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되었으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적인 역할을 하는 직분. 교회의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유래하였는데, 모든 신자들이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공통 사제직'(sacerdotium commme)과 가르치고 예배드리고 제사를 바치고 공동체를 지도하는, 즉 성직자가 수행하는 모든 사제적 활동을 포함하는 '직위적 사제직' (sacerdotium mini-steriale)으로 구분된다.
인류 역사에서 참 사제직을 수행한 분은 유일무이하게 예수 그리스도뿐이므로 새롭고 결정적인 사제직의 특성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 현대에 와서 사제직의 근거를 교회 공동체를 위한 사회학적 필요성에 두려는 경향도 있고, 사제 직무를 시대의 필요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하나의 기능이 되도록 재조정하자는 경향도 있으나, 이러한 필요성들을 고려해야 한다면 사제직의 본질적인 기초와 고유한 노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사제직이 교회 공동체가 아닌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사실과 세상의 변화가 결코 사제직의 본질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제적 사명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전해 주려 하였으므로 가톨릭 교회의 모든 사제 직무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자체에서 흘러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구약 시대에 미리 준비되고 예표되어 있었다.
I . 구약의 사제직
구약에서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에 적용될 만한 개념을 찾기란 어렵지만, 히브리서가 말하듯이 사제직은 한마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적 역할을 의미한다(히브 7, 24). 이런 사제직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사장의 역할에서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사제직에 대한 고찰은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을 바르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발전 과정] 성조 시대 : 이 시대에는 어떤 공적 사제직이 없었다. 다만 가족이나 씨족의 장(長)이 제단을 세우고(창세 12, 7-8 : 13, 18 : 26, 25) 공적 예배 행위를 수 행하였다(창세 22장 ; 31, 54 ; 46, 1).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사제가 아니었으며 당시에는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축성된 사제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비전문적인 사제직 기능의 수행만 있었을 뿐이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사제들은 모두 비유목 국가의 이방인 사제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며 사제인 멜기세덱(창세 14, 18-20)과 이집트의 사제들(창세 41, 45 ; 47, 22)이었다. 광야 시대~판관 시대 :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사제직을 정확히 언제부터 수행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레위 지파 사람이었던 모세가 영도하던 광야 시대에는 사제 직무를 수행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출애 32, 25-29). 그렇다고 가장(家長)들의 사제직 수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고, 모세 시대까지는 이 두 사제직 이 병행되어 수행되었던 것이다(판관 6, 18-29 : 13, 19 ;17, 5 ; 1사무 7, 1).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전문화된 사제직이 나타난 것은 가나안 땅에서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판관 시대이다. 이때부터 레위인들은 사제가 되어 이스라엘의 모든 지방의 성소에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성소를 돌볼 사제직이 레위인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사제단은 레위인들과 제사장의 최고 권위 아래 있는 비레위인 성직자들로 구성 되어 있었으며, 레위인들은 처음에 유대 지방 남부에만 거주하다가(민수 26, 58) 점점 북쪽으로 퍼져 나가면서 점차 비레위 사제들을 대신하게 되었다(판관 17-18장).
왕정 시대~유배 : 왕정 시대에 이스라엘의 사제직은 제도로서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에는 사독(Sadoc)과 에비아달(Abiathar)이 다윗의
공적 사제로서 제사장의 직무를 맡았다(2사무 8, 17 ; 19, 12 ; 20, 25). 솔로몬 통치 시대에 에비아달은 사제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1열왕 2, 26-27), 그래서 사독 가문은 엘리(Heli 가문을 대신해서 바빌론 유배시까지 예루살렘에서 사제직을 독점하였다. 물론 지방 성소에서는 레위지파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 출신 사제들도 상당수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솔로몬 이후 남 · 북 왕국은 점차적으로 예배를 중앙 집중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히즈키야(Ezecha)와 요시아(Josia)는 특히 예배를 예루살렘에서만 하려고 시도하였다. 기원전 621년에 요시아는 지방 성소를 폐쇄하고, 레위 지파 사람들만 사제 직무를 수행하게 하면서 예루살렘의 사제직을 맡고 있는 사독 가문의 지위를 드높이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결국 이 개혁으로 지방 성소사제들은 자리를 잃게 되었고, 비(非)예루살렘 출신의 레위 지파 사제들은 열등한 지위의 사제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이때부터 레위 지파 사람들만이 사제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의 사제직에 있어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국토와 주권을 잃고 이교도의 영향과 유혹 속에서 방황하며 신음하는 백성들 앞에 더 이상 메시아적인 왕은 없었다. 이때부터 사제들은 백성에 대해 더 큰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고 민족의 종교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유배 이후 : 바빌론 유배 이후 왕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의 활동이 점차 사라지게 되자 사제들의 권위는 더욱 강해졌다. 왕의 존재가 없는 상황에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 생활의 가시적 중심지가 되었고 따라서 희생적 제사는 단지 예루살렘에서만 봉헌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사제가 다스리는 나라로 변모되어 갔다. 이즈음 이스라엘의 신권 정치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대사제' 라는 존재가 탄생되었는데 이로써 사제의 위계 제도는 세 계층 즉 대사제, 사제, 레 위인들로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각 계층은 나름대로의 특권과 책임을 갖고 있었다. 대사제의 위치는 대단한 권력을 지닌 자리로서, 대사제는 세속적 분야나 종교적 분야에서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최고 지도자였다(하께 1,12-14 ; 2, 2-4). 기원전 2세기까지는 사독의 후손들이 대사제직을 계속하다가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기원전 172년에 사독 가문의 마지막 대사제인 오니아스 3세(Onias Ⅲ)가 암살당함으로써 사독 가문은 그 직을 잃었다(2마카 4, 30-34). 대사제 다음 지위인 사제들은 레위 인 중 아론의 가문에만 국한되었는데, 그들은 국가적 예배에서 대사제에게 협력하였고 제단의 희생 제사를 주관하였다. 마지막으로 하위 성직자인 레위인들은 사제라기보다는 성전 관리인이었다. 그들은 사제들을 돕고 회중을 섬기는 일을 하였다(민수 1, 50 ; 3, 6-8 ; 16, 9 : 18, 2; 1역대 23, 28. 32 : 에즈 3, 8-9). 사독 가문이 대사제직을 잃고 난 후, 제관계 가문이었던 하스모네 가문(Hasmo-neans)이 대사제직을 잇게 되면서부터 대사제의 위상은 종교 지도자라기보다는 정치 · 군사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상황은 지리멸렬하는 혼탁한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헤로데 시대부터는 정치 권력자가 대사제를 임명하게 되었다. 이때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신약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기 능]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구원 역사(役事)의 목표는 사람, 즉 전 인류에게 향해 있다. 