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그〕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 〔라〕Filus hominis · 〔영〕Son of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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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과 땅의 거룩한 백성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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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과 땅의 거룩한 백성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일컬 은 용어. 사람의 아들과 관련하여 원시 그리스도교와 신 약성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유대계 묵시 문 학으로, 다니엘서 7장 13-14절, 제2 에스드라서 13장, 그리고 제1 에녹서에서 '비유의 책' 이라 불리는 37-71 장 등 세 가지이다. 이 영향으로 신약성서의 예수 전승에 서 창의적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유대계 묵시 문학〕 다니엘서 :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 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 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 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7, 13-14). 이 상징적인 환시는 네 번째 짐 승과 특히 열한 번째 뿔에 대한 것으로(7, 7-8), 장면은 그를 심판하는 법정이다(7, 9-12). "태고 적부터 계신 이"가 옥좌에 앉아 있는데, 그는 하느님이며 용모는 "옷 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 (7, 9). 하 느님은 짐승을 심판한 후 그로부터 주권과 영화와 나라 를 빼앗아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에게 주고, 그는 또한 그것들을 궁극적으로는 거룩한 백성들에게 넘겨줄 것이 다(7, 18. 22).
이 같은 종말 계시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 다. 첫째, 종말에 관한 이 이야기는 하늘과 땅을 투쟁 관 계로 상정하는 이원론적 세계관 위에 설정되어 있다. 둘 째,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과 땅의 거룩한 백 성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거룩한 백성이 땅 위에서 고 통을 당하는 것은 짐승과 뿔 때문이고, 이는 하느님의 심 판에 의해서 해결된다. 셋째,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는 모든 심판이 끝난 후에 출현하며, 모든 나라들이 그를 예 배할 것이다(7, 27). 이는 거룩한 백성의 궁극적인 승리 와 높임을 보장한다. 넷째,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 은 칭 호나 직함이 아니라 단지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일 뿐 이다.
제2 에스드라서 : 1세기 말경에 작성된 이 문서는 사 람의 아들에 관한 다니엘의 상징적인 환시가 어떻게 발 전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단서인데, 13장은 이렇게 시작 된다. "7일 후 나는 밤에 한 꿈을 꾸었다. 보라, 바다로 부터 한 바람이 일어나 바다를 휘젓고 파도를 일으켰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이 바람이 바다로부터 사람 모양을 한 어떤 이가 나오도록 하였다. 또 내가 보니, 보라, 그 사람이 하늘의 구름들과 함께 날고 있었다"(13, 1-2). 구 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분명 다니엘서 7장에 나온 다. 이 책은 '사람의 아들' 보다는 단지 '사람' 에 관한 상 징적인 환시를 언급하지만, 그는 하느님께서 많은 시대 동안 감추어 두었다가 그의 창조 세계를 구원하고 남은 백성을 인도하게 하실 바로 그 사람이다(13, 26). 그는 이윽고 "내 아들"이라 불린다(13, 32. 37. 52). 그는 감추 어졌지만 어느 시점에 등장하여 옥좌에 오른다. 또 내 가 보니, 보라, 그가 자기를 위하여 한 큰 산을 다듬고 그 위로 날아갔다"(13, 6). "그러나 그가 시온 산 꼭대기 에 설 것이다"(13, 35). 그리고 모든 백성이 그리로 나아 오고 그는 심판을 한다(13, 8-11. 36-38). 심판은 다른 무 리 즉 평화와 거룩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이다(13, 12-13. 46-50).
이 내용은 다니엘의 상징적인 환시에서처럼, 역사의 대전환을 위하여 준비된 그 '사람' 이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갑자기 출현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사람의 아 들이 다니엘의 상징적인 환시에서는 다스리기 위하여 등장하였다면, 여기서는 그 '사람' 이 심판하기 위하여 등 장한다. 악한 자들의 심판과 파멸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 을 하는 것이다. 이 상징적인 환시는 성전(聖戰)의 현현 을 연상하게 한다(13, 5). 산들이 주님 앞에서 녹아 내리 듯이, 그 '사람' 의 목소리를 듣는 모든 자들은 그 앞에서 녹아 내릴 것이다. 종말의 역할과 관련하여 사람의 아들 과 동일한 그 사람이란 지칭은 여기서도 칭호가 아니다.
