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 칠정 四端七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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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 사단(四 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을 말하며, 칠정(七情)은 인간의 본성이 사 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을 말한 다. 이 개념은 16세기 이후 사단 칠정 논쟁으로 전개되 면서 한국 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개 설〕 사단은 《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표) 상 편에 나오는 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자신 의 불의(不義)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마 음〔羞惡之心],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잘잘못을 분별 하여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의 네 가지 도덕적 감정을 말한다. 그리고 칠정은 《예기》(禮記)의 《예운》(禮運)에 나오는 말로 기쁨[喜] · 노여움(怒) · 슬픔[哀] · 두려움 〔懼〕 · 사랑[愛] · 미움[惡] · 욕망[欲]의 일곱 가지 인간 의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원래 사단은 인(仁) · 의 (義) · 예(禮) ·지(智)의 덕목과 관련된 윤리적 범주에, 칠정은 인간의 감정을 총칭하는 인성론의 범주에 각각 속하여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던 말이었다. 그러나 송대(宋代)에 성리학이 일어나면서부터 이 두 개념은 인 간 심성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도덕적 성격을 띠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각각 나타내는 상반된 의미로 인식되 어 대조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곧 성리학에서는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심성(心性)이 일치한다고 하는 천 인 합일(天人合一)의 명제 아래, 우주 자연의 생성과 변 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바탕으로 이기론(理氣論)을 발달시켰고 다시 이를 근거로 하여 인간 심성의 발생 과 정과 그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실천의 철 학적 근거를 해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사단 칠 정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사단 칠정 논쟁〕 중국에서 사단 칠정의 문제는, 성리 학의 '이기 심성론' (理氣心性論)의 탐구에 있어 하나의 과제로 다루어지기는 했어도 태극론(太極論)과 같은 우 주론에 비해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그 러나 한국에서는 사단과 칠정의 발생 과정을 이기론적으 로 해명하는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이것은 대규모 논쟁으로까지 전개되었다. 조선 시대 성리학에서 최대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단 칠정 논쟁은 흔히 사칠 논변(四七論辨)으로도 일컬어지는데, 인간의 도덕 적 감정과 자연적인 감정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 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 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서 처음 발생하였고 나중에 이이(李珥)와 성혼(成 渾) 사이에서 다시 논의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의 논쟁으 로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던 것은 사 단이 이(理)에 속하는가 아니면 기(氣)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와, 이(理)가 과연 발동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였다. 16세기 말에 발생하였던 이 논쟁은 당대 의 저명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학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어 19세기 말에서 20세 기 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성리학자가 이 문제를 다루었을 정도로 한국 유교의 전개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논쟁의 발단은 1553년에 이황이 정지운(鄭之雲)이 지 은 〈천명도〉(天命圖)를 개정하여 <천명신도>(天命新圖) 를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곧 이황은 <천명신도>를 지으 면서 <천명도>에 수록되어 있던 "사단은 이에서 발동하 고, 칠정은 기에서 발동한다" (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 는 구절을 "사단은 이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 동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라고 고쳤는데, 이 것을 본 기대승이 1559년에 이황에게 서한을 보내 "사 단과 칠정은 모두가 '정' (情)에 속하므로 서로 대비시킬 수가 없고, 또 이와 기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데도 두 가 지를 따로 떼어 사단과 칠정에 각각 소속시킨 것은 무리" 라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논쟁이 시작되었던 것이 다.
이와 같은 기대승의 질문에 대해 이황은 "사단은 순수 하게 선한 것이니 이에 비유할 수 있고, 칠정은 선과 악 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기에 비유할 수 있으며, 또 이와 기가 실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논 리적 구별은 가능하므로 사단은 이가 발동한 것이고, 칠 정은 기가 발동한 것이라 하여도 무리가 아니다" 라고 답 변하였다. 이에 대해 기대승은 다시 "사단이 순수하게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기에 의해 발산된 정(情) 이 법도에 들어맞게 된 것에 불과한 것이니 결국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 고 하여 자신의 처음 주장을 재확인하였다. 여기서 우리 는 이황이 이와 기가 서로 뒤섞일 수 없다는 '이기불상 잡' (理氣不相雜)의 논리를 근거로 근원적 존재인 이와 현상적 존재인 기의 구분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의 능동 성과 우위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이와 기의 작용성을 모 두 인정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대승은 이와 기가 현실적으로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이기불상리' (理氣不相離)의 논리에 입각하여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기일 뿐이고 이는 기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까닭[所以然]으로 서 기 속에 내재하는 법칙에 불과하다고 하여 이의 능동 성을 부인하는 일원론적 관점에 입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총 11차례의 서신 교환을 거치면서 1566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결국에는 이황이 "사단은 이가 발동하고 기가 여기에 따 라가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동하고 이가 그것을 타고 가는 것이다" (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하여 기대승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였고, 기대승 역시 "정이 발동하는 것은 이가 움직이고 기가 갖추어지는 경 우도 있고 기가 감응하고 이가 타고 가는 경우도 있다" (情之發也 或理動而氣俱 或氣感而理乘)라고 하여 이황 의 견해에 접근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마지막까 지도 양자의 입장 차이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으 며, 둘 사이의 토론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은 후대의 '이기 심성론' 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이론 적 근거가 되었다.
