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계시

私的 啓示

[라]revelatio privata · [영]private reve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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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계시는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자기 계시(왼쪽)이며, 파티마의 메시지는 사적 계시이지만 모든 교회와 세상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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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계시는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자기 계시(왼쪽)이며, 파티마의 메시지는 사적 계시이지만 모든 교회와 세상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계시이다.

특수하거나 특별한 경험 예컨대 발현(apparentia) . 환시(visio), , 들음(auditio), 예언 등과 같은 현상들을 통하여 개인에게 전해진 계시. 공적 계시와 반대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는 교회 내의 환시를 보는 이들과 예언자들과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에게 빈번히 나타났었다.

I . 정 의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 형태와 방법에 있어서 사적 계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공적인 계시와는 구별된다. 공적 계시는 어떤 개인의 구원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교회의 활동과 업적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자기 계시이며, 그리스도인에게 규범이 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는 사적 계시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묵시적으로는 공적 계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하지만 사적 계시 중에서도 파티마(Fatima, 1917)나 루르드(Lourdes, 1858) 등의 메시지는 단순한 사적 계시라기보다는 모든 교회와 세상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수한 계시이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사적 계시를 '특별' 혹은 '특수' 계시라고 불렀다(ⅡConcilio di Trento, sess. Ⅵ, Decretum de giustification, cap. 12, 16 ; DS 1540, 1566).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교적인 구원의 계약은 결코 폐지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1디모 6, 14 : 디도2, 13) 어떠한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계시 4항)고 단언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사적 계시들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적 계시라도 그것 역시 하느님 섭리의 영역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조건 경시해서는 안된다. 라너(K. Rahner) 역시 사적 계시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어떠한 계시라도 필연적으로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 베네딕도 14세(1740~1758)는, 공적 계시가 사도들이나 예언자들을 특별한 수취인으로 가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개인 자격으로 메시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자격에 의해 계시를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하느님의 말씀은 공동의 선익을 위해 교회에 전해진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에 위탁된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공적 계시는 교회가 복음을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결정적인 진리로서 엄숙하게 선언할 때나 그것을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제안할 때 신적 오류를 범할 수 없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적 계시는 그렇지가 않다. 교회의 승인을 받은 사적 계시들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사적 계시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인 면에 있다. 즉 교의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준 진리 이외의 다른 진리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공적 계시의 내용을 변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적계시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한 계시를 수정하거나 그것을 능가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고 언급하였다(67항).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적 계시의 영감과 메시지가 진정 하느님으로부터 오는지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교도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사적 계시들에 대한 교회의 동의를 나타내는 선포는 그것들이 가져다 주는 신자들의 교화와 유용성을 심사숙고한 후에 내리는 하나의 허가일 뿐이다. 그것들이 비록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신앙의 보편적인 동의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해 볼 때 믿을 수 있다는 동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분류와 가치 평가] 분류 : 라너는 사적 계시를 두 가지, 즉 최종 목표를 개인적인 것에 두는 '신비적 계시' 와 공적인 목표를 갖는 '예언적 계시' 로 분류하였다. 전자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1515~1582)와 성 십자가의 요한(1542~1591)처럼 개인의 영성 생활을 완성시키는 경우이며, 후자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은사를 받았던 사람들의 경우나 루르드, 파티마의 성모 발현처럼 공동체의 선익을 목표로 하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사적 계시는 개인이나 개인적 영성 생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록 사적인 것이지만 계시의 수취인들을 통해 교회와 연결된다. 