따라서 선택된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선택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형제 · 자매들을 위한 파견이며 그들을 향한 직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경우 사제직은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말해 주는 대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모세의 계약에서 그 본래 취지는 이스라엘 전체가 사제들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 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애 19, 6 : 레위 11, 44-45 ; 민수 15, 40).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사제들의 제의적 기능, 즉 전문화된 사제적 기능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야훼께서 레위라는 한 지파에게 사제적 기능을 부여하셨다고 해서 다른 지파들이 그들의 원래의 의무, 즉 사제의 역할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하느님과 사람의 중재자적 역할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서를 보면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드러난다. 즉 구약 시대의 개별 사제직은 카리스마적인 소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구약 시대의 사제들은 그 시대의 왕이나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아 사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사제직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임명되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속하게 된 자기 가문에 의해 받게 되는 공직이었고, 사제들은 그들의 직무에 의해 신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제직에 대한 구약의 개념은 신성함에서 나온 제식적 기능의 면에서 사제를 기술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제식의 전문화는 통치의 기능과 예언적 기능(가르치는 임무) 양쪽 모두와 접촉점을 지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초기 이스라엘에서는 사제들이 제사를 바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주요 중재적 기능은 신탁을 전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전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초기 이스라엘에서는 사제들이 에봇(1사무 30, 7-8)과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 1사무 14, 36-42 ; 신명 33, 8-10)을 통해 주변 국가의 점쟁이들처럼 신자들의 상담에 야훼의 이름으로 답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제들은 축제의 모임에서 신앙의 초석이 되는 기록들을 낭독하였고(출애4, 14-16), 계약 갱신시에는 율법을 선포하였으며(출애24, 7 : 신명 27장 ; 느헤 8장), 구세사와 법전 형식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의 중재자 역할도 하였다. 판관 시대에는 제의적인 예언자 집단이 사제직으로 흡수되었는데 이로써 예언적 능력과 사제적 능력의 복합이 선호되었다. 그러다가 사제들의 활동은 점차 예배의 영역, 즉 희생 제물의 봉헌으로 한정되었고, 그래서 다윗 시대 이후부터는 신탁을 주는 기능이 사제의 역할로서는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제식의 전문화는 도덕적이라기보다는 성례(聖禮)적이고 제의적인 신성함에 강조점을 두는 신학적 발달과 병행하게 되었다. 사제와 레위인들은 성전을 드나들며(2역대 23, 6 : 35, 5) 성전에 속하는 물건들을 관장하였다(에즈 8장 : 28, 30).
제사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상통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사제의 중재자적 역할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사를 바치는 것이며, 사제직의 본질적 기능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의 거룩함을 유지 · 확인하고 재수립하는 것이었다(출애 28,30 ; 레위 10, 7 ; 민수 18, 1). 선택된 이스라엘은 이런 사제직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즈가 3, 1-5) 사제직은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의 중보가 되었다(말라 2, 4-5 : 민수 18, 19 ;예레 33, 20-26). 사제들은 백성의 대표로서 매일 제단에서 희생 제사를 바침으로써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였는데 출애 29, 38-42), 특별히 대사제는 자신의 가슴 판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기록하고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민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사를 바침으로써 최고의 중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출애 28, 29 ;즈가 3, 2 ; 레위 16장 ; 집회 50, 5-21).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직의 임무는 대단히 고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제는 순결과 거룩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으며(레위 21, 16-22), 정결례에서 성별된 자로서(레위 8, 5-12) 성소 안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어야 했다(출애 30, 19-21).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자신을 정결하고 성스럽게 보존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으므로 자연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완전한 사제직을 실현해 주실 것을 희망하였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 역할을 사제만이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왕은 정치 · 군사 · 종교의 지도자로서, 예언자는 하느님 말씀의 전달자로서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구약 시대의 사제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 계 약의 중보자로서(히브 7, 23-28) 영원한 구원을 완성함으로써(히브 9, 11-28) 구약 시대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였던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 모두를 총괄적으로 완수한 대사제가 되었기 때문이다(히브 5, 1-10 : 8장).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는 단순히 구약 시대의 왕과 예언자와 사제가 각기 수행하던 임무들을 종합적이고 또 그 이상으로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리스도의 완성과 유대인들의 희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유대교의 교의적 틀과 메시아 기대를 훨씬 능가하였다. 그래서 제사에 있어서도 변형이 생겨났으며 구원의 행위 또한 희생물의 봉헌에 있어 모든 조건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구약의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직에 있어 단순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 사제직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II . 신약의 사제직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이시요 참으로 인간이시다(DS 613). 이 교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이 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요(1디모 2,5) 새로운 계약(1고린 11, 25 ; 루가 22, 20)이라는 신앙 고백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업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분의 인격(persona)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구원은 삼위 일체 하느님과 우리가 위격적 관계로 서로 일치하여 삼위 일체 하느님의 삶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인데, 삼위의 하느님과 위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유일한 통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와 하느님과의 신인(神人)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며, 그리스도는 완벽한 중재자이고 자신 안에서 화해와 친교를 이루는 중재자이다.
