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使徒職

〔라〕apostolatus · 〔영〕apost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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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은 부활한 예수가 12사도에게 선교 사명을 위임함으로써 교회를 통해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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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은 부활한 예수가 12사도에게 선교 사명을 위임함으로써 교회를 통해 계승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동으로써 증거하는 사도로 서의 직무. 사도직이란 용어는 '파견' 또는 '사명' 을 뜻 하는 그리스어 '아포스톨레' (αποστολή)에서 유래되었 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라고 말할 때 이는 사도로서 파견되었음을 뜻하는데, 여기에서 사도직의 의미가 파생 되었다. 사도직을 뜻하는 라틴어 '아포스톨라투스' 는 '사도' 를 의미하는 라틴어 '아포스톨루스' (apostolus)의 '임무와 파견적인' 의미에 접미사 -atus가 연결되어 파견 된 자의 직분을 의미하게 되었다.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사도직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파견이란 의식(意識)을 의미하였던 사도직 은 성품성사나 특수한 파견 예식을 통한 '교계적 사도직' 과, 세례성사 · 견진성사 · 혼인성사 등 특별한 은총에 의하거나 교회의 특별한 위임과 명령에 의한 평신도 사 도직' 으로 구분된다.
〔신약성서의 이해〕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를 이 세상에 파견하였으므로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 도에게 원초적인 근거를 두게 된다(히브 3, 1). "나를 받 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파견하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마르 9, 37) 혹은 "아 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보냅니 다"요한 20, 21)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이, 예수는 하느 님으로부터 파견되었고, 사도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파 견되었다. 공관 복음서는 12사도들이 예수에게 부름을 받아 파견되었다고 전한다(마르 3, 14 이하 ; 마태 10, 1 이 하 ; 루가 6, 13 이하). 그래서 본래 그리스도의 직무를 뜻 하던 사도직이 예수의 열두 제자들과 연결되어 12사도 의 직무를 의미하게 되었고, 베드로나 바오로의 직무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로마 1, 5 ; 1고린 9, 2 ; 갈라 2, 8). 그리고 사도직은 부활한 예수가 12사도에게 선교 사명을 위임함으로써 교회를 통해 계승된다(마르 16, 15 이하 ; 마태 28, 19-20 ; 루가 24, 48-49 ; 요한 20, 21-23 ; 사도 1, 8). 후기 문헌으로 갈수록 사도직을 12사도의 직 무에 한정하여 사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며 이러한 사도 적 전승을 교회가 계승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바오로의 사도직 : 이방 지역인 안티오키아와 시리아 에서는 사도직을, 선교를 위한 영적 카리스마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옛 전승인 사도 행전 13장 1-3절에 따르면, 안티오키아에 있던 예언자들과 교사들 중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성령의 지시로 선택된 다음 파견되었다. 그런데 바오로 는 사도직을 12사도들에게만 한정되어 언급되는 것에 맞서서 끊임없이 자신의 사도직을 내세웠다. 당시 바오 로의 사도권 주장에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오로는 그들을 "가짜 사도들" 이라고 몰아세웠다(2고린 11, 13 ; 12, 11).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그리스도에게 부름받 는 체험을 한 후 카리스마를 지닌 사도가 된 바오로는, 제1차 전도 여행에서 안티오키아의 바르나바와 함께 성령의 지시대로 전권을 위임받은 사도로서 행동하였으며 (사도 13, 1-3), 예루살렘을 두 번째로 방문할 즈음(48경) 에는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대표해서 바르나바와 함께 그 곳에 갔다. 이때 바오로는 공동체의 사도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계시에 따라 자신이 사도가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갈라 2, 1), 예루살렘의 권위를 통해 자신의 사도직을 인 정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오로의 계시 체험을 그리스도의 현시로서 인정해 주었고, 이방인 을 위해 바오로가 복음을 위임받았다는 사실도 인정해 주었다(갈라 2. 2. 7). 그래서 바오로는 예루살렘 사도들의 판단에 따라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사도임을 확 증받았다.
