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교 수녀회 ㅡ 宣敎修女會
〔영〕Missionaries of Ch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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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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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시간씩 갖는 성체 조배 시간(왼쪽)과 지원자들과의 한때.
1950년 10월 7일 캘커타(Calcutta)의 데레사(1910~ 1997) 수녀가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삶을 함께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수녀회. 이처럼 데레사 수녀에 의 해 설립되어 같은 정신으로 생활하는 수족(修族)으로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 (1963)와 '협력자회' (1969), , '사랑 의 선교 관상 수녀회' (1976), , '사랑의 선교 관상 수사회' (1979) , '사랑의 선교 사제회' (1984)가 있다. 총본부는 인도 캘커타의 로워 서큘러(Lower Circular)에 있으며, 한 국 본원은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656-25번지에 있다. 〔수녀회의 설립과 변모〕 총 인구의 30%가 절대 빈곤 계층인 인도는 힌두이즘(Hinduism)이라는 종교 전통과 카스트(caste)라는 뿌리깊은 사회 계급 제도가 잔존해 있 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노력과 의 지가 부족하여 연일 수많은 빈민들이 굶주리거나 질병으 로 고통당하다 사망하곤 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데레사 수녀는 1928년 11월 29 일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으로 잘 알려진 로레토 수녀회 (Sisters ofLoretto, 즉 동정 성모회)에 입회하여 비교적 상류 층 자녀들이 다니는 캘커타의 성 마리아 고등학교에서 18년 동안 교편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이 고등학교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인도의 처참한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고 점차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워 가게 되었다. 그러던 1946년 9월 10일, 피정을 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 기슭의 다르질링(Darjeeling)으로 향하던 열 차 안에서 그녀는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섬기고 따르라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 데레사 수녀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자신의 원의를 총원장 수녀에게 밝혔고, 그로부터 1년 6개월여 만인 1948년 4월 12일에 교황청으로부터 재속 수녀로 계속 활동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16일 인도 고유의 부인복인 '사리' 를 수 도복으로 걸친 데레사 수녀는 고등학교 교장에서 빈민들 의 '종' 으로, 평화로운 공동체에서 무관심과 가난과 질 병이 들끓는 모티질(Motijhil)의 빈민굴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2월 12일 빈민 학교를 열어 어린이들을 가르치 는 한편 수업이 없는 오후에는 행려 환자들을 돌보기 시 작하였다. 1949년 3월 19일에 슈바시니 다스(Shubashini Das)가 입회한 이래 그녀의 공동체는 성 마리아 고등학 교 제자들의 연이은 입회로 수도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이듬해 10월 7일에는 교구로부터 '사랑 의 선교 수녀회' 로 인가를 받았다. 또 1952년 8월에는 힌두교 사원 순례자들이 이용했던 숙소를 캘커타시로부 터 지원받아 '깨끗한 마음' 이라는 뜻을 지닌 임종자들을 위한 집 '니르말 히르데이' (NimanalHrda)를 개원하였고, 1953년에는 결핵 환자 요양소 '프렘단' , 1955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집 '쉬슈 브하반' (Shishu Bhavan), 1959 년에는 나환우 요양소 '프렘 니바스 를 잇달아 마련하였다.
1959년 5월 29일 인도 란치(Ranchi)에 첫 전교 수녀 를 파견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1965년 2월 1일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수녀회 인가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하여 같은 해 7월 26일 베네수엘라의 코코로트에 최초로 진 출하였으며, 그 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예 멘,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아일랜드, 요르단 등으로 진 출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는 마약 중독자, 매매춘 및 매맞는 여성들을 위한 집을 세계 도처에 마련하였고, 낙태 반대 운동과 함께 입양 사업도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 결과 수녀회 설립 25년 동안 750명의 회원들이 60여 개의 학교에서 7,500명의 빈민 어린이들을 가르쳤으며, 54개 요양소에서 47,000명의 나환우들을 치료해 주었 고, 20여 개 고아원의 1,600명 아이들과 23개 보호소에 서 3,400명의 행려자들을 보살펴 왔다. 또 최근에는 미 국 등 선진국으로도 진출하여 극빈층을 돌보거나 사회로 부터 격리되어 생활하는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는 한 편, 재해 구난 프로그램과 불법 이민자들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8년 5월 현재 동유럽 공산 국가, 러시아, 이라크,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123개 국 256개 분원에서 4,2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 하고 있다.
