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성경》 四史聖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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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사사성경》과 한문본 《사사성경 역주》.
신약 4복음서의 한글 완역본. 본래의 이름은 한글 고어체인 《ᄉᆞᄉᆞ셩경》이다. 1906년부터 손성재(孫聖載, 야고보) 신부 · 홍병철(洪秉喆, 루가) 신부 · 김문옥(金紋 玉, 요셉) 신부가 마태오 복음서의 번역을, 한기근(韓基根, 바오로) 신부가 나머지 3복음서의 번역을 시작하여 1910년에 교열을 마쳤으며, 같은 해 12월 중순경에 제8
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감준으로 서울 성서 활판소에서 초판이 간행되었다. 번역 대본은 라틴어판 불가타(Vulgata) 역본으로 추정되며, 이 밖에도 다른 유럽어판 성서가 이용되었던 듯하다. 초판은 양장본과 한장본 두 종으로 간행되었는데, 그 내용은 속표지 1면, 간기 1면, 본문 445면(마태오 · 마르코 · 루가 · 요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드장(Joseph Dejean, 德如瑟) 신부가 역주한 한문본 《사사성경 역주》(四史聖經譯註) 전 4권은 1891년에 교열이 끝나 이듬해 홍콩의 나자렛 인쇄소에서 간행되었다. 이 한문본은 간행 직후 조선에 전래되었는데, 뮈텔주교가 이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한글본 《ᄉᆞᄉᆞ셩경》의 역주 작업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주 과정〕 뮈텔 주교는 1906년 초에 4복음서의 한글 번역을 계획하고 그 해 5월 13~19일 사이에 있었던 한국인 성직자들의 피정 때에 그 번역을 네 신부에게 위 임한 것 같다. 그중에서 마태오 복음서의 번역을 담당하였던 옥천(沃川) 본당의 홍병철 신부는 7월 7일에 작업을 마쳤고, 이어 검수(劍水) 본당(사리원 본당의 전신)의 손성재 신부와 장연(長淵) 본당의 김문옥 신부가 자신이 담당한 부분의 초고 번역을 마쳤다. 반면에 황주(黃州) 본당의 한기근 신부는 담당 부분도 많았던데다가 이미 《예수진교사패》(耶蘇眞敎四牌)를 번역하던 중이었으므로 7월 이후에야 복음서 번역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기근 신부는 라틴어 실력을 인정받아 이후 마르코 복음서 · 요한 복음서 · 루가 복음서의 역주와 4복음서 전체의 교열을 도맡게 되었는데, 《ᄉᆞᄉᆞ셩경》을 간행할 때 역주자가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한기근 신부가 역주 작업을 완료한 것은 1909년경이었다. 이에 뮈텔 주교는 그와 복음서의 교열작업에 들어가 같은 해 10월경에 요한 복음서 · 루가 복음서를 끝냈고, 1910년 6월 1일에는 마태오 복음서의 교열을, 6월 9일에는 마르코 복음서의 교열을 마쳤으며, 7월 5일에는 모든 역주 교열 작업을 완료하였다.
