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신학

死神神學

[라]theologia de mortos Deo · [영]theology of death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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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에 반대하는 사신 신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하느님을 임의로 이러저러하다고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에 반대하는 사신 신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하느님을 임의로 이러저러하다고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하느님이 죽었다고 선포하는 현대 신학의 한 부류. 주로 미국 프로테스탄트 계통에 속하는 젊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한 신학으로서, '신 죽음의 신학' 이라고 풀어 말하기도 한다.
[배 경] 제1 ·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유럽과 미국 사회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는 세속화된 사회가 되었는데, '사신 신학' 은 이런 사회 ·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과연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에 미국에서 태동한 사신 신학은 사실상 하느님을 부정하며, 신 없는 신학 특히 하느님 없는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이 예수 안에서 전적으로 인간이 되 었으므로 더 이상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신이란 무의미하며, 역사적 예수에 대한 투신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죽음에 대한 논의는 2세기경부터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사상의 뿌리는 19세기의 포이어바흐(L. Feuerbach, 1804~1872), , 헤겔(G.W.F. Hegel, 1770~1831), 니체(F. Nietzsche, 1844~1900) 등에게서 찾을 수 있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D. Bonhoeffer, 1906~1945)의 사상도 이러한 신학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 신학자로는 《급진 신학과 신의 죽음》(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1966)을 함께 저술한 해밀턴(W. amilton)과 알타이저(T.J. Altizer)를 들 수 있으며, 반 뷰렌(P.M. van Buren)과 바하니안(Gabiel Vahanian) 등의 신학자들도 유명하다. 그리고 《급진 신학과 신의 죽음》은 미국 프로테스탄트에 사신 신학의 출발을 알린 책이 되었다.
〔사상의 발전〕 사신 신학의 철학적 뿌리를 제공한 사람들 중 하나인 헤겔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죽음' 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속적 사람들 안에 내재(內在)하게 됨으로써 더 이상 순수하고 추상적인 영(靈)이기를 멈추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니체는 이보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철저하게 부
정하였는데, 그는 "신은 죽었다. 인간들이 신을 죽였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로워졌으며 스스로가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었고, 인간의 역할은 스스로 초인(超人, Übermensch)이 되는 것뿐이다. 또 인간은 역사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하느님의 시체 위에 역사를 세운다. 십자가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 승리의 상징이다.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K.H. Marx, 1818~1883)는 형이상학이 하느님에게 부여한 모든 속성들을 인간에게 부여하였다. 그들에게 신학은 철저하게 인간학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뿌리 외에 본회퍼의 사상이 끼친 영향도 크다. 본회퍼는 '성년' (成年)이 된 인류는 초자연적인 신이라는 전통적인 견해 없이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종교' 란 개인의 영혼에 대한 관심 또는 세계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의미한다. 이제는 전통적인 신이 없이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되, '하느님 없이' 사는 인간의 자율 운동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성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와 함께 있는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는 신이다(마르 15, 34). ··· 하느님은 이 세계에서 약하고 무력하다. 그것이 그가 우리와 함께 우리를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다····이것이 아마도 세속적 해석의 출발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본회퍼는 이런 식으로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를 주장하였고, 종교에 대한 세속적 해석을 견지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을 주장하였던 것은 아니다. 비록 성인이 된 세계는 성인이 되지 않은 세계보다 무신성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때문에 성인이 되지 않은 세계보다 더욱 하느님에게 가깝다고 보았다. 이러한 본회퍼의 입장은 영국의 신학자 로빈슨(J. Robinson)의 저서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1963)를 거치면서 세속주의 신학의 발생에 영향을 끼쳤으며, 세속주의 신학은 다시 사신 신학의 토대가 되었다.
