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司祭 - 職務 - 生活 - 閼 - 敎令

〔라〕PresbyerommorOri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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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직무와 생활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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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직무와 생활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사제직과 사제의 직무 및 생활에 대해 언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령. 비교적 짧은 이 교령은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Optatam Totius, 이하 <사제 양성 교령>)과 연관 지어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교령은 <사제 양성 교령>이 반포되고 난 후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하기 직전의 최종 회의에서 가결되었고, 공의회를 소집하기로 결심한 교황 요한 23세(1958~1963)가 이를 1959년 1월 25일에 발표한 후 즉시 전세계에 보낸 질문서에 대한 답변들이 주로 사제 생활에 대해 다룰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교령은 한편으로는 <사제 양성 교령>의 내용이 사제의 직무와 생활 측면에까지 확산되어 실천되어야 할 내용으로 이어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령의 준비 과정에서 보듯 사실상 <사제 양성 교령>을 준비한 문헌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목 적〕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의 목표인 교회 쇄신과 '현대화' 를 달성하기 위해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교회 일치의 차원' 과 사목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도층은 교회에 대해서 눈에 보이는 단체 조직이자 제도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였으며, 성직자나 신자에 대해서도 신학적 · 사목적 관점이 아니라 법률적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의 구성원들을 단지 단체 구성원으로 여기고 그들의 의무와 책임만을 법제적으로 규명하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제 직무 교령 준비위원회' 와 '성직자와 신자의 규율에 관한 위원회' (Commissiode Disciplina Cleri et Populi Christian)라는 공의회 위원회의 명칭, 그리고 교령의 성립 과정 첫 단계에 잘 드러나 있다. 실제로 공의회 준비 기간과 1962년 12월 18일에 끝난 공의회 제1 회기까지만 해도 교부들은 사제에 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현대의 '사목' 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는 사제직의 본질이나 존재 양식 등을 교의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교회 쇄신과 현대화는 교회 안에서 지도자층을 형성하는 사제단(presbytenium)의 협력 없이는 추진될 수 없고, 따라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공의회가 목표로 하는 교회 쇄신의 측면에서 조명하여 실체 파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제에 관한 완비된 교령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교회헌장> 2장을 참조하여 하느님 백성의 공통 사제직을 배경으로 한 사제직과 주교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를 고찰하였고, 현대의 요구에 적응하는 실천적 측면 즉 사목적인 측면에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을 논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교령의 문체도 이 목적에 적합한 것이 되도록 권고조가 아닌 서술법을 사용하였고, 용어도 법문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은 피하려고 애썼다.
〔과 정〕 이 <사제 직무 교령>은 긴 경과 과정과 우여곡절을 거쳐 탄생하였다. 교황 요한 23세가 자의 교서 <하느님의 드높으신 뜻>(Superno Dei Nutu, 1960. 6. 5)을 통해서 설립한 공의회 준비 위원회 가운데 하나가 '성직자와 신자의 규율에 관한 위원회' 였는데, 1960년 11월 16일에 첫 모임을 가진 이 위원회는 1962년 4월 7일에 마지막 모임을 갖기까지 모두 9회의 총회를 개최하여 많은 개요들을 정리하였다. 그 가운데 이 교령의 준비를 위한 기본 자료로 사용된 개요들은 '성직자들의 거룩한 생활에 대하여' (De Clericorum vitae sanctitate) , '성직자들의 배치에 대하여' (De distributione cleri) '성직자들의 직무와 권한에 대하여' (De officiis et beneficiis clericorum) 등이었으며, 이 위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1 회기가 열렸을 때 작업의 결과들을 교부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그 소임을 끝냈다.
그리고 이 의안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를 위해 구성된 '성직자와 신자의 규율에 관한 공의회위원회' 는 1962년 12월 3일에 첫 모임을 갖고 준비 위원회가 만든 의안을 개정하는 일정을 마련하였다. 교황 요한 23세가 제시한 지침에 충실하였던 이 위원회는, 1963년 2월 8일까지 의안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모으는 데 동의하고 착안점들(amimadversiones)을 수집하였는데, 이는 주로 성직자들의 거룩한 생활 · 성직자의 배치 · 성직자들의 직무와 권한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사이에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12월 17일에 '추기경 조정위원회' 를 구성하였고, 이 위원회에서는 이듬해 1월 30일 17개 의제들만 공의회에 제출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완전한 사제 생활에 대하여' (De vitae sacerdotalis perfectione) '사목의 연구와 학문에 대하여' (De studio et scientia pastorali), , '교회 재산의 사용 규정에 대하여' (De recto usu bonorum ecclesia-sticorum)로 구성되는 <성직자에 대하여>(DeClencics)라는 교령을 준비하라고 공의회위원회에 지시하였다. 이에 공의회 위원회에서는 각 장과 부록을 책임질 4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1963년 3월 9일 공의회 사무국과 '공의회 조정위원회' (De Concilii Laboribus Coordinandis)에 초고를 제출하였는데, 조정위원회에서는 이 초고를 인준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제안하였다. 4월 22일 국무성에 허락된 알현에서 수정안을 인쇄하여 교부들에게 전달하라는 교황의 지시에 따라 이 수정안은 <공의회 회기 중에 논의될 헌장과 교령의 초안. 성직자에 대한 교령 초안>(Schemata Constotutionum et Decretorum de quibus discep-tabuntur in Concilli Sessionibus. Schemata Decreti de Clericis, Typis polyglottis Vaticanis, 1963)이라는 제목으로 인쇄되어나왔으며, 그 내용은 '제1장 완전한 사제 생활' (1~1항), '제2장 사목의 연구와 학문' (15~26항), '제3장 교회 재산 사용의 규정' (27~39항), 그리고 '성직자 배치에 대한 권고' (Exhortatio de distributione cleri, 40~43항)였다.
