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독

〔히〕צָדוֹק · 〔그〕Σαδώκ · 〔라 · 영〕Sa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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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하는 사독 제사장.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추대하는 사독 제사장.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앙 집권적 왕정이 시작된 다윗 왕조의 출현과 때를 같이하여 등장한 사제. 사독과 그의 후손들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와 제사장 계열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솔로몬 시 대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독과 사독 계열은 통일 왕국과 유대에서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직을 장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은 유대 왕국 멸망 이 후 제2 성전 시대를 지나 페르시아, 그리스 시대까지 이 어졌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타난 사독의 최초 행적은 압 살롬의 반역 때 다윗의 편에서 계약의 궤를 관리했던 일 이다(2사무 15, 24-29). 이때 사독은 이스라엘의 정통 제 사장 가문 출신인 에비아달(אֶבְיָתָר)과 공동 제사장으로 활약하였으며, 다윗의 말년 왕위 계승에서 솔로몬을 지 지하여(1열왕 1, 22-39)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이 되 었다(1열왕 2, 35). 〔사독의 기원에 관한 가설〕 구약성서에는 사독의 출신 기원과 배경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사독을 아히둡의 아들이며 엘리의 후손(2사무 8, 17)이라고 하기 도 하고 엘르아잘의 후손(1역대 5, 30-33 ; 6, 35-38 ; 에 즈 7, 2-5)이라고도 하는 등 서로 일치하지 않음으로 해 서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부스족 제사장 가설 : 사독을 이스라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보지 않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당시 예 루살렘 원주민인 여부스족의 제사장으로 보는 견해이다 (H.H. Rowley). 즉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곳 원주민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융화를 도모하기 위 하여 여부스족 성소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을 이스라엘 제 사장직에 등용하고 에비아달과 공동 제사장으로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다는 견해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여부스족 사이의 융화를 위한 유화 정책을 전제로 한 가설이다.
아론계 제사장 가설 : 사독을 이스라엘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보는 견해로 특히 크로스(F.M. Cross)와 하란 (M. Haran)이 주장하였다. 크로스는 다윗 왕이 왕위에 오 른 후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당시 제사장들의 강 력한 경쟁 집단이었던 실로(Shiloh)의 무시 계열(Mushite) 에서 에비아달을, 헤브론(Hebron)의 아론 계열에서 사독 을 기용하여 공동 제사장으로 임명하였을 것이라는 견해 이다. 이는 이스라엘 제사장 집단의 내부 갈등을 조절하 기 위한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가설의 가장 큰 문 제는 만일 다윗 왕이 헤브론 아론 계열의 대표자로 사독 을 세웠다면 어떻게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고 헤브론에 가서 그곳의 무명의 제사장에 의해 왕이 될 수 있었겠는 가라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다.
기브온 가설 : 아우어바흐(E. Auerbach)는 역대기 상 16장 37-41절에서 기브온(Gibeon) 가설의 근거를 찾고 있다. 역대기에는 다윗 왕 시대에 예루살렘 성소와 기브 온 성소가 있었는데, 전자에는 계약의 궤가 있고 후자에 는 성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사독은 기브온 성소의 보 조적인 위치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했는데(1역대 16, 39),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전승이 바로 솔로몬이 에비아달을 축출한 후 사독을 최고 제사장직에 기용하고 솔로몬 자 신이 기브온에 가서 번제물을 천 마리나 바친 적이 있다 는 기록이다(1열왕 3, 4). 그러나 사독이 기브온에서 제사 장으로 있을 때는 이미 계약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 진 후였고, 사독이 단지 기브온에서 번제를 드리는 일에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는 역대기 상 16장 3741절은 열왕기 상 3장 4절의 증거가 되기에는 타당성이 빈약하다. 