〔주요 신학자〕 해밀턴 : 본회퍼가 옥중에서 저술한 《저항과 복종》(Widerstand und Ergebung, 1951)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해밀턴은 40세 무렵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근거들이 상실되는 것을 느끼면서, 현대는 더 이상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인간 예수에 대한 전적인 복종만이 요구될 뿐이라는 논지를 폈다. 그에 의하면, 신의 죽음은 과거 200여 년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 · 문화적인 사건이었다. 개인의 역사든 인간 전체의 역사든 이제 더 이상 인간은 하느님과 관련하여 아무런 의미를 체험하지 못한다. 이러한 역사 · 문화적 상황을 꿰뚫는 신학자들을 그는 "하느님 없는 사람, 하느님의 귀환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그가"경배와 찬양을 받던 하느님이 이제는 죽었다"라고 한 말은 하나의 은유이지만, 당시 유럽과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말이다. 하느님의 죽음이라는 은유는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즉 하느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매인 사람, 그리스도가 복종했듯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일 뿐이다. 해밀턴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고 예수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하느님이 죽는 시간이 예수에 대한 복종의 시간이다." 예수에 대해 복종한다는 것은 예수가 인간 공동체에 사랑으로 봉사했던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존재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재(不在)에 대한 인식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동·돈 · 정치 · 섹스의 한복판에 있는 이웃에게서 예수를 발견하고자 하고, 이웃이 필요로 하는 모든 순간에 "예수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가 되는 곳에서 "예수는 세상의 주님이 된다. 그의 현재의 주권은 고난과 봉사로 감추어진 형태를 하고 있으나 도래할 그의 주권은 승리와 권능의 형태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해밀턴은 하느님의 죽음의 시대, 혹은 하느님의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하느님의 도래' 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알타이저 : 그는 세상에서 초월적이고 전능한 심판자와 같은 전통적인 신 개념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하느님은 더 이상 인간 저 너머의 세계,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초월의 세계에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세상 안에 내재하는 존재, 인간안에 있는 세속적 존재이다. 즉 하느님이 초월의 세계에 머무르며 침묵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실존 속에서 죽었다." 이것은 "최종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죽었을 때 하느님도 함께 죽었으며, 하느님의 죽음은 철저한 '자기 비움' (kenosis)의 행위였다. 이러한 하느님의 죽음은 그 자신의 행위이며, 하느님은 "세상에서 구속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서 죽었다." 하느님은 스스로 주권과 초월성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인간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초월자로서의 하느님은 죽고 내재자로서의 하느님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자기 부정 사건은 예수에게서 일회적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안에서 점진적이고 발전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실현된다.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완전히 들어감으로써 원초적인 신은 그 본래의 생명과 능력을 스스로 비우고 점차 "텅 비고 외딴 존재" 즉 "생명력 없는 무" 로 퇴각한다. 그 과정은 종말론적인 목표를 향하여 끝없이 움직여 나간다. 하느님의 본래적인 죽음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성의 완전한 몸으로 향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부활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는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환호한다. 단지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죽음을 알고 만끽한다고 한다. 알타이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만이 하느님이라는 원초적인 실재에 종말을 고하는 그리스도의 육화를 안다. 그리스도 안에서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 죽고 완전히 육화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다. 그에게 있어 "신학이란 옛 자아와 옛 모습을 청산하고 참으로 우리 시대에 말할 수 있는 신학적 언어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었다. 또 신학은 "옛 것을 파열시키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해밀턴처럼 알타이저도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며 낙관적이다.
