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행전 使徒行傳
Ⅰ. 저자 · Ⅱ. 독자 · Ⅲ. 집필 장소와 연대, 동기 · Ⅳ. 사료 · Ⅵ. 설교 · Ⅵ. 구조와 내용 · 〔라〕Actus Apostolorum · 〔영〕Acts of the Apo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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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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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가 사도 행전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신약성서의 다섯 번째 책으로, 초대 그리스도교의 상 황을 전해 주는 역사서. Ⅰ. 저 자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전하는 복음서들처럼 사도 행전 도 저자의 이름이 감추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편의상 루 가라고 부르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 주는 확실 한 문헌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든 제3 복 음서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두 책의 서문들이 이를 증언할 뿐 아니라 두 책의 문체와 사상이 같기 때문이다. 한편 "루가의 복음서"라는 제3 복음서의 제목은 이 책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보드머 파피루스 (P⁷³, 175~225)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이 당시에 다른 복 음서들에도 저자의 이름이 부여된 것 같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이 저자는 "바오로의 협조자" (필레 1, 24 ; 골로 4, 14 ; 2디모 4, 11)인 "의사 루가"(골로 4, 14)이다. <무라토리 단편>(Fragmentum Muratorianum)의 경전 목록과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의 《반이단 론》(3, 1, 1)이 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였다. 최근에는 이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하기 위해 "만일 12사도에 끼지도 못한 평범한 이름의 루가가 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 의 실제 저자가 아니었다면, 초기 교부들이 어떻게 그토 록 한결같이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보전하며 증언해 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이론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 중에는 마태오나 요 한처럼 12사도와 관련된 저자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가 하면, 루가 외에도 마르코처럼 12사도와 무관한 이름 의 소유자도 있다. 그리고 파피아스(Papias, 60~130)가 처 음으로 증언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를 베드로의 통역자 요 바오로의 협력자로 보는 전통적 견해도 성서학계에서 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루가나 마르코와 같 은 평범한 인물이 초기 문헌들에서 증언되는 것 그 자체 가 그들의 친저성(親著性)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될 수 는 없다.
결국, 2세기경에 신약성서 안에서 산발적으로 제시된 빈약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상황에서 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저자에게 도 바오로계의 문헌을 근거로 '루가' 라는 이름이 주어졌 고, 그 뒤에 신약성서의 기록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대하 지 않은 교부들이 이를 당연시하여 이 두 저서의 저자를 루가로 고정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루가의 친저성은 바 오로 자신이 소개하는 바오로상과 사도 행전에 소개된 바오로상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로 중대한 도전을 받 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간에서 율법에 대하여 철저하게 자유로운 입장을 취하는 바오로가 사도 행전에서는 나지르의 예식 을 치르고 디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기도 하였다(사도 16, 3). 둘째, 연설가나 웅변가로서의 능력을 갖추지 못 한(2고린 10, 10) 바오로를 두고, 루가는 광분하는 유대 인들, 이방인들, 로마의 총독과 그리스 철학자들을 모두 설득시킬 수 있는 뛰어난 연설가로 묘사하였다. 셋째, 바 오로의 회심이 그의 서간에서는 내적 체험으로 간단하게 소개된 반면(갈라 1, 15-16 ; 1고린 9, 1 ; 15, 8 ; 필립 3, 12), 사도 행전에서는 극적인 외부 사건으로 묘사되었다 (사도 9, 1-19 ; 22, 3-21 ; 26, 9-18).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의 저자가, 바오로가 증언하 는 의사 루가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단지 그가 바오로의 협력자라기보다는 바오로 이후 시대 사람 으로서, 사도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가 얻어낸 자 료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서술하고자 애썼던 인물로 추정 한다. 그리고 그가 팔레스티나 지리에 대해 어둡고 유대 인들의 관습이나 풍물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는 점들로 미루어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확인할 뿐이다.