예수의 직(職, munus)은 하나이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이 하나인 직을 여러 가지 측면과 칭호로 전개하고 있다.예 수는 예언자요 대사제이며 목자요 왕이요 주님이다. 성서가 말하는 세 가지 성직 즉 예언직, 사제직, 왕직은 성자의 인간화와 결부시켜서 말씀이 취하신 인간성의 중대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된다. 이 세 가지 성직에 관한 성서의 뒷받침은 풍부하지만 초대 교회는 아주 조심스럽게 "예언자, 사제, 왕"이라는 칭호를 예수에게 적용하였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세상을 위한 길(목자와 왕)이요, 진리(예언자와 스승)이며 생명(사제)이다(요한 14, 6). 그러므로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를 잇는 사제의 직무라고 하면 이 세 가지 직능이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신약의 사제직은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다루어야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 측면 중 하나인 사제직, 즉 협의의 사제직만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수는 골고타의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였기 때문에 제물인 동시에 제사를 드리는 사제이다. 사제는 인간과 하느님을 통하게 하는 자이며, 제사는 인간과 하느님을 상통하게 하는 행위이다. 제사는 단순한 의식 거행만이 아니다. 의식 거행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침으로써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자 하는 절차상의 표현일 뿐이다. 제사의 본 의도는 제사를 봉헌하는 자가 죄의 영역을 벗어나 하느님을 참된 생명으로 알고 하느님과 화해를 하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고자 하는 데 있다. 이런 제사에서 나타나는 하느님 숭배는 어떤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엄연한 하나의 공무(公務)이다. 그래서 제사에는 공적으로 임명을 받아 직권을 행사하는 사제가 필요한데, 이 사제는 백성의 이름으로 제사를 바친다. 이러한 배경을 거치면 예수의 죽음과 그의 사제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곧 예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적으로 생명을 얻어 주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격 그 자체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므로 또한 이 중재의 일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의인뿐만 아니라 죄인들도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이끈다. 예수가 죄인들과도 관계를 맺어야만 우리의 중재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구세주도 죄의 연대성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죄인들과 같이 죄를 범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부와 성령과의 위격적 관계의 일치로 말미암아 죄를 범하지 않았고 또 죄를 범할 수도 없었다. 만약 죄를 범했더라면 위격적 일치에 금이 가게 되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없게 되므로 죄를 범함으로써 죄인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죄의 몸을 취하였다(로마 8, 2-3; 2고린 5, 21). 세례자 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가 죄인들과 관계를 맺고 죄인들이 당할 운명을 수락하였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언제나 죄인들을 찾아 다녔으며(마태 9, 9-13 : 마르 2, 13-17 ; 루가 5, 27-32) 결국 그는 죄인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겼다. 예수의 사제직은 무엇보다도 구원의 제사가 된 죽음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예수의 죽음은 파괴인 동시에 귀환이었다. 즉 죄인으로서의 죽음은 부자 관계의 파괴이지만 아들로서의 죽음은 귀환이고 재결합이다. 예수의 죽음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르15, 34) 하는 절규는 부자 관계의 파괴처럼 들린다. 그리고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루가 23, 46)라는 기도는 귀환을 뜻한다. 예수는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죄인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죄인의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단순히 죄인의 죽음만을 맞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죽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는 죽음을 넘어서,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와 결합하였다. 그리스도는 한 죽음을 통해서 파괴와 귀환을 함께 체험하였다. 부활은 죄인들의 죄를 무효화시키지만 죽음을 없애지는 않는다. 부활은 죽음의 취소가 아니라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완벽한 파괴도 아니요 최후의 없음[無]도 아니다.
부자 관계는 죽음의 운명을 넘어선다. 부활한 예수는 더 이상 인간적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으로 산다. 죽음이 부자 관계를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죄의 결과인 죽음을 당하였지만 그 죽음이 예수와 성부와의 부자 관계를 파괴하지는 못하였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에서 죄가 무효화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부활한 예수는 인간성에서 발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생명으로 살아 있다. 인간의 본성은 사람을 영원히 살릴 수 없지만, 하느님과의 부자 관계는 인간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부활의 신비이다.
예수는 우리의 사제로서 인간과 하느님을 화해시키고 상통하게 하였으며, 그리스도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인간이 될 때 아들이 될 수가 없다. 영원한 아들은 인간이 될 때 피조물이 되기는 하였지만 아들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 아들로서의 귀환(요한13, 1-3)이 바로 인간과 하느님을 화해시키고 상호 친교를 이루게 하였다. 사제이면서 동시에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기능에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기능은 곧 그의 인격과 업적에서 이루어진 사제적 기능이며, 이런 예수의 사제직은 영원토록 지속된다. 예수가 사제로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1초라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지복직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업적의 절대적인 역할을 말해 주는 것이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사제직] 히브리서는 여러 면에서 사제직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사제직 연구에 아주 중요한 서간인데, 그리스도 교회의 목자나 사제들의 사제직은 고려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귀속시킨 중요한 점은, 복음서에서 예수는 결코 한 번도 자신을 사제라고 지칭하지 않았지만 결국 예수는 사제직을 주장하였고, 그의 제자들도 예수의 주장을 사제적 정체성으로 이해하였음을 보여 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예수가 자신의 희생 때문에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로 증명되었다(히브 5, 6-10 : 6,20 : 7, 17)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산헤드린 앞에서의 예수의 선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또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마태 26, 64 ; 참조 : 시편 110, 1 ;다니 7, 13)라는 예수의 말씀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가 시편 110편에 대한 암시로써 왕적 메시아와 멜기세덱을 잇는 대사제의 자격을 주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죄를 위해 한 번 제사를 드리심으로써 영구히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히브 10, 12 ; 참조 : 시편 110, 1)라고 쓰고 있다. 이로써 그는 시편 110편에 나오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 행위에 내포된 의미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예수는 자신의 희생에 왕관을 씌우는 것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멜기세덱의 본을 따라 대제관으로 임명받으셨습니다"(히브 5, 10).
