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아 벤 요세프 Saadia ben Joseph(88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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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주로 바빌론에서 활동한 중세 유대교의 학자. 저술가. 철학자. 변증가. 처음으로 구약성서를 아랍어로 번역한 성서학자. 히브리어 문법, 유대교 교리와 예배, 성서 주 석 등에 관한 저작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생 애〕 882년에 이집트 파음(Fayyum)에서 수공업자 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외에 그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23세 때 에 아내와 두 아들과 충실한 학생들을 남겨 두고 이집트 를 떠났는데, 당시 그는 《히브리어-아랍어 사전》을 편찬 하였을 정도로 토라와 일반 학문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 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905~921년까지 그의 활동에 관해 알려져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팔레스티나에서 탈 무드의 구전법과 랍비주의를 거부한 유대교의 한 종파인 카라이트(Karaites) 공동체, 그리고 유일신교의 근간을 거 부하는 이원론적 그노시스주의자들에게 실망하고 바빌 론으로 갔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이단적 경향은 당 시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이들은 구약성서 하느님의 전 지전능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부정하고 성서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에 도전적이었다.
921년부터 사디아는 예루살렘 아카데미의 원장이었 던 아론 벤 메이르(Aron ben Meir)와 바빌론의 유대인 공 동체 지도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유대교 달력 계산법에 대한 논쟁에서 바빌론 쪽의 대표자로 활동하였다. 벤 메 이르가 바빌론식과는 다른 유대 달력을 공포하고 유대교 절기를 새로운 달력에 따라 지킬 것을 주장한 데서 비롯 된 이 논쟁에서, 사디아로 대표되는 바빌론 학자들은 어 떤 근거로 새로운 달력을 공포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 다며 그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반론을 폈다. 이 논쟁 은 결과 없이 끝났으나 사디아는 바빌론식 달력을 고정 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명성을 얻었고, 바빌론 공 동체에 그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벤 메이르 논쟁 사건 이후 사디아는 저술 작업에 몰두 하였다. 그리고 928년 5월 22에는 바빌론 유대인 공동 체의 수장(exilarch) 다비드 벤 자카이(David ben Zakkai)에 의해 당시 존폐 위기에 놓였던 수라(Sura) 아카데미의 원 장으로 임명되었다. 사디아의 임명은 수라 아카데미의 전통을 깨는 것이었지만 그의 덕망과 능력 때문에 내려 진 결정이었다. 그는 수라 아카데미의 명성을 되찾기 위 하여 학생 확보와 재정 증대에 주력하였으며, 《탈무드》 를 체계화하고 주제별로 정리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러 나 이 과정에서 비타협적이고 강직한 자세 때문에 벤 자 카이와의 불화를 초래하였고 932년에 벤 자카이는 사디 아를 수라 아카데미의 원장직에서 해임한다고 공포하였 다. 이에 사디아는 벤 자카이를 바빌론 유대인 공동체 수 장직에서 해임한다고 선언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유대인 들은 두 편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3년 간의 갈등이 지속 되는 동안, 처음에는 사디아가 우세하였으나 벤 자카이 가 무슬림 통치자 알-카히르(al-Qahir)의 도움으로 승리 하자 피신하였다. 그러나 937년에 양편은 서로 화해하 고 사디아는 다시 수라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었다. 940 년에 벤 자카이가 사망하고 7개월 뒤에는 그의 아들도 어린 자식 하나를 남기고 죽자 사디아는 그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다 키우며 자식처럼 돌보아 주었다. 사디아는 942년 9월에 사망하였다.
〔사상과 평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주의 철학 의 영향을 받은 사디아는 이성과 계시, 성서의 사상과 철 학을 상호 화해시키는 데 노력하였으며, 유대교를 체계 적으로 제시한 첫 번째 중세 유대인 철학자였다는 데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인간이 이성에 의해서 진 리에 도달할 수 있지만 계시도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하 였다. 왜냐하면 계시는 인간의 사고를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성적 탐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진 리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사디아는 당시 문제가 되었던 신의 존재 증명과 자유 의지 문제에 대하여 창조주로서의 신관(神觀)을 통하여 하느님을 논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주장하면서 무한한 하느님은 유 한한 모든 물질적 존재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또한 세상 의 창조는 하느님의 자유 의지의 결과이며,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고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고 하였다.
※ 참고문헌 Henry Malter, Saadia Gaon : His Life and Works, New York,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21, reprinted 1969/ E.I.J. Rosenthal, Saadya Gaon : An Appreciation of His Biblical Exegesis, Manchester, Manchester Univ. Press, 1943/ Saadia Anniversary Volume, Proceedings of the American Academy for Jewish Research, New York,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 1943/ S.L. Skoss, Saadia Gaon, the Earliest Hebrew Grammariam, Philadelphia, Dropsie College Press, 1955. 〔千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