사단과 칠정의 문제를 둘러싼 이황과 기대승의 논쟁은 얼마 뒤 이황의 입장을 옹호하는 성혼과 기대승의 견해를 지지하는 이이 사이의 9차례에 걸친 서신 논쟁으로 이어짐으로써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황이 죽은 지 2년 뒤인 1572년부터 시작된 이 논쟁은, 성혼이 사 단은 이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이라는 이황의 '이기 호발설' (理氣互發說)이 타당하다는 의견 을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이이의 견해를 물었던 데서 비 롯되었다. 이에 대해 이이는 "발동하는 것은 기이고 발 동하게 하는 것은 이이다" 發者氣也 所以發者理也)라고 하여 사단과 칠정의 경우 모두 실제 발동하는 것은 기이 고 이는 다만 기를 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명 백한 일원론적 입장인 '기발이승 일도설' (氣發理乘一途 說)을 제시하였다.
〔사상사적 의의〕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 사단 칠정 논 쟁을 통해 이와 기의 작용성을 모두 인정하는 이황의 '이기 호발설' 과 이의 작용성을 부인하고 기의 작용성만 을 인정하는 이이의 '기발이승 일도설' 이 한국 성리학 이론의 두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의 입장은 이황 이 이와 기가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구별성을 중 요시한 데 반해 이이는 이와 기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일치성을 중요시한 점에서 대조를 이루며, 이들의 학문 적 태도는 도덕적 순수성의 존중과 현실적 조화성의 존 중으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황과 이이에 의 해 체계화된 성리학 이론은 당시 상황에서 인간과 사회 가 도덕성을 성취할 수 있는 원리와 방법을 인식하는 틀 을 제공하였으며, 이는 다시 그들의 문하(門下)에 전수 되어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을 각각 주요 학 설로 삼는 영남학파(嶺南學派)와 기호학파(畿胡學派)라 는 양대 학파를 형성하면서 정통적 성리학설로 계승되었다.
조선 성리학의 사단 칠정 논쟁은 심성론(心性論)의 영 역에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에 대한 이론적인 해명 과 정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곧 사단 칠정 논쟁이 내포하 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의식은, 사단과 칠정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감정에 대한 탐구를 통해 도덕성의 실천적 단 서를 확인하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기 호발설' 은 현실 세계를 선과 악이 뒤섞인 상태로 규정하고 윤리의 근원을 초자연적인 이법에서 찾으려는 태도이고, '기발이승 일도설' 은 현실 세계의 도덕적 가 능성을 긍정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현실 세계에 나아가 인간의 윤리를 확충시키려는 태도였다. 그런데 이 두 입 장은 모두가 천명(天命, 性)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인 간 존재의 철저한 실천을 강조한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 고 있다. 곧 사단 칠정 논쟁은 인심(人心)의 세 측면인 심(心) · 성(性) · 정(情) 가운데 '정' 의 문제에 대한 이 기론적 해명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인간 감정의 도덕적 통제에 주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바로 이 점에서 실천 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에 게 있어서 도덕적 실천은 엄격한 수양(修養)에서 비롯되 는 것이요, 수양은 다시 욕망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여 도덕적 본성만이 표출되도록 하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성리학)
※ 참고문헌  李滉, 《溪全書》 李珥, 《栗谷全書》 배종호, 《한국 유학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7판, 1990/ 유정 동, 〈花潭 · 晦齋 · 退溪 의 성리설 전개>, 《한국 사상 대계》 Ⅳ,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4. [琴章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