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司祭團

〔라〕presbyterium · 〔영〕presbyte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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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은 공동 집전을 통하여 교계적 친교를 표현하고(왼쪽), 주교와 일치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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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은 공동 집전을 통하여 교계적 친교를 표현하고(왼쪽), 주교와 일치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사제와 부제들이 주교를 중심으로 위계적으로 이룬 공동체.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할 때 사제단의 모습을 보였으나, 그 후 교회의 팽창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사제단의 구실이 상실되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교회 내의 친교와 일치가 강조되면서 사제단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초대 교회에서의 사제단〕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사도들이 공동체를 이끌면서 베드로 사도가 교회를 대표하였으며, 예루살렘 사도 회의(사도 15, 1-21) 시기에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사도들과 원로들이었다. 사도 바오로의 제3차 전도 여행 때의 지도자들은 야고보 사도와 원로들이었다. 사도들이 생존하던 초대 교회에서는 이렇게 사도들과 원로들이 하나의 사제단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 역시 그의 전도 여행에서 각 지방에 원로들을 임명하였고, 제3차 전도 여행 때에는 에페소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를 원로들이 다스리게 하였다(사도 20, 17-38). 그레데 섬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디도(Titus) 디키고(Tychicus), , 아르데마(Artemus) 등의 원로들을 임명하여 교회를 다스리게 하였으며(디도 1, 5 : 3, 12), 50~90년 사이에는 원로들이 사도들을 계승하여 공동체를 다스렸다.
교황 글레멘스 1세(90/92~101?)의 서간에서는 사도적 계승(successio apostolica)에 대한 귀중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는 주교들이 사도들의 후계자들이므로 신자들은 주교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언급하였으나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함께 일한 원로들이 주교인지 사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복음 선포에 함께 참여한 것으로 보아 사제단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난 후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 때 주교가 다스리는 · 개별 교회들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때 처음으로 '가톨릭 교회' 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냐시오는 자신의 서간에서, 주교는 일치의 근본이며 성사와 전례 집전시의 장상이라고 하였다. 또 처음으로 주교 · 신부 · 부제의 교제 제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주교와 사제 사이에는 내적으로 긴밀한 유대가 있으며, 사제단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에 속하듯이 주교에게 속해 있다고 하였다. 한편 주교의 권위에 참여하면서 주교의 원로원이 되는 사제단은 주교와 함께 교회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므로 주교와 사제단은 하나의 존재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사제단이 주교와 일치하는 것은 마치 기타(guitar)와 그 현(絃)이 일치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교회에 관한 일은 반드시 주교와 일치해서 해야 하며, 성찬식도 주교나 그가 위임한 사람이 주례해야 유효하다고 하였다. 이 당시에 사제단은 합의체적으로 주교를 보필하는 구실을 하였고, 이때 진정한 모습의 사제단이 형성되었다.
