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성 요한 수도회

使徒 聖 - 修道會

〔영〕Congregation of St. John · 〔프〕Congrégation de St.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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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마리 도미니크 필리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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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마리 도미니크 필리프 신부.

마리 도미니크 필리프(Marie Dominique Philippe) 신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고, 현 시대의 요구에 좀더 직접적으로 응답하기 위하여 1975년 12월 8일에 설립한 관상 안에서의 활동 수도회. 총본부는 프랑스 오탕(Autun) 교구 내 리몽(Rimon)에 있으며, 한국 분원은 부산시 서구 초장동 60-3번지에 있다.

〔설립과 변모〕 1912년 프랑스 북부 시수앙(Cysoing) 지방에서 12남매 가운데 여덟 번째로 태어난 필리프는 1930년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1936년 7월 14일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45~1982년에는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한편 1975년부터 신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함께 맡게 된 그는, 마르트 로뱅(Marthe Robin)에 의해 시작된 '사랑의 가정' 이라는 공동체에서 피정을 지도하다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로뱅의 뜻에 따라 1975년 12월 8일에 신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사도 성 요한 수도회' 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는 프랑스의 성 오노라(Honorat) 섬에 있는 레랭(Lerins) 성모 수도원으로 수련자들을 보내 시토회 아빠스의 지도 아래 위탁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1981년에는 프레주 툴롱(Frejus-Toulon) 교구의 바르트(Barthe) 주교의 허락을 받아 '은총의 성모' 발현지로 잘 알려져 있는 코티냑(Cotignac)의 운영권을 인수한 후 첫 번째 분원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오탕 교구의 옛 소신학교를 인수하여 신학원이자 본원으로 이용하였다. 그 무렵 이미 회원수가 80명을 넘을 정도로 지원자가 증가하자 다시 분원 설립의 필요성을 느낀 필리프 신부는 1983년에 리용(Lyon) 교구장의 허락으로 교구의 옛 소신학교였던 생 조다르(Saint-Jodard)를 인수하고 그 곳에 현재의 수련소를 마련하였다.

1986년에 오탕 교구 소속 수도회로 인가받은 사도 성 요한 수도회는 주로 영적 지도 · 피정 · 교육 사업에 전념해 오고 있는데, 점차 본당 사목을 비롯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도 관심을 쏟고 있다. 1985년에 처음 스위스에 진출한 이래 세네갈(1986), 미국(1986), 카메룬 (1987), 타이(1987), 루마니아(1991), 벨기에(1992), 멕시코(1992) 등으로 진출하였으며, 1998년 1월 현재 19개국 52개 분원에서 종신 서원자 216명, 유기 서원자 110명, 수련자 82명, 청원자 67명 등 총 47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관상적 사랑의 사도였던 성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랑을 받았던 제자(요한 13, 23)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었으며,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유언(요한 19, 26-27)을 기쁘게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 와 성모 마리아의 내적 신비를 잘 알고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그는 또 최후 만찬 때의 내적인 일치(요한 13, 24),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존중하는 모습(요한 20, 4-5),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예수와 동행하였던 모습 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베드로와 신뢰심 안에서 일치를 이루었다. 바로 이러한 사도 요한의 모범과 영성은 사도 성 요한 수도회의 가족들이 공동체적인 삶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형제애의 일치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으며, 회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지혜와 경험,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방법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 진출〕 1987년 10월 6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윤기선(尹其善, 마리아 요셉)이 사도 성 요한 수도회에 입회하여 1994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사도 성 요한 수도회에서는 한국 진출을 위해 각 교구와 협의하 던 중 1997년 2월 14일에 부산교구장 이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의 초청으로 윤기선 신부가 초장(草場)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의 분원이 처음으로 마련될 수 있었고, 그 해 3월 20 일에는 방부억(方富億, 요한) 신부가 입국하여 서대신 (西大新) 본당 보좌로 1년 간 사목하다가 초장 분원으로 옮겨 오게 되었으며, 9월부터는 프랑스인 피두(C. Pidou, 막시밀리안 마리아) 신부가 초장 분원에 도착하여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이처럼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딛게 된 사도 성 요한 수도회는 1998년 2월 현재 3명의 회원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도회로서의 터전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도회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