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 會 〔프〕Compagnie des Filles de la Charité 〔영〕Daugh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de Paul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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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에 소재한 모원(왼쪽)과 '기적의 메달 성당' 이라고 불리는 모원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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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에 소재한 모원(왼쪽)과 '기적의 메달 성당' 이라고 불리는 모원 성당 내부.

1633년 11월 29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o, 1581~1660)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1591~1660)이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립한 활동 수녀회. 프랑스 파리 뤼 뒤 박(Rue du Bac)에 있는 모원 성당은 1830년 성모 마리아가 성 가타리나 라부레(Catherine Labouré, 1806~1876)에게 발현하여 '기적의 메달' (médaille miraculeuse)을 전파하였다고 해서 '기적의 메달 성당' 으로 불린다. 회원들은 청빈 · 정결 · 순명의 3대 서원 외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라는 서원을 추가하며, 종신 서원이 없는 대신 매년 3월 25일(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서원을 갱신한다. 한국 본원은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749-1번지에 있다.
〔설립과 변모〕 1617년 7월 프랑스 리용(Lyon) 근교에 위치한 샤티옹 레 돔브(Châtillon-les-Dombes) 본당에 부임한 빈첸시오 신부는, 드 라 샤세뉴(de la Chassaigne) 부인으로부터 한 가정이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날 미사를 통해 신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난 후 그 가정을 방문하러 갔다가 뜻밖에도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해 늘어선 많은 마을 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에 빈첸시오 신부는 보다 조직적으로 봉사할 단체가 필요함을 깨닫고 '애덕회' (Con-frérie de la Charité)라는 자선 단체를 조직했다. 또한 1625년 4월 17일에는 '선교 수도회' (Congregatio Missionis)를 설립하였는데, 훗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를 공동으로 설립하게 될 루이즈 드 마리약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591년 8월 12일 프랑스 파리 모(Meaux) 지방 부근의 페리에르 앙 브리(Ferrières-en-Brie)에서 유명한 정치가들을 배출시킨 드 마리약' 가문에서 태어난 루이즈는, 푸아시(Poissy) 도미니코 수녀회의 드니(Denis)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 학교에 다니면서 비교적 경건한 분위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그 후 카푸친회에 입회하고자 하였으나 너무 병약하여 그 꿈을 포기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친지들의 권유로 1613년 2월 5일 청원서 심의관인 앙투안 르 그라(Antoine Le Gras)와 결혼하여 같은해 10월 19일 미셀(Michel)을 낳았으나, 이루지 못한 수도 성소 때문에 많은 날들을 영적인 시련 속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남편이 병을 얻어 오랜 기간 동안 투병하게 되자, 이러한 시련들이 자신이 수도 생활을 포기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점차 하느님의 현존과 영혼 불멸에 대한 회의마저 생겨났으나, 1623년 6월 4일 생 니콜라 데 샹(Saint-Nicolas-des-Champs) 성당의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후에는 자신의 이기심과 인간적인 계획들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1625년 12월 21일 남편이 사망한 후 얼마 안되어 빈첸시오 신부를 만나 감화를 받은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빈첸시오 신부는 루이즈의 신앙심이 깊고 분별력이 뛰어남을 확인하고는 1629년에 애덕회의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이들은 곧 애덕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방에서와는 달리 파리 애덕회의 회원들은 주로 귀족 부인들이었는데, 이들이 하녀들을 시켜 빈민들을 대신 돕도록 함으로써 빈민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갈등의 소지마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빈첸시오 신부는 미혼 여성들로서 수도자적인 삶을 사는 봉사 단체를 구상하였지만, 그때까지는 모든 수도회가 관상 수도회였기 때문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 단체의 설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러던 1630년에 빈첸시오 신부는 평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쉬렌(Surennes)의 마르그리트 나조(Marguerite Naseau)의 방문을 받고 또다시 수도 단체의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다. 1633년 11월 29일 나조와 뜻을 같이하는 자매들을 모아 생 니콜라 뒤 샤르도네(Saint-Nicolas-du-Chardonnet) 성당 근처에 위치한 루이즈 집에서 수련을 시켰는데, 사랑의 딸회의 첫 회원이었던 나조는 전염병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그 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설립된 사랑의 딸회는 활동 수도회의 효시(嘴矢)로, 초창기에는 주로 본당의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거나 고아들을 보살폈고, 프롱드의 난(La Fronde, 1648~1652)때에는 에탕프(Étampes)의 고아원에서, 그리고 후에는 카오르(Cahors)의 고아원에서 헌신하였다. 수녀회는 1646년 11월 20일 파리의 공디(J.F. Paul de Gondi) 대주교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1668년에는 교황 글레멘스 9세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한편 1660년 9월 27일 파리에서 사망한 빈첸시오 신부는 1737년 6월 16일 교황 글레멘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885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모든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 으로 선포되었다. 또 빈첸시오와 같은 해인 1660년 3월 15일에 사망한 협력자 루이즈 드 마리약도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60년 2월 10일에는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그리스도교 사회 사업의 수호 성인' 으로 선포되었다.