Ⅱ. 독 자
성서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 의 저자가 마음에 둔 독자는 이방계 그리스도인 또는 이 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 로 우선 루가의 문학적 기법이 당대에 풍미하던 그리스로마 문학 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의 서문에서 집필 대상과 동기를 밝 히는 헌정사가 발견되는데, 이는 당대 그리스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문학적 관습이었다. 이 헌정사에 나오는 후원자는 데오필로(θεόφιλος,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다. 이 이름은 3세기경부 터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이 흔히 사용하던 인명이다. 데오필로를 그리스도인 독자를 상징하는 가상 적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 이름에 대한 상징적 해석은 3세기의 오리제네스(?~254) 이후에나 발견되기 때 문에, 루가 복음서의 서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데 오필로가 실제 인물이라고 본다면, 당대의 관습대로 그 에게는 루가에게서 헌정받은 이 작품을 필경사를 통해 복사하고 판매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을 것이다. 루가 복 음서의 서문이 뜻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아직 예비 신자 이거나 갓 입교한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의 명시적인 독자가 데오필로 라 할지라도 저자가 정작 염두에 둔 독자는 데오필로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루가 복 음서 안에서 이에 대한 증거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요 사료인 마르코 복음서와 《예수 어록》 (Q)에서 유대적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는 부분들을 과감 히 삭제하였다. 유대교의 정결 예식과 신심에 관한 기록 의 삭제, 정(淨)과 부정(不淨)에 관한 논쟁의 삭제(마르 7, 1-23), 그리고 반명제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율법적 요 소들의 누락(마태 5, 21-48)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때로는 팔레스티나의 전통이 루가의 편집을 통해서 그리스적 상 황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고(마르 2, 4= 루가 5, 19 ; 마태 7, 24-27 = 루가 6, 48-49),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이름들 이 그리스식으로 바뀌어 소개된다. 곧 라삐(Ραββί)와 라 뽀니(ῥαββονί)가 '스승님' (★), 루가 9, 33 : 비교 : 마르 9, 5)과 '주님' (Κύριος, 루가 18, 41 ; 비교 : 마르 10, 51)으로, 카나나이오스(Κανανίτης)가 '열혈당원' (ζηλωτής, 루가 6, 15 ; 사도 1, 13 ; 비교 : 마르 3, 18)으 로, 골고타(Γολγοθᾶ)가 '해골' (κρανίον, 루가 23, 33 : 비 교 : 마르 15, 22)로 고쳐진다.
예수의 족보는 마태오 복음서와는 달리 다윗과 아브라 함에게서 그치지 않고 아담과 하느님에게까지 소급된다. 그가 인용하는 구약성서도 그리스어 역본인 칠십인역이 다. 루가가 '유대' 라는 이름을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 키는 넓은 뜻으로도 사용(루가 1, 5 ; 4, 44 ; 6, 17 ; 7, 17 ; 23, 5 ; 사도 2, 9 ; 10, 37)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팔 레스티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였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루가 당대의 그리스-로마 문헌에 보면 이처럼 유대를 넓은 뜻으로도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사상인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 하신 평화의 복음은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만민에게 전해진다" (사도 10, 36 참조)는 구원의 보편주의가 루가의 집필 대상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음을 명백하게 규 정해 준다.
Ⅲ. 집필 장소와 연대, 동기
〔집필 장소와 연대〕 사도 행전과 루가 복음서의 집필 장소로 가이사리아, 데카폴리스, 안티오키아, 아카이아, 로마 등 여러 곳이 지적되지만 팔레스티나 지역 밖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장소를 신빙성 있게 제시할 수는 없다.
사도 행전이 바오로의 순교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 으로 미루어 70년 네로 황제(54~68)의 박해 이전으로 집 필 연대를 앞당기는 학자도 있지만 바오로의 순교 기록 유무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 이유는 첫째, 바오로 의 로마 도착으로 사도 행전이 끝나는 것은 "복음이 유 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이방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까지 전파된다"는 루가의 신학적 구도에서 볼 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둘째, 루가는 묵시 문학의 저자와는 달리 로마 황제의 박해로 순교하는 것만을 최대의 미덕 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정치적 질 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종교가 아님을 역설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바오로의 순교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가가 비록 바오로의 순교에 대한 자료를 입수 하였다 하더라도 일단 복음이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이상, 사도 행전이 바오로의 전기가 아니 기에 바오로의 순교에 대하여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의무 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도 행전의 집필 연대를 70년 이전으로 보는 또 다른 근거는 사도 행전의 저자가 묘사하는 교회가 교계 제도 와 성사 제도가 확립된 '가톨리시즘' (Catholicism, 제도로 서 정착된 교회)을 표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 도 행전에 소개된 교회는 분명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 로들을 중심으로 제도적인 형태를 갖추었고 세례 · 안 수 · 성찬 등과 같은 원초적 성사 제도를 지니고 있었는 데, 다만 교회의 이 제도적인 모습이 루가의 신학적 전망 때문에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루가는 하느님의 예정 된 계획에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만민에게 복음을 힘 차게 전하는 교회의 선교 활동을 강조하고자 부심하였 다. 다시 말해 교회의 제도적인 모습이 성령의 힘으로 움 직이는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에 가려진 셈이다. 실제로 초대 교회 안에서 본격적인 가톨리시즘은 2세기에 들어 와서야 정착되었다. 이 사실을 감안할 때 루가가 보여 주 는 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1세기 말엽의 교회상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가 복음서의 집필 연대를 70년 이후 80년 전 · 후반 으로 추정한다면, 첫 번째 책에 이어(사도 1, 1) 데오필로 에게 바치는 두 번째 책은 80~95년 사이에 기록된 것 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하한 연대를 95년으로 잡은 이유는 루가가 자신의 두 저서 안에 당대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문헌(93)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이 연대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시대(81~96)와 맞물리는데, 사도 행전과 루 가 복음서 곳곳에서 이 박해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사도 행전에서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이상적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 2장 42-47절과 4장 32-37절이 다. 루가의 공동체 안에 박해로 재산이 없어진 가난한 신 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과 새로 입교한 이방인 신 자들 사이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자 그는 자신의 공동 체를 진정한 친교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하여 스승 예수 의 가르침에 입각한 초대 교회의 이상적인 나눔의 공동 체상을 제시한 것이다.
