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赦罪

〔라〕absolutio · 〔영〕abs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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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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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고해성사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하는 것.
〔어원과 개념〕 사죄(赦罪)라는 의미의 라틴어 '압솔루시오' (absolutio)는 사면 · 면제 · 석방 · 무죄 판결 · 완성 · 종료 등의 뜻을 갖고 있는데, 이 단어는 동사 '압솔베레' (absolvere, 풀어 주다, 장애물을 제거하다, 해방시키다)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죄를 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죄는 사전(赦典)을 내려 죄인을 석방하는일 또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뜻하며, 제소된 고발 또는 고발에서 피고인을 해방하는 재판관의 선언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죄나 비난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사적으로는 조건을 갖추어 잘못을 고백한 참회자에게 사제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범한 죄를 사(赦)하는 것이다. 《교회법전》은 "고해성사 중에 합법적인 집전자에게 죄를 고백하면서 그 죄를 통회하고 자기를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하는 신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그 집전자가 베푸는 사죄를 통하여 세례 후 범한 죄의 용서를 받고 동시에 범죄로 손상을 입힌 교회와 화해한다"(959조)고 규정하고 있다.
〔성서의 가르침〕 최초의 죄 :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사죄의 필요성도 없다. 그러나 아담은 하느님의 계명을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파괴함으로써 하느님께 도전하고 반항하는 잘못을 저질렀으며(창세 3, 3), 인간은 원조 아담의 범죄 이래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늘 신음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고 자신이 자기 운명의 유일한 주인이 되기 위해 창조주 하느님께 소속되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그분을 한낱 이해 관계에 몰두하는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렇듯 죄는 외적 행동을 나타내기에 앞서 인간 정신을 흐리게 한다. 죄로 인해 인간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고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으며(창세 3, 7),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피해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런데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의 분열 까지도 초래하였다. 아담은 자기 여인을 고발하면서 연대 책임을 모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창세 3, 12), 카인은 아벨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창세 4, 8). 그런데 지혜서는 죄의 신비에 개입되어 있는 제3자, 곧 마귀라 불리는 사탄에 대해 언급한다(지혜 2, 24). 결국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하려다가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원상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편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야 했다.
이스라엘의 죄 :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도(출애 19, 5-6) 끊임없이 아담의 잘못을 반복하였다(여호 24, 2. 14 : 에제 20, 7-8. 18). 그들은 이집트 탈출 후 모세를 통해 십계 판을 받는 엄숙한 순간에도(출애 31, 18) 아론에게 보이는 신(神)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출애 32, 1). 그들은 하느님을 너무 멀리 계신, 보이지 않는 실재로 여겨 야훼께 대한 참 신앙심을 간직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적당히 희생 제물을 바치면 세상의 신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번거로운 계명을 지키지 않고도 멋대로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신을 원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잘못 역시 하느님께 대한 순명 거부이다. 그래서 목덜미가 뻣뻣한 백성으로 묘사된(신명 9, 6) 그들은 결국 바알 신을 공경하는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잘못은 탐욕에 빠졌던 것인데,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거부하고 구미에 맞는 다른 것을 원하였다.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먹던 고기와 풍성한 성찬을 그리워하였다(민수 11, 4-6).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광야의 영적 체험을 거부함으로써 아담의 잘못을 답습하였다.
예언자들의 가르침 : 죄는 이스라엘을 통해 구현될 하느님의 지배와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였다. 예언자들은 백성이 당하는 불행의 책임을 백성 전체의 죄로 돌린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저버리는 잘못들은 무엇인가? 폭력, 약탈, 부정(不正)한 재판, 허위, 간통, 위증,살인, 폭리, 권리 침해 등 사회적 질서의 파괴이다(이사59, 2. 12-14). 호세아, 아모스, 미가 등 예언자들도 동일한 사항을 기술하였다(호세 4, 1-2 : 아모 4, 1 ; 5, 7-15 ;미가 2. 1-2). 인간의 죄는 하느님의 권능과 권위를 침해