그 후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1652년 폴란드에 첫 진출하였고, 1660년에 이미 프랑스에만 40개의 분원을 설립하였다. 뒤이어 스위스(1750), 이탈리아(1778), 스페인(1790) 터키(1839) 이집트(184), 중국 (1852), 그리스(1855), 에티오피아(1878), 마다가스카르(1897) 등의 국가로 진출하였는데, 1963년에는 유럽에 2,900개, 아시아에 52개, 아프리카에 79개, 남북 아메리카에 920개, 오세아니아에 42개, 그리고 공산 국가에도 216개의 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5년 말 현재 28,000여 명의 회원들이 83개 국가의 빈민촌, 고아원, 난민 수용소, 각종 학교, 재활원, 병원, 교도소, 전문 치료 기관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 성〕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내게 마시게 해주었다.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35-40). 이처럼 가장 가난한 이들(어린이, 빈곤한 사람, 병든 자, 갇힌 자) 가운데 숨어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 전생애를 봉헌하였던 성 빈첸시오는, "육신적으로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베풀고, 영신적으로는 그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것"을 수녀회의 회칙에 밝히면서 모든 사랑의 딸들이 '가난한 자들의 종' 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또 그는 '세상의 쓰레기이며, 모든 이의 찌꺼기' (1고린 4, 13 참조)와 같은 가장 낮은 위치에서도 회원들이 그것에 만족할 줄 알고, 그들의 활동이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하느님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이처럼 기도 생활과 함께 활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애덕의 길을 모색하였던 빈첸시오의 정신은 이후 전세계 모든 자선 사업의 모범이 되었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현황〕 1978년 4월 10일 '성 라자로 마을' 이경재(李庚宰, 알렉산델) 신부의 초청으로 잔 기나시(Jeanne Kinashi) 수녀와 미국의 유명한 나환우정착 마을인 루이지애나(Lousiana) 주 카르빌(Carville)에 서 오랫동안 진료 봉사를 해온 콘스탄스(H. Constance) 수녀가 일본 관구로부터 파견되어 2년 간 이곳에서 봉사한데 이어, 3명의 회원이 추가로 입국함에 따라 1980년 11월 6일 안양시 호계동 경향 아파트에 정식으로 분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3년 6월 22일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산 18번지에 800여 평 부지를 매입하여 이듬해 8월 16일 본원을 완공하고 축성식을 가졌으며, 11월 21일부터는 한강 북쪽에 산재해 있는 7개의 나환우 정착촌으로 이동 진료를 시작하였다. 또 안양 교도소와 군포시 당정동 소년원에서 교정(矯正) 교육을 담당하였고, 아울러 1984년 10월 1일부터는 군포 본당에서 사목을 돕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에는 한국인 지원자들을 필리핀 관구로 보내 수련을 받도록 하였다. 한편 1991년 3월에는 수녀회 이름을 '빈첸시오의 애덕 자매회' 에서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로 개칭하였고, 1993년에는 서울대교구 내의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운암리 산 44-1번지에 청원소를 마련하였으며, 1995년에는 한국의 수녀회가 일본 관구에서 필리핀 관구로 이관되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양성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998년 2월 현재 서원자 10명, 서원 준비자 4명, 수련자 2명 등 총 16명의 회원이 나환우들을 위한 이동 진료와 놀이방, 무료 급식소에서 활동하고 있고,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 교육과 농촌 · 본당 · 군종 사목을 돕고 있다.
(⇦ 빈첸시오의 애덕 자매회 ; → 기적의 메달 ; 라부레 ; 빈첸시오 아 바오로 ; 선교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다케노 게이사큐, 김광현 역,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바오로출판사, 1993/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이경재 편, 《라자로 돕기회 25주년 기념집》, 성 라자로 마을, 1995/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 《가톨릭 다이제스트》(1994. 9)/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사로잡는 다>, 《경향잡지》1463호(1990.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92~96/ M.M. Considine, 《NCE》 3, pp. 470~473/ M.A. Roche, 8, pp.1023~1024/ R. Chalumeau, 《Cath》 2, pp. 977~980/ G. Mathon, 《Cath》 7,pp. 1183~1186.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