〔집필 동기〕 저자는 자신의 집필 동기를 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헌정사에서 분명히 밝혔다. 헌정사에서 저 자가 밝힌 집필 동기를 요약하면, 루가는 나자렛 예수의 목격 증인이었다가 말씀의 봉사자가 된 사람들의 대열, 소위 '복음의 제1 세대' 와 자신을 구별하고 선임자들(마 르코 복음서의 저자와 《예수 어록》의 저자)의 모범을 따라 예수 사건을 다루되, "처음부터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들에 관하여"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하였다고 보고한 다. 이 표현은 루가가 자기 작품에 바친 세 가지 노력, 곧 온전함과 철저함과 정확함을 각각 의미한다. 루가는 데오필로가 이미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나 교리를 기 본적으로 들어 알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가 전해 들은 지식이 올바른 전승, 곧 신뢰할 수 있는 목격 증인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쓴 것이다.
첫 번째 책에서 데오필로와 그 외의 다른 독자들에게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을 순서대로 남김없이 보고한 루가는, 교회의 이야기를 전하는 두 번째 책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였다. "데오필로님, 예수께서 처음부터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에 관하여 저는 첫 번째 책을 펴냈습니다. 곧, 그분이 성령으로 뽑 으신 사도들에게 명을 내리시고 승천하신 그날까지의 일 입니다"(사도 1, 1-2). 그리고 승천하기 직전의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 책 끝에 두 번째 책의 처음을 연결시켰다. 아마도 루가 복음서가 쓰 여지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 사도 행전이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지각 있는 루가는 이런 이음새가 당연 히 필요하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루가의 집필 의도는 물론 데오필로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데오필로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모든 그리스도교 입문자들이나 아직 확고한 신앙을 갖지 못한 갓 입교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방대한 양의 두 저서가 한 개인만을 위한 보고 서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Ⅳ. 사 료
다른 복음서들과 대조함으로써 비교적 쉽게 편집과 사 료의 요소들을 가려낼 수 있는 루가 복음서와는 달리, 사 도 행전은 저자가 어디에서 사료를 수집하였고 그 사료 가 어떤 종류였는지 분명하게 밝힐 수 없다. 19세기 초 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갖가지 사료 가설들은 세월과 더불어 퇴색하거나 순수한 가설로만 남아 주석서에서 언 급될 뿐이다. 그중에 오늘날까지 몇몇 학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는 가설은 크게 다음 두 가지이다.
〔아람어 사료 가설〕 이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사 도 행전의 문체, 특히 전반부의 문체가 아람어 어법을 닮 았다고 가정하면서, 적어도 사도 행전 전반부는 루가가 이미 아람어로 작성된 문헌을 번역한 것이고 후반부에서 도 여러 곳에 번역한 흔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하였다. 그 러나 루가의 그리스어와 칠십인역본의 그리스어를 자세 히 비교 · 연구한 학자들은 사도 행전에 나타나는 아람어 의 요소들이 오래된 전승 자료의 이용을 가리키기보다는 복고풍을 좋아하는 저자의 편집에 기인한 것임을 밝혀 냈다. 12사도의 주관하에 펼쳐지는 초대 교회의 선교 활 동을 다루는 대목들에서, 사도 행전의 저자는 그리스어 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성서인 칠십인역을 전형적인 모 델로 채택하였다. 그래서 루가는 칠십인역에서 성서 구 절을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인용하였을 뿐만 아니 라 문체와 용어까지도 본받았다. 이렇게 고풍의 문헌을 본뜨는 문학 기법은 루가 당대의 그리스-로마 역사가들 이 흔히 사용하던 기법이었다. 칠십인역의 모방은 설교 의 핵심 내용인 케리그마의 고풍화와 더불어 사도 행전 의 기록들이 교회 초기의 전승을 참신하게 반영하고 있 다는 인상을 심어 주려는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데 기 여하였다. 칠십인역의 모방과 인용은 12사도가 무대에 서 사라지는 15장 이후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루가가 사 용한 그리스어의 어휘 가운데 70%는 칠십인역에 등장하 는 것들이다.
