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본당

舍堂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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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동작구 사당1동 101830 소재. 1971년 6월 22일 명수대(明水臺, 현 흑석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사 도 성 야고보. 관할 구역은 사당1동 · 남현동 · 방배2동 전역과 사당4동 · 방배3동 일부 지역. 〔교 세〕 1972년 1,450명, 1978년 3,792명, 1983년 8,814명, 1988년 9,052명, 1993년 10,129명, 1997년 7,080명. 〔역대 신부〕 초대 플레밍(K. Fleming, 민) 가비노(1971. 6~1972. 11), 2대 머피(J. Murphy, 전) 야고보(1972. 11~1976.4), 3 대 맥카시(M. McCarthy, 마) 미카엘(1976. 4~1979. 12), 4 대 임덕일(林德-) 아마토(1979. 12~1984. 9), 5대 유봉준 (俞鳳俊) 토마스(1984. 9~1989. 2), 6대 이봉우(李奉雨) 토마스 데 아퀴노(1989. 2~1994. 2), 7대 안충석(安忠錫) 루가(1994.2~현재). 1960년대까지 관할 구역상 명수대 본당에 속해 있던 사당동 지역 신자들은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많은 불편 을 겪어 오다가 이들 사이에서 공소 설립 논의가 있게 되 자, 명수대 본당 4대 주임 김옥균(金玉均, 바오로) 신부 는 1967년에 사당동 공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이용진 (야고보)의 사가에서 공소를 치르던 신자들은 1970년 초에 400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같은 해 6월 33평의 강 당을 완공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1년 6월 22일에 명수대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플레밍 신부가 부임 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740명이었다. 우선 플레밍 신 부는 공소 강당을 개조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그 해 10월 사제관(20평)을 건립하였고, 2대 주임 머피 신부는 1974년 4월에 임시 성당을 헐고 9월에 111평의 단층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어 3대 주임 맥카시 신부는 1977년 9월에 성당을 증축하고 이듬해 2월에는 수녀원 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증 · 개축 공사에도 불구 하고 성당이 비좁게 되자, 1981년 6월에 4대 주임 임덕 일 신부가 성당 인근의 부지 75평을 확보한 후 성당 신 축 공사에 착수하여 1983년 12월에 현재의 성당을 완공 하였다.
한편 1984년 5월에 지하철 2호선에 이어 이듬해 10 월 4호선이 잇달아 개통되면서 환승 역이 되자 이곳 사 당동 일대의 거주 인구도 급증하였다. 이에 5대 주임 유 봉준 신부는 1986년 8월 16일 동작동(銅雀洞) 본당을 분리하고 1,650세대 4,672명의 교적을 이관하였으며, 1989년 2월에 6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봉우 신부는 소공 동체 활성화를 위해 구역 반을 165개로 재편하여 반 모 임을 통한 신자 재교육과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본 당의 교세가 날로 확장되는 가운데 부임한 7대 주임 안 충석 신부는 1995년 2월에 성당 앞의 사가를 매입하여 '성 야고보 교육관' (53평)으로 개수하였고, 1997년 7월 30일에는 새 본당 부지로 사당5동 235-57번지 일대의 442평을 매입하여 9월 26일자로 사당5동 본당을 분리 함과 동시에 550세대 1,526명의 교적을 이관하였다. 최 근 들어 본당에서는 영적 도서함을 설치하여 신자들의 영성 생활에 도움을 주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대철 베 드로 장학회' 를 통한 장학금 지급 등 이웃 사랑 운동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 (→ 서울대교구 ; 흑석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서울대교구, 《教區總覽》, 가 톨릭 출판사, 1984/ 명수대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편, 《명수대 본 당 40년사》, 천주교 명수대 교회, 199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