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1사무 9-31장). 구약성서에 약 400번 정도 언급되어 있으나 신약성서에는 단 한 번(사도 13, 21) 나온다. 구약성서 중에서는 사무엘서와 역대기 상에 주로 등장하며, 시편 18편 · 52편 · 54편 · 57편 · 59편의 표제와 이사야서 10장 29절에도 나온다.
〔생 애〕 이름과 가족 : '사울' 은 '요구된 사람' (the one asked for, requested) 혹은 "야훼께 '바쳐진 사람' " (לְיהוָה שָׁאוּל사무 1, 28)이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사울이라는 이름은 에돔 왕(창세 36, 37 ; 1역대 1, 48-49), 시므온의 아들(창세 46, 10), 레위인(1역대 6, 9)의 이름으로도등장한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키스였으며(1사무 9, 1-2), 사울의 사령관 아브넬은 그의 사촌이었다(2사무 2, 8). 그리고 그의 집에 나귀, 종(1사무 9, 3), 소와 밭(1사무 11, 5)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비교적 부유하였던 것 같다.
사울의 아내는 아히마스의 딸 아히노암이었고 첫째 아이로 딸 메랍을 두었으며 그 다음엔 요나단, 이스위, 에쉬바알, 말기수아, 작은딸 미갈 등이었다(1사무 14, 49- 51). 사무엘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울의 다른 자녀들 이름과 함께 아비나답(Ahimadb)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1역대 8, 33 ; 9, 39)으로 보아 그에게는 5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등극 :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약 200년 간 지파 동맹 체제를 유지하며 살았는데, 불레셋은 에벤에젤과 실로를 점령하고 계약의 궤까지 빼앗아 갔으며(1사무 4장), 중앙 산악 지대를 장악하고 기브아에는 수비대를 두었다(1사무 10, 5 ; 13, 3). 또한 불레셋이 철을 독점하고 있어 이스라엘은 철로 된 무기들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농기구들조차도 전적으로 불레셋에 의존하여야 했다(1사무 13, 19-22).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이웃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된 이스라엘 민족은, 비효율적인 지파 동맹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왕국 체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사울이었다. 사울은 키가 크고 잘생긴 청년이었는데(1사무 9, 2 ; 10, 23), 그가 왕이 된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가 암 나귀를 잃어버려서 사울이 종을 데리고 암 나귀를 찾아 나섰다가 사무엘을 만나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지명되었다는 이야기(1사무 9, 1-10. 16)이며, 둘째는 사무엘이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두 모이게 하여 제비뽑은 결과 사울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이야기(1사무 10, 17-24)이다. 그리고 셋째는 사울이 암몬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물리친 공로를 인정받아 길갈에서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이야기(1사무 11장)인데, 이 등극 기사에는 판관 시대의 카리스마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1사무 11, 6).
사울의 주요 전쟁들 : 사울은 왕이 된 후 큰 전쟁을 네 차례 치렀는데, 첫 번째 전쟁은 불레셋과의 전쟁이었다 (1사무 13-14장). 불레셋은 믹마스(Michmash)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게바(Geba)에 진쳤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의 주도로 이스라엘 군대는 불레셋 집결지를 급습하여 승리하였으며, 이스라엘은 불레셋을 아얄론(Ajalon) 골짜기까지 내쫓았다(1사무 13, 31). 이 전쟁에서 불레셋 군대가 놀라고 공포에 사로잡혀 자기편끼리 서로 쳐죽인 것(1사무 14, 15. 20) 등은 출애굽과 판관 시대의 야훼 전쟁 형태를 연상시킨다. 두 번째 전쟁은 아말렉과의 전쟁이었는데(1사무 15장), 이스라엘은 델라임(Telaim)에 집합하여 아말렉 성을 점령하고 하윌라에서 시작하여 이집트 동쪽에 있는 수르까지 따라가며 쳤다. 세 번째 전쟁은 불레셋과의 전쟁이었다(1사무 17장). 불레셋은 에베스담 밈(Ephes-Dammin)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엘라(Elah, 느티나무)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쟁을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하여 갓(Gath)을 지나 에크론(Ekron) 성문까지 추격하였으며, 이때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1사무 17, 12-51). 마지막 전쟁 역시 길보아(Gilboa) 산에서 벌어진 불레셋과의 전쟁이었는데(1사무 31장), 이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이 전사하고, 사울의 시체는 벳스안 성벽에 못박혔다가 야베스 길르앗(Jabesh Gilead) 사람들의 도움으로 야베스에 안장되었다(1사무 31, 10-13).