〔여행 일지 가설〕 이 가설은 사도 행전의 '우리 대목' (16, 10-17 ; 20, 5-15 ; 21, 1-18 ; 27, 1-28, 16)을 심각 하게 받아들인 데에서 나왔다. 이 대목들에서 사도 행전 저자는 자신을 포함시키는 뜻으로 '우리' 라는 복수 1인 칭을 갑자기 주어로 넣었다가 이야기 중간에서 갑자기 증발시킨다. 이러한 '우리 대목' 들의 바탕은 추측컨대, 루가가 바오로와 함께 여행하면서 틈틈이 적어 놓은 여 행 일지이거나 바오로가 직접 작성하여 루가에게 넘겨준 여행 일지일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 리고 있던 바오로가 이런 여행 일지를 기록해 놓았을 리 없고 바오로의 동반자로서 그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받았 을 루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언제 파선당할 지 모를 바다 여행을 하면서 값비싼 두루마리들을 늘 지 니고 다닐 수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루가는 자 신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태풍을 만나 화물뿐 아니라 배 의 장비까지도 다 내던졌다고 보고한다(사도 27, 13-20). 어떻든 이 여행 일지 가설은 제3 복음서와 사도 행전의 저자를 바오로의 동반자인 루가로 보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가설이지만 개연 성이 희박한 이론이다.
이런 가설과는 달리 '우리 대목' 의 문체가 사도 행전 의 다른 부분의 문체와 동일한 점으로 미루어 복수 1인 칭 주어의 갑작스런 출현은 저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자 신이 전하는 여행담을 좀더 박진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기교일 가능성이 높다. 루 가가 말하는 '우리' 는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 포함된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 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바오로가 '우리' 에서 분리되기도 한다(사도 16, 17 ; 21, 18). 이 같 은 모순은 저자가 1인칭 주어의 사용에 그다지 큰 의미 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런데 이런 문학 기법을 사용한 저자는 루가만이 아니다. 루가에 앞 서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단수 1인칭, 복수 1인칭, 다른 3인칭 주어들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바빌론 귀양 이후 예 루살렘이 어떻게 재건되었는지를 전해 준다.
〔기타 사료〕 사도 행전의 저자가 아무 자료도 없이 그 책을 집필하였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대목' 에 관 한 고찰에서 복수 1인칭의 사용이 루가의 문학 기법임을 밝혔지만, 루가가 이 대목을 집필하면서도 다양한 자료 를 이용하였을 가능성은 그대로 남는다. 제3 복음서의 헌정사에서 스스로 증언하였듯이 루가는 여러 가지 방법 을 통하여 기록 전승이든 구전 전승이든 사료를 모으는 데 힘썼을 것이다. 다만 루가의 기술적인 편집 때문에 집 필이 끝난 사도 행전의 본문 안에서 그가 이용한 사료들 을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루가 복음서와 공관 복음 전승의 비교를 통해 서도 알 수 있는데, 만일 마르코 복음서나 마태오 복음서 가 없다면 루가 복음서에서 어느 부분이 그가 수집한 사 료에 속하고 어느 부분이 그가 관여한 편집인지 쉽게 분 간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 있게 확인하고 규명할 수 있는 요소들은 루가가 채택한 구약성서 그리스어 역 본의 직접 또는 간접 인용문들, 그리고 주로 사도 행전의 설교들 안에서 반복되는 루가 복음서의 용어와 신학 사 상들이다. 루가 복음서와 그리스어 역본 이외의 사료들 은 그 성격과 내용을 명확하게 규명하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
Ⅴ. 설 교
지난 두 세기 동안 사도 행전의 연구가들은 이 책의 4 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설교들의 성격을 연구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것은 그들이 설교들 안에서 사도 행전의 문학 특성과 핵심 메시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법론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 세 가지 방향으로 갈라진다. 첫째, 사도 행전의 설교들은 초대 교회가 간직해 온 사 도들의 설교들이나 초대 교회의 원초적인 전승들을 충실 히 전달 또는 반영한다. 둘째, 이 설교들은 사도 행전의 저자가 전승과는 전혀 관계없이 자신의 생각과 집필 의 도를 드러내기 위하여 꾸며 낸 창작품이다. 셋째, 이 설 교들은 전승과 편집이 함께 어우러진 기록으로서 초대 교회의 전통을 충실히 살다 간 루가의 원숙한 신학 사상 과 문학적 기량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이 세 가지 방향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하든지 사도 행전 연구가들은 설교들이 그 기본 구조와 내용을 살펴볼 때 에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 사도 행전의 전체적인 사상 과 문학적 특성을 대변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필자는 위의 세 가지 결론 중 세 번째 것을 받아들인다. 언어학 과 성서 신학을 바탕으로 설교의 형식과 내용을 분석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우선 루가의 문체 와 문학 기법을 연구한 학자들은 누구나 그가 신약성서 의 저자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문장가였다는 것을 인정 한다. 어휘와 표현이 풍부하고 사건들을 자신의 신학 구 도에 따라 순서에 맞게 논리적으로 전개시킨 루가의 문 학 역량은, 크게 당대의 그리스-로마 역사 문헌과 칠십 인역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된 것이다.
