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강 본당

沙江本堂

글자 크기
6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봉가리 33-5 소재. 1975년 10월 13일 남양(南陽)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가정. 관할 구역은 송산면 전역과 마도면 일부 지역. 〔교 세〕 1975 년 460명, 1981년 1,187명, 1986년 1,660명, 1990년 1,966명, 1993년 2,086명, 1996년 1,293명. 〔역대 신 부〕 초대 양병묵(楊柄默) 루가(1975. 10~1978. 7), 2대 송 현석(宋玹錫) 마르코(1978. 7~1984. 2), 3대 장학수(張學 秀) 요셉(1984.2~1989.2), 4대 문병학(文炳學) 요셉(1989. 2~1993. 2), 5대 윤재익(尹在翼) 바르톨로메오(1993. 2~ 1995. 2), 6대 서북원(徐北源) 베드로(1995. 2~1997. 2), 7 대 이상선(李相先) 요아킴(1997.2~현재). 1892년경 안 마리아가 마도면 고모리(古毛里)에 와서 살면서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마도면(麻道面) · 송산면 (松山面) · 서신면(西新面)에 일찍이 천주교가 전파되었 으나 교세는 극히 미약하였다. 그러다가 1951년 9월경 왕림 본당 9대 주임 임종구(林鍾求, 바오로) 신부가 송 산면 봉가리에 사는 임춘선을 공소 회장으로 임명함으로 써 사강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55년에는 이강규(프란 치스코)의 사택을 공소 강당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1959 년에는 현 본당 소재지에 있던 사가를 매입하여 강당으 로 개축하였는데, 1961년 10월 8일 남양 본당으로 이관 된 후부터 신자수가 급증하자 1973년 8월에 49평의 강 당을 신축하였다.
이때부터 공소 신자들은 본당 승격을 위한 준비를 갖 추고 1975년 1월 19일에 현 성당 터 356평을 매입하였 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 13일에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 대 주임으로 양병묵 신부가 임명되었는데, 양병묵 신부 는 공소 강당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사용하는 한편 269 평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여 총 625평의 성당 부지를 확보하였다. 이어 2대 주임 송현석 신부는 1979년 8월 에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81년 4월에 245평의 성당 을 완공하였으며, 3대 주임 장학수 신부는 보다 효율적 인 사목을 위하여 사곳 공소(1985.6) 노노피 공소(1986. 5), 장외리 공소(1988. 6)의 강당을 건립하였다. 또 4대 주임 문병학 신부는 1991년 4월에 서신면 백미리 592 번지의 부지 462평을 희사받아 1992년 3월에 남자 양 로원인 '사강 보금자리' (지상 90평, 지하 24평)를 완공하 였는데, 이 양로원은 본당 신자들과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오다가 장기적인 관리와 책임이 어려워짐에 따라 1994년 10월 20일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로 이관하였다.
한편 이미 1980년대 초부터 분할을 계획하고 있던 본 당에서는 1991년 4월에 새 성당 부지로 서신면 매화리 686-1번지 일대의 1,663평과 688번지의 460평을 매입 하였으며, 5대 주임 윤재익 신부 때에는 686-2번지의 68평을 추가 매입하여 1994년 12월에 조립식 임시 성 당(50평)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월 20일 서신 (西新) 본당을 분리하여 313세대 952명의 교적을 이관 하였다. 이러한 분할로 인해 본당의 교세가 감소되기는 하였으나 7대 주임 이상선 신부는 '가정 성화는 바로 복 음화' 라는 사목 목표 아래 가정 성화를 위해 노력해 오 고 있다. (→ 수원교구 ; 남양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 구, 1993/ 金成喜, <수원 성 빈센트 드 쁠 자비의 수녀회>, 《교회와 역 사》 271호(1997. 12), 한국교회사연구소, pp. 9~12.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