또한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통용되는 사도직의 의미 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원사의 특 별한 중요성을 자신에게 덧붙였다. 즉 첫 번째 사도로서 부름을 받은 베 드로와 함께 바오로는 마지막으로 부 름받은 사도라고 스스로 칭하는가 하 면, 베드로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 하는 사도인 반면에 자신은 이방인에 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고 주장하였 다. 바오로는 공동체의 대표자나 어 떤 사람의 권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현시를 통해 직접적으로 사도가 되었음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근거를 내세웠 다(갈라 1, 1. 15-17). 부활한 예수의 위임을 받아 사도가 된다는 그리스도 론적인 근거 외에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까지 포함시 켜서 사도직에 대한 기초적인 신학적 개념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바오로가 예루살렘 사도직과, 영적 은사 에 의한 안티오키아의 사도직을 구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구별이 개념적으로 정립되려면 아마 오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의 주요 서신들이 그 의 활동 마지막 1년 안에 쓰여진 것임을 감안한다면, 당 시 사도직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약성서는 사도직을 다양한 의미로 해 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만, 사도 시대 이후 그리 스도교 전승에서는 12사도들에게만 한정하여 사도직을 결부시키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태동할 당시 많은 이교들이 생겨났 고, 이에 대해 교회는 적절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는 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1세기 이후 그리스도교는 사도직에 대하여 확고한 입장을 취하여야 했다. 그러나 '열둘' 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점차 주 도적인 기능을 상실하여 갔는데, 이는 바오로가 예루살 렘으로의 첫 여행(35/37경)에서 게파를 우두머리로 하는 12사도뿐만 아니라 12사도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공동체를 이끌어 가던 야고보를 통칭하여 '사도들' 이라 고 언급하였기 때문이었다(갈라 1, 18-19). 이러한 새로 운 정황은 고린토 전서 15장 7절에도 반영되어 나타나 는데, 이 또한 '열둘' 이라는 범주가 더 이상 실제적인 기능을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의미의 역사적 변천〕 초대 교회 직후 :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하느님의 백성들 로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박해를 받으면서 공동체로 성 장하였다. 그래서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해야 할 필요 가 없었으며 교계 제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 시대 직후 신자수의 외적인 성장, 교회의 일치와 신앙을 위협하는 이단의 출현, 심해져 가는 로마 제국의 박해에 직면하면서 주교단의 급속한 재치권(裁治權) 확대와 더 불어 교계 제도가 형성되었다. 한편 그노시스(gnosis) 즉 인식이나 깨달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던 그노시스 주의자들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계시의 전달자 혹은 증거자로서의 사도직 소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령 배 척론과 신비적인 그노시스주의를 펼쳤다. 교회는 이를 반박하기 위하여 호교론적인 입장으로 사도들이 전하는 계시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1세기 말 경까지 교회에서 사도직은 그리스도로부터 권위 있는 직 무를 이어받은 사도들의 직무를 의미하였다.