〔그리스-로마 역사 문헌의 연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의 역사가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과거 사건들을 수집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이 사건들 의 더 깊은 의미를 밝히는 일에 주력하였다. 이로써 그들 은 독자들이 사건들에 얽혀 있는 역사적 진실을 보다 분 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다. 이때 그들은 사건들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사건 의 주역들로 하여금 연설을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연설 안에 그가 보고하는 사건에 관한 자신의 견해 를 반영시켰다. 사건을 기록하는 저자는 연설의 본래 내 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연설문이 그 역사가에게 입 수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원문 그대로 충실하게 자신의 작품 속에 끼워 넣어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 서 연설은 저자의 집필 의도와 목적을 전달하는 도구가 된다. 연설을 통하여 역사가는 독자와 더불어 역사적 사 건에 얽힌 깊은 의미와 상황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역사적 사건의 깊은 의미는 역사적 실제를 뛰어넘는다. 역사가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이야기의 어느 대목에라도 연설을 끼워 넣는다.
그러면 사도 행전의 저자가 이런 그리스-로마 역사가 들의 문학 기법을 따랐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신약성서의 다른 저자들은 이런 식의 문학 기법을 사용 하지 않았다. 공관 복음서에서 예수의 강화(講話)들은 일반적으로 말씀의 수집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강화들은 당대의 역 사 문헌에 소개된 연설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요한 복 음서의 강화들도 고대 역사 문헌의 연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강화들은 질문과 대답, 역설과 대당(對當) 개념들을 동원한 동양 문학의 설법(說法)과 비슷하다. 바오로 서간의 경우에도 수사학적 변증법은 있지만 역사 문헌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연설은 찾아볼 수 없다.
루가의 경우 복음서에서는 선임자들인 마르코 복음서 나 《예수 어록》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나 사도 행전을 집필할 때는 모델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문학적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수집된 자료들 을 선택하고 축소시키거나 덧붙이며 때로는 서로 다른 대목을 연결시키려고 본문을 창작해 넣기도 하였다. 무 엇보다 고대 역사가들의 특별한 기법, 곧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설화 중간에 연설을 끼워 넣는 방법 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마도 사도 행전의 저 자는 사도들의 설교를 작성해 넣을 때, 사도 시대에 일어 난 사건들보다 자신의 시대와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삽입된 설교는 이야기의 실제 상황에 부합하지 않게 된 다. 사도 행전의 선교 설교들은 대부분 사건들의 전개와 관계없이 책 전체의 기본 주제인 구원의 보편주의를 반 영하는 데 이바지한다. 물론 이야기의 맥락에 맞추어 설 교의 도입부와 결론 부분과 기본 내용을 조금씩 변형시 키기는 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민에게 전달된 다는 구원의 보편주의는 그대로 견지하였다.
설교의 첨부 외에 루가가 고대 역사 문헌에서 본따 온 또 다른 문학 기법은, 앞에 보고한 사건을 거듭 언급함으 로써 자신의 특별한 관심과 의향을 독자에게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고대 역사 문헌에서 이 반복법은 주로 영웅담 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사도 행전에서 반복법의 좋은 예 는 세 번이나 보고되는 바오로의 개종 이야기(9, 1-19a 22, 6-16 ; 26, 12-18)와 고르넬리오 개종 과정을 거듭 설 명하는 베드로의 예루살렘 설교(11, 1-18)이다.
〔구약성서의 영향〕 저자의 집필 의도와 목적을 부각시 키기 위한 연설의 첨부는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가들만 의 문학 기법은 아니다. 구약성서 중에서도 특히 신명기 계 역사서들과 역대기 상권과 마카베오 후서 등에서 이 기법이 쉽게 발견된다. 루가의 어휘와 표현이 칠십인역 과 70% 정도 일치함을 감안하면, 중요한 대목에서 연설 을 첨부하는 기법은 루가가 구약성서에서 영향을 받았음 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설교들의 내용〕 고대 역사 문헌들과 구약성서를 본받 아 설화의 진행에 설교를 도입하여 저자의 사상을 피력 하는 것은 루가의 문학 기법과 편집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가 설교 안에서 전달하는 내용과 사상의 기반은 전승 에 뿌리를 둔다. 특히 사도 행전 전반부의 선교 설교들은 루가 복음 24장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의 설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 예수의 설교는 루가가 초대 교회의 전승 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도 행전에서 설교의 배분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가 8 개(1, 16-22 ; 2, 14-40 ; 3, 12-26 ; 4, 8-12 ; 5, 29-32 ; 10, 34-43 ; 11, 5-17 ; 15, 7-11), 바오로의 설교가 9개 (13, 16-41 ; 14, 15-17 ; 17, 22-31 ; 20, 18-35 ; 22, 121 ; 24, 10-21 ; 26, 2-23 ; 27, 21-26 ; 28, 17-20), 그리 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설교 7개, 곧 가믈리엘의 설교(5, 35-39), 스테파노의 설교(7, 2-53), 야고보의 설교(15, 13-21), 데메드리오의 설교(19, 25-27), 에페소 시청 서 기관의 설교(19, 35-40), 데르딜로의 설교(24, 2-8), 페스 도의 설교(25, 24-27)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관심 을 끄는 것은 2장 · 3장 · 5장 ·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선교 설교와 13장에 나오는 바오로의 선교 설교이다. 이 설교들은 루가 복음 24장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의 설교 에 바탕을 두며 기본 요소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다.