〔내용 및 간행〕 당시 역주 작업에는, 우선 원문의 자구(字句) 번역에 충실하고, 교우들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는 히브리어는 번역하지 않으며, 성서 구절에 대한 풀
님' 즉 주해는 비록 동일한 내용이 될지라도 각 복음서마다 별도로 첨부한다는 등의 원칙이 수립되었으나 훗날 교열시에 상당수 변경되었다. 또 각 풀님은 한문본의 내 용을 참조하여 새로 작성하거나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겼는데, 한글본 풀님의 분량은 한문본보다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한기근 신부는 처음에 독자들을 위해 띄 어쓰기와 맞춤법 등을 정하여 적용하려는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0년 12월 중순경에 간행되어 나온 초판은 조판 과정에서 요한 복음 17장 4-5절에서 오자가 나온 것 외에는 큰 오류가 없었다. 초판이 간행된 이래 《ᄉᆞᄉᆞ셩경》은 교회 안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1892~1897년에 간행된 《셩경직ᄒᆡ》(聖經直解)와 같이 부분 역이 아니라 완역본이라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1922년 4월에는 재판, 1931년 1월에는 3판, 1939년 7월에 4판, 1945년에 5판이 간행되었고, 1951년 11월 이후에는 복사판이 계속 간행되었다. 이 중에서 1922년에 간행된 재판 《ᄉᆞᄉᆞ셩경》은 초판에 비해 문장이 훨씬 가다듬어졌으며, 4복음서 이외에 한기근 신부가 번역한 <종도ᄒᆡᆼ전>이 뒷 부분에 첨부되어 양장본과 한장본 두 종으로 간행되었다. 따라서 그 제목에도 '합부 종도ᄒᆡᆼ전' (合附宗徒行傳)이란 단어가 세자(細字)로 첨부되었다. 또 1939년에 간행된 4판에서는 비록 현재와 같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띄어쓰기와 한글 맞춤법이 적용되었고 보조 부호도 이용되었다. 한편 5판은 광복 직전에 덕원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인쇄 제본까지 마쳤으나 38선이 설정되면서 서울교구로 이송되지 못하였다. 이에 제10대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성신대학 성서부장으로 있던 선종완(宣鍾完, 라우렌시오) 신부로 하여금 성서 본문은 그대로 두되, 4복음서와 사도 행전 각 편에 대한 해설과 주해를 새롭게 첨부하도록 하고, 이를 《신약서 상편》이란 이름으로 1948년 12월 25일에 경향잡지사(京鄕雜誌)에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은 그 간기에 6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사사성경》의 개정 초판이라 할 수 있다. 또 책의 이름에 '상편' 이란 이름을 넣게 된 이유는 '하편' 의 간행을 염두에 둔 때문인데, 이 "신약성서 하편"은 곧 1941년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회 선교사인 슐라이허(Arnulf Schleicher, 安世明) 신부가 번역 간행한 《신약성서 서간 · 묵시 편(書簡默示篇)》의 개정판으로 간행될 예정이었다. 실제로 6 · 25 한국 전쟁 이전에 김정진(金正鎮, 바오로) 신부와 최익철(崔益喆, 베네딕도) 신부는 이 하편의 작업을 완료하였지만, 간행되지 못한 채 전쟁 중에 원고가 분실되고 말았다. 《신약성서 서간 · 묵시 편》은 1951년 11월에 일본 동경(東京)에서 기존의 《사사성경》과 합본으로 2판이 간행된 적이 있으며, 1957년의 3판부터는 《서간 성서》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한편 1951년 11월에는 동경에서 《사사성경》(종도행전 포함) 복사판이 별도로 간행되기도 하였는데, 이 복사판은 1956년 9월과 1959년 6월에 '복음 성서' 라는 이름으로 중간되었다. 아울러 그 개정판인 《신약성서 상편》도 1961년의 2판(즉 <사사성경> 7판)부터 1969년까지 '복음 성서' 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1971년에 《공동 번역 신약성서》가 간행되면서 《사사성경》의 보급은 중단되었으나 1910년 이래 약 60년 동안 널리 이용되어 온 유일한 신약성서 완역본으로, 한국 천주교 회의 성서 번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은 각 시대의 한글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된다고 할 수 있다. (→ 성서 번역 ; 《신약성서 서간 · 묵시 편》 ; 한기근)
※ 참고문헌 《ᄉᆞᄉᆞ셩경》, 韓國教會史研究資料 20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조화선, <성경직히의 연구>, 《韓國敎會史論叢》,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閔泳珍, 《國譯聖書研究》, 성광문화사, 1984/ 서정수, <성경직히 해제>, 《성경직히》,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이덕주, <초기 한글 성서 번역에 관한 연구-특히 성서 번역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글 성서와 겨레 문화》, 기독교문사, 1985/ 안홍균, <한글 역 성서 해제>, 《ᄉᆞᄉᆞ셩경》,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車基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