한편 2세기경 마르치온(Marion)은 바오로의 사도직만 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오로의 서간들과 루가 복 음서만을 성서로 인정하였는데, 라틴 교부인 리용의 주 교 이레네오(130~200)와 테르툴리아노(160~223)는 이에 대해 반박하였다. 이러한 정황으로 초대 교회 이후 사도 직의 의미는 점차 교계의 직무자들의 직무 자체를 의미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교부들은 성서상의 사도들과 교회 사이의 유사성과 사도성을 강조 하게 되었다. 특별히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는 사도들의 직무를 '장로들의 원형' 이라고까지 하였으며, 결국에는 그리스도교인 전체를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 , 하느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강조하던 것이 주교를 군주라 부르는 군주제적 주교 직위가 확립되어 성직자의 권위가 강력하게 주장되었다. 그래서 3~4세기에는 주교의 직 무를 주로 사도직이라고 하였으며, 6세기에는 교황의 직 무만 특별히 한정하여 사도직이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 직의 활동이 내면적인 생활로 이해되던 것에서 점차 실 천적인 활동으로 이해되어 갔다. 즉 2~3세기에는 주로 교회 직무자들의 금욕적이고 수도적인 생활에 집중되었 지만, 6세기부터는 다소 적극적인 사목 활동으로 그 직 무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중세 시대 : 대외적인 면에서 중세 시기는 왕과 제후 그리고 교황과 주교 사이의 갈등, 교회 분열, 교의상의 오류와 이단으로 큰 진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이러한 시 대적 배경은 국왕에 의한 주교 선출 문제와 성직 서임권 논쟁 및 11세기의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1085)의 개혁 사상에 의해 하나의 하느님 백성이었던 교회의 구 성원이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완전히 구분되었고, 그 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는 성직자 · 수 도자 · 평신도 세 계급으로 교회의 구성 요소가 명문화되 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교회는 주교 · 사제 · 수도자의 신앙 전파 활동을 위한 직무를 사도직이라고 일컫는 경 향이 있었다.
근세 : 16세기에 발생한 종교 개혁은 중세 교회의 여 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 기존의 교회관과 루터 나 칼뱅의 교회관을 대립시켰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폭 넓은 신학적 사도직의 의미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는 데, 즉 네덜란드의 헤르포름드케르크(Hervormdekerk)는 자신의 논문 <교회의 사도직>(Vom Apostolat der Kirche)에 서 "모든 인간과 권력에 맞선 하느님의 계약과 명령을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만들어진 그리스도가 인정하는 신 앙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특별히 종교 개혁적인 의미에 서 선교 활동과 복음 전파와 백성들의 그리스도교적인 완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채워 간다" 고 언급하였다. 이를 통해 교회의 폭 넓은 의미의 사도직이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에 대한 투쟁으로 가톨릭 교회는 논 쟁적이며 호교적인 양상을 드러냈다. 그래서 교회는 자 신의 정통성을 지키는데 전념하였으며, 교회 권위에 대 한 집념이 성직자 교회를 낳게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 는 교황의 무류성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제도주의적 교회 관을 피력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교회를 성 화하고 가르치고 통치하는 성직자와, 그에 따르는 평신 도로 구분하여 표현하였으며 성직자의 사도직을 위주로 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평 신도들은 종교 개혁, 이후 상실되어 가는 가톨릭 신앙을 복구하기 위해 항구히 노력하였으며, 자선 사업 후원 등 의 활동으로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였다.
현대의 변화 : 20세기에 들어서 심화된 합리주의와 과 학 만능의 사고 방식, 그리고 가톨릭 학계 내에서 위협이 된 주관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한 근대주의, 객관 주의, 권위주의 등은 교회로 하여금 내외적으로 큰 위기 의식을 느끼게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황 비오 10 세(1903~1914)는 교서 <일 포르모 프로포시티오>(Il formo propositio, 1905. 6. 11)를 통하여, 당시의 상황 속에서 그리 스도교 생활의 회복과 강화를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서 평신도들이 가톨릭 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이 활동은 교 회와 사회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필수 사업이라고 언 급하였다. 교황의 이러한 주장은 평신도 사도직의 새로 운 장을 여는 도화선이 되었으나 이 시대의 교회는 현실 과 너무도 괴리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사회 현실 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는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원칙만을 나열하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신학자들은 평신도 사도직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하여 교 회의 종교적 사명에의 참여와 세상의 복음화 과정 안에 서의 참여,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 등을 고찰하 면서 활발한 토론을 전개하였고, 그러한 노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에 대한 교의적 고찰의 발판이 되었다.
