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Sabbas(439~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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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성인(왼쪽)과 그가 세운 마르 사바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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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 성인(왼쪽)과 그가 세운 마르 사바 수도원.


성인. 수도승. 팔레스티나의 수도원 중 예루살렘과 사 해 사이에 있는, 마르 사바(Mar Sabbas)라는 이름의 거대 한 라우라(Laura, 동방 교회의 대수도원)의 창설자. 축일은 12월 5일. 〔생 애〕 439년 가빠도기아(Cappadocia)의 가이사리아 근처 무탈라스카(Mutalaska)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알렉산드리아로 전근을 가게 되자 삼촌의 도움으로 자랐 으나 숙모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여 8세 때 다른 삼촌에 게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삼촌들이 서로 재산 문 제로 다투면서 그를 모질게 대하자 사바는 고향에서 가 까운 수도원으로 피신하였고, 후에 삼촌들이 찾아와 다 시 가정으로 돌아오고 결혼도 하도록 설득하였지만 수도 원에 그대로 머물기로 작정하였다. 18세 때인 456년에 예루살렘의 파사리온(Passarion) 수도원으로 옮겨 성 에 우티미오(St. Euthymius Great)의 제자가 된 사바는, 그에 의해 와디 무켈릭(Wadi Mukelik)에 있는 성 테옥티스토 (St. Theoctistus)의 수도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17년을 보냈다. 수도원 설립 : 478년부터 예루살렘 남동쪽의 와디 엔 나르(Wadi en Nar)의 동굴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의 명성을 듣고 점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자 483년 에 반(半)은수 생활을 하는 수도 공동체인 마르 사바 라 우라를 그곳에 창설하였다. 라우라의 수도승들은 성당을 중심으로 각각 분리된 오두막에서 생활하였는데, 몇몇 수도승들은 사바의 지도를 거부하고 사제가 그들의 수도 원장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총 대주교 살루스티오(Sallustius)는 사바의 영향력과 자질을 인정하였으므로 그에게 사제 서품을 받도록 설득하였다. 그래서 491년에 사바는 살루스티오에게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494년에는 팔레스티나에 있는 모든 수도원들의 총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한편 이집트와 아르메니아에서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자 다른 라우라와 6개의 수도원과 4개의 성지 순례를 위한 숙박소를 세웠으며, 507년에 새 라우 라에 이어 512년에는 헵타스토모스(Heptastomos) 라우 라, 531년에는 예레미야 라우라를 더 세웠다. 당시 마르 사바 라우라에는 150명의 수도승이 있었고 새 라우라에 는 120명의 수도승이 있었다.
공적인 활동 : 사바는 사막의 은수자였지만 당시 교회 의 공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즉 당시의 오리제네스주의에 대한 수도승들 사이의 이견 때문에 많 은 수도자들이 마르 사바 라우라를 떠나 다른 라우라를 설립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사바 자신도 마르 사바 라우 라를 떠나 니코폴리스(Nicopolis)로 가 그곳에서 503~ 508년 사이에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그는 정통 교리 의 수호를 위하여 오리제네스주의자들과 그리스도 단성 설을 특히 배격하였다. 또한 그는 사마리아인들의 봉기 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할 만큼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 은수자였다.
사바는 두 번에 걸쳐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임명을 받 고 콘스탄티노플로 파견되었었다. 그리고 511년에는 콘 스탄티노플의 아나스타시우스 1세(491~518) 황제, 531 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황제를 만나 부당 한 세금을 폐지해 주도록 협상하였으며, 그리스도 단성 설을 주장하던 이들과 오리제네스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였다. 사바는 531년 여행에서 돌 아온 직후 병이 들어 532년 12월 5일 94세의 고령으로 마르 사바에서 사망하였다. 〔공경과 영향〕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 사바 라우라에 안치되었던 사바의 유해는 십자군 원정 이후 베네치아로 옮겨졌으나 1965년에 교황 바오로 6세의 지시로 마르 사바 라우라로 되돌려졌고, 9세기경에는 사바를 기념하 기 위한 성당이 로마에 세워졌다. 사바의 전기는 그를 직 접 만났을 때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스키토폴리 스(Scythopolis)의 치릴로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사바와 그의 제자들에게 "팔레스티나에서 가톨릭 신앙의 가장 강력한 성채" 라는 찬사를 보냈다. 사바가 세운 라우라와 수도원들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 래된 수도원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마르 사바 수도원 은 1840년경에 러시아 정부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오늘 날 마르 사바 수도원에는 금욕과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 는 동방 교회의 수도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바의 《타 이피콘》(Typion)과 회칙은 많은 다른 수도원들에 큰 영 향을 미쳤으나 현재 변형된 사본만이 남아 있다. 특히 사 바가 팔레스티나의 수도원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서에 언급되어 있듯이 사과가 인간의 타락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사바는 생존시에 사과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를 묘사하는 미술 작품에는 사과가 함께 그려진 작품들이 많다. ※ 참고문헌  E. Hoade, 《NCE》 12, pp. 775~776/ 《NCE》 9, p. 513/ Richard P. McBrien ed., The HarperCol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Harper San Francisco, 1995, p. 1146/ Michael Ott, trans. by Paul Soffing, The Catholic Encyclopedia, New Advent Inc., 1996/ C. Stevens, The One Year Book of Saints,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1989, p. 3471 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Penguin Books, 1983, p.291. 〔梁惠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