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가이파 - 派

〔그〕Σαδδουκαῖος · 〔라〕Sadducaei · 〔영〕Sadducees

글자 크기
6
사두가이파는 예수와 사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사제의 추종 세력이었다.

사두가이파는 예수와 사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사제의 추종 세력이었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서기 1세기경까지 팔레스티나에 서 활동하였던 유대교의 주요 당파 가운데 하나. 주로 상 류 계층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는 보 수적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외국의 권력자들과 종종 타협 하기도 하였다. 〔자 료〕 사두가이파가 남겼다고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는 문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두 가이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요세푸스의 저서들과 신약 성서 그리고 랍비 문서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자료들에 나타나는 사두가이파에 대한 묘사는 매우 단편적이고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사두가이파에 대한 요세푸스의 언급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겨져 왔지만 여 기에는 부정적인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요세 푸스는 그 자신이 속해 있었던 바리사이파의 관점에서 로마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두가이파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는 서로간에 우의가 있었 으며 조화로운 공동체 관계에 힘썼다. 반면에 사두가이 파는 그들 상호간에도 야비한 행동을 하였으며 동료들과 의 교제에 있어서도 마치 이방인들을 대하는 것처럼 무 례하였다(《유대 전쟁사》, 2. 8. 14). 요세푸스는 사두가이 파를 바리사이파, 에세네파, 열성당과 함께 당시 유대교 의 주요 당파들 중 하나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바리사이 파와는 사상과 관습에 있어서 서로 반대적인 입장에 있 는 것처럼 서술하였다(《유대 고대사》, 18. 1. 4).
신약성서 여러 곳에서도 사두가이파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적인 관 점이 반영되어 있다(마태 3, 7 : 16, 1. 6. 11. 12 ; 22, 23. 34 ; 마르 12, 18 ; 루가 20, 27 ; 사도 4, 1 : 5, 17 ; 23, 68). 또한 사두가이파는 예수와 사도들의 적대자 내지는 핍박자, 예수와 사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대사제의 추 종 세력(사도 5, 17)으로 등장하며, 그리스도교 교리를 반 박하는 자들로 묘사되었다.
사두가이파에 대한 언급은 미쉬나, 바빌로니아 탈무 드, 팔레스티나 탈무드, 탄나이틱 미드라쉼(Tannaitic Midrashim) 등의 랍비 문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 서들에서 사두가이파라는 용어는 많은 경우 모호하게 사 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이단이나 이방인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사두가이파의 정결 예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이 문서들의 편집자들이 바리사이파적인 전통에 서 있었 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명 칭〕 사두가이파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살라미스 (Salamis)의 주교 에피파니오(315-403)와 예로니모(343~ 420) 등과 같은 교부들은 이 명칭이 '의로운' 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형용사 '자디크' (צַדִיק)에서 유래되었 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히브 리어 고유 명사인 '자독' (צָדוֹק, =사독)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왜냐하면 '자디크' 가 될 경우 히브리어 모음 '이' 가 '우' 로 바뀌는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자독' 이 '자둑' 으로, 즉 히브리어 모음 '오' 가 '우' 로 변형되는 경우는 칠십인역이나 요세푸스의 저서 그리고 미쉬나 등 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두가이파라는 용어와 고유 명사 '자독' 즉 '사독' 이 어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과연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유대 랍비 전승에 의하면(Aboth deR Nathan 5), 사두가이파는 기원전 2세기 초에 활동하였던 안티고누스의 제자이며 보에투스(Boethus) 대사제 가문 의 시조인 사독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믿을 만하기보다는 원인론적인 전설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전승의 기록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고, 역사적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기보다는 후 대의 추측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사두가이파의 어원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대사제였던 사독에게서 찾는다(2사무 8, 17 ; 15, 24 ; 1열왕 1, 34). 사독은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할 때 예언자 나단과 함께 그를 적극 지지하여 대사제의 지위를 독 차지하였으며, 그의 후손들은 기원전 2세기 초경까지 예 루살렘 성전의 대사제직을 계승했었다. 그러나 사두가이파가 혈통과 역사적인 면에서 사독의 후예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의 결과로 대사제직을 차지한 하스모네 왕조는 비(非)사독 계열의 가문에 속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사독 계열은 대사제직에서 배제되 었기 때문이다. 마카베오가 독립 전쟁 이후 예루살렘 성 전에서 나온 사독 계열의 한 사제, 즉 '의(義)의 교사' 라 고 불리던 사람이 쿰란 공동체에서 활동하였는데, 그가 성전의 대사제와 적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 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두가이파라는 용 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과 사회적으로 혹은 혈연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는 집단이 나 대사제들과 사상적으로 같은 맥락에 서 있던 사람들 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 사제들은 사두가이파의 권위 있는 대표자들 또는 영향력 을 행사하는 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랍비 문서에서 사 두가이파라는 용어가 보에투스인들(Boethusians)을 지칭 할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보에투스라는 말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보에투스 대사제 가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가문은 헤 로데 시대부터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을 많이 배출했 었다.