히브리서의 저자가 단지 유대교의 사제직만을 고려했었다면 레위 지파의 사제직과는 그 계열이 다른 천상적이고 영원한 사제직에 대한 교리의 핵심을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통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와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대사제를 "예물과 속죄의 제사를 바치기 위한" (히브 5, 1) 사람으로 묘사하면서 이것을 예수에게 적용하였다. 그리고 유대교의 사제직이 제시하는 것보다 예수에 의해서 주어지는 지침에 보다 더 충실히 따랐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예수의 말씀과 선언에 관한 주석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초월적인 대사제 :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가 불완전하고 일시적 성격을 지녔던 유대이즘의 대사제적 기능을 절대적으로 달성한다는 것을 나타내면서,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새 사제직은 여타의 모든 사제직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사제직은 아론의 사제직이 복종했던 멜기세덱이란 인물 안에서 예표되었다(시편 110, 4 ; 창세 14, 18-20). 예수는 아론 계열이 아니라 멜기세덱을 잇는 대사제이다(히브 7, 11).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이 세상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주 기능은 그리스도가 천상 성소에 들어감으로써 시작되었다(5, 9-11 : 6, 20 : 7, 26-28 ; 8, 1-5 ; 9, 11). 그는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로서 천상 성소에 들어가고(3,6),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휘장을 뚫고 들어가신다(9, 3 ; 10, 20). 이것은 유대교의 속죄의 날의 전례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영원한 구원의 예증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적 활동의 명백한 한 국면을 이룬다(5, 9-10). 그리스도의 현양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구원을 충만하게 전달할 수있도록 한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 사제직의 기원이 초월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창세기가 멜기세덱의 족보에 대해 침묵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일생의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항구히 제관으로 남아있습니다" (7, 3). 이것은 그리스도 사제직의 기원이 시작도 끝도 없는 하느님 아들의 기원이며, 그의 사제직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증한다. 이와 같은 멜기세덱의 제시는 그리스도가 영원에서 나온 대사제라는 인상을 전달한다. 기원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영원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제는 분명히 인간이어야 한다. "모든 대사제관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관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5,1). 사제는 인간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그 사제직은 사람들과의 유대를 요구한다. 따라서 사제는 인간 본성을 지녀야 한다. 그것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언제나 하느님을 향하는 성향을 지닌 인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는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겼다(2, 17). 인간의 나약성에 대한 연민은 사제직 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연민은 유혹을 체험하게 한다. "우리의 대제관은 연약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 외에는 모든 일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4, 15). 성자는 인간이 되기 전에는 사제가 아니었다. 그는 강생에 의해서 사제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아들과 사제직이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므로 사제의 본질적 성향인 하느님께로 향하는 성향을 완벽하게 지녔다. 철저하게 "하느님을 향하는 인간"이어야만 진정한 사제가 될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고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다(요한 13, 1-3). 그의 희생은 성부께로 돌아가는 여정의 완성을 장식한다. 히브리서는 예수가 육화(incarnatio)에 의해 이미 사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로서의 역할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하여 한 번 봉헌되셨고, 두 번째는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것입니다"(9, 28 ; 참조 : 이사 53, 12). 예수의 사제적 양상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개념과 유사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8절은 이사야서 53장 12절을 직접 언급하면서 예수의 자유로운 봉헌과 순종의 성격을 드러낸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한 성부께로의 귀환은 예수와 하느님의 부자 관계를 드러냈다. 영원으로부터 얻은 부자 관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표현되었으며, 아들로서의 지향은 그의 사제적 태도에서 구체화되었다.
새 계약의 대사제 :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그분의 위격 안에 근거하고 있어 그분을 가장 참된 중재자로 만든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새 계약의 중재자" (9,15 ; 8, 6-13)로 간주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자신을 계약과 동일시하지만(마르 14, 24 ; 마태 26, 28 ; 루가22, 20), 히브리서는 예수를 계약의 중재자로 부른다. 중재는 사제직이 의도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예수는 단순히 인간적인 중재자가 아니며 그의 사제적 중재는 성부와 똑같은 수준에 위치한 인간의 중재이기 때문에 최고의 탁월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유대교의 대사제의 행위를 모방한 것과 같은 것이지만 탁월하게 그것을 뛰어넘는다. 속죄의 날에 대사제는 지성소에 들어가 자비의 제단에 피를 뿌려 하느님 백성을 위한 화해와 계약의 갱신을 얻어냈다.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천상 지성소에 들어가 인류 구원의 근원이 되었다(9, 11-12). 여기서 영원한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성령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희생과 자신이 천상에서 얻은 것을 지상과 나누어 인류에게 덕이 되도록 함으로써 사제직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그의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천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천상에 들어가자마자 그에게 멜기세덱의 계통을 잇는 대사제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예수의 사제직 선언은 그의 천상 영광의 순간과 결부된다. 그렇다고 지상에서 바쳐진 희생이 사제적 성격을 갖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희생 봉헌은 사제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그의 육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가 천상에 들어간 순간에 충만한 실재로 완성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지상에서 바쳐지고 천상의 승리에서 절정을 이루는 독특한 희생이므로 그리스도는 천상에서 인류를 위해 중재함으로써 자신의 사제직을 행사한다. "그분은 영원히 남아계시는 분이므로 영구한 제관직을 지니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가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간청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십니다" (7, 24-25)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는 그가 천상에 들어감으로써 생겨났다. 천상 입성 후 그는 영원히 인류를 위한 중재자가 되었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가 되었다(10, 12-18). 그리스도가 보여 준 희생과 중재가 사제의 본질적인 임무라면, 사랑의 근본적인 지향은 사제직 안에서 보다 생생하게 드러난다.