그 이유는 계약의 궤가 있는 예루살렘이 성막 이 있는 기브온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브온 가설은 다윗 통치하의 예루살렘에서 사독 이 어떻게 중요한 제사장으로 부상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서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키럇여아림 가설 : 벨하우젠(J. Wellhausen)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도와 준 아효(2사무 6, 3) 를 사독으로 보았다. 다른 학자들은 아효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그의 형제' 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며 벨하우젠 을 비판한 반면에, 젤린(E. Sellin)은 벨하우젠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 무명의 사람이 바로 사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가설은 계약의 궤가 불레셋에서 되돌려진 후 아비 나답이 기브온에서 키럇여아림(Kiriath-Jearim)으로 계약 의 궤를 옮겼다(1역대 13, 5-14)는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사독이 예루살렘에서 최고 제 사장직에 오르게 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사독 등장의 정치 · 사회적 배경〕 사독의 등장은 다윗 왕의 유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은 사울과 다윗 정권의 교체기에 심각한 내부 진통을 겪었다. 알트(A. Alt)는 북쪽 지파와 유대 지파 사이의 진정한 통일에 의 해 다윗 왕국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권위와 중재 에 의한 남북 연합의 불완전한 통일 국가로 이해하였는 데, 다윗 당시의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난(1사무 20, 122), 그리고 솔로몬 사후의 왕국 분열 등 지역별 또는 지 파 사이의 긴장 상태로 볼 때 이는 설득력 있는 견해이다. 그러나 앤더슨(G.W. Anderson)은 다윗이 강력한 군사 적 행동을 취하여 불레셋에 큰 타격을 가하고, 이스라엘 에 비해 보다 세련된 도시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가 나안 여부스족의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은 다윗이 이미 강력한 통일 국가를 건설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처럼 다윗 왕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여부스족의 도성인 예루살 렘을 공격하였고 이때 여부스족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은 다윗에게 귀순하여 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1역대 12, 28). 따라서 다윗의 활발한 정복 사업과 왕권 강화는 이 스라엘 지파간 갈등의 해소와 여부스족과의 긴장이라는 양극단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윗이 두 명의 제사장을 공동으로 임명한 이유는 한 편으로는 사독의 기용을 통해 여부스족과의 긴장을 무마 하려 한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왕권 강화에 다 소 부정적 시각을 지닌 에비아달을 견제하기 위해서였 다. 따라서 다윗은 고대 근동 왕권 유형에 익숙한 사독에 게 보다 호의적이었다. 이때 다윗 왕은 사독의 기용에 따 른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표면적 으로는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징인 계약의 궤를 사독이 한때 안전하게 보관하였던 사실을 부각시켰 다. 이렇게 다윗의 혼합주의적인 제의 정책은 여부스족 에 대한 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독과 그의 측근들을 통 해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다윗 측근의 에비아달과 요압, 솔로몬계의 사독과 브 나야는 다윗 왕실의 두 세력으로 서로 자기들의 성향에 맞는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대 립은 고대 전승과 연결된 헤브론의 유대인 대 예루살렘 의 여부스족 사이의 대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곧 에비아달을 축출하고 사독을 단독 제 사장으로 삼은 것과 고대 근동의 왕권과 유사한 왕권을 수립하고자 하였던 것은 솔로몬 자신이 가나안 문화에 대한 정서적인 거부감이 적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따라 서 솔로몬이 친(親) 가나안적 정책을 실행하게 한 동기 를 부여한 세력은 그의 가장 핵심 측근인 사독을 중심으 로 한 세력으로 여겨진다. 사독은 왕위 계승 싸움에서 솔 로몬을 지지하여 신임을 얻게 되었고 그 신임을 바탕으 로 솔로몬에게 친 가나안 정책을 건의하였을 것이다. 그 러나 솔로몬의 이후 역사에 사독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 로 보아 그는 솔로몬의 통치 초기에 사망한 것 같고, 그 의 사후에 사독의 후손이 솔로몬의 측근으로서 그에게 지속적인 협력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1열왕 4, 2-3). 그러 므로 솔로몬의 정치적 기반은 주로 사독계를 중심으로 한 친 가나안 세력이었으며, 그는 여러 국가들과 동맹 관 계를 맺어 이스라엘의 안정과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하 려 하였다.