그 해 10월 1일까지 237명의 공의회 교부들로부터 접수된 464개 의견들은 회람을 거쳐 개정을 위한 자료로 사용되었으며, 10월 7~8일의 총회에서는 이를 4개의 소위원회로 넘겨 검토하도록 하였다. 각 소위원회에서는 응용할 만한 의견들을 공의회위원회에 제출하였으며, 위원회에서는 11월 18~27일의 총회에서 이를 검토한 후 <성직자에 대하여>를 모델로 하여 <사제직에 대하여>(DeSacerdotibus)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새롭게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넘겨받은 조정위원회에서는 그 해 12월 28일과 이듬해 1월 15일에 열린 두 회기 동안에 걸쳐 공의회에서 투표에 부쳐질 수 있도록 몇 가지 지도 원리들을 주축으로 정리하여 1월 23일에 발표함으로써, 공의회위원회에서는 전체적으로 재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전의 4개 소위원회의 비서들이 포함된 특별 소위원회 위원들은 1월 28~30일 로마에서 만나 10개 지도 원리들을 포함한 본문을 만들어 2월 1일 공의회위원회와 고문들에게 회람하였다. 이를 받은 공의회위원회는 <사제직에 대하여>에 포함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교리들을 요약한 10개 지도 원리들과 함께 마지막 본문을 인준하고 3월 16일 조정위원회에 제출하였으며, 이는 4월 17일에 조정위원회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인준되었다. 그 해 4월 중에는 10개 지도 원리들(5~8면)에 덧붙여 준비 작업(11~14면)과 <성직자에 대하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15~16면), 그리고 마지막 본문으로서 <사제직에 대하여>의 완전한 본문(17~46면)에 관한 랭스(Reims) 대교구의 마티(F. Marty) 대주교의 보고를 포함하여 펴낸 새로운 문건이 공의회 교부들에게 보내졌다.
1964년 9월 14일에 시작된 제3 회기 이전에 교부들은 자신들의 견해들을 보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된 53개의 요청들이 들어 있었다. 같은 날 이를 넘겨받은 특별 소위원회에서는 하루 만에 12개 조문으로 된 새로운 본문으로 작성하여 인준하였다. 본래의 것과 마티 대주교와 위원회의 보고 내용이 함께 수록된 이 새로운 본문은 <현재 사제 생활과 직무에 대하여라고 기재된 사제직에 관하여의 수정 초안에 관련된 보고서>(Relatio super schema emendatum propositionum De Sacerdotibus quod nunc inscribitur De Vita et Ministerio Sacerdo-tali)라는 명칭으로 인쇄되어 10월 2일 교부들에게 회람되었고, 10월 13일에 열린 공의회 100차 총회에서 12개 조문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문의 확장과 개정을 위해 다시 공의회위원회에 되돌려 보내졌으며, 조정자들은 마지막 의안을 10월 14일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음날 이어진 공의회의 토론 과정 중 공적으로 표현된 교부들의 의견들이 전체적으로 목록화되어 위원회 사무소의 대조를 거쳐 10월 26일에 제1권이, 그리고 12월 15일에 제2권이 인쇄되었다. 위원회의 공식 보고자인 마티 대주교는 토론 중에 표현된 교부들의 의견들을 인용하여 공의회 조정자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는 이 편지에서 마지막 의안이 12개 조문을 포기한 채 긴 문장으로 공의회 교부들에게 제출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 답신에 따라 마지막 의안이 완전히 개주되었다.