그리고 교회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적 계시는 교회론적인 성격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사적 계시의 의미와 가치는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특히 교의 신학 · 기초 신학 · 성서학에서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윤리 신학이나 교회사, 심지어는 가톨릭 신비주의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그 이유는 사적 계시의 내용에 대한 신빙성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의 계시는 공적 계시에 의해 완성되었으므로 사적 계시를 단지 영원한 진리인 공적 계시를 상기시키는 부수적인 요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도권 역시 사적 계시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시의 사적인 면이 교회의 삶에 있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면 아르크의 요안나(Joanna Arcensis) , 시에나의 가타리나(Catharina Senensis) ,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Maria Alacoque) , 그리고 루르드나 파티마의 발현처럼 어떤 특정한 여건의 교회에 예언자적인 조언이나 교훈을 주는 특수 사건들을 통해 사적 계시의 유용성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가치 : 사적 계시는 비록 신앙의 내용을 대치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 하더라도 공적 계시의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첫째, 성령에 의한
사적 계시는 시대에 따라 등한시되었던 계시 진리를 다시 인식시키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게 하여 신앙을 완성시키고(요한 14, 25-26 : 계시 5항, 8항) 그리스도인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즉 그리스도의 계시를 명시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 사적 계시는 표징 · 기적 · 치유 등을 통해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앙을 재확인하게 해준다. 즉 현대인이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 천국이나 지옥, 연옥, 종말론, 성인의 통공 등에 대한 교회의 교의를 실제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공헌하며, 예수 성심과 마리아 성심에 대한 봉헌된 마음 을 불러일으킨다. 셋째, 도덕적인 면에서 인간의 의미 ·존엄성 · 자유 · 책임감에 대한 깨어 있는 신앙과 명확한 인식을 갖게 하며,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생명 존중 사상,유산 거부 등)을 확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넷째, 사적 계시는 개인적 · 집단적으로 성령의 은사적인 선물 안에 봉헌심을 자극시켜 회개를 촉구하여 특별하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열정을 줌으로써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 특히 성모의 발현은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회개, 속죄를 강조함으로써 성사 생활의 실천을 일깨운다. 기도와 묵주 기도 역시 권고 사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II . 교회사에 나타난 사적 계시
[성서에 나타난 사적 계시] 성서 안에 나타나는 성령에 의한 계시들은 예언, 환시, 들음, 기적과 같은 현상을 동반한다. 이 중에서 특히 예언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한 성령의 보내심에 의해 건설되며 성령 강림 이후의 예언은 초기 공동체에 필수적인 은사 중 하나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 없이는 교회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시되었다(1데살 5, 19-22 ; 1고린 12-14장). 신약성서의 예언들은 교회 공동체의 선익과 교육을 위한 봉사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예는 사도 행전 안에서 볼 수 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 사도는 환시나 꿈, 예언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의 시대를 선포하였고(사도 2, 16-21), 하느님의 특수 계시에 의한 환시를 보았으며 음성을 듣는다(사도 10, 9-16). 성령의 카리스마적인 선물은 교회 안에서 선교 임무 수행에 대한 의식을 분발시키며 예언자들을 중개자로 해서 말하고 있다(사도 15, 28 ; 20, 23).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며(사도 9, 3-9), 그것을 계기로 회개하였고 계속적으로 계시를 통해 자신의 선교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사도 16, 9 : 20, 23 ; 27,23-24). 또 그는 부활한 예수를 보게 되며(1고린 15, 8), 그가 받은 계시와 환시는 개인적이며 신비적인 것이었다(2고린 12, 1). 요한 묵시록에서는 일곱 교회와 연관된 여러 가지 특수 계시를 다루고 있다(묵시 1, 9-20). 바오로 서간에서는 사도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1고린 12, 28 : 에페 2, 20 ; 4, 11), 하느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이 배우고 격려를 받기 위해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1고린 14, 29-31).
[초기 교회] 2~6세기의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예언이나 발현 등의 사적 계시에 대한 문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두 가지 문헌이 《디다케》(Didache) 헤르마스의 《목자》(Pastor)이다. 《디다케》는 초기 공동체의 예언자들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으며,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를 구별하기 위한 규칙을 정립하고 있다(11, 7-12 ; SC 248, 184-188). 반면에 《목자》는 주로 묵시적인 회개와 속죄를 호소하고 있다. 특수 계시에 중요성을 부여한 교부 중에는 스미르나의 폴리가르포(69~155)와 치프리아노(?~258) 등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환시의 경험을 갖고 있었고, 특히 치프리아노는 밤 또는 대낮에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성령을 받은 소년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Epistola 16, 4)
이 시대에는 수도원 안에서 보여지는 종교적 상상력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막의 교부들은 기도, 속죄, 회개를 할 때나 일상 생활 중에 유혹을 하는 반수 반인(半獸半人)인 마귀의 형상에 대해 언급하였고, 당시의 수도자들은 저 세상의 환시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환시와 영적 체험에 대해 많은 증언을 남겼다.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는 그리스도인이 받은 은사에 환시와 예언을 첨가시켰고(Adversus Haereses, II , 49, 3),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사적 계시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지만 그것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De genesi ad litteram,XII , 13, 28 : PL 34, 465).
[중세 시대] 7~15세기의 중세 시기에 사적 계시에 대한 경험들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의 위대함과 권능, 분노와 은총, 뜻과 계명이 사적 계시를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하였으며, 신구약 성서 시대 이후에도 하느님의 현시가 개인의 삶 안에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는 자신의 저서 《대화》(Dialogus)에서 많은 기적과 그리스도의 발현이나 천사, 사도, 성인들에 대한 환시들에 대해 서술하였다.