사도들의 계승에서 사제들의 서품 기도는 사제단의 유기체적 성격을 드러낸다. 주교가 서품자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사제들이 뒤따라 안수함으로써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사제단임을 드러내고 있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 전까지는 사제가 주교 앞에서 어떤 전례적 직무를 행하지 않았고, 다만 주교의 부재시 대리로 전례를 집행할 뿐이었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258) 역시 주교의 권위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주교를 돕는 사제단의 역할이 활발하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당신(사제)들의 조언없이 내 의견으로만 아무것도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사제들과 부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게 사제단의 행동이 활발하다가 교회가 발전하여 시골로 확산되면서 사제들이 신자들을 다스리는 직무 수행이 필요하게 되자 사제단과 분리되는 경향이 생겼고, 세례집전도 주교의 확인하에 축성된 성유로 거행하면서 사제들은 더 이상 주교를 자문하는 기능보다는 주교를 대리하여 작은 공동체를 다스리는 사목자로 바뀌게 되었다. 사제들이 넓은 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사제단으로서의 기능이 서서히 줄고, 교구의 행정과 규율이 주교의 권위 아래에 들어가면서 주교 중심의 통치 경향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계속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사제단〕 공의회는 로마 교회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사제단의 구실을 새로이 강조하였다. 이는 주교와 사제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같이 참여함으로써 그 직무의 차이보다는 교회 안의 신자들간의 친교를 중요시하면서 주교와 사제들의 관계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공동 책임을 지는 합의체적인 성격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 통치 면에서, 유일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주교와 신부들이 교계적으로 결합되어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사제단을 이루는 교계적 친교를 강조하였다. "사제들은 주교의 훌륭한 협력자이며 조력자로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불렸으며, 직무는 서로 다르지만 주교와 더불어 한 사제단을 구성한다" (교회 28항) "교구는 주교가 사제단의 협력을 받아 사목하는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이다. 이들은 자기 주교를 따르며, 주교는 성령 안에서 복음과 성체로써 그들을 모아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주교 11항). "주교와 교구 신부들 사이는 초자연적 사랑의 끈으로 맺어짐으로써 주교와 일치하여 사제들의 사목 활동이 풍부한 결실을 맺어야 한다. 주교는 사제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사목적인 일에 사제들과 개인으로나 공동으로 대화하기를 바란다" (주교 28항) .
<사제 교령>(Presbyterorum Ordinis)에서는 주교와 사제의 긴밀한 관계가 교계적 친교 안에서 주교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제단을 이루어 각기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하여 교회 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강조한다. "모든 사제는 주교와 함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과 그 직무에 참여한다. 이 축성과 사명의 일치 자체가 주교와 사제의 교계적 친교를 요구하고 있다. 사제들은 전례의 공동 집전에서 이 교계적 친교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자기들이 주교와 일치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있음을 명백히 고백한다. 그러므로 주교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성화하며 다스리는 직무와 책임에 있어서 사제들을 필요한 협력자와 고문으로 생각하게 된다. ···주교는 사목 활동에 필요한 일과 교구의 유익한 일에 관하여 사제들의 의견을 기꺼이 들으며 상의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현대 상황과 필요에 적응하는 방법으로서 법규범에 따라 사제단을 대표하는 사제 평의회를 구성하고, 교구 행정에 임하는 주교를 그들의 자문과 조언으로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사제 7항). "사제들은 서품 때에 사제단에 들었으므로 모두가 서로 성사적 형제애로 결합되어 있다. 자기 주교 밑에서 봉사하게 된 사제들은 교구 안에서 하나의 사제단을 형성하여 서로 다른 직무에 봉사하고 있지만 하나의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선배 사제들은 후배 사제들을 형제처럼 대해 주며, 직무 시초의 일과 책임을 도와 주고 비록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후배들도 선배들의 연령과 경험을 존중하여 사목상의 여러 문제점을 같이 협력하여 의논하도록 해야 된다" (사제 8항).
현대 사회의 변화는 복잡하고 빠르게 이루어지므로 교회도 이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같은 사도직에 참여하는 주교와 사제들이 초대 교회처럼 교계적 친교 안에서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건설의 같은 목표에 협력자로 함께 일해야 한다. 그리고 주교와 사제들은 하나의 사제단을 이루어 교도 임무 · 성화 임무 · 통치 임무를 행사함에 있어서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 실현의 도구가 하나의 사제단을 표상하는 사제 평의회의 출현이며, 이 기구의 효율적인 운영 관리가 미래 교회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교구 사제 평의회)
※ 참고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8/ 정하권, <교회의 쇄신》, 대건신학대학, 1976/ Studies in co-responsibility, The Jurist, 1971/ G. D'Ercole, I Collegi presbiteriali nel periodo delle origini cristiane, Concilium 2, 1966, pp. 99~1 12/ F. Haarsma,The Presbyterium : Theory Programme for Action?, Concilium 3, 1969, pp.287~298. 〔李康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