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오경 四書五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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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기본적인 경전 체계 중 가장 대표적 형식인 사서오경.

유가의 기본적인 경전 체계 중 가장 대표적 형식인 사서오경.

유가(儒家)의 기본적인 경전(經典)에 대한 총칭. 송대(宋代) 이후 성립된 유교 경전 체계 중 가장 대표적인 형식으로, '사서' 는 《논어》(論語) · 《대학》(大學) · 《중용》(中庸) · 《맹자》(孟子)이고, '오경' 은 《시경》(詩經) · 《서경》(書經) · 《역경》(易經) · 《예기》(禮記) · 《춘추》(春秋)를 말한다.
〔구 성〕 유교 경전은 공자(孔子)가 《시경》 · 《서경》 ·《역경》 · 《예경》(禮經) · 《악경》(樂經) · 《춘추》 등 육경(六經)을 산정(刪定)하면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경전들은 진(秦) 시황(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원형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흩어졌다가 한(漢)나라에 와서 다시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즉 한 무제(武帝)는 유교 경전 을 수집하면서 오경 박사(五經博士)를 두어 '오경' 을 편찬하였는데, 이때 공자의 '육경' 에서 《악경》과 《예경》이 없어지고 대신 《예기》가 포함되어 '오경' 이 결정되었다. 이 오경은 불변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기록한 문헌으로, 우주론(易) · 정치학(詩 · 書 · 禮) · 윤리학(禮) · 역사 철학(春秋) · 문학론(詩) 등 진리의 원천으로 중시되었다.
이와 함께 '사서' 도 경전의 범위에 포함되기 시작하였는데, 오경이 성립된 이후 여기에 《논어》와 《효경》(孝經)을 합쳐 '칠경' (七經)이라 일컬었고, 송(宋)의 왕응린(王應麟)은 '십삼경' (十三經)에 《맹자》를 포함시켰다. 이어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예기》 속에 있던 《대학》과 《중용》을 독립시키면서 '사서' 의 체제가 이루어졌고, 주자의 《사서집주)(四書集註)에 의해 사서는 오경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요 오경에 앞서서 배워야 할 기본 경전으로 강조되었다. 그리고 원대(元代)에 주자학이 관학(官學)으로 정립되면서 사서의 비중이 오경보다 커졌고 이에 경학의 중심은 한대 이
후의 오경에서 사서로 이행하게 되었다. '사서' 의 성립 순서는 공자의 《논어》에 이어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대학》이 나오고, 다시 증자의 제자인 자사(子思)의 《중용》이 나왔으며 자사의 학맥을 이은 맹자의 《맹자》가 나왔다. 이것은 바로 주자학의 도통(道統)이 이어 내려간 것을 밝히는 것으로 '사서' 의 성립이 주자학의 도통 의식과 직결됨을 보여 준다.
〔《대학》〕 주자의 주석 체계에 따라 명명덕(明明德) · 친민(親民) · 지어지선(止於至善)의 3강령(綱領)과 격물(格物) · 치지(致知) · 성의(誠意) · 정심(正心) · 수신(修身) · 제가(齊家) · 치국(治國) ·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條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송의 정호(程顥)는 《대학》 을 '공자가 남긴 글 이라고 하였고, 주자는 경(經) 1장' 과 '전(傳) 10장' 으로 분석하여 전자는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후자는 증자의 뜻을 그의 제자가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대학》의 표제는 편수(篇首)의 '대학지도' (大學之道)에서 따온 것인데, 이에는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정약용(丁若鏞)의 견해로 교육의 단계 또는 교육 기관을 의미한다. 이때의 대학은 '태학' (太學)의 뜻과 일치하여 '태학' 이라고 읽으며, 태학의 교과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 하나는 주자의 견해로 교육의 내용 내지 교육의 목표와 관련하여 '대인' (大人) 곧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학문으로서 '대인지학' (大人之學)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학》은 대인이 되기 위하여 배워야 할 학문' 이요 '대인에게 필요한 학문' 으로 《소학》(小學)과 더불어 유교의 학문적 기본 체계로 인정되고 있다. 즉 《대학》의 내용 중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 · 수신은 명명덕에 속하는 '수기' (修己)의 단계이며, 제가 · 치국 · 평천하는 '친민' (親民)에 속하는 '치인' (治人)의 단계이다. 여기서 '수기' 와 '치인'의 문제는 유학의 학문적 전체 영역을 가리키며, '수신'을 뿌리 [本] 삼아 제가 · 치국 . 평천하의 가지(末)로 점차 뻗어 나가는 선본후말(先本後末)의 논리를 보여 주고있다. 조선 초기의 권근(權根)도 <대학지장도>(大學指掌圖)에서 3강령 중 '명명덕' 은 본(本)과 체(體)이고, '신민' (新民)은 말(末)과 용(用)이며, '지어지선' 은 체 · 용의 표준이 된다는 본말(本末) · 체용(體用)의 구조를 제시하였고, 8조목 중 격물 · 치지는 지(知)의 방법이고, 성의 · 정심 · 수신은 행(行)의 방법이라는 지 · 행(知行)의 학문 방법을 제시하였다.
