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갑룡 (1930~ )

景甲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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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대전교구장. 주교. 세례명은 요셉. 1930년 3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1962년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그 해 12월 2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명동 본당 보좌(1962. 12. 21), 서울대교구 부당가(1965. 1.4), 재경부장(1966. 12 .14), 금호동 본당 주임(1967. 4. 18), 성모병원 경리처장(1967.9. 10), 교구 재경부장(1969. 4. 14), 청량리 본당 임시 보좌(1970. 11. 13)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71년 1월 8일 유학길에 올라 미국 · 로마 · 필리핀에서 등지에서 영성 신학과 카운셀링을 연구한 뒤 귀국하여 논현동 본당 주임(1976. 5. 25)으로 활동하던 중 1977년 2월 3일자로 부파다(Buffada)의 명의(名義) 주교 겸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에 따라 경 주교는 그 해 3월 25일 성성식을 갖고, 서울대교구의 총대리로서 사목 행정 및 관리 전반에 걸쳐 교구의 내실화에 크게 기여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데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1년 11월에 구성된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 중 기념 행사 위원장을 맡아 1984년의 교황 방한과 103위 시성식 행사를 총지휘했으며, 동시에 주교 회의 사목 주교위원회 위원, 가톨릭 대학생 전국 연합회 및 꾸르실료 운동 지도 주교를 역임하였다.
경 주교가 대전교구장에 임명된 것은 1984년 7월 2일 이었다. 이어 그는 8월 29일 대흥동 본당에서 착좌식을 갖고 '회개를 통한 본래의 사명감 회복' 과 '희망찬 교회 건설' 을 모토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여기에서 그는 신심 함양과 전교의 활성화에 노력하면서 대전교구의 특성을 강조하여 순교 성지들의 개발과 보존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대전교구의 교세는 1984년에 54개 본당 96 000여 명이던 것이 1993년에는 75개 본당 154,000여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으며, 솔뫼 · 갈매못 · 줄무덤 · 여사울 · 해미 · 황새바위 성지 등 각처의 사적지가 새롭게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 주교는 교구 신학생 양성 사업에도 노력하여 1990년 9월 4일 대전 가톨릭대학을 설립 인가받았고, 1985년 12월에는 대전 성모병원을 증축 완공하였으며, 1991년 7월에는 현재의 용전동에 새 교구 청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