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활동으로, 대부분의 본당 신자들이 중산층화됨에 따라 사회적 · 종교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전문적인 사목 분야.
〔성서적 근거〕 성서 용어로 본 가난한 사람들 : 히브리어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련한 생활을 묘사하는 구체적인 낱말이 많다. 가난한 사람을 가리켜 '궁핍한 자'(אֶבְיוֹן), '연약한 자' (דַּל), '불쌍한 거지' (אֶבְיוֹן)라고 표현하거나, 구약성서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말로 특히 예언서와 시편에 80번이나 등장하는 '아니' (אֲנִי)와 '억눌린자, 핍박받는 자' (מֻרְדָּף) 등이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란 우선 경제적 재산이 없어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셈족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존재로서 사법 체제에 권리를 요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들을 양산해 내는 그 체제는 불의하고 폭력을 일삼는 힘있는 자들의 수중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굴욕과 학대와 온갖 불의의 희생자인 것이다. 어원적으로도 '가난한 사람' 을 뜻하는 '아나빔'(רֵיקָם)은 '학대받는 자' , '짓밟힌 자' , '밑바닥에 있는자' 등을 의미한다. 그들은 스스로 주장을 펼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으며, 스스로를 지키거나 자기 방어 또는 저항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구약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직접적이며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소외 상태의 경제적 · 정치적 근원도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 주장에 무기력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그가 빈곤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은 살아가기에 필요한 물질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대변할 발언권도, 그 기회도 없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빈곤하기 때문에 자주 아프고 실직을 당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려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일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복음서의 용어들 역시 이러한 매우 본질적인 개념을 밝혀 주고 있다. 복음서는 가난 그 자체를 직접 언급하기 보다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언급하였다. 가난의 상태를 묘사하는 일상 용어는 '프토코스' (πτωχός, 굽실거리는 사람)로서, 마태오 복음서에 5번, 마르코 복음서에 5번, 루가 복음서에 10번 그리고 요한 복음서에 4번 사용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결코 이상화되어 있지 않은데, 언급된 24번 가운데 4분의 3을 차지하는 18번이 빈곤하여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성서 용어상 살 곳이 없고 입을 것이 없으며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에 속한다. 즉, 소경, 귀머거리, 절름발이, 감옥에 갇힌 자, 이방인, 고아 및 과부, 병자, 억압받는 자, 희망이 없는 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이라는 성서적 개념에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처지때문에 고통당하고 우는, 불쌍하고 무시당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사회 속에서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며 도움도 없고 보호받지도 못함을 느끼고, 또 실제로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며 사회에서 이를 대변할 발언권도, 그럴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대한 성서 신학적 해석 : 가난한 사람이란 개념은 구약성서를 이루는 자료 중에서 좀더 오래된 자료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서술은 유목 생활을 하던 지파 연합이 농경 생활을 지향하는 왕정 체제로 넘어간 이후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서 저자들은 새롭게 증가되는 경제적 불균형을 악명 높은 계약 위반으로 지적하였고, 그래서 불의와 죄로서 고발하였다.
이스라엘은 계약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비추어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권력자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경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수호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의 수호자라는 사상은 구약성서 전체에 깔려 있는 중심 사상의 하나이다. 이는 새로운 사회적 · 경제적 상황때문에 예언서와 지혜 문학서에서 매우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성을 종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편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과 신앙(시편 9, 9-10. 18), 하느님께 대한 신뢰(시편 10, 2-4. 7. 14b. 17-18),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닥친 폭력을 종식시키려는 하느님의 개입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시편 12편) 등이 나타나 있다.