한편 주자는 정자의 해석을 따라 《대학장구》에서 경전 본문의 '친민' 을 '신민' 으로 고쳐야 한다고 보았는데, 왕양명(王陽明)은 주자의 《대학장구》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예기> 속에 들어 있던 <대학》의 원문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주자는 《대학장구》 전(傳) 5장에 '격물치지' 에 관한 내용으로 134자를 보충하였는데 이 <격물치지보망장)/榕牠牧政知補亡章)은 주자학파의 인식론에 있어 핵심 이론이 되고 있다.
〔《논어》〕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공자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들에 의한 기록과 그 제자의 제자에 의한 기록이 몇 대에 걸쳐 축적된 후 편찬된 것이다. 한나라 때에는 3종의 《논어》(즉 魯論 20篇 · 齊論22篇 古論 21篇)가 있었는데, 서한(西漢) 말에 안창후 (安昌侯) 장우(張禹)가 《노론》을 토대로 《장후론》(張侯論)을 편찬하면서 세상에 널리 통용되었다. 《논어》는 공자의 정신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헌으로,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 (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있어서 《논어》는 삼국 시대부터 읽혀져 왔으며, 조선 시대의 학자인 김황(金幌)은 <경학십도>(經學十圖)에서 《논어》 20편의 내용을 4단계로 분석하였다. 즉 첫째 단계는 '근본에 힘써야 하는 뜻' 을 밝힌 제1~9편(學而~子罕)이고, 둘째 단계는 '공자의 용모 · 안색 · 언어 · 동작' 등을 기록한 제10~17편(鄉黨~陽貨이며, 셋째 단계는 '성현이 세상에 나서고 물러서는 출처(出處)' 를 기록한 제18편(微子)과 '제자의 말씀' 을 기록한 제19편(子張)이고, 넷째 단계는 '성도(聖道)의 전통' 을 기록한 제20편(堯日)이다.
〔《맹자》〕 맹자의 사상 및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모두 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맹자의 제자들이 저술하였다는 한유(韓愈)의 주장과 맹자 자신의 저술이라는 주자의 입장이 맞서고 있다. 《맹자》의 내용은 크게 '성품의 선함' (性善)을 밝히는 인성론의 영역, 맹자가 여러 제후를 두루 방문하여 왕도(王道) 정치의 실천을 주장하는 영역, 요(堯) · 순(舜) · 우(禹) · 주공(周公) · 공자(孔子)를 도통(道統)으로 확인하여 계승하겠다는 신념적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인성론과 관련해서 《맹자》에는 인간의 성품이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근거로,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앎〔盡心知雉〕으로써 하늘을 알게 되는[知天] 인식 방법과 마음을 간직하고 성품을 배양하여〔存心養性] 하늘을 섬기는〔事天〕 수양 방법을 통해 하늘을 인간 완성의 근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성품이 본래 선함을 확인하기 위해 인간의 마음에서 측은히 여기고(惻隱) ·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며〔羞惡〕 · 서로 사양하고〔辭讓〕 · 옳고 그름을 가리는〔是非〕 '사단' (四端)과 이에 상응하는 성품으로 인 · 의 · 예 · 지(仁義禮智) '사덕' (四德)을 확인함으로써 송대 성리학의 인성론에 기본 틀을 제공해 주었다.