유대 최고 의회에서 베드로가 한 설교(4, 8-12)에도 예 수의 죽음과 부활을 두고 서로 상반되는 인간의 역할과 하느님의 역할이 소개된다. 한편 바오로의 다른 두 개의 선교 설교(14장과 17장)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 문에 예수의 생애를 다루는 대신 이방인들의 다신교를 비판하고 유일신교의 타당성을 기술하는 데 역점을 두었 다. 그리고 스테파노의 순교 설교를 제외한 그 밖의 설교 들은 모두 바오로의 체포와 재판에 관련되어 있다. 결국, 사도 행전의 설교들은 그 형식과 문학 기법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 문헌을 모방하였고, 그 내용과 어휘 및 표현에서는 칠십인역과 루가 복음서에 의지하였다. 따라서 이 설교들은 실제로 당사자들에 의해서 발설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세사관을 피력할 목적으로 루가가 편집하여 이야기에 첨부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세부 내 용은 칠십인역과 루가 복음서를 태동시킨 유대-그리스도 교적 전승에 뿌리를 둔다.
Ⅵ. 구조와 내용
사도 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 (1, 1-11, 18)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티나 선교를, 후반부(11, 19-28, 31)는 팔레스티나 이외의 지 역에서 벌인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다루었다.
〔사도들의 팔레스티나 설교〕 구조 :
Ⅰ . 교회의 탄생
서론(1, 1-26)
성령 강림(2, 1-47)
사도들의 치유 행적(3, 1-4, 31)
사도들의 권위(4, 32-5, 42)
Ⅱ . 박해와 성장 스테파노의 행적(6, 1-8, 3)
필립보의 행적(8, 4-40)
사울의 회심과 팔레스티나 서쪽 선교(9, 1-43)
고르넬리오 이야기(10, 1-11, 18)
내용 : 1-5장은 베드로와 요한으로 대표되는 12사도 단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상대로 하느님 나라와 부 활한 예수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67장에는 공동체에 의해 선출된 그리스계 유대인 대표 봉 사자 스테파노가 예루살렘의 그리스계 유대인들과 최고 의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체포되어 순교 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테파노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 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닥쳤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 해를 피하여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게 되 었다. 8장에는 필립보가 사마리아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벌인 이야기와 에티오피아 내시를 개종시킨 이야기가 나오며, 9장은 바오로의 회심과 베드로의 팔레스티나 서쪽 지방에서의 선교 활동을 전해 준다. 고르넬리오의 개종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10, 1-11, 18)는 사도 행전의 분 수령이다.
이상의 구조에서 루가의 신학적 의도를 알 수 있다.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은 제일 먼저 12사도단 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 선포되었고 이어 그들이 뽑은 그리스계 유대인 봉사자 스테파노의 순교로 증언되었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뒤에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에 휩 쓸리고 사도들 이외의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져 말씀의 복음을 전하였다. 필 립보는 사마리아 지방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였고, 나아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시의 개종은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에 속하 지는 않는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에 순례 여행을 하였고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기 때 문에 이미 유대교에 개종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는 고르넬리오의 개종 사건에 이 르러서야 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루가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개종과 고르넬리오의 개종 사이에 장차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 될 바오로의 회심 사건을 소개한다. "이 제 교회는 유대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서 평 화를 누리며 건설되었다" (9, 31)는 루가의 보고는 팔레 스티나 전체의 복음화를 다룬 사도 행전 전반부의 내용 을 요약한 것이다. 이 요약에 이어 팔 레스티나 서부쪽에서 선교한 베드로 의 행적이 소개되었는데, 이는 베드 로가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활동을 유대인 선교에 한정하였던 베드로는 자기 뜻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에 따라 로마인 백부장 고르넬리오를 개종시켰다. 이 사건은 베드로가 12사도단의 대표임을 감안 할 때 새로운 구원 공동체의 범위를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인들로만 한정 시키려 하였던 예루살렘 모 교회(母 敎會)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다. 루가는 가이사리아에서 고르넬리오 가족들에게 설교하고(10, 34-43) 예 루살렘의 수구파 유대인들에게 사건 의 자초지종을 보고한(11, 5-17) 베 드로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의 깊은 의미를 밝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 족들을 차별 대우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믿음 속에서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면 누구 에게나 구원을 주신다.