중세 시대에 현저하게 나타났던 현상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의 환시인데, 이에 관해 언급된 것만도 100여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여성 환시자들로는 알데 군다(Aldegunda in Malbodio) , 힐데가르다(Hildegarda apud Bingiam) , 제르트루다(Gertruda Helpithi) , 안젤라(Angela da Foligno), 시에나의 가타리나, 비르지타(Brigitta in Suecia) ,율리안나(Giuliana di Norwick), 그리고 프란치스카(Francisca Romae)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책을 통해서 하느님과 통교한 내용들을 전하고 있는데, 특히 바젤 공의회(1431~1437)는 비르지타의 사적 계시에 대한 신빙성을 심사하기 위해 개최되었을 정도였다. 여성 신비주의자들의 출현은 13~ 15세기를 거쳐 유럽 전역에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폴란드에서 스페인까지, 스웨덴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지역은 다르지만 그들이 받은 메시지는 거의 비슷하였으며, 예수의 수난에 대한 환시나 성체 안에 나타난 예수를 봄, 지옥이나 연옥으로의 여행 등을 통한 그들의 메시지 대부분은 예언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사적 계시에 대한 이 시기의 신학자들의 반응은 주로 부정적이었으며, 계시나 환시 특히 환각 현상에 대해 용의 주도한 선별력과 신중성을 보였다.
[근대 · 현대] 16세기 초로 들어서면서 루터와 칼뱅의 '성서 유일' 사상은 사적 계시를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시켰다. 그렇지만 프로테스탄트에서도 18세기 말엽에 신비주의적인 흐름이 나타났다. 사적 계시나 환시는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에게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성녀는 자신의 저서에서 육체적 · 정신적 · 지성적인 눈으로 본 하느님과의 만남을 서술하였으며, 이러한 묘사는 성녀가 살던 그 당시에 전형적이었던 특수한 상상력의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느님은 빛으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름답게 서술 · 표현되었고, 성모 · 성인들 · 천사 등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든 존재들은 백색의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악마나 사탄은 주로 무섭고 경악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지옥에 대해서도 실제적인 것처럼 명확히 서술하였다. 또한 성녀는 환시나 특수 계시의 위험성과 모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가져다 주는 결실의 진가 역시 알고 있었다(Vida 25장 참조) 지옥의 묘사에 대해서는 황홀경이나 신비적인 경험을 많이 한 팟지의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de Pazzis, 1566~1607)가 유명하다.
아빌라의 데레사와는 달리 십자가의 요한 등 스페인의 다른 신비주의자들은 사적 계시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거나 완전히 다른 경향을 보였다. 십자가의 요한은 환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황홀경, 내적인 언어, 감정 등 사적 계시의 선별력에 대해 말함으로써 실질적인 가르침을 주었는데, 그에 의하면 영혼은 특수한 현상들을 찾거나 그러한 것들을 받기를 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순수 신앙 안에서 실현되는 하느님과의 결합을 방해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였으며,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날 때에는 그것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이나 새로운 어떤 것을 찾으려고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단언하였다(Subida, 2, 22-32). 그러나 십자가의 요한이 말한 것은 공동체를 위한 예언적인 계시 현상이라기보다는 개인 중심적인 신비적 계시 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교의 면에서 특수한 현상들을 다룬 글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그라비나(D. Gravina)의 《거짓 환시에 대한 식별》(Ad discernendas veras a falsis visionibus), 반데르 상트(M. van der Sandt)의 《신비 신학의 열쇠》(Pro Theologia mystica clavis) , 스카라멜리(G.B. Scaramelli)의 《신비 지침서》(Ⅱ Direttorio mistico)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승천 이후 예수의 발현과 하느님, 성모 그리고 성인들의 발현에 대한 해석을 다룬 책으로는 수아레즈(Francesco Suarez)의 《천사론》(De Angelis)을 들 수 있다. 한편 이 시기에 나타났던 교회의 신앙을 흔들었던 수많은 발현과 사적 계시에 대해 교회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것이 곧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이다. 이 공의회에서는 교회 안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인 사적 계시나 발현들에 대해 공개하거나 선포할 때 반드시 교황청의 심사를 받아야 하며, 사정이 급할 경우에는 지역 주교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sess. 11, Conciliorum oecumenicorum decreta)고 발표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어떠한 새로운 기적이라도 주교의 승인 없이는 인정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그리고 기적들에 대한 정보가 입수되면 즉시 진리와 신심 행위의 규칙에 따라 신학자와 신심이 돈독한 신자들의 조언을 얻고, 그 지역 주교는 이 논쟁을 해결하기 이전에 다른 주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표명하였다(sess. 25, ConciliodiTrento) .