Ⅲ . 교회의 사제직
교회의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유래하였다. 다시 말해 교회의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도들을 위한 사제직을 새로이 제정하지 않고 사도들을 자신의 사제직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제적 사명을 사도들의 사제직으로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를 원하였다. 교회의 사제직에 대한 이해를 보다 바르고 깊게 하기 위해서 교회 사제직의 역사와 '직위적 사제직' (sacerdotium ministeriale,hierarchicum)과 '공통 사제직' (sacerdotium commune)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 사제직의 역사] 초대 교회 : 열두 사도들은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리스도 직무의 권능을 지녔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의존하였고 복음 설교의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그리스도의 가시적 대변자로 성장하는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임무가 부가되었다. 이러한 임무의 확대는 사도들의 협력자를 필요로 하였고, 협력자들은 사도들에게서 그 권위를 받았다. 그들의 임무는 말씀의 설교, 성사 집행, 공동체의 질서와 통일 확립을 위한 봉사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위임에 의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활동하였다.
그런데 사제직 개념에 있어 신약성서에는 본질적인 희생적 직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신약성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죄의 용서와 희생의 사제적 직무보다는 사목적 직무가 더 강조되었다(사도 20, 25 : 1베드 5,1-2).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사도들을 돕고 또 사도들을 계승하기 위한 서품식이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 바오로와 장로 집단에 의한 디모테오의 축성이다(1디모 4, 14 : 2디모 1, 6-8). 사목 서간들에서 보이는 교회 공직의 발전은 그 공직 권위가 영원히 개인들에게 전수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배적 형식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 행위는 성사적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직 (munus)의 기본 구조와 일치되게 예배적 · 성사적 행위의 방향은 복음 설교의 기능과 연관되어졌다(사도 2,42 ; 6, 4 ; 8, 15-18 ; 13, 1 이하 ; 1고린 11, 25 ; 루가 22,29). 교회 공직이 이런 식으로 이해되었기에 일단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사제적 기능의 발휘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 공직의 기능을 사제와 사제직의 용어와 개념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신약성서는 사도와 그 후계자들의 사목적 기능을 강조하지만, 이어지는 교회의 모든 정황들은 그들의 직무가 희생적 의미에서 사제적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성찬례에서 말씀의 권능을 지니는 사제의 인격이 사제를 성스럽고 존경할 만하게 만든다고 하였다(Oratio in diem luminis ; PG 46, 582).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미사의 신성한 희생에 대한 규정>(Canones de sanctissimo Missae sacrificio, CTr VIII 961)에서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 (Hoc facite in meam commemora-tionem, 루가 22, 19 ; 1고린 11, 24)라는 말로써 사도들을축성했다고 가르쳤다(DS 1740). 트리엔트 공의회의 논지는 최후의 만찬이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종교적 만찬이 아니라 희생적 식사였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최후의 만찬과 성찬례의 희생적 성격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에 의해서 임명되어 사목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언급할 때 사제라는 용어 대신 목사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제의 기능은 단지 가르치고, 설교하고, 그리스도의 양 떼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자신이 한 것처럼 하라고 명령함으로써 그들에게 희생의 직무를 효과적으로 맡겼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제의 직무는 희생적이고 전례적이며 사목적이다. 그리고 직무에 필요한 은총은 서품식에서 성령에 의해 전달받는다.
교회 안의 직위적 사제직의 활동은 유일하고 결정적인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가까운 독립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이룩한 객관적인 구원-그리스도는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구원 사업을 일회적으로 완수하였음을 의미한다-을 시공간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업적에 어떤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은 아니다. 직위적 사제직은 그리스도 안의 활동이고 교회 사제직 안의 활동이므로 교회 공통 사제직에 대치되지 않는다. 또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사제적 성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실현에 봉사한다. 이 직위적 사제직은 영원히 부여된 것이기에 교회 내에서 특별한 사제적 존재를 낳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이 존재의 증거는 그 직위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 즉 평신도들의 증거와는 구별된다.
교회 안의 직위적 권한의 외적인 차이가 확고하게 결정된 것은 사도 시대 직후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는 주교 · 사제 · 부제를 엄밀히 구분하였고 주교직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사제직 신학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에게서 최초로 나타났으며, 성찬례가 신학에서 더욱 심오하게 분석되면서 히폴리토(170~236)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 테르툴리아노(160~223)와 에우세비오(260~340)에 와서 더욱 분명하고 확고하게 발달되었다.