둘째, 왕도 정치와 관련해서는 왕권의 근거로서 천명(天命)을 제시하고 천명에 따르는 혁명의 정당성과 민심을 통해 천명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즉 맹자는 전국 시대의 극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요 · 순(堯舜)을 정치적 이상으로 내세웠고,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民本) 원리와 인의(仁義)의 도덕성에 근거하는 왕도 정치를 밝혔다.
셋째, 맹자는 이단 비판론(異端批判論)을 통하여 유교의 정통성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그는 양주(楊朱)의 위아설(爲我說)과 묵적(墨翟)의 겸애설(兼愛說)을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는' 〔無父無君〕 사설(邪說)이라고 비판하고, 이단 배척을 통해 성인의 도를 계승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 결과 맹자의 이단 배척론 내지 정통론은 송대 도학자들에 의해 노장(老莊)과 불교를 이단으로 비판하는 정통론의 선구가 되어 유학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맹자》는 한(漢)의 사마천(司馬遷)과 당(唐)의 한유(韓愈) 등에 의하여 존중되었지만 군왕을 비판하고 혁명을 긍정하는 맹자의 사상은 군주에 대해 충절을 높이는 자들과 후세의 전제 군주들로부터 비판과 견제를 당하기도 하였다. 즉 한의 왕충(王充)과 송의 사마광(司馬光)이 《맹자》를 비판하였고, 특히 북송(北宋)의 이구(李覯)는 맹자를 '차마 못할 일을 하는 사람' 〔忍人〕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비해 송의 여윤문(余允文)은 <존맹변〉(尊孟辨)을 지어 맹자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였고, 주자는 여윤문의 맹자에 대한 변호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송대에는 《맹자》에 대한 비판론과 옹호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맹자》는 본래 《순자》(荀子)와 더불어 제자류(諸子類)의 자부(子部)에 속하였으나 송나라 진종(眞宗)의 명령에 따라 손석(孫奭)이 《맹자》를 경부(經部)로 끌어올렸다. 그 후 정자가 《대학》 · 《논어》 · 《중용》과 더불어 《맹자》를 '사서' 로 열거하였고, 이를 계승하여 주자가 《사서집주》를 저술함에 따라 《맹자》는 경서로서 확고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의 주석으로 중요한 것은 조기(趙崎)의 《맹자주》(孟子注)와 《맹자정의》(孟子正義), 주자의 《맹자집주)(孟子集注)와 《맹자요략》(孟子要略), 초순(焦循)의 《맹자정의》(孟子正義), 대진(戴震)의 《맹자자의소증》(孟子字義疏證), 이익(李翼)의 《맹자질서》(孟子疾書), 정약용(丁若鏞)의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있다.