이전의 계시가 교부들이나 성인 성녀들과 같은 종교인 그리고 사제들에게 일어났던 것이라면, 19~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주로 소박하고 나약한 여인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나타났다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하느님 · 예수 · 천사들과의 통교에 있어 그리고 탈혼이나 지성적인 환시,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는 등의 형태와 성모 발현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사적 계시 중에서도 예언적이고 은사적인 특별한 형태이다. 루르드나 파티마의 성모 발현 메시지들은 복음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복음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 자체는 아니므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代置)할 수는 없다. 사적 계시에서 기인하는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계시된 공식적인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한다. 다만 교회사 안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적 계시들은 역사 안에서 정진하는 교회의 특수한 상황들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것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현 시대의 현황] 일반적인 현황 : 현 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 사적 계시들이 증가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것은 오늘날이 '사상' 이나 '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붕괴' 로 걷잡을 수 없는 다원주의적 불확정 시대임을 의미한다. 물질주의와 이성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사람 들은 '보는 것' , '손으로 만지는 것' 그리고 '직접 경험하는 것' 을 원한다. 이러한 흐름은 초월적 존재로부터 오는 새로운 계시(사적 계시)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신흥 종교들을 탄생시키고 있으며, 그들은 저 세상에서 오는 '스승' , '천사' , '영들' 그리고 '예수' 와 같은 인물들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이 러한 계시들은 발현이나 예언 등 특수하고 카리스마적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 밖의 신흥 종교들, 심령주의나 뉴 에이지(New Age)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많은 현상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책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그들이 받은 메시지가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그것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접촉하였다는 계시의 중개자는 주로 종교인(사제, 수도자), 평신도, 예언자, 샤먼(shaman) 그리고 영매(靈媒)들로서 사회적 모든 계층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몰아경(沒我境)에 들어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받으며, 계시를 받은 사람들은 큰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되고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이나 공동체가 생긴다.
교회의 현황과 시대적 징표 :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하느님이나 예수 아니면 천사, 성인 성녀들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마리아의 발현과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종교적으로 도외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거의 매일 새로운 발현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발현들은 교회의 권위 (지역 주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가톨릭 교회 안에 알려진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발현들은 명시적으로 거부당하고 있다. 실제로 마리아에 대한 신심과 봉헌들은 최근에 나타나는 발현과 그것의 메시지에 관계되는 것인데, 이것은 특별히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의 현상과 동조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보고, 느끼고, 만지고 하는 경험적인 것과 감정적 · 이상적인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감동주의' 로의 전환이다. 그래서 현대에 많이 나타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특수한 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가 처한 여건을 고려할 때 침묵만을 지킬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인 징표와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정밀한 분석을 하여야 하며 또한 신학적인 연구와 반성도 필요하다.
많은 사적 계시들과 발현 등은 현 시대에 시대적 징표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완수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사목 4항). 시대적 징표를 읽어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므로(마태 16, 3 ; 12, 38-39)시대의 징표에 대한 책임을 맡은 교회는 다양한 문화와 삶에 대해 계속적인 주의를 기울이고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대의 징표들은 어떤 면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시대적 징표를 직감하고, 해독하고, 그것들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을 제시해 주는 예언직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시대적인 징표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그것 안에 계시된 진리를 더욱 잘 터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적 징표를 하느님 말씀의 빛으로 읽고 해석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시대적 징표 안에 나타나는 사건을 무조건 다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나타나는 사적 계시나 발현들(특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고(요한 16, 14) 교회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구축하며(에페 2, 22) 그 사건들의 모든 징표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귀의(1, 10)될 때, 비로소 신학적인 면에서 시대적 징표로 인정되며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자 공동체는 시대적 징표를 읽고 해석하고 선별력을 가지고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시대적 징표를 창조해야 할 주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새 소식을 증언하는 삶을 사는 개별적인 성화를 통해(교회 39~42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큰 경외를 보임으로써(사목 12~22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신앙과 미래에 개방된 신앙을 가짐으로써(교회 42항) 세계평화(사목 77~90항)와 좀더 세계적이고 인간적인 인류 문화 창조(사목 53~62항)를 위해 일하고, 타인과의 결속과 연대감을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볼 수 있는 시대적 징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Ⅲ. 신학자들의 입장
사적 계시가 교회 안에 나타날 때 신학적인 반성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는 교회의 중요한 면모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신학은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를 위해 생각하고 반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신학적 규범의 최종 기준은 신앙이나 계시를 전달하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아닌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 신학자는 항상 믿는 이들의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신앙의 핵심에 봉사하기 위해 그들이 받은 지성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준 진리를 잘 이해하도록 도와 주는 사람들이다. 사적 계시에 대해 신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노선으로 구별된다.
