>(Iustitia in Mundo, 1971)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소리없는 불의의 희생물"(21항)이라고 하였다. 이 불의는 "인간 마음의 회심을 막고 있는 현 사회 구조의 객관적 장애" (17항) 속에 제도화되어 있으며, 빈곤은 억압의 결과로 발전의 누출(trickle-down) 이론으로는 다루어질 수 없다(11항). 문제는 소수의 손에 부와 권력과 의사 결정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10항). 가난한 사람들은 "새로운 정치 조직"(18항)을 결성해야 하며, 불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일깨워 주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52항). 가난한 사람들은 해방을 가져오는 데 있어서 특권적 역할이 있으며(77항),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행동 규범, 교회 재산, 그 생활 양식"(43항)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 문헌의 서론에 나오는 "정의를 위한 행동은 ··· 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다"(7항)는 구절은 빈곤 문제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움직이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는 "하느님 나라만이 절대적인 것이며 다른 것 모두는 상대적인것"(8항)이라는 점을 교회에 상기시킴으로써 빈곤 문제를 검토하는 신학적 맥락에 기여하였다. 이 문헌은 사회 경제적 해방을 통합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해방의 개념을 신학적으로 더욱 심오하게 하면서 이를 교도권의 문헌들에 체계적으로 도입하였다(9항, 35항).
멕시코 푸에블라(Puebla)에서 1979년에 개최된 라틴아메리카 주교 회의 제3차 총회에서는 메데인 총회의 다짐을 되풀이하였다. "우리는 온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그들의 완전한 해방을 지향하는 선택을 향하여 회심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한다"(1134항)고 밝히면서, <푸에블라 문헌>은 한 장(章) 전부를 할애하여 이 선택의 의미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 문헌은 교회로 하여금 다양한 피압박 개인들과 집단들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뵙도록 권고하면서, 빈곤을 빚어 내는 메커니즘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비난하도록 하였으며, 사회 정치적 선택이 없는 단지 개인적인 관심의 차원에 머무르지 말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족시키는 역사적 사업들을 정성 들여 만들어 내는 데 투신해야 한다" (553항)고 강조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에 브라질을 방문하여 여러 번 이러한 선택들을 지지하였고, 1984년에 로마 교황청 간부들에게 행한 연설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는 이 '선택' 을 나의 것으로 삼았고,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이것과 나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것은 확고하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다"라고 하였다.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 1981)에서는 "우리는 우선 교회가 항상 가르쳐 왔던 원칙, 즉 노동이 자본 보다 우위에 있다는 원칙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12항)고 밝혔다. 이 회칙은 다국적 기업, 로비 활동 등에 대해 '간접 고용주' 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구조적 불의를 설명하였으며(17항), 이들은 "노동 계약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 현장에서 정당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16항)고 밝히고, 재산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간결하게 제시하였다. 즉 사유 재산권은 공동선에 대한 책임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며, "재화가 만인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공동 사용권에 예속된다"(14항)고 하였다. 투쟁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가 이룩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투쟁은 어떤 사회 계급에 대항하는 투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의를 옹호하는 투쟁이지만 대립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고(3항), 정당화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한 반응이다(9항). 여기서의 중심 개념은 '연대성' 이다(8항) .
현대 빈곤 현상의 개요를 예리하고 정확하게 제시한 회칙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1987)에서는,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제시된 희망이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음에 주목하면서(12항, 8, 33~35항 참조), 이러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빈곤의 짐" (13항)이 주택 · 실업 · 부채 등 여러 분야(17~18항)를 짓누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회칙에서는 이 문제의 근본이 사회 홍보 수단에 의해 왜곡 · 전달됨으로써, 그리고 "터무니없이 과장된 안보 의식"(22항)으로 말미암아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과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욕망과 대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의 도덕적 성격을 강조하였다(37항) 또한,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 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점(39항)과 생태계에 대한 의식이 다시 일깨워지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사회적 관심>에서는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사유재산은 항상 '사회적 저당권' (42항)이 설정되어 있음을 거듭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 윤리적 체계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상황〕 현재 전세계에는 15억 명 이상의 인구가 처참한 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세계 은행(IBRD)에서조차 인정한 바와 같이 세 차례에 걸친 '발전의 십년대' (development decade) 정책들은 부유한 나라들과 가난한 나라들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세계는 훨씬 부유해졌다. 