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렐라, 가스파르 Vilela, Gaspar(1526~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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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예수회 소속 일본 선교사. 1526년 포르투갈 에보라 (Evora) 인근의 아비즈(Aviz)에서 태어나 베네딕도 수도 회 성직자들에게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된 후 서쪽 항 로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 인도에 도착하였으며, 1553년 이곳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간 빌렐라 신부는 규슈(九州) 동부의 분고(豊後, 지금의 大 分) 일대와 서쪽 해안의 히라도(平戶)에서 활동하였으 나, 불교 승려들의 요청을 받은 그곳 다이묘(大名, 영주) 에 의해 추방되자 1558년에 후나이(府內, 즉 에도 지역) 로 진출하였고, 이듬해에는 일본인 수사 라우렌시오와 다미아노를 데리고 교토(京都)로 옮겼다. 당시 일본은 아시카가(足利) 정권 말기로 전란이 끊이지 않을 때였 다. 교토에서 아주 가난하고 어렵게 생활하던 빌렐라 신부 는 박해를 받아 사카이(堺)로 피신하였다가 1560년에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로부터 전교를 허락받아 나라(奈良) 등지에서 100여 명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 였다. 그러나 1562년에 다시 교토로 진출하였다가 추방 되었고, 이듬해에는 라우렌시오 수사에게 교리를 듣고 천주교에 관심을 보인 유키 다다마사(結城忠正) 장군의 초청으로 다시 나라에 진출하였다. 이후 그가 유키 장군 부자를 비롯하여 다카야마 즈쇼(高山圖書, 일명 飛驒守) 성주와 그의 아들 다카야마 우곤(高山右近)에게 세례를 주어 입교시킨 일은 긴키(近畿) 지역의 개종에 큰 영향 을 미쳤다.
1565년에 다시 도쿄(東京)로 진출을 꾀하다가 추방된 빌렐라 신부는 후나이로 돌아왔고, 1566년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 전도 계획을 수립하였다. 5년 뒤인 1571년 11월 3일에 그가 인도의 고아에서 예 수회 총장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당시 그가 수집 한 조선에 관한 자료는 미비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새로운 선교 지역으로 조선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 니라 이 일이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이라고 생각하였음이 분명히 나타난다. 당시 일본 교회의 예수회 장상은 프란 치스코 사베리오(Franciscus Xaverius, 1506~1552) 신부의 뒤를 이은 토레스(Cosmas deTorres) 신부였는데, 그도 조 선 선교를 생각하고 빌렐라 신부를 그 적임자로 생각하 였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 선교 계획은 성사되지 못하 였다. 왜냐하면 빌렐라 신부가 토레스 신부로부터 조선 선교의 임무를 부여받기는 하였지만, 일본 내의 잦은 내 란으로 인해 조선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 다. 이후 빌렐라 신부는 1570년에 선교 활동 결과를 보 고하기 위하여 인도의 고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활동하다 가 1572년에 사망하였다. (→ 일본)
※ 참고문헌 片岡彌吉, 《高山右近大夫長房傳》, 東京, 力 卜 リ ツ 7 中央書院, 1936/ 柳谷武夫 역, 《日本史一 キ リ シタ ソ傳來のころ》, 東京, 平凡社, 1966/ 《キリㅈ卜敎人名辭典》, 東京, 日本基督教團出 版局, 1986/ J.G. Luiz de Medina, 《遙かなる高麗》(Orígenes de la Iglesia Catolica Coreana), 東京, 近藤出版社, 1988. 〔車基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