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증거자. 소년 성가대의 주보 성인. 축일은 3월 9일.
〔생 애〕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의 산조반니 디 리바(San Giovanni di Riva)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인 아버지 가를로 사비오(Carlo Savio)와 재봉사인 어머니 비르지타(Birgita)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 5세 때부터 매일 미사의 복사를 하였으며, 벌써 7세 때에 예외적으로 첫영성체를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고 싶어한 사비오가 이때 세운 결심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고해 신부님이 허락하시는 것만큼 자주 영성체를 한다. 그리고 주일과 축일을 거룩하게 지낸다. 내 친구는 예수님과 성모님이다. 죄를 짓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가 혼자 학교에 다니는 것을 본 어떤 사람이 "혼자 걸어가는 것이 겁나지 않니?" 하고 묻자 "저는 혼자가 아니니 겁나지 않습니다. 제 곁에는 늘 수호 천사가 계시답니다"라고 또렷하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성 조반니 보스코(St. Giovanni Bosco, 1815~1888)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자신의 사업을 도와 달라고 토리노의 성직자들에게 부탁하였는데, 이때 사비오의 본당 신부는 사비오를 추천하였다. 1854년에 이루어진 면담에서 보스코는 사비오의 영혼 속에 은총이 충만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사비오를 자신의 살레시오회 소속 신부로 양성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12세인 사비오를 자신이 운영하는 토리노의 종합 기숙 학교인 프란치스코 드살의 오라토리오(Oratory of St. Francis de Sales)에 입학시켰다. 한번은 보스코 성인이 자신의 세례명 축일에 학생들에게 각자 원하는 것을 종이에 적어 내라고 하자 사비오는 "제 영혼을 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성인(聖人)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라고 적었다고 한다. 또 하루는 보스코가 학생들에게 "하느님은 여러분이 성인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매일 매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충실히 하고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기쁘게 사십시오.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요지의 강론을 하였는데, 이 강론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비오는 그 후 보스코의 지도를받으며 자기 성화(自己聖化)를 위해 놀라운 열성을 보이며 노력하였다.
어느 날 친구 둘이 서로 돌을 던지며 싸우고 있는 것을 본 사비오는 십자고상을 들고 그들을 가로막은 후 먼저 자기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십자고상의 예수께 돌을 던지라고 소리치면서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께 돌을 던지는 것이라면서 둘을 화해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함께성체 조배를 하면서 기도하도록 인도하였고, 성인전과 순교록의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었으며, 교리 문답에 잘 대답하고 기도문을 잘 외우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작은 선물과 함께 격려도 잊지 않았다. 또 프리메이슨(Freemason) 회원들이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마술을 구경시켜 주면서 주일 미사에 가지 못하도록유혹하였을 때에도 단호히 그들을 내쫓고 젊은이들이 주일 미사에 참석하도록 하였다.
사비오는 성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여러 가지 특이한 고행을 원하였으나 보스코의 지도에 따라 특이한 고행보다는 매일 매순간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하나 충실히 하는 데서 성화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회"를 결성하여 친구들과 더불어 성덕을 닦았으며, 친구들이 외설스런 그림을 보지 않도록 충고하면서 "나는 천국에서 성모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내 눈을 아껴 놓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영성체 후 오랜 시간 탈혼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받은 여러 가지 사적 계시를 보스코에게 알려 그의 사목을 도왔고, 여러 사람을 위험에서 구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탈혼 중에 황량한 들판에 수많은 군중이 있고, 그곳으로 횃불을 들고 가는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이 횃불은 영국 국민들에게 전해야 할 가톨릭 신앙입니다"라고 보스코에게 말하였다. 보스코는 이 사실을 당시의 교황 비오 9세(1846~1878)에게 알렸고, 교황은 이 말을 듣고 영국에 대한 배려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비오의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폐렴까지 겹치자 건강 회복을 위해 1857년 3월 1일 집으로 보내졌다. 그는 예수의 수난을 생각하며 수술의 고통을 견디어 냈지만, 3월 9일 아스티(Ast)의 만도니오(Mandonio)에서 1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당신께 영원한 찬미를 드리는 것이 저의 소망 입니다. 아!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습니다"였다. 죽은 후에도 그는 자기 아버지와 보스코에게 나타나 그들을 위로하며 조언을 하였다고 한다.
〔시성과 공경〕 사비오가 사망한 후 보스코는 즉시 그의 생애와 성덕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훗날 사비오의 시복과 시성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1950년 3월 5일 교황 비오 12세(1939~1958)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954년 6월 12일에 시성되었는데, 교회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성인 가운데 하나이다.
사비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영성은 매사에 열심하고 일상을 성화하여 규칙을 충실히 지키고 영적 지도에 순종하며,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충실히 받아 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늘 기쁘고 명랑하게 지냈으며 모든 사람들과 친밀하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사랑과 친절을 나누었다. 또 특이한 희생보다는 일상에서의 육신적이고 정신적인 고통, 괴로움, 불편을 감수하는 희생을 택하였다. "나는 큰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작은 일들을 통한 그의 영웅적인 자질은 거룩함의 기초가 되었다. 사비오는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순결을 철저하게 실천하였던 더없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 보스코, 조반니 ; 살레시오회)
※ 참고문헌 방효식, 《영성사》, 바오로딸, 1996, pp. 212~2231 D.H.Farmer, Oxford Dictionary Saints, Oxford Univ. Press, 1987, p. 428/ G.Söll, 《LThK》 9, p. 351/ E.F. Fardellone, 《NCE》 12, pp. 1104~1105/ C.Stevens, The One Year Book of Saints,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1989, p. 77. 〔金保錄〕
사비오, 도미니코 Savio, Domimico(184~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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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