하는 것이다. 근원적으로는 죄가 하느님께 어떤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하느님께 죄를 범함으로써 인간 자신이 멸망하게 된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자들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해치는 것이며,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것은 우리야 한 개인에 대한 권리 침해가 아니라 모든 이의 권리를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승고한 뜻을 저버린 행위이다(2사무 12,9-10). 그리고 죄는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것이며, 자애로운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배은망덕한 행위이다(이사 64, 7). 이는 남편의 변함없는 성실한 사랑을 거부하며 뭇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아내의 부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 곧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이 보답되지 못함으로 고통당하고 상처 입으시는 것이다. 예언자들이 죄를 고발하는 이유는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며, 하느님은 인간이 회개하여 당신께로 되돌아오도록 원하신다. 그렇기에 사죄의 크기는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겠노라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정도에 비례한다. 하느님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용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거절하면서 사랑을 원하는 모순된 행위이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행복된 삶을 독려하고 계시는데, 이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소관 사항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겨 드림으로써 죄의 근원적 요인을 단절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일인가? 인간이 사죄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이끌어 주심, 받아 주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죄는 하느님께서 무상(無償)으로 내리시는 은전이고 은혜인 것이다. 하느님은 흩어진 양들을 찾고 계시며(에제 3, 4-6), 인간에게 새로운 정신 · 마음 · 당신의 영(靈)을 불어넣고 계신다(에제36, 26-27).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을 온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사랑하기를 촉구하신다(신명 30, 6). 사죄는 하느님 창조 행위에 비교되는 신적(神的) 행위인 것이다. 구약성서는 사죄라고 일컫는 내면적 변화가 '야훼의 종' 의 희생 제물로 완성된다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예수와 죄인들 : 신약성서는 인간에게 사죄를 베풀기위해 온 '종' (이사 53, 11)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계시한다. 신약에는 인간과 세상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하느님사랑 전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교 생활 시초부터 많은 죄인들을 만나며 당신이 죄인들을 위해 왔음을 선언하였고(마르 2, 17), 죄인들을 향해 죄가 '사(赦)해졌다' 고 언급하였다(마태 9, 2). 그러나 사죄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의 변화 없이 하느님의 일방적인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에 자신을 내맡기는 철저한 회개가 요청된다(마르 1, 15). 그래서 예수는 가는 곳마다 죄를 고발하였고, 음행 · 도둑질 · 살인 · 간음 · 탐욕 · 악의 · 사기 · 방탕 ·시기 · 중상 · 교만 · 어리석음 등이 내부에서 밖으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설파하였다(마르 7, 21-22 ; 마태15, 18-20). 여기서 제자들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죄하심을 배우게 되었다. 탕자의 비유는 죄로 인한 하느님의 모독과 사죄를 얻기 위한 죄인의 회개에 대한 설명이다(루가 15, 11-32). 작은아들의 가출은 아버지의 아들이기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회심 없는 사죄를 허용하지 않는다. 먼저 아버지에게 돌아가 사죄를 빌고 아들로 다시 받아 주는 것이 절대적인 관건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는 아들이 떠날 때부터 용서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아들의 행위 자체가 사죄를 이끌어 내고 있다. 예수는 병마와 접신(接神)으로 죄와 악마로부터 고통받는 자들을 구하며(마태 8, 16-17 :마르 1, 23-26),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물로 당신 목숨을 내주고" (마르 10, 45),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려고 흘리는 계약의 피"(마태 26, 28)로써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세상의 죄 : 요한은 '사죄' 라는 전통적 표현을 잘 이해하면서도 개인의 죄 이면에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적대 세력이 있다고 보면서, 그리스도가 이에 대항하는 분이라고 기술하였다(요한 20, 23 ; 1요한 2, 12). 먼저 의도적으로 빛에 반대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적대 세력이다. 죄인들은 그 행실로 인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자기 죄상(罪狀)이 드러날까 하여 빛을 거스르게 된다(요한 3,19-20). 그래서 예수는 차라리 눈이 멀었다면 죄를 짓지 않겠지만 눈이 잘 보여 더 죄를 짓게 되었다고 꾸짖고 있다(요한 9, 41). 죄를 향한 완고한 처신은 사탄의 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죄인들은 악마의 자식으로서 악마의 행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1요한 3, 8-10). 그래서 사탄의 노예가 된 세상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은 증오의 비호를 받아 살인과 거짓 속에 살게 되며, 이러한 미움은 결국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살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요한 8, 37). 그러나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쳐 이긴다. 그분은 죄가 없고(요한 8, 46), 아버지와 하나이며(요한 10, 30), 밝은 빛(요한 1, 5 : 8, 12), 거짓과 허위의 그림자도 없는 진리(요한 1, 14 : 8, 40), 사랑(요한 15, 9)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지상 생애 전체를 통해 실천하였고, 그분의 죽음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최고로 사랑의 절정이며 극치이다(요한 15, 13 : 13, 1).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이겼으며 그분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바로 하느님의 씨가 머무르는 한,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한 그들은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1요한 3, 9). 이렇게 예수는 하느님의 영(靈)을 선사하고 성령의 세례를 줌으로써 세상을 향해 사죄를 베풀고 있다(요한 1, 29-33). 또 예수는 인간의 사죄를 위해 친히 제물이 되었고(1요한 2, 2), 사도들에게 사죄가 가능하도록 성령을 보내 주었다(요한 20, 22).