첫 번째 노선은 근대 토미즘(Thomism) 학파에 의해 옹호되는 학설이다. 이 학파는 사적 계시가 신적 신앙 행위에 원천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나 이러한 것은 하느님이 자신의 초자연적인 신비의 어떤 것을 어느 특정인에게 계시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사실 신적 신앙의 동기는 하느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당신 자신을 말씀하는 하느님에 대한 동의이다. 하느님이 신비 자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하느님께서 그 자체 신비와는 관계 없는 현실을 어떤대상(사람)에게 계시한다면 이것은 신적 신앙이 될 수 없다. 토미즘 학파는 신앙 행위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적 계시를 신적 신앙 영역 안에서 설명하면서, 이때 계시에 대한 동의는 신적인 신앙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신적 신앙이 되는 초자연적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공적 계시 안에 이미 계시되어 있으므로 사적 계시는 공적 계시의 내용인 진리를 대상으로 갖고 있지 않고, 공적 계시에 아무런 것도 첨가하거나 뺄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적 계시들의 대상은 단지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생활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즉 계시된 대상이 하느님의 신비가 될 수 없고 신앙 생활의 실천을 위해 있다는 점에서 인간적 신앙으로서 동의가 이루어질 뿐이다. 현대 신학자 중 이러한 노선의 대변자로는 콩가르(Y. Congar)를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적 계시에 대해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경향을 갖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적 계시를 대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감상주의 때문이다. 이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적 계시에 의한 발현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 사상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하나의 속임수이며 환각이며 핵심에서 빗나간 것이고 모조품이라고 쉽게 주장한다. 그리고 때로는 과도한 불신감과 적 대심을 보여 주기도 한다.
두 번째 노선을 따르는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수아레즈를 들 수 있다. 이 노선은 신앙 정식(定式)의 동기 즉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권위로부터 출발한다. 신앙의
동기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을만한 신빙성이나 권위가 있을 때 이것이 구체화된 현실은 어떤 것이라도 신적 신앙으로 동의되어야 한다. 신적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공적 계시 안에 전달된 진리이든 사적 계시 안에 전달된 진리이든 간에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류로 인도할 수 없는 하느님의 증언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선을 따르는 신학자들은 이러한 권위가 나타날 때 증명되는 어떤 대상이라도 신적 신앙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을 지지하였다. 만약 계시의 원천이 확실한 것이라면 계시를 직접 받은 사람에게만이라도 신적 신앙이라는 동의를 줄 수 있다. 공적 계시에 관계된 신적 신앙과 사적 계시에 관계된 신적 신앙과의 차이점은, 단지 공적 계시는 교회에 의해 동기가 제공되었고 사적 계시인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인에게 제공한 것이라는 점이다. 승인의 동기는 이 두 경우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한 권위가 바로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노선은 현대에 와서 라너에 의해 다시 제시되었다. 그는 사적 계시가 신적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만일 사적 계시가 신적인 원천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나 보증이 있다면, 계시를 직접 받은 수취인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간접 수취인들)에게도 신적 신앙이라는 동의를 줌으로써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 노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적 계시의 충분히 믿을 만한 신빙성의 문제이며, 또한 확률의 문제이다. 즉 신빙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률이 신적 신앙과 인간적 신앙을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교황 베네딕도 14세를 포함한 첫 번째 노선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사적계시의 확실한 신빙성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경솔함, 무분별성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두 번째 노선을 따르게 될 때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의 구별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은 발현이나 특수한 현상에 대해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고 열렬히 지지한다. 그들은 마치 사적 계시나 발현의 메시지가 복음을 완성시키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전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합리화시키고 사적 계시나 발현 등을 종말론적 시간이 가까이 온 것에 대한 징표로 보고 과장하여 말하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비판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노선 모두 사적 계시가 보편적 · 가톨릭적인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사적 계시를 대할 때 신학자들은 극단적인 관점을 초월해야 한다. 각 시대 안에 나타나는 예기치 못하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에 근거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가져서도 안된다. 이러한 태도는 사적 계시에 대해 분별과 사려를 갖는 확실한 신앙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IV . 사적 계시의 가능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충만한 계시는 그분이 영광 속에 오기 전까지는 다른 공적 계시를 배제한다. 사도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갈라 1, 8)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이 성령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통교하는 사적 계시들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데, 사적 계시의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겠다(요한 16, 7)는 약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의 구원 행위는 성령의 활동으로 사도들에게 이어지고, 사도들로부터 받은 성스러운 전통[聖傳]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 안에서 발전한다. 교회는 계시를 현실화시키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완성될 때까지 세기를 통하여 항상 천상적 진리의 충만함을 향하여 정진한다(교회 8항).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정점과 완전성은 사도들의 설교에 의해 증언되었고, 보이지 않는 진리의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서 계속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역사 안에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신적인 삶에 참여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완성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우주 전체가 모두 완전성에 이른 것은 아니다(1고린 13, 12). 예수에 의해 완성된 계시는 그리스도인의 삶뿐만 아니라 전 우주 속에 침투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완성을 위해서는 성령이 필요한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계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인 예언 · 환시 ·들음 등은 교회의 삶을 위해 신자들의 예언적 임무 수행 의식을 고취시키고 신자들을 격려함으로써 공동체 건립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1고린 14, 1-3 ; 로마 12, 1 1데살 4, 1).