사울과 사무엘 :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고 왕으로 세운 인물이지만 사울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첫 갈등은 불레셋과의 첫 번째 전쟁 때 사무엘이 지내기로 한 제사를 사울이 직접 드린 데서 비롯되었는데(1사무 13, 8-9), 사무엘은 이러한 사울을 책망하면서 "야훼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다시 찾아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령으로 세우실 것이오"(1사무 13, 14)라고 선언하였다. 두 번째 갈등은 사울이 아말렉 족속과 싸울 때 일어났다. 사무엘은 "모조리 없애라"는 야훼의 명령을 전달하였으나(1사무 15, 3) 사울은 제사용으로 소와 양의 일부를 남겨 두고 아각 왕을 살려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무엘은 진노하면서 "야훼께서도 그대를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키실 것이오"(1사무 15, 23)라고 선언하고 사울을 떠나갔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하여 전달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엔도르의 무당을 찾아가 점을 치기까지 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1사무 28, 4-25). 이러한 사울은 신정적 왕국(神政的 王國)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는 부적합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하느님은 그를 버리고 대신 다윗을 선택하였던 것이다(1역대 10, 13-14).
사울과 다윗 : 다윗은 악령에 사로잡혀 시달리는 사울을 치료한 궁중 악사(1사무 16, 14-18)였으며,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다 준 용사(1사무 17, 12- 51)인 동시에 그의 부마였다(1사무 18, 17-27). 그러나 사울은 이러한 다윗이 자기의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다윗의 뒤를 밟으며 죽이려고 하였다(1사무 19, 9-12 : 22, 6-23 : 23, 24-28 ; 24, 1-22 : 26, 1-25). 사울과 다윗은 극히 대조적인 모습으로 성서에 등장한다. 사울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불신앙적인 왕, 그래서 버림받는 부정적인 왕의 표본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다윗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모든 일을 하느님께 물어 본 다음 그 지시대로 행동하는 신앙적인 왕,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왕으로 나타난다(1역대 14, 10 ; 2역대 7, 17). 그렇지만 사무엘서는 사울의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적적인 면도 기록하고 있으나(1사무 9, 2 ; 11, 1-15; 14, 47-48) 역대기는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불레셋과 싸우다가 전사하는 장면만을 기록함으로써(1역대 10장) 사울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역대기가 전해 주는 사울 이야기는 그의 뒤를 이은 다윗 왕을 위한 준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울과 그의 왕국에 대한 평가] 사울 왕국은 판관 시대와 본격적인 왕국 시대의 중간 시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중간 시대적인 특성은 국가 조직의
허술함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사울은 기브아를 수도로 정하고 거기에 상주하였다. 기브아의 그의 거처는 궁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요새이며 사령부 같았다. 그에게는 상비군이 있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고, 지휘관도 그의 조카인 아브넬만이 있었을 뿐이었으며 관료 제도나 행정 조직도 전혀 발달하지 못하였다. 또한 강제 노동이 나 과중한 세금 부과도 없었으며, 그는 궁궐도 짓지 않았고 많은 후궁도 두지 않았다. 말하자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내부 구조를 그는 전혀 변화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 기회가 없었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그런 변화를 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외적으로는 왕정 체제를 갖추기는 하였지만 내적으로는 지파 동맹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왕의 권한 (1사무 8, 10-17)에 나타난 부정적인 왕의 모습과는 다른 긍정적인 왕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첫 번째로 그는 숙적인 불레셋을 두 차례나 물리침으로써 불레셋의 기세를 꺾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숙적인 아말렉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을 늘 괴롭히던 모압, 암몬, 에돔, 소바 등도 제압함으로써(1사무 14, 47)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두 번째로는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왕조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시킴으로써 그의 뒤를 이은 다윗이 튼튼한 왕국 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주었다. 이와 같이 사울은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야훼와의 관계에서 실패함으로써 불합격 판정을 받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사무엘 1서 13장 1절의 본문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기원전 1020~1000년 사이에 약 8~ 10년 정도 다스렸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 다윗 ; 사무엘서)
※ 참고문헌 임태수, <비극의 왕 사울>, <살림> 23호, 1990/ -,<민중 편에 선 신명기사가의 통치 이데올로기>, 《신학 사상》 65 · 66호, 한국신학연구소, 1989/ 一, <역대기의 다윗상>, <신학 사상》 49호, 1985/ 장일선, 《다윗 왕가의 역사 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1997/J. Bright, A History of lsrael, Philadelphia, 1971(김윤주 역, 《이스라엘의 역사》, 분도출판사, 1983)/ A.H.J. Gunneweg, Geschichte Israels bis Bar Kocha, Stuttgart, 1972(문희석 역, 《이스라엘 역사》, 한국신학연구소,1981)/ 박종수, 《구약성서 역사 이야기》, 글터, 1996/ J. Blenkinsopp,The Quest for the Historical Saul, No Famine in the Land, J.W. Flanagan . A.W. Robinson eds., 1975/ W. Dietrich, Die fruihe Konigszeit in Israel, Stuttgart, 1997/ D.V. Edelman, 《ABD》 5, pp. 989~998/ D.M. Gunn, The Fate of King Saul, 1980/ W.L. Humphreys, The Tragedy of King Saul : A Study of Structure of 1 Samuel 9~31, (JSOT) 6, pp. 18~271 J.M. Myers, Saul Son of Kish, 《IDB》4. 〔任太秀〕
사울
〔히〕שָׁאוּל · [그]Σαοὺλ · [라 . 영〕S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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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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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왼쪽)과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