이 같은 하느님의 뜻은 어느 누구도, 비록 사도단의 대 표인 베드로조차도 거역할 수 없다. 이제 이방인들은 유 대교의 굴레를 거치지 않고 직접 그리스도교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고르넬리오의 개종은 이방인 선교 에 예루살렘 모 교회가 청신호를 보내기로 결정한 중대 한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유대인 선교의 주역이었 던 베드로는 선교의 무대에서 뒤로 물러나고 그 대신 이 방인 선교의 주역이자 루가의 영웅인 바오로가 전면에 등장하였다.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 구조 : 사도 행전 후반부는 팔 레스티나 지역 밖의 이방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 다. 후반부에서는 먼저 이방인 선교의 중심지로 부상한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대한 선교 이야기(11, 19-13, 3)가 소개되어 있다. 이어지는 13-21장에서 저자는 세 차례 에 걸친 바오로의 전도 여행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제1 차 전도 여행 다음에 예루살렘 사도 회의(15, 1-35)가 열 린 것으로 보고하였다. 21장 중반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을 다루었다.
Ⅲ . 바오로의 전도 여행
안티오키아 선교(11, 19-13, 3)
바오로의 제1차 전도 여행(13, 4-14, 28)
예루살렘 사도 회의(15, 1-35)
바오로의 제2차 전도 여행(15, 36-18, 22)
바오로의 제3차 전도 여행(18, 23-21, 16)
Ⅳ .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예루살렘 방문과 체포(21, 17-23, 11)
가이사리아에서의 심문(23, 12-26, 32)
항해와 난파(27, 1-28, 10)
로마 도착(28, 11-31)
내용 : 루가가 기획한 후반부의 구조는 그의 보편주의 신학을 잘 반영한다. 고르넬리오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모 교회가 이방인 선교에 청신호를 보낸 직후 스테파노 의 박해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웠다(11, 19-30). 이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바오로가 세 차례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마다 출발지였던 곳으로, 예루살렘이 팔레스티나 지역 유대인 선교의 중심지라면 이 곳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이방인 선교의 중심지이다. 그 래서 루가는 유대교를 거치지 않은 이방인 선교를 정당 화한 고르넬리오 사건을 언급한 즉시 이곳 교회의 설립 에 대해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루가는 바오로가 본격적 으로 등장하는 13장을 시작하기 전에 12장에서 마지막 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관련된 사건들을 돌아보고, 이제 까지 예루살렘 선교의 주역으로 등장했던 베드로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헤로데 아그리빠 1세가 교회의 지도자들 을 박해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하느님의 벌을 받고 벌레 들에게 먹혀 죽었는데, 이는 주님의 보호를 받는 초대 교 회의 성장은 어떤 인간적 장애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다. 15장의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이방인 선교의 구체적 지침을 마련한다. 곧 이방인 선교는 원칙적으로 유대이 즘에서 자유로운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이방인 형제들에 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방인 형 제들은 유대 형제들이 혐오하는 몇 가지 언행을 삼가야 한다. 한편 이 지침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형제적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지켜야 할 규범이기도 하다.
바오로의 세 차례 전도 여행 기록은 몇 가지 공통된 요 소를 보여 준다. 첫째, 세 여행의 출발지는 시리아 지방 의 수도 안티오키아였다. 둘째, 바오로의 선교 활동은 하 느님의 천사나 영의 인도를 받았다. 셋째, 바오로는 새로 운 선교지에 도착하면 먼저 안식일에 유대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과 성서를 바탕으로 토론을 벌였다. 다시 말해 그는 이방인들 선교에 앞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교로 끌 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넷째, 바오로의 선교 활동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았고 이방인들로부터는 환영 을 받았다. 다섯째, 바오로는 점차 유대인들을 회심시키 려는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구원의 복음이 유대인들 로부터 이방인들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하느 님의 계획으로 선언하였다.