제1 에녹서 : 신약성서 이전에 사람의 아들과 관련하 여 가장 풍부한 전통을 남긴 문서는 제1 에녹서 37-71 장이다. '비유의 책'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부분에서 의 '사람의 아들' 은 다니엘서 7장에 대한 후대 최초의 해석으로서, 다니엘서 7장을 후대의 신학자들이 어떻게 창의적으로 변형 ·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 다. 이 책은 제1 에녹서 중에서도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 며, 세 개의 비유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의 아들에 대한 언급과 그 풍부한 이미지는 둘째 비유가 시작되는 45장 이후에 나타난다. "거기서 나는 시간 전의 시간에 속한 한 사람(태고 적부터 계신 분)을 보았다. 그의 머리털은 양 털같이 희었고 그 곁에는 다른 이가 있었는데 그 얼굴은 사람의 것과 같 았다. 천사들 가운데 나아와 나를 인 도하면서 사람들에게서 난 그 사람에 대하여 모든 비밀을 내게 계시하던 한 천사에게 나는 물었다. '태고 적 부터 계신 이 사람은 누구이며 어느 때부터 계셨습니까? 그러자 그가 내 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분은 사람 의 아들이다. 그에게 의가 속하였고 의는 그와 함께 머물고 있다...'"(46, 1-3).
사람의 아들은 48장에서 이름을 얻는데, 그것은 창조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때에 태고 적부터 계 신 이, 곧 영들의 주님 앞에서 그 사 람의 아들에게 이름이 주어졌다. 해 와 달이 창조되기도 전에 별들이 창 조되기도 전에 영들의 주님 앞에서 그에게는 이름이 주어진 것이다"(48, 2). 더욱이 본문에 서 이 말씀은 지혜에 관한 말씀으로 둘러싸여 있다(48, 1. 7). 사람의 아들 사상이 지혜의 선재(先在)에 대한 유 대교적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제 사람의 아들 은 '지혜 신화' (42장)의 지혜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된다. 그는 감추어진 지혜에 대한 계시자이다(48, 7). 하지만 먼저 계시되어야 할 내용은 그가 태고 적부터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 자신이다. "그는 세상이 창 조되기 이전에 영들의 주님 앞에서 영영 감추어졌다" (48, 6). 그는 감추어지기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이 비역사적 · 타계주의적으로 현실 세계를 초 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아들은 분명히 이 땅 위에서 정의로운 자들과 이방인들 그리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들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로운 자 들이 기댈 수 있도록 그들의 지팡이가 되며 결코 쓰러지 지 아니할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의 빛이 되며,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48, 4. 7). 그래서 그는 이미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 앞에 엎드려 그를 예배할 것이다" (48, 5).
태고 적부터 감추어져 있던 사람의 아들은 62장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62, 7). 그는 자기 영광의 옥좌 에 앉는다(62, 6). 모든 임금들과 지배자들과 고관들과 땅을 다스리던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녀 들과 의로운 자들을 박해하던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이 다(62, 8-11).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환시에서 사람의 아들이 심판 이후에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이미 신격화된 심판자로 등장한다. 이 심판은 자기의 거룩 한 백성 곧 뽑힌 자들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하는 식탁의 만남으로 표현된다. "영들의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실 것이다. 그들은 영원토 록 사람의 아들과 함께 먹고 쉬며 일어설 것이다"(62, 14). 사람의 아들 사상은 '비유의 책' 마지막 장인 71장 에서 극적인 결말을 보여 준다. 에녹은 하늘로 승천하였 고(71, 1. 5), 그는 영들의 주님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한 천사가 내게로 와 내게 인사하며 나에게 말했다. '의 (義) 가운데 잉태하여 의가 함께하는 너 사람의 아들이 여, 태고 적부터 계신 분이 너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 다...'"(71, 14-17). 사람의 아들이 에녹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문학적으로도 오랫동안 감추어졌 다가 구체화된 것이다.