〔영 성〕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목마르다" (요한 19, 28)에 근원을 두고 있다. "우리 의 목적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행위로 십자가에 달리 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목마름을 축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그분을 간호해 주고 먹을 것을 주며 옷을 입혀 주고 그분 을 방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단순 히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사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못 한 태아, 인종 차별을 당하는 사람, 알코올 및 마약 중독 자, 삶의 희망과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 성령의 힘 안에서 희망을 갖지 못한 모든 이들을 뜻한다.
데레사 수녀는 "가진 것이 많으면 베풀 것이 없다"고 하면서 어떠한 형태의 부(富)도 피해야 한다는 '극단적 인 생각' 을 실천에 옮겼다. 1996년 그녀가 심장 질환을 앓았을 때, "어찌하여 나에 대한 간호가 이토록 극진한 가?" 라며 안락한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자책하고 "가 난한 사람들처럼 죽도록 해달라"던 모습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회원들 역시 "고통이 뒤따르지 않는 활동이란 단지 사회 사업의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가장 가난한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완전한 신뢰와 자아 포기, 항상 기뻐하는 정신으 로 함께 나누고 있다. 한편 생전에 '살아 있는 성녀' 또 는 '빈자들의 어머니' 로 추앙받았던 마더 데레사 수녀는 지병인 심장 질환으로 1997년 9월 5일 캘커타에서 87 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한국 진출과 사도직 현황〕 당시의 서울대교구장 김수 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은 1981년 5월 마더 데레 사 수녀의 방한(訪韓)을 계기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정식으로 초청하였다. 이에 따라 그 해 6월 30일 3명의 인도 회원이 입국하여 봉천동(奉天洞) 본당 관할인 봉천 1동 공소의 빈 사제관에서 2개월 동안 생활하다가 봉천 1동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됨에 따라 같은 해 8월 용산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휴양의 집' 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9월에는 그곳에 양로원인 '평화 의 집' 을 마련하고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2 년 1월에 입회한 11명의 지원자 가운데 9명을 같은 해 6월에 수련차 필리핀으로 보냈다. 그 후 1983년 4월에 경기도 안양시 안양2동 42-20번지에 본원을 건립하였 으나 안양시 도로 확장 공사로 수녀원 부지 일부가 편입 됨에 따라 1993년 10월 8일 안산시 고잔동 656-25번 지에 수녀원을 완공하고 그 이듬해 5월 10일 본원을 이 곳으로 이전하였다. 이에 앞서 1985년 5월 24일에는 3 명의 회원이 첫 서원을 하였으며, 1985년 6월 14일에는 인천시 만수동에 첫 번째 분원을 마련하고 양로원 '온정 의 집' 을 운영하였다. 1998년 5월 현재 종신 서원자 9 명, 유기 서원자 2명 등 모두 11명의 회원이 안산과 인 천의 양로원에서 각각 40여 명의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 으며, 한편으로는 임종 직전의 무의탁 행려 환자들과 극 빈 가정을 위해서도 봉사하고 있다. (→ 데레사, 캘커타 의 ; 사랑의 선교 수사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루신다 바디, 황애경 역 《사랑의 등 불 마더 데레사》, 고려원미디어, 1996/ 이 르 졸리, 윤일숙 · 안정혜 역, 《대지를 덮은 사랑의 강물》, 동광출판사, 1979/ 《서 울대교구 敎 區總覽》 가톨릭출판사, 1984/ 《천주교 사회 복지 편람》, 한국 천주 교 주교 회의 사회 복지위원회, 1996/ 《경향잡지》 1469호( 1990. 8), pp. 100~104/ E.J. Dillon, 《NCE》 17, pp. 425~426. 〔金成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