월드워치 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총 연간 소득은 1970년의 10조 1천 억 달러에서 1994년에는 약 20조 달러(1987년 달러화 기준)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소득이 증가한 만큼 많은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부가 증가한 것은 아니며, 부유한 나라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부의 증가로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일부 국가들, 주로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국내 총 생산이 감소하였다. 국내 총생산이 증가한 많은 나라들도 내부적으로는 극빈자들의 수가 증가하였으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국민소득 격차는 나라 안의 빈부 격차처럼 더욱 벌어졌다. 예를 들어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국가들 전체의 국민 총생산(GNP)은 벨기에와 대체로 같지만, 인구는 45배나 된다. 부패하기로 악명 높은 현지 지도층의 행동은 이러한 빈약한 소득이 한층더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결과를 종종 빚어 내고 있으며, 여성들과 아동들은 그보다 더욱 빈곤한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실제로 개발 도상국에 사는 13억 명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그중 8억 명이 충분한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중 5억 명은 만성적 영양 결핍 상태이고, 이들 가운데 1억 7,500만 명이 5세 이하의 어린이이다. 세계적으로 9억 명의 성인이 문맹이고, 5억 명의 인구가 집이 없거나 적절한 주거 시설이 없다. 또한, 1억 명의 젊은이들에게는 집이 없다. 해마다 1,500~2,00만 명이 기아나 영양 결핍으로 질병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매년 1,000만 명이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기준 이하의 부적절한 주거 환경과 위생 시설, 오염된 식수 때문에 사망한다. 한편 수많은 개발 도상국들의 전통적인 종속 상태에 덧붙여 주로 서방측의 정부들과 금융 기구들은 지난 15년 동안 1.4조 영국 파운드 정도의 부채를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떠안겼다. 세계 은행이 1988년 현재 제3 세계 국가들로부터 선진 채권 국가들로 들어간 순유입 금액이 430억 파운드라고 추정하는 만큼, 종종 정치적 부대 조건이 있는 원조의 개념은 그 실제 의의를 상당히 상실하였다. 이러한 통계 수치 뒤에는 참으로 참담하게 고통받는 인간들의 참상이 깔려 있다.
빈곤은 선진국에서도 문제인데, 약 2억 명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12.4%가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사회 문화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극도의 소외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모든 경우에서 지속적인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면적인 압박감을 느끼게 하며, 이것은 다시 숙명론으로 이어져 빈곤의 악순환을 심화시킨다.
빈곤에 대하여 수많은 부분적인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모두 중대한 결함이 있다. 공업화와 기술 발전은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목표는 도외시한 채 그것을 제공하는 자들의 투자 이익을 반영할 뿐이었다. 학교 교육에서도 교육받은 실업자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다. 인구 억제 면에서는 다음 세대의 부모들은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과 어린이들은 흔히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교역 조건과 금융 기구들을 개혁하는 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의식화시키고 참여시키는 데에 빈곤을 해결하는 관건이 있다고 하겠다.
〔평 가〕 빈곤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은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빈곤은 근본적으로 구조적 불의의 결과이며, 둘째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성서적 해방 실천을 되찾는 데 있다. 셋째 교회의 공헌은 권고적 · 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로이 택한 검소한 생활과 아울러 가난한 사람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며, 넷째 가난한 사람들 자신들이 바로 인류 쇄신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오늘날 이러한 전통적 입장은 정의와 해방의 성서적 긴박성을 새삼 깨닫고, 현대 사회 경제 생활의 다양한 면에 충분히 대응하면서 점점 더 가난한 사람들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 가난 ; 가톨릭 사회 교리 ; 빈민 사목 ; 재물)
※ 참고문헌 M. Renner, Fighting for Survival : Environmental Decline, Social Conflict, and the New Age ofInsecurity, New York Norton, 1996/ 교황 레오 13세, <노동 헌장>, 1891/ 교황 비오 11세, 회칙 <사십주년>, 1931/ ㅡ, 회칙 <디비니 레뎀토리스>, 1937/ 교황 요한 23세, 회칙 <어미니와 교사>, 1961/ 一, <지상의 평화>, 196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 헌장>, 1965/ 교황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 1967/ 一, 교서 <팔십 주년>, 1971/ 一,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 1975/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제2차 총회 문헌, <세계 정의에 관하여>, 1971/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 1981/ 一, 회칙 <사회적 관심>, 1987/ Second General Conference of Latin American Bishops, The Church in the Present-Day Transformation of Latin America in the Light of the Counil : Conclusions, 2nd ed., Washington, National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1973/ Third General Conference of Latin American Bishops, Puebla Evangelization at Present and in the Future of Latin America, Conclusions, Middlegreen, St. Paul, 1980. 〔韓弘淳〕
빈곤 貧困 〔라〕paupertas 〔영〕pov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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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소리 없는 불의의 희생물' 이며, 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는 투쟁을 통하여 이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