시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언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 힘없는 사람들을 두려움 없이 옹호하는 예언자들을 보여 주고 있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사절로서, 계약의 요청을 신비적 체험 안에서 왕과 사제들과 당시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소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람들이다. 역설적으로 예언자들은 말 그대로 비타협적이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혁명가들이다. 예언자들은 정의와 권리에 입각하여 계약의 오랜 규범에 대한 견고한 신앙을 견지하였던 것이다. 외국과의 상업 교역으로 부자와 빈민 사이의 사회 경제적 불균형이 증가하고 있던 기원전 8세기 중엽에, 계약의 백성 사이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부에 대한 탐욕, 상거래상의 부정, 재판의 부패와 타락, 부자들의 사치 및 가난한 사람에 대한 억압 등을 고발한 예언자 아모스(아모 2, 6ᵇ. 7𝘢 : 5, 9. 11. 12ᵇ ; 8, 4)와 이사야가 그러하다(이사 10, 1-3).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용기로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한 미가 예언자(미가 3, 1-4), 그리고 유대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 파괴가 임박해 있던 기원전 6세기의 예언자 예레미야 역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불의와 폭력을 고발하였다(예레 2, 34 : 5, 26-28; 21, 12 ; 22, 3. 15-17). 예언자 시대 이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점은 점점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경향을 드러내었다. 시편 전체를 통해 울려 퍼지는 가난한 사람의 울부짖음' 은 빈곤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일 뿐만 아니라,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기도하다. 유대 이후에 '가난한' (עָנִי)이라는 말은 '경건한' 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하느님께서 자비롭고 인자한 사랑을 베푸시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권능과 그분의 구원 계획에 '순명' 하는 비천한 사람들(שָׁפָל)이다. 이들은 하느님을 추구하고, 하느님의 눈앞에서 걸으며, 시련 중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특권을 받은 사람들로도 나타난다. 이것이 '가난한 이들의 특권' 이다. 가난이 이상적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가난이 불행이요 가난한 이들은 구조적인 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은 현대 교회에 이르러 역대 교황들에 의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메데인 문헌> 9항 ; <푸에블라 문헌>1134항 ; <사회적 관심> 42항)이라는 명제로 정형화되었다. 이렇듯 하느님의 자비에 바탕을 둔 '가난한 이들의 특권' 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년(禧年) 복음 선포로 결정적으로 계시되었다.
〔신학적 의미〕 희년 복음 선포와 가톨릭 사회 교리 : 희년은 "주님의 은총의 해"(이사 61, 2)이며 주님께 복을 받은 날로서 기쁨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성취된 시간의 충만, 곧 구원의 날이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루가 4, 18-19). 구약의 전통에서 희년은 하느님께 특별한 양식으로 봉헌된 시간으로 관행화되어서 해방과 직결되어 있었다. 매 7년째의 해인 안식년에는 농경지를 쉬게 하고 노예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안식년이 끝나는 50년마다 안식년의 관행을 더욱 확대하여 희년을 지냈다(레위 23, 16). 여기에서의 핵심은 모든 이들의 '전적인 해방' 이다. 어떤 실수나 실패에 의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매각하였거나 노예 상태로 전락하였던 이들이 이 기회에 원상태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출애급 당시의 자유와 해방을 지키려는 신앙적 의지가 담겨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제삼 천년기>(Terio Millennio Adveniente, 1994)를 통해 2000년을 '대희년' 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2000년 대희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 섭리적 사건이었다고 전제하면서, 공의회 이후의 주교 대의원 회의들은 2000년대를 향한 '새 복음화' 내지 이를 위한 준비였음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교황은 이 교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교회의 사회 교리 원리들을 진정으로 알고 있으며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를 물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사회 교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핵심으로 하여 형성된 희년 복음 선포의 현대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희년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사항들과 더불어, 복음 정신과 선을 선택하려는 적극적인 회개로서 특히 애덕 실천을 강조하였다(37항) "예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오셨음을 상기한다면, 우리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어찌 더 큰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그토록 수많은 갈등과 참을 수 없는 사회적 · 경제적 불평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세계에서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은 희년의 준비와 경축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51항) .