〔신학적인 검토〕 19세기까지 신학계에서는 예수가 제 자들 중에 12명을 직접 뽑아 사도로 삼았다는 루가 복음 6장 13절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역사 비평 방 법에 따른 성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각 복음서에 언급된 12사도들의 이름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 혀지게 되었다. 1865년 라이트푸트(J.B. Lightfoot)는 루가의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 기록된 12사도에 대한 언급 이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루가의 신학적 구상에 따 른 것이라고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또한 12사도 속에 포 함되어 있지 않았던 바오로가 스스로를 사도로서 자처하 는 구절들이 사도직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일었다. 루가는 생전의 예수와 함께 지냈던 제자 들을 사도로 보았지만, 바오로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 예 수를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사도로서 활약하였기 때문이 다. 이에 따라 사도직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첫째, 부활 이전에 이미 12사도가 정해져 있었다는 점 에 대한 비판이 벨하우젠(J. Wellhausen)을 중심으로 광범 위하게 제기되었다. 초기에 사도직은 카리스마를 받은 예언자들과 선교사들을 포괄하는 폭 넓은 의미로 사용되 었는데, 훗날 사도직에 대한 바오로와의 논쟁을 거치면 서 12사도에게만 국한되는 좁은 의미로 규정되었다고 그들은 결론지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이미 어떤 규정된 사도직을 전제로 하여 논쟁을 벌였다(1고린 15, 8-11 ; 갈 라 1, 17)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둘째, 바오로가 내세우는 사도 개념과 예루살렘 교회 에서 주장하는 사도 개념이 서로 대립한다는 점에 포착 하여 새로운 가설들이 세워졌다. 홀(K. Holl)은 두 가지 교회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초대 교회가 제도화되는 시 기에 예루살렘 교회는 자신들의 직무가 정통이라고 주장 한 반면, 바오로는 카리스마와 성령에 의한 사도직을 내 세웠다고 설명했다. 로제(E. Lohse), 쿨만(O. Cullmann) , 바레트(C.K. Barett)는 바오로가 예루살렘 교회와 서로 대 립하고 있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성령에 의한 사도직 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이해된 사도직을 바오로가 생각 했다고 주장하였다. 즉 바오로는 세상 끝까지 이방인들 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고 이것을 사도직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바오로 시대에 사 도직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셋째, 역사적 비평에도 불구하고 사도직에 대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일치된 견해를 탐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 인 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사도직에 대한 루가의 진술이 옛 전승에 기반을 두고 있고 다른 복음서뿐만 아니라 바 오로까지도 이러한 옛 전승에 근거를 둔다는 입장을 취 하였다. 사도직은 '올바르게 전권을 위임받은 대리자' 라 는 의미를 가진 유대교 전통인 '셀리아흐' (★)와 연 결되고, 사도는 예수의 전권을 위임받은 대리자라는 의 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초창기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제 도적으로 분명하게 뒷받침되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더라 면, 루가의 사도 개념은 합법적인 것이고 바오로의 사도 개념은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파러(Farrer)나 리젠펠트(Riesenfeld)는 예수가 교회를 세우 려 했던 뜻이 사도들을 정한 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 예수의 직무를 교회에서 계속 수행하는 것이 바로 사도 의 기능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역사 비판적 방법론에 따른 성서 연구들이 활 발해지면서 사도직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 다. 또한 성서 연구를 통해 신약성서 자체 안에 사도직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들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현재에도 사도직에 대한 다양한 의미 해석을 위한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현대 사도직의 의미와 다양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는 사도직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심화시켰는데, 과거에 사도직의 근거를 사도적 계승을 이어받은 교회에서 찾던 관점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찾으려는 경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현대 교회는 교계 사도직만을 사도적 전통을 이어받은 합법적 인 사도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사도직을 요청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여러 가지 직책으로 나누어지지만 그 직책들은 본성상 그리스 도로부터 받은 하나의 사도직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도직을 "교회의 모든 지체 들의 활동" 이라 정의하고, "그리스도교 신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는 것과 마 찬가지" 라고 하였다(평신도 2항). 교회는 모든 교회 구성 원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도직을 구현한다. 따라서 사도직을 행하는 자는 교회와 세계 안에서 사도적 활동을 하는 모든 교회 구성원들을 포함한다.
