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 미술에서 실재의 모사(模寫)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개념. 자연이나 현실 생활을 정확하고 자세하며 꾸밈이 없이 묘사하는 예술적인 경향을 말한다.
〔의 미〕 좁은 의미로 볼 때 사실주의는 양식 개념상 주로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회화의 경향을 지칭한다. 그러나 본래적인 의미의 사실주의는 프랑스의 전통주의 미술과 그 규범적인 미학, 그리고 역사화가 최고로 지향하는 대상의 위엄성을 부여하는 표현 등에 대응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움직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사실주의는 이상주의의 모든 형식을 거부하고 일상 생활의 일부분으로서의 평범한 실재를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흔히 자연주의(naturalism)와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비예술적이며 주변 세계에 대한 관찰을 그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와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사실주의는 주변 세계를 관찰함에 있어서 사회적인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 사회에 대해 계몽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가 동 시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과 고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자연주의는 실재를 올바로 묘사하기 위한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자연주의는 모든 양식에 있어서 대상을 마치 실재처럼 환상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의 일종인데, 이는 사실주의의 한 표현방법이다.
〔유래와 배경〕 주변 세계와 대상에 대한 높은 의식과 비판적인 자세로서의 사실주의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은 단순히 19세기의 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이전의 미술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용어상의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사실주의는 중세 말기나 초기 르네상스 미술에서도 볼 수 있으며, 또 회화의 장르에서 볼 때 초상화나 풍경화 그리고 자연을 소재로 한 스케치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이전의 미술에 사실주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운 까닭은, 19세기 이전의 그림은 그 목적이 실재를 알려 주는 내용을 지니지 않았으며 또 주변 세계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재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사실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관찰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배경에는 과학적인 실증주의의 역할이 컸다. 그뿐 아니라 유럽은 1848년 2월에 마르크스(K.H. Marx, 1818~1883)의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이 발표되면서 국제적인 혁명 기운에 들떠 있었고, 따라서 조형 미술에도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새로운 주제가 도입되었다. 예컨대 노동자 역시 충분한 재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이와 같이 19세기에 등장한 양식 개념으로서의 사실주의는 1855년에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개최하였던 '사실주의, 귀스타브 쿠르베' (Le réalism, G. Courbet)라는 전시에서 유래하였다.
〔화가와 작품들〕 쿠르베는 <화실>(Atelier, 1854~1855)이란 작품을 1855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는 작품전에 출품하려 하였지만 거부당하자, 몽테뉴거리에 임시 천막을 짓고 다른 작품과 함께 개인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7년 동안에 걸친 나의 예술 생활의 한 시기를 결정하는 현실의 알레고리" (Allégorie réelle)라는부제처럼 <화실>은 쿠르베의 예술 생활에 하나의 선을 그음과 동시에 미래의 방향도 암시하고 있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작품 오른쪽 어두컴컴한 곳에 재현한 보들레르(C.P. Baudelaire,1821~1867)와 샹플뢰리(Champfleury, 1821~1889)와는 멀어지기 시작한 반면에, 그림 중앙에는 화가 자신의 고향인 오르낭(Ornans)의 풍경을 그렸고, 그 옆에는 누드 모델을, 또 발치에는 동물을 생생하게 그려 놓아 이제부터 그가 다루어 나갈 작품의 주제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후 쿠르베는 노동자, 자연, 동물들의 거친 본능과 도발성, 직접적인 삶에 대한 과격한 태도 등 추한 것과 일상적인 것을 함께 표현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당시 쿠르베는 한 선언문에서 전시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예술을 위한 예술' (1'art pour 1'art)과 형식주의(acade-micism) 그리고 불분명한 추상적인 내용을 지니는 미술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회화 작품이란 구체적인 미술을 뜻한다. 회화는 실재로 존재하는 사물을 재현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회화는 물리적인 언어이며, 이 언어는 가시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단어로 구성된 것이다. 볼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추상적인 주제는 회화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쿠르베의 이론이 크게 과격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그림에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주제에 대한 세부 묘사, 또 렘브란트(H. van R. Rembrandt, 1606~1669)와 할스(F. Hals, 1581/1585~1666) 그리고 벨라스케스(D.R. de S. Velazquez, 1599~1660)의 명암 표현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쿠르베의 작품 전시회가 1869년에 독일 뮌헨에서 열리자, 그의 그림들은 당시의 형식주의와 역사주의 회화에 염증을 느낀 젊은 화가들로부터 절찬을 받았으며, 특히 라이블(W. Leibl, 1844~1900)은 쿠르베를 모범으로 삼아 무산(無産) 계급(proletariat)층의 노동자 표현에서 벗어나 농가와 전원 생활을 주제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멘첼(A.F.E. von Menzel, 1815~1905)과 리버만(M. Lieberman, 1847~1935)의 초기 작품들이 독일의 사실주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주의 화가로 프랑스에서는 밀레(F. Millet, 1814~1875)와 도미에(H.-V. Daumier, 1810~1879) 그리고 바르비종(Barbizon)파의 작가들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풍자화가로서의 도미에는 사회적 현실을 재현함에 있어서 다소 과장되면서도 단순화된 표현을 남김으로써, 그의 그림은
보다 강한 호소력으로 인해 낭만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에서 거의 서사시와 같은 기념비적인 특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미에의 사회적인 열정은 쿠르베보다 더 깊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도미에의 그림이 사실에 충실하기보다는 '인간적 조건' 의 비유라는 형식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의 성향을 보여 주는 영국 작가들로는 1848년에 프레-라파엘라이트' (Pre-Raphaelite)라는 그룹을 결성한 로제티(D.G. Rossetti, 1828~1882) , 헌트(W.H. Hunt, 1827~1910), 밀레이(J.E. Millais, 1829~1896)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반형식주의적인 예술 의욕은 로마의 '루카조합' 을 모범으로 하여 라파엘로(S. Raffaello, 1483~1520)이전의 이탈리아 화가들이 보여 준 반인위적인 자연성을 추종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표현의 일차적인 의미는 선이었으며, 색채는 그 하위에 두었다. 주제는 대도시 사람 · 노동자 · 이민자 등 다양한 대상이 재현되었고, 종교적인 내용이나 중세의 동화 혹은 영웅 이야기 등이 주제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특히 1850년에 밀레이가 그린 <부모 집에서의 그리스도>(Chist in the House ofhis Parents,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는 성가정에 대한 지나친 사실적 묘사로 당대에 큰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 가톨릭 미술 ; 회화)
※ 참고문헌 Ursula Hatje ed., Knaurs Stilkmde. Von der Antike bis zur Gegemwart, Munchen · Zuirich, 1963, pp. 390~391/Malerei. Lexikon vonAbis Z, Lingen-Verlag, Köln, 1986/ H.W. Janson, Art of the Nineteenth Century, Painting andSculpture, London, 1984, p. 223. [洪珍卿]
사실주의
寫實主義
〔라〕realismus · 〔영〕re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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