빈민 사목의 신학적 토대 : 빈민 사목을 구성하고 있는 신학적 뼈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과 기초 공동체들의 형성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탁월한 애덕 실천"(<교회의 선교 사명>)이며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백주년> 57항)이다. 빈민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목적 배려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 선택에 따라 필요한 노력은 20~30명 정도의 가난한 이들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들로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적 요청에 따라 기능을 갖추기도하고(탁아소, 공부방, 주민 상담실 등),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자체 조직의 일에 종사하기도 하며(세입자 대책위원회,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현장 단체 등), 이 현장 공동체들을 책임진 활동가들이 주민 신자들과 더불어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도 한다(도시 공소). 최근 들어 활발해진 움직임으로는 협동 방식으로 건축 노동이나 봉제 노동을 조직하여 생산 공동체를 이루려는 노력이다(생산 협동 조합). 이들은 각 지역마다 도시 공소를 중심으로 모여 복음 나누기를 통해 필요한 나눔과 조정을 행하는 한편, 전체적인 조정 역할은 각 지역 책임 사제와 각 공소 회장들이 모인 교구의 빈민 사목위원회에서 맡고 있다.
가난함의 순환을 통한 복음화의 경로 : 1968년 9월 콜롬비아의 메데인(Medellin)에서 개최되었던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 회의(CELAM)에서는 복음서에 증언된 가난을 경제적 가난' , '정신적 가난' , '자발적 가난' 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가난은 강요된 가난으로서 빈곤이라고 하며, 정신적 가난은 청빈이라고 하고, 자발적 가난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투신"이라고 정의하였다. 1996년은 국제 연합에서 정한 빈곤 퇴치의 해' 인데, 여기서의 빈곤은 경제적 가난으로서 생계 수입의 부족뿐만 아니라 주거 및 고용의 불안과 의료와 교육 혜택의 결여, 사회 참여 기회의 제한 등 전반적으로 낮은 질의 삶을 뜻한다. 정신적 가난은 경제적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생활에 필수적인 물질은 소유하게 되었으나 경제적 풍요를 지향하기보다 빈곤한 이들과의 나눔을 지향하는 청빈을 뜻한다. 하지만 빈곤 계층과 청빈 계층 사이의 본격적인 나눔은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여 투신한 활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들의 사도직 활동에 의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비로소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가난함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복음화가 달성되는 것이다.
〔배경 및 태동〕 배경 : 빈민 사목의 배경이 된 빈민 운동은 한국에서 사반세기가 넘는(1969~1996)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해방과 분단 이후 독재 정치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탄압이 일관되게 관철되었으며, 경제 성장 정책의 희생양으로 도시 빈민이 양산되었다. 주거권을 비롯해서 고용, 의료, 교육, 아동 · 청소년, 환경 등 여러가지 사회 구조적 모순 속에서 역대 군사 독재 정권이 추진하였던 경제 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도시 빈민들의 삶의 질은 계속 악화되었고, 이에 대한 도시 빈민들의 저항과 투쟁이 지속되어 빈민 운동의 역사로 발전하였다.
'도시 빈민' 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정의된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이 말은 도시 지역의 가구와 소비지의 생활 상태에 의해 지칭된,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 을 뜻한다. 도시 빈민들을 특징짓는 것은 단순히 열악한 주거 형태뿐만이 아니며, 이들의 주거 형태가 열악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의 소득이 낮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으므로 당연히 노동 재생산 비용(주거비, 식비, 문화비 등)이 낮은 지역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빈민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건축 일용 노동자(속칭 '노가다' ), 노점상, 파출부, 영세 하청 공장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직업은 모두 저임금이며 강도 높은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 실업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는 이들의 형편으로 살 수 있는 서민용 주거 공간이 필요하나,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해서 지어지는 집들은 가난한 원주민들이 들어가 살 수 있기보다는 외지에 사는 돈 많은 이들의 기호에 맞도록 지어지고 있어, 결국 재개발 사업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가난한 현지 주민들을 내쫓는 역기능을 하고 말았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재개발 사업은 가난한 이들이 살 수 있는 값싼 방을 계속 없앰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주거 문제를 절대적으로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주거 형태가 열악해서 실제로 단칸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사는 가구가 많다 보니 당연히 자녀들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다. 많은 빈민 지역의 주민들은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맞벌이를 하지만, 이들은 사설 탁아소에 자녀들을 맡길 만큼 많은 탁아비 지출을 감당할 수도 없고, 자녀 문제 때문에 맞벌이를 그만둘 만한 여유도 없다.
