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옹, 아마투스 Villion, Amats(1843~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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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일본 선교사. 1843년 프랑스 리용(Lyon) 부근 손(Saône) 강가의 젤에서 태어나 리용 의 성 요셉 소신학교와 파리의 생 쉴피스(St. Sulpice) 대 신학교를 졸업하고 18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동양 선교사로 임명된 빌리옹 신부는 홍콩으로 건너가 얼마 동안 머무른 뒤, 이 듬해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도착하였다. 당시 일본에는 1612년에 막부(幕府)에서 금교령을 내린 이후 오랫동안 박해가 계속되어 왔는데, 1867년에도 우라카미(浦上)에 서 박해가 일어나 1869년 말에는 3,800여 명의 신자가 체포되었고, 빌리옹 신부도 이때 2개월 간 구금되었다. 이러한 고초를 겪은 빌리옹 신부는 1872년 고베(神戶) 로 전임되어 활동하다가 1880년에 교토(京都)로 부임하였다. 다행히 1873년부터 금교령이 해제되면서 그는 교 토에서 선교 활동과 더불어 프랑스어 학교를 개설할 수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불교에 관심이 많아 정토종(淨土 宗) 학교에서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이와 함께 1889년 7월에는 가와하라(河原)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는 등 가와하라 교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힘썼다. 1889년 말경 야마구치(山口)로 전임된 빌리옹 신부는 도쿠야마(德山), 시모노세키(下關) 등지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초기 교회의 유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에 일본 교회의 개척자인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유적을 조사하고, 기념비 건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893년에 는 16세기 중엽의 선교 거점이던 다이도지(大道寺) 유 적을 발견하였다. 또 1895년에 전임된 하기(萩)에서는 유배지에서 사망한 우라카미 신자들의 묘소를 정비하였 고, 그들을 위한 기념비를 쓰와노(津和野)에 건립하였다. 이후 빌리옹 신부는 1924년에 고베로 은퇴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나라(奈良) 교회를 맡게 되었고, 얼마 뒤 오 사카(大阪) 가와구치(川口) 교회로 전임되어 활동하다 가 1932년에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일본 성인 선혈 유서》(日本聖人鮮血遺書) , 《야마구치 공교사》(山口公敎史), 《나가사키 공교사》(長 崎公敎史),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서한기(書翰記)》 (전 3권), <일본 선교 50년》(Cinquante ans d' apostolat au Japon) 등이 있다. (→ 일본)
※ 참고문헌  上智大學,《カ卜リシク大辭典》 1, 東京, 富山房, 1954, p. 26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