성령의 은사 중에서도 예언은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서에서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는 하느님의 전반적인 구원의 파노라마를 예언자들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이 예언자들로 이어지는 반면에 신약성서의 예언은 항상 계시의 충만성인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됨을 전제로 한다. 예수는 모든 구약의 예언을 완성시켰으며, 구원의 약속을 종말론적으로 완성시켰다는 면에서 예수의 사건은 구원사의 중심이 된다. 교회 안에서 특별한 은사들을 통해 활동하고 있는 성령은 바로 예수의 이 구원 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완성시킨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성령에 의한 여러 형태의 사적 계시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구원의 경륜에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삭감하지 않는다. 성령은 공적 계시를 현실화시키며 생기 있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계속한다(계시 7항). 또한 사적 계시의 가능성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느님 편에서 먼저 시작하는, 거저 주는 사랑의 은총(1고린 15 ; 히브 1, 1 ; 마태 11, 25-26)에 있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도 하느님의 자유로운 은총에 대해 결정권을 가질 수 없고, 다만 은총을 받는 수취인에 불과하다. 역사의 시작부터 구원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의해 구축되므로 누구라도 사적 계시의 수취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 은총에 의한 신적인 삶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계시의 최종 목적인 구원(교회 2항, 3항, 6항, 10항)에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의 구원 행위는 부활 후 현재까지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이것을 증언하기 위해, 즉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 성령이 왔다(묵시 10장 : 사도 1, 8; 루가 24, 25).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교회 안에 나타나 는 성령에 의한 여러 형태의 사적 계시들(예언, 환시, 발현 등) 역시 예언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차원에서 해석되고 표현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금까지 내려오던 입장이나 불신을 버리고, 신뢰를 가지고 초기 공동체 안에서 번창하였고 교회의 성격을 규정하던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이례적인 은사' , 단순하고 일반적인 은사'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다시 수용하고 있다. 교회를 위해 성령의 은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함과 이 특은에 대한 교회의 권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이 나타나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1고린 12, 7)이기에 이러한 은사는 이례적이거나 혹은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건 간에 모든 교회의 필요에 적합하고 유익한 것인 만큼 감사와 위안을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례적인 특은은 경솔하게 청할 것도 아니고 사도적인 활동의 결실을 이러한 특은에서 얻으리라고 기대할 것도 아니다. 특은의 진실성과 온당한 행사에 관한 판단은 교회를 다스리는 분들에게 속하는 일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모든 것을 분간하여 좋은 것을 보존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교회12항).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자기 계시라는 특수 현상 앞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있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예언적인 은사 앞에 더욱더 개방적이고 항상 준비된 자세로 임해야 함을 표명하고 있다.
V . 사적 계시의 식별과 판단 기준
교회 공동체는 바로 신앙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신앙에 관계된 것에 대해 교회는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할 수 없으며, 신앙의 명료함과 순수성을 지킬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교의에 어긋나는 것은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인에게 혼돈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교도권의 책임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적 계시들에 대한 판단 기준과 그것에 대한 해석과 진실성에 대한 판단 여부는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는 교회의 권한에 속한다. 사적 계시 앞에 교회는 대체로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은 계시의 내용 앞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교회의 신앙에 충실해야 하는 의무와 세상 안에서 계시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적 계시에 대해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 항상 분별심과 사려심을 유지하며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교회의 사적 계시에 대한 몇 가지 판단 기준의 규칙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사적 계시 안에 나타난 진리의 내용 심사 : 사적 계시나 발현에 나타난 계시의 내용은 예수의 역사적 계시를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교의 교의 면에서 볼 때 사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공적 계시와 동일한 수준에 있을 수 없다. 교회 안에서 보여지는 사적 계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나 교의적인 면 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보여진 결정적인 공적 계시에 아무것도 첨가할 수도 삭감할 수도 없다. 이는 단지 개인이나 집단이 사랑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좀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혹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위탁된 신앙을 좀 더 실제적으로 잘 인식하도록 도와 주는 데 의미가 있다.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루르드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식 때의 폐막식에서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의한 유익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부탁한 후, 하늘로부터 주어진 이 은총들은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교의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품행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분명히 밝혔다 (AAS 51, 1959). 사적 계시나 발현은 신앙보다는 희망에 더 호소하고 있는 것이므로 어떠한 사적 계시라도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나타난 계시의 진리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계시가 아니다(갈라 1, 8).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속이고 혼돈시키려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오는 거짓 계시이다. 성서는 각 신자들과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 진정한 하느님의 계시와 악령으로부터 오는 거짓 계시를 구별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사실 불법의 신비는 이미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붙들고 있는 이가 먼저 물러나야 됩니다. 그때에는 그 무법자가 나타나지만 주 예수는 당신 입김으로 그를 없애실 것이니 당신이 내림하여 나타나심으로써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 그 무법자가 올 때는 사탄이 작용하여 온갖 권능과 표징과 거짓 기적과 멸망하는 자들을 상대로 한 온갖 부정한 속임수가 따를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받게 할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데살 2, 7-10).