〔《중용》〕 유교의 철학적 근본 문제를 제시한 책으로, 본래 《예기》의 한 편(篇)이었다가 정자와 주자에 의해 '사서' 의 하나로 표출되었다. 사마천과 정현(鄭玄) 등에
의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저자라고 전해지며, 주자도 《중용장구》에서 《중용》의 제1장은 공자의 말씀을 자사가 적은 것이고, 나머지 32장은 자사가 제1장의 의미를 해설한 것을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중용》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는 '중용' (中庸)과 '성'(誠)이다. 이 중 '중용' 은 《중용》의 전반부에서 설명되
고 있는데, 특히 제1장에서 보여 준 천명(天命) · 성(性) · 도(道) · 교(敎)의 개념은 인간 행위의 정당성과 근원성을 지극히 높은 천명과 내재하는 인성에서 확인하는 것이며, 천명과 인성의 관계, 나아가 하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구조적인 연관성을 밝혀 주고 있다. 또한 희(喜) · 노(怒) · 애(哀) · 락(樂)의 감정이 발현되기 이전의 '중' (中)과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화' (和)를 천하의 큰 근본[大本]과 통달한 도리〔達道〕로 규정하여 우주의 질서와 만물의 배양이 '중' 과 '화' 의 실현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성' 은 《중용》의 후반부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중용>에서는 "성' 은 하늘의 길이요, '성' 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라고 하여 하늘의 길과 인간의 길이 '성' 을 통해 일관됨을 보여 주었고, '성' 을 "사물의 시작과 끝"이라 하여 존재의 근거로도 확인하였다. 또 "자기를 이룰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이루는 것"이라 하여 주 · 객과 내 · 외가 합일하는 원리임을 밝혔고, "지극한 '성' 은 신(神)과 같다" 고 하여 '성' 의 신비성까지 지적하였다. 한편 정약용은 <중용> 제16장의 귀신 개념을 상제(上帝)의 의미로 이해하고, 제1장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 [不睹不聞]은 "상제가 강림하여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해석하여 《중용》에 담긴 종교적 신념 내지 신비성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중용》에서 제시된 천 · 인(天人) 관계의 상관성 내지 일치성의 인식은 유교적 천인 관계론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중용》의 주석서로는 여립무(黎立武)의 《중용지귀》(中庸指歸), 이광지(李光地)의 《중용장단》(中庸章段) ,강유위(康有爲)의 《중용주》(中庸注), 이언적(李彥迪)의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 , 이익의 《중용질서》(中庸疾書), 정약용의 《중용강의》(中庸講義) 등이 있는데 특히 《중용강의》는 정약용이 23세때 정조(正祖)가 질문한 항목에 대해 이벽(李檗)과 토론을 거쳐 저술한 것으로 당시 수용한 천주교 교리의 세계관이 《중용》 해석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 주석서이다.
〔《시경》〕 총 311편의 시(詩)가 <국풍>(國風) 160편, <소아>(小雅) 80편, <대아>(大雅) 31편, <송>(頌) 40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소아> 6편은 제목만 전해진다. 시는 내용에 따라 풍 · 아 · 송(風雅頌)으로 나뉘고, 표현 형식에 따라 흥 · 비 · 부(興比賦)로 구분되는데 이를 합하여 '시' 의 육의(六義)라고 한다. <국풍>은 주대(周代)의 제후국이나 각 지방의 민요 시가(民謠詩歌)를 가리키며, 이 중 '주남' (周南, 11편)과 '소남' (召南, 14편)이 정풍(正風)이고 그 밖의 것은 모두 변풍(變風)이다. '소아' 는 궁중에서 연회 때 쓰는 음악이고, '대아'는 조회 때 쓰는 음악이며, '송' 은 종묘(宗廟)의 제사에서 사용되던 노래이다.
공자는 <시경> 311편을 한마디로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 [思無邪]이라 하여 '시' 를 인간의 정서를 가장 진실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제시하였고,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고 하여 시를 통해 인간의 정서가 깊이 교류되고 삶의 도리와 학문하는 방법이 깨우쳐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서경》〕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 요(堯)로부터 주대(周代)까지 제왕(帝王)들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한대 이후 상서(尙書)라고 일컬어졌고 송대 이후에는 서경이라고 칭해졌다. 《서경》에는 《금문상서》(今文尚書)와 《고문상서》(古文尚書)가 있는데, 전자는 한나라 초에 복생(伏生)이 전한 29편에서 비롯되며 후자는 한(漢) 경제(景帝) 때 노공왕(魯恭王)이 공자의 옛집을 허물면서 담장 벽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더 많으며 공안국(孔安國)을 통해 전해졌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현행하는 《고문상서》(古文尚書)는 동진(東晋)의 매색(梅頤)이 전한 것으로 총 58편 중 《금문상서》와 일치하는 것이 33편이고 고문에 속하는 것이 25편이다.