반 뷰렌 : 그는 언어학적 분석의 영향으로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현대는 더 이상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으며, 하느님은
현대인에게 기껏해야 초자연적인 세계를 생각나게 해주는 정도의 죽은 언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 이른바 '절대자의 해체' 로 묘사할 만하 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절대자를 가정하고서 활동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간주되어 온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 이다. 신앙의 언어가 각자에 대한, 그리고 각 사물에 대한 인간들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 시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는 한편에서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의 비신화화 (非神話化)를 중요시하였지만, 불트만이 말하는 하느님에 관한 언어 역시 현대 문화의 지배적인 기질을 반영하지 못하였다고 보았다. 현대의 문화에서는 주로 논리학과 수학의 형식적인 언어와 경험적 자료에 근거한 언어가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전통적인 신에 관한 언어는 죽은 언어이기 때문에 무신론이냐 유신론이냐 하고 따지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다. '하느님' 에 관한 학문이 의미가 있으려면 '삶' 에 관한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그는 하느님 진술을 인간 진술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에 관한 진술만이 탐구와 입증의 대상이 되며, 따라서 현 세대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윤리를 중시하는 가운데 역사적 예수를 재발견하고 복음을 세속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신학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그는 신학이 윤리로 변형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복음을 전체적으로 역사적이며 윤리적인 언어로 해석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유 속에서 이웃과 화해하고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의 방식이다. 예수에 의해 자유로워진 제자들의 삶의 경험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탁월한 자유인"이다. 이런 식으로 반 뷰렌은 자신의 저서 제목처럼 《복음의 세속적 의미》(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3)를 찾으려 하였으며, 결국 그는 유신론적인 형태의 그리스도교보다는 휴머니즘적 형태의 그리스도교 신학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바하니안 : 그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문화적으로 타당성을 잃게 된 이유에 대해서 분석을 하였다. 현대는 하느님이 하나의 문화적 장식이나 인간의 이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죽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현대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사멸한 이후 시대" 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바하니안도 사신신학자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그러나 논문집 《다른 신은 없다》(No Other God, 1966)를 출판한 이후 그는 칼뱅주의적인 하느님,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주권의 하느님을 강조하면서 점차 사신 신학과 멀어졌다.
[영향과 평가] 사신 신학의 흐름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러한 논쟁은 아이스(J.L. Ice)와 캐리(J.J.Carey)가 공동 편집한 《신 죽음에 관한 논쟁》(The Death
of God' Debate, 1967)과 오글레트리(T.W. Ogletree)가 저술한 《신 죽음 논쟁》(The 'Death of God' Controversy, 1966)등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의 신학은 1970년대에 들어서 더 이상 발전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결국 1960년대 미국의 신학계를 풍미했던 하나의 신학 사조로 그치고 만 셈이다.
사신 신학자들의 태도를 무신론적이니 또는 적어도 그리스도교적 무신론자들이라고 비판하기에는 그들의 태도에 진지한 면도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신학을 그리스도론으로, 또 더 나아가서 역사적인 예수를 중심으로 한 인간론 내지는 인간학으로 끌어내릴 위험이 크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인들 역시 무신론자라는 누명을 썼었다. 그래서 장기간에 걸쳐서 박해를 받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하느님관(觀)이 당시 로마인들의 신관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무신론자들로 처단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에 '하느님의 죽음' 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아마 그 근본적 저의가 지금까지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사신 신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이제 앞으로는 하느님을 임의로 이러저러하다고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또 앞으로 신학자들이 현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상(像)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인식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고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과 종교간의 대화를 위해 보다 바람직한 해결책과 접촉점을 지니게 될 것이며, 가톨릭의 신학이 고립되지않을 것이다. (→ 교의 신학 ; 본회퍼 ; 허무주의)
※ 참고문헌  정달용, <사신 신학>, 《신학 전망》 16호(1972. 3), 대건신학대학 전망 편집부, pp. 2~91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두란노서원, 1995/ 프리츠 부리, 변선환 역, <현대 미국 신학》, 전망사, 1988/S.P. 쉴링, 조만 역, 《무신론 시대의 하나님》, 현대사상사, 1982/ W.Hamilton, <급진적 신학의 자세>, 《기독교 사상》 99호(1966. 7)/ T.J.Altizer · W. Hamilton,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God, New York,Bobbs Merrill, 1966/ T.J. Altizer, The Gospel of Christian theism,Philadelphia, Westminster, 1966/ P.M. van Buren, The Secular Meaming of the Gospel, The Macmillan Co., 1963/ G. Vahanian, The Death of God :The Culture of Our Post-Christian Era, New York, Braziller, 1961/ J.L. Ice. J.J. Carey eds., The Death of God Debate, Philadelphia, Westminster, 1967/ T.W. Ogletree, The Death of God Controversy, Nashville, AbingdonPress, 1966. 〔李贊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