성서 안에 나타나는 성령의 선물에 속하는 예언(1고린 12, 10)은 항상 꾸준하게 구원을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사적 계시나 발현들-그것이 성모 발현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에 나타나는 예언들 역시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결과이어야 한다. 회개나 속죄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평화 · 안정 · 일치 · 평온 등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사적 계시의 메시지들이 불안 · 걱정 · 두려움 · 협박 · 이해 관계 · 전쟁 · 신앙의 대파멸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이것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자들이 기적의 현상이나 두려움 때문에 사적 계시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예수의 인격과 행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 평화와 지혜에 상반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인격에 기초한 신약성서에서 보여지는 기쁜 소식(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일치 여부 심사 :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는 그분께서 이 세상과 역사 안에 직접 개입한 육화의 신비에 있다. 그러므로 성령에 의한 진정한 사적 계시는 하느님의 결정적인 말씀이 사람이 된 나자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완전히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되어야 한다(요한 1, 1-4. 14). 성서 안에 나타나는 계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신적 존재에 대한 환시보다 더 강조되어 있는데, 하느님은 인간이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여 오셨다고 고백하는 모든 영은 하느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에 관해 그렇게 고백하지 않는 모든 영은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가 오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지금 그가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1요한 4, 2-3)라고 하였다.
교회의 심사숙고를 통해 확실성을 인정받은 사적 계시라 하더라도 교회가 그것을 꼭 선포하거나 보존 · 전승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는 교회 전체에 계시된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계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계시된 내용은 계시받은 자의 양상에 따라 달라진다. 이 때문에 그들이 받은 메시지가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예를 들어 삼위 일체, 인간, 마지막 때, 교회, 성사, 교도권 등등 이러한 용어에 대한 불명확성과 혼돈은 사적 계시를 받았다고 자처하는 리덴(Vassula Ryden)의 경우에서 나타났다-그것이 뜻하는 의미가 성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심사가 있어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명확성과 특수성에 상반되는 이상하고 모호한 메시지는 교회 안에서 사적 계시로서의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교회의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하더라도 공적 계시와는 달리 모든 이의 신앙 요청과는 별개이다. 즉 신자들이 꼭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의무가 부가되지 않고, 다만 개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질 뿐이다.
교도권의 가르침과의 일치 여부 심사 : 사적 계시가 신빙성 있는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과 상반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사적 계시의 핵심적인 내용이 성서, 성전, 교회가 규정한 진리 그리고 교부들이나 교회 학자들의 가르침과 부합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해석할 권한을 받은 교회는 사적 계시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준에 의해 심사한다. 만약 사적 계시가 교회의 일반적인 가르침에 새로운 어떤 것을 첨가한다거나 교회의 권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 사적 계시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 또한 사적 계시가 교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한다고 해도 교회에 불복종하거나 신앙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시켜서는 안된다. 오히려 교회의 성화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야 하며 교도권에 복종함으로써 교회의 심사숙고한 공식적인 판단과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뉴욕 베이사이드(Bayside)의 성모 발현을 따르는 공동체 가운데 일부는 자기 나름대로의 주교들과 대립 교황(antipapa)을 선출하고 성직을 수행함으로써 교회의 판단에 불복종한 경우이다. 발현에 대한 교도권의 판단은 경우에 따라 오랜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고 불승인으로 끝날 수도 있다. 성 다미아노(S. Damiano), 루브란드(Loublande), 헤롤드스바흐(Heroldsbach), 가라반달(Garabandal), 케르지넨(Kerizinen)등이 그 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특이한 현상들의 신빙성에 대해 장시간에 걸친 완전한 분석과 성숙한 심사가 있을 때까지 승인이 보류되기도 한다.
사적 계시를 받은 사람이 모든 면에서 정상인지 판단 : 인간학적인 측면에서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즉 사적 계시를 받은 개인 주체는 영적 · 심리적 · 도덕적인 면에서 정상인이어야 한다. 영성적으로 살아 있는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평소에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특은은 가끔 회개 전의 바오로 사도처럼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의인이고 겸손하며 어린이같이 순진한 이들에게 허용된다. 심리적으로는 건전하고 균형을 지닌 정신적 · 심리적인 장애가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을 때 사적 계시는 인간 심리적 투사 · 상상력 · 환상 · 환시 · 악령의 세력에 복종함에서 기인되는 현상 등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은 이들은 교회의 권위에 따른 정신 심리 전문가들의 검사에 응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 계시를 받은 주체의 성실성 · 흥분 · 열광 · 격양 · 경망성 · 메시지에 대한 일관성 없는 혼돈 등을 관찰하는 일이다.