'비유의 책' 에서 사람의 아들 사상은 다니엘서에서처 럼 이원론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서 사람의 아 들은 땅 위에 있는 의로운 자들의 대응 인물로 나타난다. 즉 후자의 희망이 전자에게 투사된 셈이다. 여기에서도 사람의 아들은 칭호나 직함이 아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와 달리 사람의 아들이 옥좌에 앉은 후에 그에 의하여 심 판이 시작된다. 그는 오히려 선재했으며 지혜 신화의 지 혜와 동일한 운명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는 신격화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한 구체적 인물과 동일시된 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의 발전〕 '사람의 아들' 의 기원 문제와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 은 주장을 하였다. 첫째, 1세기 유대교에는 '사람의 아 들' 이 결코 하나의 칭호나 확정된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 았다. 둘째, 역사적 예수도 '사람의 아들' 을 하나의 칭호 나 확정된 개념으로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셋째, 이 러한 '사람의 아들' 의 현상은 쿰란 공동체의 경우처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페쉐르(רשׁפ) 방식의 주 석 과정에서 발생한 산물이다. 넷째, 복음서에 있는 '사 람의 아들' 의 다양한 유형들 가운데 다니엘서 7장 1314절의 묵시 종말론적 영향을 반영하는 것들은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 가운데 최초의 단계에 속한다. 다섯 째, '사람의 아들' 은 아람어보다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서 시작되었으며, 위경의 예수 전 승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을 인정한다면 칭호나 개념으로서의 '사 람의 아들' 은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비교적 부차적 이면서도 늦은 시점에 발생한 것임을 의미한다. 초기 그 리스도교 공동체가 어떻게 '사람의 아들' 신학을 창의적 으로 발전시켰는지, 《예수 어록》(Q)과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 어록》 : 《예수 어록》 편집의 비교적 늦은 단계 ( 'Q2 라고 알려진 전승층)는 묵시적 환시로 가득한데, 제1 에녹서의 '비유의 책' 과 가장 큰 유사성을 보인다. 특히 제1 에녹서 42장 '지혜 신화' 의 지혜와 동일한 형식이 다. 《예수 어록》 편집의 비교적 늦은 단계에 속하는 예수 의 말씀들에서 대표적인 주제는 사람의 아들인 예수를 거역한 "이 세대(의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선언이다.
사람의 아들은 이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았다. "사람 의 아들이 와서는 먹고 마시니까 '보아라, 먹보요 술꾼 이며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 하고 여러분은 말 합니다"(루가 7, 34 마태 11, 19). 그 외에도 많은 구절 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루가 11, 23-29=마 태 12, 38-39. 43-45 ; 루가 11, 29-32=마태 12, 38-42 ; 루 가 12, 8-10=마태 10, 32-33 ; 12, 32). "사람의 아들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습니다"(루가 9, 58=마태 8, 20). 사람의 아들 곧 예수가 배척받고 머리 기댈 곳이 없다는 것 은, 그의 신분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루가 7, 3135=마태 11, 16-19 : 루가 10, 21-24=마태 11, 25-27 ; 13, 16-17).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나타날 것이다(루가 17, 22-37= 마태 24, 26-27. 37-39 ; 루가 12, 39-40=마태 24, 43-44) . 그것은 노아 때 홍수가 닥쳐 모두 멸망시킨 것과 같고 하 늘에서 번개 치는 것과 같으며 도둑이 몰래 뚫고 들어오 는 것과 같다. 즉 그가 나타나는 사건은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작스레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자신의 영광의 옥좌에 앉을 것이다(루가 22, 28-30=마태 19, 28=에녹 1서 62, 6 참조 : 마태 25, 31). 그의 나타남 과 옥좌에 앉음은 비유의 책이나 제2 에스드라서의 내용 처럼, 이 세대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예수 어록》을 쓴 공동체는 사람의 아들과 함께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동시에 이 심판 은 그들에게 구원이 될 것이다(루가 22, 28-30=마태 19, 28) .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 굶주리는 자, 우는 자들이며,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는 자들이 다(루가 6, 20-22=마태 5, 3-4. 11). 이 구원은 공동체가 사람의 아들과 함께 영원토록 먹고 마시는 식탁에서의 만남과 안식으로 표상된다(루가 22, 30=마태 19, 28 ; 루 가 13, 29 = 마태 8, 11). 사람의 아들의 출현은 심판과 구 원뿐만 아니라 지혜의 계시를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혜 즉 진리를 갖고 있는 자로서 지 혜를 계시해 줄 뿐만 아니라(루가 10, 21-24=마태 11, 25-27 ; 13, 16-17 ; 루가 12, 2-3 마태 10, 26-27), 지혜 자체이기 때문이다(루가 7, 35 마태 11, 19).