중세 교회 : 12세기 중엽 들어 교회의 7성사에 속하게 된 성품은, 1274년 제2차 리용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정의되었다(Ds 860). 그로 인해 부제직은 그 본 모습을 잃고 단지 과도적인 단계로 축소되었으며, 주교직은 주로 통치하는 권능으로 간주되었다. 주교직의 성사적 성격은 여기저기서 부인되었고 주교와 사제의 관계는 부당하게 재판 관할상의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수도원 제도의 부상과 직위적 사제직의 수도원 생활 양식의 채택은 사제 직위의 카리스마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영적 인간이 세속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고 윤리적으로 가치 있다는 개념이 확산되자 직위적 사제직은 평신도들과의 그 본래적 일치성을 잃을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또는 로마법에 부과된 특권을 누리는 특별한 계급 혹은 성직 계급을 부상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주교는 사제직과 구별되는 품계나 등급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주교직의 성사성에 대한 숙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사제직 아래 등급들의 엄밀한 성사성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생각이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잡았는데, 그는 주교직은 사제직의 품계와 구별되는 품계가 아니며 모든 품계들은 성사적으로 부여된다고 주장하였다.
근대 교회 : 직위적 사제직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의 위기는 루터(M. Luther)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중세 교회에서 확정된 사실로 여겨졌던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심연(深淵)에 반대하였다. 즉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제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사를 집전하고 설교할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다만 적절하고 질서 있게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에 의해 그 일을 수행할 개인이 임명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그는 사제직 수행자의 어떤 특별한 종교적 자격의 필요성을 부인하였던 것이며 소명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기본 자격은 세례와 견진에 의해 주어졌다. 루터가 성찬례의 희생적 성격을 부인한 것은 성찬례 집전자의 직무가 사제적 직무가 아님을 함축하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루터의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였다. "신약성서를 보면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거룩하다고 볼 수 있는 성찬의 제사를 받았다.
따라서 새롭게 볼 수 있는 외적인 사제직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구약의 사제직은 새로운 사제직으로 변한 것이다(히브 7, 12-14). 더욱이 이 사 제직이 우리의 구세주이신 동일한 주님에 의해 제정되었고,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 · 봉헌 · 관리하는 권한과 죄를 맺고 푸는 권한이 사제직 안에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 들에게 주어졌음을 성서가 밝히고 있고 또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 항상 가르쳐 왔다" (DS 1764). 공의회는 서품식을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된 참되고 적절한 성사" (DS1773)라고 정의 내렸는데, 이는 다시 말해 모든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과는 대조적으로 단지 사제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교는 신부보다 우위에 있으며 주교 · 신부 · 부제로 이루어지는 위계는 신성한 질서라고 천명했다(DS 1768, 1776).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가들을 거슬러 교회의 성사에 관한 교리를 재확인하였으며, 교회 안에는 성품성사에 바탕을 둔 직위적 사제직이 있음을 재천명하였다.
[공통 사제직]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세례로 재생되고 성령으로 축성되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적 사제직을 이행하는 백성들이다. 따라서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드는 산 제물로 봉헌하고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전해 주어야 한다(교회 10항).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를 사제적인 것으로 보며 그들의 몸을 제물로 바칠 것을 요청하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께 맞갖은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시오. 이것이 곧 여러분의 정신적 예배입니다"(로마 12, 1 ; 참조 : 필립 3, 3 : 히브 9,14 : 12, 28).
이와 같이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되게 주어진 사제직을 공통 사제직, 일반 사제직, 신자 사제직, 기반적 사제직 (sacerdotium fundamentale)이라고 한다. 이 사제직은 그리스도 사제직의 일반적 성격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직임' 이 아닌 '삶' 으로써, 자신의 희생과 말씀의 봉사로써 사제가 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제 자격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받게 되며, 이들 성사와 특별히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사제적인 능력과 권한을 받은 신자는 메시아적 백성의 일원이요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다(교회 9~10항). 평신도는 그들의 고유한 신분적 성격대로 현세적 사물에 종사하면서 그것을 하느님이 설정하신 질서대로 발전하게 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도모해야 한다(교회 31항). 그래서 야고보의 편지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들을 상세하게 나열한다. 즉 자기 혀를 억제하는 것,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는 것,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등이다 (야고 1, 26-29). 따라서 평신도가 모든 세속적 사업과 활동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자연적 요청이다. 이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충만되어 있어야 한다.
현세적 · 세속적인 면에서 평신도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면 초자연적 사제직의 영역은 전적으로 사제에게만 속하고, 평신도는 지상적 업무에서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분명히 평신도의 의무는 전적으로 초자연적이지만도 않고 또 전적으로 현세적이지만도 않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종말까지 지속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초자연적 사제직은 결코 사제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첫째 편지와 요한의 묵시록은 명백하게 모든 신자를 가리켜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그분이 차지한 백성"(1베드 2, 9 ; 묵시 1, 6 : 5, 10 : 20, 6)이라고 부른다. 세례성사로 축성되고 견진성사로 성장한 신자는 그리스도가 성부께 드리는 제사에 유권적으로 참여하여 공동 집전자가 된다. 신자들의 사제직과 성직자들의 직위적 사제직은 그 임무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교회 10항). "은사는 물론 (여러 가지로) 나뉘어 베풀어지지만 영은 같은 영이십니다. 또 봉사(의 직책)도 (여러 가지로) 나뉘어 베풀어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일도(여러 가지로) 나뉘어 베풀어지지만 모든 이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시는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각자에게 영을 드러내는 은사가 베풀어지는 것은 공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린 12, 4-7).