《서경》은 시대별로 우서(虞書) · 하서(夏書) · 상서(商書) · 주서(周書)로 구분하며, 또 내용과 문체에 따라 전(典) · 모(謨) · 훈(訓) · 고(誥) · 서(誓) · 명(命)으로 나누기도 한다(書의 六體). '전' 은 후세 사람이 법칙으로 삼을 만한 옛 성왕(聖王)의 사업이고, '모' (謨)는 신하가 임금을 위해 천하를 다스리는 방책을 진술한 것이다. 훈 은 임금과 신하가 서로 훈계하는 말이고, '고' 는 임금과 신하 혹은 동료들 사이에 서로 깨우쳐 주는 말이다. 또 '서' 는 군대가 출정할 때 왕 또는 장수가 병졸들을 훈계하는 말이며, '명' 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직무를 명령하는 것이다. 《서경》은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요 · 순등 유교 정치의 이상형인 성왕들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왕권의 근원이 천명에 있다는 신념과 하늘이 제왕에 맡겨서 백성을 다스린다는 정치 이념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하늘은 폭군으로부터 천명을 회수하여 새로운 유덕자(有德者)에게 천명을 부여한다는 혁명 사상과 백성을 통해 천명이 드러나며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민본 사상, '중' (中)의 중용 원리와 '인심' (人心) · 도심' (道心)의 심법 등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역경》〕 《주역》(周易)이라고도 하며, 상 · 하(上下) 2경(經)과 <십익전>(十翼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상경> 30패(卦)는 천도(天道)의 문제를, <하경> 34괘(卦)는 인사(人事)의 문제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되며<십익전>은 경에 대한 해설이다. 《역경》은 전통적으로 복희(伏羲)가 팔괘(八卦)를 그리고, 문왕(文王)이 괘사(卦辭)를 짓고,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었으며 ,공자가 <십익전>을 지었다고 하지만 고증학적으로는 부정되고 있다. '역' 의 해석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점치는 방법으로 보는 복서역( 卜筮易), 결단(決斷)의 윤리적 의미를 밝히는 것으로 보는 의리역(義理易)괘 · 효의 형상과 변수의 관계로 보는 상수역(象數易) 등이 그것이다. 또 괘의 형성 과정은 태극(太極) → 양의 (兩儀 : 陰 · 陽)→사상(四象 : 太陽 · 少陰 · 少陽 · 太陰) →팔괘(八卦 : 乾ㅡ天, 兌一澤, 離一火, 震ㅡ雷, 巽ㅡ風, 坎ㅡ水, 艮ㅡ山, 坤ㅡ地)→64괘로 전개되는데, 64괘는 각각 6효(爻)로 이루어져 384효가 되며, 이것은 괘의 형상과 효의 변수에 따라 자연과 인간의 일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예언적인 의미를 갖는다.
정약용은 《역경》이 지닌 본래 의미로서 '복서' ( 卜筮)의 역할에 주목하여 《역경》이란 인간이 하늘의 명령을 청하여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역경》은 인간이 천명을 받드는 방법이며 이의 목적은 허물을 고치고 선한 데로 나아가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의 윤리적 기능에 있음을 역설하였다.
〔《예기》〕 문자 그대로 '예' 에 관한 기록인데, 대체로 공자의 제자 및 주말(周末) ~ 한초(漢初)까지의 여러 유자(儒者)들의 예에 관한 설을 모은 것이다. 성립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한(前漢)의 대덕(戴德, 大戴)이 214편이나 되는 예의 기록 중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여 《대대예기》(大戴禮記) 85편을 만들었고, 그의 조카 대성(戴 聖, 小戴)이 다시 《대대예기》를 산삭해 《소대예기》(小戴禮記) 49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의 《예기》라고 전한다.