《예수 어록》에서도 사람의 아들은 이원론적 묵시의 이 야기 틀 안에 있다. 그는 이 땅의 버림받은 사람들의 대 응 인물로서, 그의 감추어짐은 그들의 고난을 뜻하고 그 의 나타남은 그들의 높임받음을 뜻한다. 그의 선재에 대 하여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감추임과 버림받 음은 지혜 신화의 지혜와 동일한 운명으로 소개된다. 심판이 끝난 후 사람의 아들이 다스리기 위하여 옥좌에 앉 는 다니엘서의 환시와는달리, 제1 에녹서에서처럼 사람 의 아들은 옥좌에 앉고 그 후에 사람의 아들에 의하여 심판이 시작된다. 사람의 아들이 신격화되어 예배의 대상 으로 자리잡는 것은 《예수 어록》 전승 형성의 가장 늦은 단계인 예수 시험 기사( 'Q3' 본문)에서이다(루가 4, 113= 마태 4, 1-11). 여기에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 로 지 칭되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불린다. 《예수 어 록》에서도 사람의 아들은 칭호가 아니며, 제1 에녹서에 서처럼 예수라는 한 구체적인 인물과 동일시되고 있다.
마르코의 복음서 :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가 하느님 의 아들인 것은, 사람의 아들 예수가 펼친 땅에서의 활동 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는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 을 지닌 분(2, 1-12)이며, "안식일의 주인"이다(2, 2328).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권한을 갖는다는 언급에는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환시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다(다 니 7, 14). 그러나 이 권한은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환시 와는 달리 나라들에 대한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사람들 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예수 와 동일시하는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의 이 같은 언급 들은 갈등의 이야기가 되어 그의 정체는 오해를 받는다. 갈등과 오해는 궁극적으로 예수를 수난과 죽음에 도달하 도록 한다(3, 6 ; 수난 사화). 그래서 마르코 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죽음' 의 인물로 나타나며, 그는 죽 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자신에 관해서 기록된 대로 떠나갑니다"(14, 21 : 참조 : 14, 41 ; 9, 10-12) . 이것이 마르코 복음서의 수난의 그리스도론 이며, 후자는 '메시아 비밀' 의 틀 안 에 담겨져 있다. 하늘도 예수를 "하 느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이라고 선언하였고(1, 11 ; 9, 7) 마르코 복음 서의 거의 모든 등장 인물도 그렇게 시인하였다(1, 24 ; 3, 11 ; 8, 29 등). 결국은 예수가 죽음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임이 드러났고(15, 39),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말하는 마르코 복 음서의 이야기 신학은 그의 이러한 신분을 입증하는 것이다(1, 1). 그러 나 정작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자 하는 마르코 복음서의 예수 이야 기 안에서 예수는 "사람의 아들"을 자처한다(2, 10. 28 등).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사람의 아들인가? 마르코 복음서에서 이 두 칭호는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평행선을 긋는다. 그래서 그의 정체는 필연적으로 오해 의 함정이 되었으며, 예수의 정체에 대한 오해 그리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그의 죽음에는 심지어 그의 열두 명의 제자들조차도 책임을 벗지 못하였다. 마르코 복음 서는 "사람의 아들" 과 "하느님의 아들"을 매우 세련된 문학적 방법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마르코의 신학적 비 중은 단연 고난받는 "사람의 아들" 편에 있다. 사람의 아 들의 수난과 죽음은 《예수 어록》에서처럼 그의 '감추어 짐' 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 정체는 곧바로 부활과 재림으로써 "드러난다." 그의 무덤은 비어 있다(16, 18). 사람의 아들은 권능과 영광의 옥좌에 앉을 것이고 심 판자로서 구름을 타고 올 것이다. "내가 (그)입니다. 여 러분은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 는 것을 보고, 또한 하늘의 구름과 함께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14, 62).