제3 회기가 끝날 즈음 공의회위원회에서는 교부들이 떠나기 전에 새로운 초안을 내놓고자 하였다. 이미 소위원회에서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10월 29일의 전체 회의에서는 새로운 초안을 인준하고 부분별로 한 작업이 중앙 소위원회에 넘겨졌으며, 이 위원회는 1964년 11월 5 · 9 · 11일에 모여 새로운 초안을 검토한 후 마지막 회 의에서 이를 비준하고 즉시 공의회 사무국으로 보냈다. 공의회 총 비서인 펠리치(Felici) 몬시뇰은 교부들에게 1965년 1월 말까지 논평을 보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초안을 나누어 주었고, 그 시한까지 보내 온 157명의 공의회 교부들의 의견들과 466개의 보충 제안들은 소책자로 만들어져 2월 28일에 공의회위원회와 전문가들에게 보내졌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소위원회는 3월 22일에 만나 위원회를 위한 작업을 하였으며, 소위원회는 이때 제시된 제안들과 의견들을 수렴한 대안을 마련하였다. 3월 29일에 공의회위원회 앞에서 소위원회의 보고자가 그 내용을 요약 · 보고하였으며, 위원회는 4월 1일에 그것을 비준하였다. 중복된 언급이나 간결하고 강력한 문체를 피함으로써 대안의 본문은 약간 짧아졌으며, 특히 본문 제1부에서 배열상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에게 제출된 이 '정정안' (Textus recognitus)은 마티 대주교의 보고서와 함께 5월 중에 전세계 교부들에게 보내졌으나 시간이 많이 지나 상황이 변화되자, 위원회의 인준 아래 정정안을 고친 '새로운 정정 초안' 을 교부들에게 다시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10월 14~16일에 열린 총회에서 새로운 정정 초안이 토론되었고 10월 16일에는 의장단이 심의 종결에 대해 동의함으로써 다수결로 이를 가결하였다. 그러나 10월 25~27일에 추가 발언이 있어 이를 들은 다음에야 의안 채택에 들어가 그 초안의 대강이 승인을 받았고, 여러 교부들의 의견에 따라 수정한 후 다시 총회에 상정되었다. 의결 직후 마티 대주교는 총회에 대한 결론 보고 중에서 수정의 기본 방침으로, 첫째 사제의 직무와 생활의 본질 양자를 조화롭게 상호 보충하고, 둘째 사제 직무의 영역에서는 사제의 '선교' 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며, 셋째 현대 사회 안에서 선교의 실천에 관해 비현실적 · 비활동적인 견해로서 지적된 부분을 수정하고, 넷째 라틴어 문체를 세련되게 꾸밀 것이라고 밝혔다. 11월 9일 교부들에게 배부된 '수정안' (Textus emendatus)은 11월 12~13일에 열린 총회 의결을 거쳐 공의회 166차 총회에 상정되었으며, 공의회 폐막식 하루 전날인 12월 7일에 개최된 장엄 총회에서 교령 반포를 결정하는 최종 투표(총 투표수 2,394, 찬성 2,390, 반대 4)를 거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정식 선포되었다.
〔내 용〕 <사제 직무 교령>의 주제는 우선적으로 사제들의 삶이 아니라 직무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제들의 삶은 그들의 직무가 요구하는 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교령의 순서와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언(1항)
제1장 교회의 사명과 사제직
사제직(2항)
세상을 살아가는 사제(3항)
제2장 사제의 직무
1. 사제의 임무
하느님의 말씀의 교역자(4항)
여러 성사와 성체의 교역자(5항)
하느님의 백성의 지도자(6항)
2. 타인과의 관계
주교와 사제(7항)
사제들의 형제적 일치와 협력(8항)
사제와 평신도(9항)
3. 사제의 배치와 사제 성소(10항)
사제 성소(11항)
제3장 사제의 생활
1. 완덕에로의 성소
사제의 성덕(12항)
사제 직무와 성덕(13항)
생활의 조화(14항)
2. 사제 생활에 있어서의 특별한 영적 요청
겸허와 복종(15항)
정결과 독신(16항)
재산과 가난(17항)
3. 사제 생활의 보조 수단
영적 생활(18항)
지적 생활(19항)
사제들의 보수(20항)
공동 기금과 보험 제도(21항)
결론과 격려(22항)
〔의 의〕 첫째, 이 교령은 현대의 여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 쇄신과 현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목표에 부합한다. 사제에 대해 교리적인 관점에서는 <교회 헌장>(Lumen Gentium)에서, 사목적인 관점에서는 <주교 교령>(Christus Dominus)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에 관한 교령이 따로 필요하였던 것은 교회 안에서 별개의 지도층을 형성하는 사제단의 실제적인 사명과 역할 때문이었다. 둘째, 교령의 명칭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제의 삶은 그가 받은 직무에 합당한 것이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즉 사제의 삶은 그의 생활 방식에 맞추어 직무를 수행하는 삶이 아니라 그의 직무가 요구하는 대로 그 직무에 걸맞게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제의 직무를 '사랑' 을 토대로 '성화' 되어 전 교회적인 차원에서의 '일치' 와 '선교' 의사명을 완수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임무의 모범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사제는 기본적으로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넷째, 이러한 사제의 직무와 생활은 현대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사제야말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불린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 언급한 의의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방식으로 교령이 전개되었다는 데 있다. 교령은 교령이 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법률적인 형식이 아니라 신학적이면서도 사목적인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 바티칸 공의회, 제2차 ;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 참고문헌  J. Le'cuyer, Decree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History of Decree, Commentary on the Documents of Vatican Ⅱ, vol. 4, Ed.H. Vorgrimler(gen.), New York, Crossroad, 1989, pp. 183~2971 R.P.McBrien ed., The HarperColins Encyclopedia of Catholicism, San Francisco, Harper Co., 1995, p. 681/ H. v. Straelen 외, 현석호 역,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총서》 4, 성바오로출판사, 1992, pp. 297~43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8. 〔李順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