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 慈悲 - 修女會 〔영〕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de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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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센트 병원에서의 활동(왼쪽)과 '사강 보금자리' 양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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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센트 병원에서의 활동(왼쪽)과 '사강 보금자리' 양로원.

1841년 3월 25일 프리드리히 글레멘스 프라이헤르(F.C. Freiherr von Ledebur, 1770~1841) 주교가 성 빈첸시오아 바오로(St. Vincent de Paul)의 '자비' 의 정신을 본받아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을 목적으로 독일 파더보른(Paderborn)에서 설립한 수녀회. 한국에는 1965년 1월 8일에 진출하였고, 1990년 6월 21일에는 관구 제도가 없는 독일 모원으로부터 독립하여 교구 설립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로 출발하였다. 총원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 93-3번지 소재.
〔설립과 영성〕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州) 동쪽에 위치한 파더보른은 중세의 면 모를 간직한 전통적인 가톨릭 지방으로, 19세기 초 산업화로 인해 신흥 공업 지대로 급부상하면서 기아와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극빈자층이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어 갔다. 이에 교구장 프리드리히 주교는 빈민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모색하게 되었는데, 마침 국립 병원의 간호사 두 명이 수도 생활을 희망해 오자, 1840년 가을에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 이들의 양성을 의뢰하였다. 이곳에서 수련 과정을 마친 지원자들은 1841년 3월 18일에 착복식을 가졌으며, 일주일 만인 3월 25일에는 국립 병원의 일부를 모원으로 하는 '파더보른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가 설립되었다. 이후 수녀회는 점차 활동의 영역을 넓혀 나갔으나, 독일의 문화 투쟁(Kultur-kampf, 1871~1887)과 불안정한 시대적 상황으로 1915년 5월 18일에서야 교황 베네딕도 15세로부터 수녀회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어 수녀들은 독일 각 교구의 병원은 물론 양로원과 어린이 집, 미혼모의 집, 무료 급식소, 각종 교육 기관과 특수 학교, 그리고 본당과 신앙 교육을 위한 교회 기관에서 봉사하였으며, 설립된 지 120년이 흐른 1963년에는 130개 분원에서 2,2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성 빈천시오는 '사랑의 딸들' 을 위한 규칙서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는 그들에 대한 '공경심과 섬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고 강조하였는데, 이처럼 가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섬겼던 성 빈천시오의 모범과 정신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19세기에 새롭게 시작된 파더보른의 새 공동체에 영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는 해방을 알렸으며,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하느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루가 4, 18-19)을 모토로 하면서 빈천시오 성인의 영성, 즉 가난하고 불쌍한 병자 · 임종자 · 극빈자 · 수인(囚人) · 고아 · 미혼모 · 노약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자비' 를 핵심적인 생활 지침으로 삼아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자 한다.
〔한국 진출과 성장〕 1960년대 초까지도 수원에 가톨릭 의료 기관이 전무하자 초대 수원교구장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는 보다 효과적인 전교를 위해서도 병원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회가 교구 내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윤공희 주교는 교황 사절 안토니오 델 쥬디체(A. del Giudice) 대주교로부터 독일 파더보른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선교 지역을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마침내 교황 대사의 주선으로 이 수녀회를 한국에 초청하였다.
1964년에 파더보른 모원에서 파견된 에델투르디스(Edeltrudis) 수녀와 라인가르디스(Raingardis) 수녀는 분원설립 여부를 확인한 후 한국 진출을 결정하고 수원시 팔달구 지동 93번지 일대의 부지 15,000평을 매입하였다. 곧 이어 같은 해 11월 6일에 최영자(도미니코), 손경자(헬레나), 양복모(마리아) 등 한국인 9명이 독일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하였고, 1965년 1월 8일에는 헨크마이어(T. Henkemeyer) 수녀, 힌제(A. Hinse) 수녀, 뇌링(I.Noring) 수녀가 입국하여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후, 한국에서도 지원자를 받아들여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1971년 11월 27일 한국 지부로 승격된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1974년 11월 23일 현재의 본원 건물을 완공하면서 동선동에 있던 수련원을 이곳으로 이전하였고, 1990년 5월 24일에는 관구 제도가 없는 독일 파더보른 수녀회의 특성에 따라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독립하였으며, 6월 21일에는 초대 총원장으로 한국인 최영자(마리아 디모테아) 수녀를 선출함과 동시에 교구 설립 수녀회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1998년 1월 현재 종신 서원자 135명, 유기 서원자 45명, 수련자 23명, 청원자 10명, 지원자 5명 등 총 218명의 회원이 있다.
〔사도직 활동〕 한국 진출 이후 수녀회는 파더보른 모원의 재정 지원으로 1965년 3월 19일 성 빈센트 병원의 신축 공사에 착수하였으며, 2년 만인 1967년 5월 10일 건평 4,80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을 완공하고 6월 3일에 개원하였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제5 부속 병원으로 출발할 초창기에는 10개 임상과에 180병상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초음파 촬영기 · 방사선 동위 원소 촬영기 등 첨단 의료 장비를 갖추고 1982년에 CT 촬영실과 인공 신장실을 개설하는 등 발전을 거듭해, 1986년 6월 23일에는 17개 진료 과목에 405병상으로 증설되었다. 현재 성 빈센트 병원에는 40여 명의 수녀가 파견되어 있으며, 1994년 11월에 시작된 병실 증축 공사로 1998년 말이면 800병상을 갖추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성 빈센트 병원에서는 1967년 11월 1일에 진찰실과 약국 등을 갖춘 자선 진료소를 개원하여 주 3회 빈민 환자들을 위한 진료를 실시해 왔으나, 1977년에 의료 보험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이듬해 11월에 자선 진료 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신 의료 보호 환자에 대한 진료를 확대하였다.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외 계층을 위한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91년 10월에 수원교구로부터 '생명의 집' (미혼모의 집)의 운영을 위탁받아 인성 교육과 자활 및 쉼터의 역할을 제공하였으며, 양로 사업으로 '성녀 루이제의 집' (1992)과 '사강(沙江) 보금자리' (1994)를 운영하게 되었다. 또 1997년 11월 3일에는 영세민과 결손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인애 놀이방' 을 개원하였고, 4개 교구의 21개 본당과 행려자 무료 급식소(수원교구 사랑의 집, 청주교구 성 빈천시오의 집) 및 수원교구청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의 1개 한인 본당에서 교포 사목을 돕고 있다. (⇦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 → 성 빈센트 병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장은심, <자비로운 사랑은 세상을 정복한다>, 《경 향잡지》 1438호(1988. 1),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64~68/ 이호정,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가톨릭 다이제스트》(1996. 7)/ 《교회와 역사》 271호(1997. 12), 한국교회사연구소, pp. 9~12/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성 빈센트 병원 25년사 편집위원회, 《성 빈센트 병원 25년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성 빈센트 병원, 1993.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