물론 성직자의 사제직은 공통 사제직과는 달라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특수 목적에 호응하는 가견적이고 사목적인 사제직이다. 이 두 사제직에 대하여 뤼박(H. de Lubac,1896~1991)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품성사의 효력에 의해서 사제가 된다 하더라도 사제가 평신도보다도 더욱 고위의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제도 평신도도 동일한 신적 생명에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양자 모두 동일한 기본적 품위로 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사제와 평신도 사이에, 목자와 신자 사이에 지위의 면에서나 권한의 면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 사제가 지니는 품성은 언제나 최고의 존경을 받아야 하고 또 존중되어야 한다. 비록 사제가 현실적으로는 어떠한 사목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사제직의 각인을 받은 사제는 모두 하느님의 사절로서의 사명 그 자체에 의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신적 생명을 낳게 하고, 또한 이것을 육성하는 교회의 큰 사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된 사제, 유일한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한) 연장으로서 그들을 간택하셨고, 자신이 성부께로부터 받은 그 무엇(은총과 권한)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기 때문이다.···오직 사제들에 의해서만···사제이신 그리스도의 권능이 이 세상에서 영구히 지속되어 간다."
엄밀한 의미에서 주교와 사제들만이 교도권과 신품권과 사목권을 가진다. 그러나 신자들의 사제직이 사제들의 사제직에서 연역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기본적 특성에서 연역된 것이다. 따라서 공통 사제직위에 직위적 사제직이 건설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통 사제직을 일명 '기반적 사제직; 이라고도 한다. 사제와 평신도의 사이는 사제직의 수행 방법은 달라도 내면적으로는 대단히 긴밀하게 일치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동일한 성소(聖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직위적 사제직] 평신도 사목을 특징으로 하는 직위적 사제직은 세례성사 안에 내포되어 있는 공통 사제직을 빼놓고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직위적 사제직은 공통 사제직의 바탕 위에 특수한 직무와 권한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직위적 사제직을 '특수 사제직' 이라고도 하고, 교회 구성원 중에서 성직자가 수행하기 때문에 일명 '교계적 사제직' 또는 '서품 사제직' 이라고도 한다. 교회 공동체의 각 구성원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결코 서로 고립되거나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서로 구별될 뿐이다.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이나 그 보조자들에게 사제라는 칭호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직위적 사제직이 그리스도의 뜻에 의한 것임은 확실하다. 열두 사도들을 뽑 은 것은 당신 교회에 대한 책임을 맡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당신 권한 가운데 몇 가지를 위임하였고(마태 8, 10. 40 : 18, 18), 성찬을 명하였고(루가 22,19), 사죄권을 주었고(요한 20, 21-23), 세례를 베풀라고 명하였고(마태 28, 19 : 마르 16, 15), 말씀의 봉사자로 교육시켰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수하게 참여하도록 불렸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과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 직무 수행을 위한 여러 협력자들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사도 6, 2-6 : 11, 30 : 13, 1 : 14, 23 : 20, 17 : 1데살 5, 12-13 ; 필립 1, 1 : 골로 4, 11 등) 자신들에게 위임된 사명이 자신들의 사후에도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협력자들에게 시작된 일을 계속하며 그 직무를 완수하라고 유언처럼 지시하였고(사도 20, 25-27 ; 1디모 5, 22 ; 2디모 2, 2 ; 4, 6 ; 골로 1, 1 : 디도 1, 5),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셔서 당신 (아들)의 피로 얻으신 하느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으니"(사도 20, 28) 모든 양떼를 열심히 돌보라고 권고하였다. 사도들의 직접적인 협력자 중에는 원로(πρεσβύτερος, 사도 14, 23 : 20, 17 ; 디도 1, 5)가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사제(presbyter)의 원어이다.
사도들이 물려받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교회의 직위적 사제직의 임무에 대한 기본적 통찰은 바오로의 서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시오"(1고린 11, 26). "이 은총은) 내가 이방 민족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공복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에 제관으로서 종사하게 하려는 것이고, 그리하여 이방 민족들의 봉헌이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15, 16).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고린 4, 1). "그분은 우리를 새로운 계약의 봉사자들로 삼으셨습니다"(2고린 3, 6). 사제직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가르침들에서 사제 직무의 기반은 성사 거행, 복음 선포, 진리의 관리, 새로운 계약의 봉사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제직에 대해 하느님 말씀의 선포,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의 집전에 의한 예배 활동, 지도의 직무 등 세 가지 기능을가르쳐 왔다.
사제직에 대해 콩가르(Y. Congar)는 "사제직이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의 봉헌으로 은총, 즉 하느님과의 일치를 얻기 위하여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특성이다"라고 하였으며, 보이어(L. Bouyer)는 사제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그 말씀의 내용을 실천하는 자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라너(K. Rahner)는 "사제는 제도적 형태로 교회의 직무를 맡아 하느님의 말씀을···공동체 선포하는 자이며, 이 말씀의 성사적 효과를 최고로 발휘하도록 위탁받았다" 라면서 말씀에 기초를 둔 단순한 사제직의 개념을 강조하였다. 사제의 세 가지 직무 중 한 가지만으로 사제직을 정의한다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 또 예배나 제사의 기능으로만 사제직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사제직에는 맞지만 그리스도가 세운 사제직에는 부족하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사제직보다 아주 넓은 의미의 사제직을 당신 안에서 수립하였기때문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직위적 사제직의 특성은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바치고, 공동체를 지도하는 모든 사제적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사목적 사제직의 원형을 보아야 한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사제직의 근원과 모델을 찾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무게와 위엄과 힘이 느껴지기를 갈망하는 인간 사회의 지도자와는 달리, 사제들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까지 섬기기 위해오신 그리스도(마태 20, 25-29 : 마르 10, 42-45)처럼 자신을 종으로 여기며 행동해야 한다. 교회의 목자의 권위가 봉사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다. 사목적 사제직으로 드러나는 직위적 사제직은 교회의 구조에서 본질적 중요성을 갖는다. 이 중요성은 그리스도가 사도들의 사목적 사제직의 원형으로서 자신의 구원적 임무를 제시한다는 사실에서 특별히 생겨난다. 그래서 사목적 사제직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절대 필수적인 것이다. 교회의 사제직은 과거에 단 한 번 그리스도 안에서 형태를 취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능을 발휘한다.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가 교회에 계속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직위적 사제직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발휘할 때 그것이 요구하는 절대성에 대해 반발한다는 것은 사제의 사제직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서 분리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합법화될 수 없다. 물론 사제적 권위의 남용이 있을 수 있고, 사제들도 자신들의 직무 수행에 있어 잘못을 저지르고 이탈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남용과 잘못과 이탈에 대한 비난이 사제직 그 자체에 내재된 힘을 거부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예수는 사제직의 권능을 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 권위에 지고의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루가 22, 19 ; 1고린 11, 24-25)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구원의 제물인 성체의 축성을 당신의 이름으로 되풀이하는 임무와 힘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권능 부여는 오로지 사제 직무를 위해 주어졌으므로 겸손한 봉사의 차원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가톨릭 교회의 직위적 사제직은 다른 종교에서의 사제직과 같이 사회적 계층으로서의 특권이 아닌 봉사의 특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다.
