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부제. 스페인 최초의 순교자. 축일은 1월 22일.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라고사(Saragossa)의 주교 성 발레 리오(Valerius)로부터 교육을 받은 부제였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빈첸시오에 대한 공경이 순교 후 빠른 시 일 내에 전 교회로 확산된 것은 그에게 주어진 가혹한 고문과 순교 사실 때문이었다.
〔순 교〕 《순교자들의 행전》(Acts of the Martyrs)을 통해 전해지는 오랜 전승에 따르면, 빈첸시오는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황제와 막시미아누스(286~305) 황제 때의 박해로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체포 후 감옥에 갇혀 굶주림으로 쇠약해진 그에게 황제에게 제사를 바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를 거부하여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마침내는 철판 위에 몸이 묶인 채 몸을 굽는 고통을 받았다. 모진 고문에도 굽히지 않는 빈첸시오의 용기에 감명을 받은 스페인 총독 다치아누스(Dacianus)는 그에게 다소 회복될 수 있도록 침대에 누우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이 호의를 거절하였다. 그때 빈첸시오는 총독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광포함이 더 커질수록 내 기쁨은 그만큼 더 커집니다. 그러니 당신이 내게 마련해 둔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도 줄이지 마십시오. 그래야 내가 나의 승리를 보다 더 빛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빈첸시오는 모진 고통을 받고 304년 1월 22일 순교하였다. 그가 받은 고문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순교자들의 행전》에는 그가 스페인 총독에게 했다는 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순교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그가 순교하기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고문을 받았다는 등 많은 추측을 함께 전하고 있어, 그의 순교 과정이 로마의 부제 순교자인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258)와 비슷하게 묘사되었다는 비판이 훗날 제기되기도 하였다.
〔증언과 공경〕 빈첸시오가 순교한 후에 고향 친구이자 시인인 프루덴시오(Prudentius)가 그를 찬양하는 시(詩)를 지음으로써, 그는 빈첸시오에 대하여 증언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빈첸시오에 대하여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성 빈첸시오의 축일에 설교한 적이 있던 성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빈첸시오의 축일은 로마 제국 전체에서 기념되었으며, 신자들이 있는 곳은 어디에서나 기념되었다고 한다.
7세기의 로마 독서집과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에는 빈첸시오를 공경하는 전례가 수록되어 있었고, 그의 유해는 발렌시아와 사라고사, 리스본, 파리 등지에서 모셔져 공경을 받았으며, 531년에는 파리의 생 제르망(St.Germain) 성당에서 빈첸시오의 겉옷들이 발견되었다. 영국의 경우 그에 대한 공경 예절이 초기 교회 때부터 거행되었으며, 12세기에는 수도원장 파리치오(Faricius)에 의해 빈첸시오의 유해가 영국에 모셔졌다. 그 후 그의 축일은 영국에서 중요한 축일이 되었으며, 6개의 성당이 그에게 봉헌되었다. 현재 포르투갈의 수호 성인인 빈첸시 오의 상본은 종려 가지를 쥐고 있는 부제 모습이나 철판위에서 고문을 받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어 있다. (→ 스페인)
※ 참고문헌 L. Schmidt, 《LThK》 10, pp. 802~803/ The HarperCo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Harpercolins Publishers Inc., 1995, p. 1313/ David Hugh Farmer, Oxford Dictionary of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p. 480~481/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Penguin Books, 1983, p. 325/ Enzo Lodi, trans. by Jordan Aumann, OP, Saints of the Roman Calendar, New York, 1992, pp. 21~22. 〔편찬실〕
빈첸시오, 사라고사의 Vincentius Saragossae(?~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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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사라고사의 빈첸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