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 본당

舍北本堂

글자 크기
6
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 7리 344-16 소재. 1976년 10월 20일 함백(咸白) 본당 관할 공소인 고한(古汗)과 사북(舍北)을 통합하여 설립한 고한 · 사북 본당의 후신으로, 1988년 9월 16일 고한 본당과 함께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한 보스코.m관할 구역은 정선군 사북읍과 남면 일대이고, 관할 공소는 증산, 남면 2개소. 〔교 세〕 1977년 705명, 1983년 1,123명, 1989년 724명, 1993년 783명, 1996년 803명. 〔역대 신부〕 고한 사북 본당 시기 : 초대 슈미트(W. Schmitt, 심병덕) 굴리엘모(1976. 10~1978. 10), 2대 놀란(J. Nolan, 노) 야고보(1978. 10~1982. 8), 3대 홍랑표(洪朗杓) 펠릭스(1982. 8~1984. 3), 임시 신현만(申鉉萬) 시몬(1984. 3~9), 4대 김영진(金榮鎭) 바르나바(1984. 9~1988.9), 본당 분할 : 5대 김한기(金漢起) 시몬(1988. 9~1993.2), 6대 이병돈(李丙敦) 요한 보스코(1993. 2~1996. 9), 7대 노세현(盧世賢) 마티아(1996. 9~현재).
〔고한 · 사북 본당 시기〕 사북 · 고한 지역은 1959년경 본격적인 탄전 개발과 함께 인구 집중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신흥 탄광 지대로, 이곳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61년 2월 정선(旌善) 본당의 페리(F. Ferrie, 黃) 신부에 의해 예비 신자 4명이 세례를 받으면서였다. 이어 같은 해 9월 사북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64년 5월 함백본당 관할로 바뀐뀐 후에는 현재의 사음 우체국 앞 초가를 공소 강당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이듬해 10월에 함백 본당 초대 주임인 오브리언(J.O'Brien, 인) 신부가 현재의 성당 부지 1,500평을 매입하였으며 1966년 5월 14일 이곳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한편 고한 지역 역시 사북과 비슷한 시기에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1974년 태백선의 개통으로 이 두 지역의 전입 인구가 증가하게 되자 본당 설립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교구에서는 1976년 10월 20일 고한 공소와 사북 공소를 합쳐 고한 · 사북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주임에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슈미트 신부를 임명하였다. 슈미트 신부는 이전의 두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개수하는 한편, 고한 성당 사제관(현 수녀원)에 거처하면서 사북을 왕래하였다. 그러나 2대 주임 놀란 신부가 사북 성당에 사제관을 신축하고 1979년 10월 21일 거처를 이곳으로 옮김으로써 본당 사목의 중심은 고한에서 사북으로 이동되었다. 놀란 신부는 또 이듬해 12월 31일에 '사북어린이 회관' (55평)을 신축하고 1981년 3월 23일에는'사북 성심 어린이 집' (1991년 폐쇄)을 개원했다. 1982년부터 본당에 부임한 한국인 신부들은 광산 지대라는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이에 중점을 두고 사목하였는데, 특히 4대 주임 김영진 신부는 1985년 8월에 '가톨릭 광산 노동 문제 상담소' (1991년 폐쇄)를 개소하였고, 1987년 4월 5일에는 '가톨릭 태백 지역 복지 센터' 를 설립하여 산업 재해 및 인권 보장을 위해 힘썼다. 그러던 중 1987년에 전국 노동자 대파업과 연계되어 일어난 광산 노동자 분규로 인해 고한 · 사북 본당은 정부로부터 사찰을 당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신자들은 1988년 6월에 고한 성당(150평 )을 신축한 데 이어 그 해 8월에는 증산 지역에 부지를 구입하여 증산 공소(60평)와 양로원 '모니카의 집' (50평)을 신축하였으며, 1989년 3월 9일에는 결손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가족 단위의 소공동체인 '대철 베드로의 집'을 개원하였다.
〔본당 분할과 변모〕 고한과 사북의 두 지역을 한 명의 사제가 왕래하면서 사목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교구에서는 1988년 9월 16일 고한 · 사북 본당을 고 한 본당과 사북 본당으로 분리하고 사북 본당을 신설 본당으로 하여 김한기 신부를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부임 이듬해 9월 성당 증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1월 9일에 이를 완공한 김한기 신부는, 1991년 11월 27일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선군 남면 무릉 3리에 대철 베드로의 집을 신축하였다. 이러한 사목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하여 1988년 이래 폐광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급감하자 사목상의 어려움도 증대되었다. 그러나 본당에서는 최근 이 지역에 관광 레저 시설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된 데 힘입어 장차 관광 사목을 중심으로 한 본당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 원주교구 ; 고한 본당 ; 정선 본당 ; 함백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원주교구 30년사 편찬위원회 편, 《원주교구 3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