천주교 신자들의 빈민 운동은 "천주교 도시 빈민회"(약칭 '천도빈' )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주교 사회 사목 단체로서 교회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복음의 자발적 가난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이려는 이 노력은 목동 철거 사태를 계기로 1985년 3월 25일에 조직되었다.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는 빈민 운동 활동가들이 목동 철거를 계기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 도시 빈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천도빈' 을 창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천도빈' 은 종교적인 신앙 행위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적으로는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위한 조직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태동 과정 : 1985년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 1986년 사당동 재개발 사업 및 강제 철거 사태, 1987년 상계동 재개발 사업 및 강제 철거 사태 등이 일어나면서 강제 철거당한 도시 빈민들이 집단 민원을 제기함으로써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 사목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빈민 운동을 주도하던 '천도빈' 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교구장을 자문할 위원회의 설립을 건의하자 교구장이 이를 받아들여 1987년 4월 28일에 '도시 빈민 사목위원회' 가 창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주거 불안 문제를 분석하고 현실적으로 무주택자들이 다수인 상황을 감안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으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철거 문제를 현장에서 항의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통하여 정책 개선 건의를 하는 등의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이를 통해 시작된 주택 정책 토론회는 1995년에 재개발 입법 운동으로 이어져 그 해 9월 정기 국회에서 재개발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또한 1988년 제44차 서울 세계 성체 대회를 맞이해서는 "도시의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교회" (Becoming the Church of the Poor with Special Reference to Slum Dwellers)라는 주제로 제3차 아시아 사회 사목 연수회(Asian Institute for Social Action Ⅲ)를 주최하였다.
〔전개 과정과 전망〕 전개 과정 : 1992년부터는 서울대교구의 2000년대 복음화 계획에 맞추어 빈민 사목의 활동 목표를 "빈민 지역 기초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함으로써 교회의 복음화에 기여한다"로 정하고,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2000년대 9개년 복음화 계획' 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에 의해서 빈민들의 주거 불안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책 토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관계 당국에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더욱 근본적인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서울을 4개 지역권으로 나누어 기존의 현장 공동체들을 각 지역 도시 공소에 묶고, 각 공소마다 빈민 사목 전담 사제를 파견하여 현장 활동가들에 의한 빈민 사목 활동을 활성화시키면서 생산 공동체 운동을 새로이 전개하는 내용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시작된 기초 공동체 운동을 한국의 가난한 이들 안에서 실천하는 것으로서, 교구에서 전개하는 '소공동체 운동' 과 기존의 빈민 운동이 함께 연대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빈민 주거 문제에 대한 사목적 개입 : 빈민들의 주거 불안 문제를 정책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빈민 사목의 첫과제이다. 1987년부터 시작된 정책 토론회는 1995년 9월 국회에 청원한 재개발법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하였지만, 법률 개정이 원안(原案)과 다르게 수정되어 세입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한차례 완전한 법 개정을 기다리게 되었고, 실질적인 세입자 대책인 '가이주 단지의 설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입자 운동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재개발 사업을 앞두고 있는 많은 빈민 지역에서 집 없는 세입자들이 강제 철거를 당하여 주거의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현장 단체와 연대하는 한편, 세입자들의 조직화를 지원하는 일이 여전히 중요한 빈민 사목의 임무로 남아 있다. 