다양한 사도직을 요청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느님이 세상에 파견한 공동체인 교회는 오늘날의 사회 구조 안 에서 제기되는 사도직의 실행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맞서 교회의 사도직 소명과 직무자를 비판적으로 검토하 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직 활동은 대체로 교회의 목적 즉 복음화, 그리스도교적 세계의 완성과 구원을 목 적으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의 그리스도교적 완 성이란 인간을 해방시키는 행위 그 이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업은 현세의 복잡한 구조 질서와 밀접한 관련 속 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고려해서 사도직 형태를 현대 요구에 알맞도록 적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주교 17항).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과업을 직접 수행하지 못하고 교회 구성원들을 통하여 수행할 수밖에 없으므로 특별히 평신도의 고유한 사도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도직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 각자가 각자의 직책 과 생활 터전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의식으로 수행하는 교회적인 행위이다. <평신도 교령>에서는 평신도들도 그 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며 교회와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자기 나름으로 완 수하고 있다고 하였다(2항). 그리고 평신도 사도직에 세 가지 목적 및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데, 즉 "그리스도 왕 국을 전세계에 펴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하게 하며, 또한 그들을 통하여 전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 는 일이다" (2항). 또한 교회는 평신도들이 조직적인 사도 직을 강화하여 서로 협력하기를 권하며, 가톨릭 신자들 의 사도적 사업이 국제 분야에 있어서 점차로 조직적 형 태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19항).
〔현대 신학적인 의미와 전망〕 현대 신학에서는 예수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사도직을 수행한 분이라 고 설명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들은 예수의 부르심 을 받아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며,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길을 다양한 방식으로 따르는 구체적인 직무 들로 나타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사도직은 살 아 있는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하며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도직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전수되는 차원 외 에 신앙인의 내면에서 강한 소명 의식을 느끼고 그리스 도를 따라 사는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오늘날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삶에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대변하 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의 삶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사도직을 수행한 본보기였고 사도들은 예수로 부터 다시 선교의 사명을 위임받았으며, 교회는 그 직무 를 계승해 나간다. 따라서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직무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직무에 참여한다.
12사도의 직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고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 안에 성취시키는 일이었다면, 오늘날 그 리스도인들의 사도 직무는 하느님의 구원 소식이 온 세 상에 퍼지고 모든 시대의 인류에게 전파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런데 다원화된 사회인 현대 사회에서 교회와 사회는 그 사이가 점차 더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에서 교회가 세상에 파견된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 보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의 사도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 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세상 속에 파견된' 교회 구성 원들의 삶과 사명을 더욱더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리스도인의 실존 속에는 교계 제도에 얽매이는 측면보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른다는 초대의 성격이 더욱 강하게 들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처한 신분과 조건에 따라 사도적 활동을 증진시키거나 지원할 권리를 가진다 (교회법 216조).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성 숙된 인간이 되는 동시에 개방되고 연대하는 삶으로 나 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제도 적인 교회와 성숙된 신앙 의식을 조화시켜 나가면서 세 상 속에서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 사도 ; 가톨릭 운 동 ; 평신도 사도직)
※ 참고문헌  K.H. Rengstorf, 《TWNT》 1, pp. 406~446/ J. Roloff · G.G. Blum F. Mildenberger · S.S. Hartmann, 《TRE》 3, pp. 430~477/ H. Riesenfeld, 《RGG》 1/ M.H. Shepherd, Jr., 1/ F. Klostermann, Herders Theologisches Taschenlexikon 1, Herder Freiburg-Basel-Wien, 1972, pp. 171~1731/ㅡ, 《NCE》 1, pp. 688~689/ M. Karrer, 《EKL》 1, pp. 222~22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69/ X. Léon-Dufour, 김경환 역, <사도>, 《신학 전망》 46호(1979년 가을), 대건신학대학 전망 편집부, pp. 115~120/ 徐相溱, 〈平信徒 使 徒職과 靈性〉, 수원 가톨릭대학 대학원 학위 논문, 1991, pp. 11~26. 〔姜永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