계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이나 심령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일도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혼돈과 무질서를 가져온다. 하느님은 무질서가 아니라 평화를 원하신다(1고린 14, 33). 그리고 계시된 진리를 과장하지 않는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거짓말이 아닌지에 대해 관찰하고 심사하여야 한다. 진정한 사적 계시를 받은 이는 겸손과 복종 그리고 청빈을 실천하며 생활하여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자신의 덕을 과시하거나 교만하거나 기적과 같은 특이한 현상을 매개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이것은 거짓 계시이다. 하느님의 은사란 사적 계시에 의해 개인에게 전달되고 있지만 개인적인 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인 교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 계시가 가져다 주는 영적인 결실 심사 : 발현에 동반된 기적이나 예언 등 초자연적인 표징이 가져오는 열매를 관찰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항상 구원과 인간의 선익에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열매를 보고 그것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마태 7,17). 예를 들면 신자 개인이나 공동체에 사랑 기도 · 속
죄 · 회개 · 화해 · 희망을 가져오고 이전보다 나은 진지한 영적 생활과 봉사 그리고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는 등 구체적인 행위를 하게 한다든지, 새로운 수도 단체를 창 설하게 하거나 기존의 영성 단체를 쇄신시키는 계기를 제공하는 일이다. 진정한 사적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며, 예 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사도적인 투철한 정신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 즉 모든 계시는 교회의 삶에 영혼을 불어넣는 사랑의 원칙에 어긋나서는
안된다. 교회의 미사 전례나 성사 생활 그리고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시하고, 발현 장소에 매달리게 하거나 그곳에서 일 어나는 기적이나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보다 더 가치 있고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루르드나 파티마의 성모 발현들과 기적들은 오늘날까지 그리스도교 대신덕(對神德)의 실천과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한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들이 수많은 기적과 특이한 현상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것이 신앙 생활이나 영성 생활에 좋은 열매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계시의 본질적인 핵심인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사적 계시로서의 신빙성이 없다. 따라서 사적 계시들이나 발현의 영적 결실을 신적인 선별력을 가지고 보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꾸준한 신앙의 정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수고 없이 '기적' 에 의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교회 안에서 신빙성 있게 나타나는 사적 계시나 발현의 특수한 현상을 통하여 하느님이 우리 시대에 호소하는 표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한다. 시대의 징표를 읽는 것은 우리의 미지근한 신앙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며, 우리가 더욱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하느님은 사적 계시를 통해 성령을 보낸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이미 계시된 진리를 더욱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 준다. 바오로 사도는 "영을 끄지 말고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시오"(1데살 5,19-20)라고 충고하였는데, 이것은 시대적 징표를 그냥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적 계시에 의해 가시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존이나 고통, 죽음, 죄를 이기는힘을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적 계시나 발현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이나 회개를 선포하는 데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영구히 기억하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모든 특수한 현상들이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계시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은 무엇보다도 깊은 명료성을 가지고 계시를 이해하도록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헌장>은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을 드러내야 한다고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복종은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며, 주께서 내려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의 의지에 의탁하는 것이다(계시 5항). 즉 하느님의 말씀을 찾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감정이나 감상에 의존하지 않고 항상 물음을 던지고 반성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교회의 건설을 위해 필요한 예언들이나 계시들은 역시 지성이 동반되어야 하고 교회의 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1고린 14, 24). 만약 계시가 신자들이 이성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계시는 교회의 건설을 위해 가치가 없다(1고린 14, 1. 5. 39).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 역시 기적이나 예언들이 확실한 표징이 되기 위해서는 지성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Ds 3009). 성서에 의하면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업적을 믿음으로써 그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더 친밀하게 되고 그와 일치되며 결 국은 사랑의 신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계시의 행위에 대답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고, 신앙은 휴식을 모르는 전생을 걸쳐 지속되는 일관되고 계속적인 투신이다. 그 리스도인은 공적 계시나 성령에 의한 예언 · 발현 · 사적 계시 앞에 자신의 신앙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신앙의 지성과 투철함을 지녀야 함(1베드 3, 15)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이해하고 그 빛의 힘으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세기를 통해 보여 준 하느님의 구원과 현대에 나타나는 발현들이나 사적 계시들에 의해 제시되고 촉구되는 희망은 우리 안에 실현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신앙과 믿음, 사랑의 실천 안에서 하느님이 나타나고(발현)우리 안에 머무르게 된다.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법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전해집니다"(1요한 4, 12). (→ 계시 ; 성모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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