〔역 사〕 사두가이파가 최초로 역사 기록에 나타난 것 은 기원전 144년경 로마로 파견한 사절단이 요세푸스의 저서에 언급되면서부터이다(《유대 고대사》, 13. 5. 9). 요 세푸스는 당시에 사두가이파와 함께 바리사이파와 에세 네파가 유대교를 이루는 세 당파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사 두가이파가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 하지 않았다. 사두가이파의 기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는 다양하지만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두가이파가 역사적 사건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하 스모네 왕조의 요한 히르카누스 1세(Joannes Hyrcanus Ⅰ, 기원전 134~104) 때이다(《유대 고대사》, 13. 10. 6). 기원전 109년에 사마리아를 정복한 후 히르카누스 1세는 자신 을 지지하던 바리사이파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사두가 이파와 손을 잡았으며, 사두가이파와 하스모네 왕조의 밀접한 관계는 그 후 유다 아리스토불루스 1세(기원전 104~103)와 알렉산더 얀나이(기원전 103~76)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살로메 알렉산드라(기원전 76~67)는 바리사이파의 옹호를 받았으며, 그녀가 죽자 두 아들은 각각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의 지원을 받아 서로 대결 하였다. 이들 중 사두가이파의 지지를 받던 아리스토불 루스 2세(기원전 67~63)와 그의 아들 안티고누스 마따디 아(기원전 40~37)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사두가이파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헤로 데와 그 후의 시대에도 예루살렘 성전과 귀족 집단 그리 고 로마의 권익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사두가이파는 70년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할 때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 나 아마도 2세기경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졌던 것 같 다. 그러나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성전과 예루살렘 정치의 멸망은, 역사에서 그들의 영향과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게 하였으며 그들의 정체성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위치〕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두가이파는 부자 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들의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행정직에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다고 한 다. 사도 행전은 제관들과 성전 경비대장 등 성전 관계자 들을 사두가이파와 같은 일원으로 묘사하기도 하였고 사 두가이파가 대사제의 일당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 것은 사두가이파가 고위 성직자들과 고위 행정가들 그리 고 부유한 귀족 집단으로 구성된 상류 계층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성전 제사장들이나 귀족 계층 혹은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사두가이파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민중들의 지지를 받은 바리사이파에도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두가이파는 부를 소유한 상류층의 이익을 지키기 위 해서 사회가 안정되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 보다는 현상 유지에 더 관심이 있어서 종교적으로는 보 수적인 입장에 있었고, 묵시 운동이나 메시아 운동 등에 서 가르치는 종말론적 역사 변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 들은 때로 외국의 통치자들과 타협하거나 협력하기도 하 였으나 항상 외국의 세력 편에 기울어져 있었던 것은 아 니다. 또 그들의 생활 방식이 유대교의 여러 집단들 중에 서 가장 헬레니즘적이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들은 때로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그들 나름대로 민족 의 유익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다른 유대교 당파에서 수 용하고 있는 헬레니즘적인 사상이나 관습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교리와 사상〕 사두가이파의 교리나 신학 사상은 매우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두가이 파는 기록되고 문서화된 모세 율법을 반드시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구전을 통해서 전해 오는 불 문화된 율법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유대 고대사》, 13. 10. 6). 이것은 종종 사두가이파 가 구전 전승을 거부하고 성문화된 모세 율법만 받아들 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사두가이파가 부차적인 전 승이나 가르침을 바리사이파보다 훨씬 덜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두가이파도 그들 나름의 구전 전승을 가지 고 있었다. 오리제네스, 예로니모 등과 같은 교부들이 주 장하는 것처럼, 사두가이파는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고 예언서는 거부하였다는 견해도 재고되어야 한다. 왜냐하 면 예언서가 어떤 유대교 당파에서 실제적으로 거부되었 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두가이파가 모세 오경을 예언서나 성문서보다 더 권위 있고 중요하 게 여겼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것은 바리사이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두가이파는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 혹은 영혼의 존재 등을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바리사이파나 초기 그리 스도교 공동체 등과 교리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내세의 삶을 부정한 사두가이파는 현세적인 삶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현재의 삶을 간섭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지 는 않았지만 다른 유대교 당파들과 비교할 때 이에 대한 강조가 매우 약했다. 그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현세 에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인간 자신이 행동한 결과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해 그가 한 행동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징벌을 이 땅에서 받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것은 내세를 믿지 않 았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논리적 귀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사두가이파는 여자 들의 달거리나 성전의 메노라(menorah) 등에 관한 정결 예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 바리사이파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 바리사이파 ; 유대교)
※ 참고문헌  D. Daube, On Acts 23 : Sadducees and Angels, 《JBL》 109, pp. 493~4971 V. Eppstein, When and How the Sadducees Were Excommunicated, 《JBL》 85, pp. 213~223/ D. Flusser, Josephus on the Sadducees and Menander, Judaism and the Origins of Christianity, Jerusalem, Magnes Press, 1988, pp. 610~616/ J. Le Moyne, Les Sadducéens, Paris, Lecoffre, 1972/ A.J. Saldarini, Pharisees, Scribes and Sadducees in Palestinian Society A Sociological Approach, Wilmington, Michael Glazier, 1988/ M. Stern, Aspects of Jewish Society, The Priesthood and Other Classes, The Jewish People in the First Century, S. Safrai · M. Stern ed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6, pp. 561~630. 〔千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