이에 따라 빈민 사목위원회 설립 10주년을 맞이한 1997년 4월 28일에는 믿는 이들과 중산층 시민들이 '집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교회와 사회를 향하여 청빈 선언을 발표하였고, 지속적으로 청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빈민 고용 문제에 대한 사목적 개입 : 주거 불안과 함께 고용 불안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위축시키는 고통이다. 가톨릭 사회 교리는 인간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수호할 수 있도록 노동 구조를 복음적으로 조직하며,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창의적 노력을 지지한다. 이에 따라 빈민 사목에서는 비숙련, 하청 그리고 일당제 임금의 불안으로부터 가난한 이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남성들의 경우에는 건축 노동을, 그리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봉제 노동을 생산 협동 조합으로 조직하는 '생산 공동체 운동' 을 전개하였다. 이에 필요한 자본은 빈민 사목 후원회 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명례방 협동 조합' 에서 조성하고, 이 생산 공동체에 대해서는 저리의 융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 공덕동의 '마포 건설' 과 미아동의 '솔샘 일터' 등 두 곳에 생산 공동체가 설립되어 있으며, 행당동과 무악동에도 생산 공동체를 설립하기 위하여 준비 중이다. 생산 공동체는 노동자들이 출자하고 노동하며 스스로 경영하는 생산자 협동 조합이다. 이들은 소규모의 공동체 조직이지만 빈민 사목과의 긴밀한 유대 속에서 여느 노동자들과는 달리, 기도하며 일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기초 공동체 건설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 복지 기능을 갖추고 있는 현장 공동체들(탁아소, 공부방, 주민 상담실 등)이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세입자 대책위원회, 주거 연합), 그리고 생산 공동체들은 모두 다 현장에 세워 진 기초 공동체들이다. 이들은 각 지역에 세워진 도시 공소에 모여 그곳에 파견된 빈민 사목 사제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복음 나누기를 하며 미사를 봉헌한다. 또 이 모임에서는 필요한 경험이 공유되기도 하고, 지원과 조정이 필요한 일들이 빈민 사목위원회의 전체 모임에 상정된다. 그리고 빈민 사목위원회는 교구와 연결되어서 필요한 지원과 조정 기능을 수행한다.
1990년대 들어 빈민 지역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급격히 줄어든데다가 새로 참여해 오는 활동가들도 거의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빈민 사목위원회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투신하려는 활동가들을 모집하였고, 이에 호응하는 12명의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3년 간 빈민 지역에 들어가 살면서 활동 중에 있다. 이를 "바울로 계획"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사도 바오로가 찾아가서 노동하며, 공동체를 세워 복음을 선포하였던 전통을 계승하자는 취지였기 때문이다. 즉 이방인들에게 선교하였던 사도 바오로의 모범을 따라, 오늘날 사회와 교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기초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선교 본당과 복음적 가난의 교회적 실천 : 1998년에 제1기 "바울로 계획"이 완성됨에 따라, 도시 공소에 의한 사목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1998년도 서울대교구장의 사목 교서에 따라 복음적 가난을 살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실천하기 위하여 빈민 지역에 선교 본당을 설립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선교 본당은 세입자들이 거주하는 가이주 단지 지역과 공공 임대 아파트 지역을 관할하며 빈민 지역 주민 전체에게 선교적으로 봉사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된다. 선교 본당에서는 사제의 생활을 위한 식복사나 사무원 등이 근무하지 않으며, 미사 봉헌을 위한 성당 건물을 건축하거나 이를 위한 토지를 구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 사제관이나 신자 혹은 주민들의 가정을 순회하며 작은 공동체들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도시 빈민 사목 ; 빈민 사목위원회 ; → 가난 ; 빈곤)
※ 참고문헌 빈민 사목위원회,《1993년 정기 총회 자료집》/ㅡ, 《1994~1995년 빈민 사목 백서》 一, <삶의 자리와 도시 개발 정책>, 《정 책 토론회 자료집》, 1995/ 천주교 도시 빈민회, 《천주교 도시 빈민회 10년사록》, 1995/ A. 바레이로, 《기초 교회 공동체》, 성바오로 출판사, 1990/J. 오할로란, 《살아 있는 교회 세포》, 성바오로출판사, 1993/ 이기우,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에 관한 교회론적 고찰>,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 석사 학위 논문, 1987/ 《교회와 사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요한 바오로 2세, 《제삼 천년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李起雨〕
빈민 사목 貧民司牧 〔영〕urban poor past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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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다(구스타브 도레 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