이상의 요소들은 루가의 보편적 구원관을 부각시켰는 데,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바오로의 비시디아 안티 오키아 설교(13, 15-41)와 아테네 설교(17, 22-31)이다. 전자는 유대인들에게 한 선교 설교이고, 후자는 이방인 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설교이다.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설교에서 바오로는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에서 출발하지만, 그 완성 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고 선포하였 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이 낳으신 메시아 임을 몰라보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 또 이제 와서는 부활한 그분을 전하는 바오로의 말을 반박 하고 모독하였다. 그래서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겠다고 선언하 였다(13, 46). 바오로는 같은 선언을 제2차 전도 여행이 끝나 가는 고린토 선교에서 되풀이하였고 세 번째로 마 지막 로마 선교에서도 반복하였다. 루가는 바오로로 하 여금 이방인 선교의 3대 지역인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이 탈리아에서 이 선언을 하게 함으로써 구원의 복음이 이 제 유대교라는 인종 · 문화 ·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 이 세 상 모든 이에게 전해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방인들 이 구원의 복음에 초대받았다 하더라도 무지의 시대를 청산하고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요 "모두에게 생명과 숨을 주시는" 참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지 않으면 구원이 주어질 수 없다. 그들은 우선 다신교적 우상 숭배에서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예배로 돌아서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어 세상의 심판자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바로 이런 내용이 바오로의 아테네 설교에 담겨 있는 것이다.
구원의 보편주의 이외에도 사도 행전 후반부에는 중요 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루가는 밀레도스에서 에페소 원 로들에게 한 바오로의 설교(20, 18-35) 안에서 선교사의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제시하였다. 바오로는 온갖 시련 을 참아 가며 겸손하게 주님을 섬겨 왔고, 손수 노동으로 자기와 동료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가면서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증언해 왔다. 이제 그는 성령 이 일러주는 대로 사슬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느님 은총의 복음" 을 증언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오로는 자신이 3년 동안이나 몸바쳐 온 에페소 교회를 떠나면서 그 곳의 원로들에게 맡은 양 떼를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 며, 자신이 보여 준 모범에 따라 약한 이들을 사심 없이 도와 주라고 권고하였다.
바오로의 체포와 구금과 로마로의 압송을 다룬 21-28 장은 루가의 호교론을 여실히 반영한다. 자신의 공동체 에 닥친 박해 앞에서 루가는 묵시록의 저자와 의견을 달 리하였다. 루가는 로마 제국이 하느님의 징벌로 곧 망해 버릴 나라가 아님을 간파하였으므로 자신의 공동체에게 순교만을 유일한 선택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사도 행전 에서 스테파노의 순교를 비롯한 몇몇 순교의 예(12, 2)가 언급되긴 하였지만 순교 그 자체를 영웅적인 행위로 부 각시킨 대목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오로가 로마 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을 루가가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루가는 바오로의 변호 연설들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소개하고자 애썼 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교가 로마로부 터 얻어낸 신앙의 자유를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루가의 바오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경신례와 유대인들 의 종교적 관습을 존중하였고 그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맺으려고 언제나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와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과 불화가 생겼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들 스스로가 유대교 자체의 중요한 믿음인 메시아 에 대한 희망과 부활에 대한 교리를 배척하였기 때문이 다. 바오로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기울였지만, 유대인들은 그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터무니없 게도 그를 율법과 성전과 심지어 황제를 모독한 범법자 로 고발하였다. 루가는 바오로가 로마의 정치권과 헤로 데 왕실 앞에서 수 차례에 걸쳐 한 변론들을 통하여 자신 의 호교론을 전개시켰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고 발하는 것처럼 결코 제국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폭도 들이 아니며, 혹시라도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마찰이 생긴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유대인들 책임이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 자체의 메시아 희망을 포기하고 죽은 이들 의 부활을 배척하면서 로마 정치권에 그리스도인들을 확 실한 근거도 없이 고발하고 박해하였다. 그러나 로마 정 치권은 이런 터무니없는 고발을 받아들여서도 안되고 받 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두 교파 사이에 일어난 갈 등은 바오로의 경우처럼 로마인들의 이해 범주를 뛰어넘 는 유대교 내부의 교리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루가의 보편주의적 구원관과 호교론을 제대로 파악하였다면 사도 행전의 마지막 장이 왜 그렇게 끝나 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행전의 끝 부분이 매 끈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예를 들면, 루가가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든가 그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든가 아 니면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모자라 서둘러 끝을 맺었다든 가 등등이다. 그러나 루가는 바오로가 로마의 황제 법정 에서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 또는 그가 로마에서 어떻게 순교하였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사실 그 자체로 만족하였다. 루가가 21 장부터 28장까지 무려 8장을 할애한 길고도 긴 바오로 의 로마 압송 과정은 이방인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복음 을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바오로는 비록 가택 연 금 상태였지만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맞아들 이고, 방해받는 일 없이 매우 당당하게 하느님 나라를 선 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쳤다" (사도 28, 30-31). 사도 행전의 이 마지막 말은 첫 장에 기록한 예수의 승천기(1, 6-11)와 연결된다. 모든 그리스 도인은 박해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중재를 요청하며 하늘 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부활하신 주 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구원 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기 전에는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은 닥치지 않을 것이다. (→ 루가의 복음서 ; 신약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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