〔사독의 세력과 영향〕 다윗 왕의 여부스족에 대한 유 화 정책에 힘입어 이스라엘 제사장으로 부상한 사독은 왕위 계승에서 솔로몬의 신임을 받았으며, 사독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된 솔로몬은 사독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친 가나안 정책을 수행하였다. 이것이 왕국 분 열의 주된 원인이 되었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예루살 렘에서 제사장권을 장악한 사독과 사독 계열에 대한 다 른 제사장 계열의 불만과 반발이었다. 즉 다윗의 유화 정 책과 솔로몬의 친 가나안 정책은 사독과 사독 계열에게 는 득세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이스라엘 제사장 계층 에게는 소외와 박탈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군네백(A.H.J Gunneweg)에 의하면 원래 이스라엘 제사 장 계층에는 레위계의 단일 계보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베델 성소를 중심으로 한 아론계, 실로 성소를 중심으로 한 엘리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독계 등이 형성되 어 때로는 경쟁과 대립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러 한 계보의 제사장 집단이 다윗-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실 로의 엘리계인 에비아달과 예루살렘의 사독의 대립으로 표면화되었다. 사독과 사독계에 대한 이스라엘 제사장 계층의 불만은 왕국 분열 후 여로보암이 취한 종교 정책 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여로보암은 소외된 제사장 계층 과 북쪽 지파의 불만을 이용하여 예루살렘 중심의 솔로 몬 왕국으로부터 분리하여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었 는데, 그의 분리 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실로 출신의 예언자 아히야였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종교적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았을 뿐 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소외되었던 아론계와 엘리계 제사장들을 위해 단과 베델에 예루살렘에 대항하 는 성소를 세우기도 하였다. 단과 베델에 성소를 둔 것은 창세기 35장 1-5절의 족장 시대 전승에 따른 것으로 추 측된다.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은 대외적으로는 예루살렘 에 대항하며 대내적으로는 사독계에 의해 소외된 이스라 엘 제사장 계층을 격려하고, 그들 사이의 부분적인 대립 을 무마하면서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인다.
〔시온 전승과 왕조 신학의 강화〕 시온 전승이 이스라 엘 이전의 여부스족에서 기원하였을 것으로 보는 여부스 설이 있다. 이 여부스설은 사무엘 하 5장 6절에서 여부 스족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다윗에게 보여 준 승리의 확신에서 엿볼 수 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여 부스족의 제사장이었던 사독과 그의 주변 세력을 통해 시온 전승을 소개한 것 같다. 시온 전승은 다윗이 예루살 렘을 수도로 정하고 계약의 궤를 옮겨 오고, 다윗 계약의 영향을 받아 통일 왕국과 유대의 통치 이념으로 정착되 고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 후 시온 전승은 왕국이 분열된 후 사독계 제사장들에 의해 유대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 한 통치 이념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온 전승은 사독을 통해 이스라엘에 소개된 것으로 보이며, 다윗 왕조에 대한 야훼의 영원한 약속은 나단 예언자를 통해 주어졌다. 그런데 나단은 왕위 계승 에서 솔로몬을 지지한 것으로 보아 여부스족의 사제 예 언자였을 가능성이 크다(F. Stolz). 사독과 나단을 여부스 족 출신으로 본다면, 시온 전승과 왕조 신학은 다윗과 솔 로몬 시대 그리고 분열 왕국 이후 유대에서 사독계가 제 사장직을 장악한 후 강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 설로 인해 여부스족 출신이 왕실의 핵심 측근이 되어 세 력을 장악하자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북쪽 전 승에 충실하려던 사람의 불만이 고조되어 왕국 분열로 가게 되었을 것이라는 또 다른 가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A. Alt, Die Staaten bildung der Israeliten in Palastina, Klein Schrifter zur Geschichte des Volkes Israel, Miinchen, C.H. Becksche Verlagsuchhandlung, 1959/ E. Auerbach, Aaron, Jeroboam, and the Golden Calves, 《JBL》 86, 1967, pp. 129~140/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3th ed.,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1/ W. Brueggemann, David and His Theologian, 《CBQ》 30, 1968, pp. 156~181/ R.W. Corney, Zadok the Priest, pp. 928~929/ F.M.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Mass.,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73/ M. Haran, Temples and Temple Service in Ancient Israel, Oxford, Clarendon Press, 1978/ S. Olyan, Zadok's Origins and the Tribal Politics of David, 《JBL》 101, 1982, Pp. 177~193/ H.H. Rowley, Worship in Ancient Israel, London, SPCK, 1981/ E. Seooin, Geschichte des Israelitische-Judischen Volks Ⅰ , Leipzig, Quelle & Meyer, 1924/ F. Stolz, Struktruren und Figuren in Kult vor Jerusalem, 《BZAW》 118, Berlin, Walter de Gruyter, 1970/ J. Wellhausen,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Ancient Israel, New York, World Publishing Co., 1961. 〔朴俊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