Ⅳ.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제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약의 사제직에 대해 그 동안의 공의회들,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와 교황들의 가르침을 재고찰하면서 현대의 사목적 사제직에 관해 중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교회 헌장>(Lumen Gentium),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Presbyteroroum Ordinis) 등이 사제직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서 사제직에 대한 신학적 고찰의 중심이 되는 것은 <교회 헌장>이다. 여기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은 <교회 헌장>의 신학적 고찰을 조금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교회 헌장>은 교회 내에서의 참된 직위적 사제직의 존재를 그 기원에서부터 재확인한다. 그래서 사제직은 신자들로부터 위임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로부터 축성되어 파견된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교회 28항 ; 사제 2항) 교회의 직무는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사제직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중재직이다.
<교회 헌장> 28항과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2항은 사제 직무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매우 광범위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제직의 광범위한 틀 안에 복음설교와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일과 신성한 전례 거행의무가 들어 있다. 이 조항들은 직위적 사제직에 대해 제식적 기능만을 부당하게 강조하는 것 같은 지나치게 좁 은 견해를 막고 있다. 신약의 사제직은 단지 희생과 성사라는 예배에서만이 아니라 말씀의 설교와 권위적 사목에서도 발휘되므로, 사제직은 예언직과 왕직의 개념과 같은 그런 개념들에 의해서 완성되어야 한다. <교회 헌장>은 사제들의 직위적 사제직과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의 차이와 관련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차이의 특징은 신품권(potestas ordinis)에 있으며, 사제 직무와 일반 사제직이 등급으로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봉사' 라고 하는 목자의 사명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은 본질이 다르다 할지라도 상호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독자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 신자들은 전 생활 속에서 증언적(testimoniale)으로 참여하고,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공직 수행적(ministeriale)으로 참여한다. 물론 여기서 사제들도 신자의 범주에 속함을 잊어서는 안된다"(교회 10, 28, 32,34항)
교회 사제직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신자들의 성화이다. 교회가 자신의 사제직을 통하여 제공하는 성화의 방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적으로총을 나누어 주는 전례 행위이다. 그중에서도 성사 전례는 가장 뛰어난 은총의 통로이다(전례 6항).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전례 7항). 물론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전례 9항). 하지만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 (전례 10항). 그리고 우리가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할 때, 우리 순례의 목적지인 성도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의 전례를 미리 맛보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전례 8항). 그렇기 때문에 사제들의 직위적 사제직은 모든 신자들의 종말론적 완성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종말론적 완성은 전 인류를 포함한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들어 있지 않은 양들도 있습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합니다"(요한 10, 16).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의 사 목적 사제직은 언제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개방성을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는 목자로서의 당신 사제직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였다. 따라서 공의회는 사제 권위의 본질을 봉사로, 권위의 특징을 겸손으로 제시하며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잇는 가톨릭 교회의 사제직은 겸손과 봉사의 삶 안에서 완수 될 수 있는 것이다. (⇦ 사제, 교의 신학에서의 ; → 레위; 사독 ; 사목 ; 사목직 ; 예언직 ; 왕직)
※ 참고문헌 J. Galot, Teologia del sacerdozio, Firenze, 1981/ A.G.Wright, Priest and Priesthood, Israelite, 11, pp. 772~7731 E.Niermann, Sacerdote, Sacerdozio, 7, pp. 253~264/ M.E. Mciver,Priesthood of Christ, 11, pp. 773~7771 P.F. Palmer, Priest and Priesthood, Christian, 《NCE》 11, pp. 768~7721 K. Bihlmeyer · H. Tuechle,Storia della Chiesa, Brescia, 1985/ A. Piolanti et al., Il protestantesimo ieri eoggi, Roma, 1958/ K. Rahner, L'aggancio teologico per la determinazionedell'essenza del sacerdozio gerarchico, Concilium, 1969, p. 31 A. George,《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전망 편집부, 1984, pp. 258~263/W. Kasper, 박상래 역, 《예수 그리스도》, 분도출판사, 19771 정하권,《교회론》 Ⅱ 신학 총서 19, 분도출판사, 1981/L. Elders et al., 《제2차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 총서》 2, 성바오로출판사, 1991/ J. Bright,김윤주 1,이스라엘의 역사》 上 · 下, 분도출판사, 1979. [徐炅敦]
사제직
司祭職
[라]sacerdotium · [영]priest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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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참 사제직을 수행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