《예기》는 《주례》(周禮) · 《의례》(儀禮)와 함께 3례(三禮)로서 《예경》에 속하며, 한대 이후 오경에 포함되었다. 《주례》를 '예' 의 강령(綱領)으로, 《의례》를 '예' 의 본경(本經)으로, 《예기》를 '예' 의 뜻을 설명한 의설(義說)로 규정하기도 하며, 원대(元代)의 오징(吳澄)은 《예기》 49편을 정경(正經), 의례의 주석, 통례(通禮), 상례(喪禮) , 제례(祭禮), 통론(通論)의 6부분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또 《주례》는 주나라 때의 직관 제도를 기록한 것으로 《예경》의 기준이 되고, 《의례》는 사(士) 계층의 의례로서 실제의 예법에 기준이 된다는 입장도 있다. 이에 비하여 《예기》는 잡다한 문제들을 담고 있지만, '예' 의 원리와 절차 및 구조에 관한 이론적 설명도 포함하고 있어 사상사적으로 가치가 큰 문헌이다. 예를 들어 《예기》의 <곡례>(曲禮) 편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음' [毋不敬]을 '예' 의 기본 정신으로 밝혀 '예' 를 경건함의 심성적 기반 위에 확립하고 있다. 이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의례 절차의 번쇄함과 병행하여 안으로 경건한 심성의 각성과 계발을 강조함으로써 '예' 의 수양론적 역할을 제시한 것이다. 아울러 《예기》에는 <악기>(樂記) 편도 들어 있어 '예' 와 '악' 의 상호 보완적 역할을 통해 정치와 교화의 기본 원리를 밝히는 경전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춘추》〕 노(魯)의 은공(隱公) 원년(기원전 722)에서 애공(哀公) 14년(기원전 481)까지의 12공(公) 242년에 걸친 노나라의 역사 기록이다. 《춘추》는 오경 가운데 공자의 편찬이 가장 확실한 경전이며,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지음으로써 인륜을 어지럽히는 신하와 자식(亂臣賊子]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고 하였다. 이는 강상(綱常)의 도덕 질서가 붕괴된 춘추 시대의 혼란한 현실을 공자가 엄중하게 비판하여 의리 정신을 밝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춘추》의 경전 본문은 1800여 조(條)의 기사로서 1만 수천 글자에 지나지 않지만, 공자는 이에 대해 독자적인 역사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필삭(筆削)을 가하였다(春秋筆法). 따라서 《춘추》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사건에 의탁하여 의(義)를 피력한 명분의 책이다. 즉 공자는 엄밀한 의례에 따라 한 글자 한 구절에도 포폄(褒貶)을 가함으로써 《춘추》에는 공자의 미언 대의(徵言大義)가 담겨져 있다.
《춘추》에 담긴 공자의 정신을 해명하는 것이 춘추학(春秋學)이다. 《춘추》에는 《좌전》(左傳) · 《공양전》(公羊傳) · 《곡량전》(穀梁傳) 등 세 가지 전(傳)의 해석이 있는데 이를 '춘추 삼전' (春秋三傳)이라고 한다. 《좌전》은 춘추 대의(春秋大義)를 역사적 · 실증적으로 구명한 것이며, 《공양전》과 《곡량전》은 이를 철학적으로 구명한 것이다. 이에 주자는 《좌전》을 사학(史學)으로, 《공양전》과 《곡량전》을 경학이라고 파악하였다. 이 중 《공양전》에서 제시된 '춘추대일통' (春秋大一統)의 의리는 중화주의(中華主義) 이념을 제공하였고, '삼세이사설' (三世異辭說)은 공양학파에 의해 역사 변혁론으로 드러났다. 그 밖에 송대 호안국(胡安國)의 《춘추전》(春秋傳)을 《춘추호전》(春秋胡傳)으로 높임으로써 '춘추 삼전' 과 합쳐서 '춘추 사전' (春秋四傳)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 《대학》 ; 《맹자》 ; 《서경》 ; (중용》)
※ 참고문헌  朱熹, 《四書集注》 朱自清, 《經典常談》 權近, 《入學圖說》/ 琴章泰, 《유학 사상의 이해》, 집문당, 1996. 〔琴章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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