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 이 구름에 싸여 큰 권능과 영광을 갖추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파견하여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자기) 선민들을 모을 것입니다"(13, 26-27). 이상의 두 구절에서 사람의 아들 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이미지는 분명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환시에서 유래하였다.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 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것입니다"( 38). 그러나 다니엘서의 상징적인 환시에서는 사람의 아 들이 하늘로부터 하느님의 옥좌로 가지만, 마르코 복음 서는 《예수 어록》처럼 하늘로부터 와서 땅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그가 심판자로서 옥좌에 앉는 것을 '보는' 것 은 제1 에녹서에 있는 전통이다(62장). 심판의 기준은 사 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어떻게 대하였느냐에 달려 있다. "간음하고 죄짓는 이 세대 가운데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8, 38).
현재의 고난받는 사람의 아들과 장차 높임을 받을 메 시아(하느님의 아들)라는 예수의 두 신분은 서로 모순적이 다. 이 둘 사이에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수 자신의 선 언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아들은 마땅히 많은 고 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제관들과 율사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 었다" (8, 31 : 참조 : 9, 31 ; 10, 33-34. 45). 《예수 어록》 에서 사람의 아들이 제1 에녹서의 '비유의 책' 처럼 지혜 신화의 지혜와 같은 운명으로 형상화되었다면, 마르코 복음서는 역사적 인물인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서 어떻게 오해와 배척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의 심판자로서 이 땅에 다시 올 것인가를 설명하고자 하 였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다니엘 서와 제1 에녹서처럼 묵시 종말론적 · 이원론적 구도 안 에 있지만 역사적 차원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유대교적 전통이 문학적으로는 '상징적인 환시' 의 한 분야이고 《예수 어록》이 예수의 말씀들을 모은 수집 물인 반면, 마르코의 복음서는 전기적 이야기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복합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는 매우 세련되게 나타나 있다. (⇦ 인자 ; → 예수 그리스도)
※ 참고문헌  J.J. Collins, The Son of Man in First-Century Judaism, 《NTS》 38, 1992, pp. 448~4661 J.R. Donahue, S.J., Recent Studies on the Origin of Son of Man in the Gospels, 《CBQ》 48, 1986, pp. 484~498/ D.R.A. Hare, The Son ofMan Tradit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0/ G.W.E. Nickelsburg, Son of Man, 《ABD》 6, Pp. 137~150/ N. Perrin, A Modem Pilgrimage in New Testament Christ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4/ H.E. Tiidt, The Son of Man in the Synoptic Tradition, trans. by D.M. Barton,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5/ W.O. Walker, Jr., The Son of Man : Some Recent Developments, 《CBQ》45, 1983, pp. 584~6071 조태연, 《예수 운동》, 대한기독교서회, 1996, pp. 325~403/ ㅡ, <식탁에 앉으신 사람 의 아들 : Q2 예수 운동의 식탁 상징과 기원의 신화>, 《기독교 사상》 464호, 대한기독교서회, 1997, pp. 57~73/ 一, <허리에 띠를 띠고 등 불을 켜고 서 있으라 : Q2의 식탁 상징과 완성의 시나리오>, 《기 독교 사상》 465호, 1997, pp. 64~82. 〔趙泰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