바오로의 입장 :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에서 기술한 죄들을 범하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갈라 5, 19-21). 성적(性的) 문란 · 우상 승 배 · 사회적 불의 등을 구약과 같이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데(로마 1, 21-32), 특히 사람들이 보다 많이 소유하기 위해 탐욕의 죄를 짓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우상 승배와 동일시하였다(골로 3, 5 : 에페 5, 5). 바오로가 볼 때 죄는 요한의 견해처럼 하느님께 도전하는 힘이 죄인 안에서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 안에 들어온 죄가 모든 이에게 전해졌고, 모든 이를 죽음으로 끌어당겼다(창세 2, 17 : 3, 6. 19 : 로마 5, 12-19). 바오로가 죄의 보편성과 그 횡포성에 대해 언급한 것은 율법의 무력함을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의 절대적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곧 전인류와 아담의 연대성에 대해 말한 것은 강력하고 고차원적인 인류와 예수 그리스도의 연대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아담의 죄와 그 결과를 용서하신 것은 예수가 그 죄를 쳐 이기고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믿음과 세례로 의화된 그리스도인은 완전히 죄와 결별한다(갈라 3, 26-28 ; 로마 3, 21-23). 죄로 죽은 인간은 수난하고 부활한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며, 육체를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게된다(로마 6, 5 : 8, 9). 결국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인류구원 계획을 깨닫도록 원하셨고,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그들의 불순종을 참아 오신 것"임을 알 수 있다(로마 11, 32 ; 갈라 3, 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까지도 이용하시는 하느님 지혜의 신비가 가장 뚜렷하게 계시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때이다. 성부는 성자가 인간의 육적 상태에서 영적 상태로 옮아가면서 인류의 구속을 실현하기를 원하셨다. 유다의 배반, 사도들의 도망, 빌라도의 판결, 고위층 유대교 지도자들의 증오, 악당들의 잔혹함 등의 배후에는 전 인류 개개인의 죄도 숨어 있는 것이다.
〔신학적 가르침〕 사죄를 위해 요청되는 것은 회개이다. 그리스도교 사상이 올바르게 종말론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바로 회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종말의 영광이 회개에서 시작한다면 회개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게 되고, 그리스도교 사상은 하느님 나라의 임하심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곧 개인이 신앙을 수용하는 것은 하늘 나라가 이미 개인에게 구현되고 있음을 뜻한다. 신앙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 자체가 회개의 시작이며, 진정한 그리스도교 사상은 개인이 계속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향해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M. Luther, 1483~1546)가 주장한 '의인론' (義認論) 사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담 이후의 인간들은 자유 의지가 파괴되어 선행과 정의를 실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완전한 덕행을 향해 가는 인간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짓더라도 신앙만 갖고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상(pecca forte et crede magis)은 매우 모순되고 위험한 생각이다. 그리스도교적 윤리 명령은 비록 불완전하다고 해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이루라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성취 불가능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성된다고 믿는 것이 신앙인 본연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확대하고 과장하여 모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예외 없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한 인간이라도 구원의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육화(incamatio)한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이다. 노력하지 않는 자의 구원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면 굳이 구세주 성자의 강생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과 성화(聖化)는 인간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느님께 가는 인간의 구원 협력은 인간 자유 의지의 동의와 하느님께 대한 깊은 순명과 응답에서 나온다. 회개는 자유로운 인간의 응답과 동의에서 발출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죄와 바른 신앙 생활의 지속을 위해서 죄가 되지 않을 만큼만 계명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다시 죄에 떨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신앙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첫 단계의 회개라면, 더 완전하게 신앙 생활을 엮어 가는 것은 한 차원 높은 단계의 회개이다. 또한 사죄를 받기 위한 근본 정신은 그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동반되어야 한다. 통회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죄 생활의 정지 상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곧 회개 이전의 죄 상태를 뉘우치고 그 죄의 상태를 다시는 계속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없다면 회개는 순간적인 마음의 현상에 불과하게 된다. 죄에 대한 증오심이 없는 한, 죄 생활은 다시 반복되기 때문에 사죄의 의미는 퇴색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는 고해성사 집전을 통해 사죄의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성령을 받으시오. 여러분이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들은 용서받을 것이요, 여러분이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요한 20, 22)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고해성사 설정의 근거가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진정한 마음으로 회심하고 화해를 청하는 자에게 사죄를 베풀어야 한다. 고해성사는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외적인 형태가 다양한 변천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는 죄인을 위해 간청하고, 그의 용서를 하느님께 겸손되이 청하며 사제를 통해 사죄를 선포하고 있다. 이때 교회는 자신의 고해성사 집행 권한을 가장 적절하게 수행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또한 참회하면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는 자기 자신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죄와 연대 관계에 있던 그는 '세상의 죄' 를 짊어짐으로써 온 인류 가족을 위해 거룩하게 되어 인류에게 부활의 새로운 연대성을 전해 주게 된다. 전쟁, 고문, 인권 유린, 폭력, 인종 차별, 사회와 종교의 이념상 차별주의, 여론 조작, 경영상의 부패, 투기 사업, 권력 남용 등은 모두 연대성을 갖는 죄악이다. 이렇게 죄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사귀려는 원의도 깨뜨리며 교회에까지 해악을 끼치게 된다. 진정한 사죄를 위한 회개는 단순한 죄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으며, 부단한 보속 행위, 선행, 지난날의 잘못한 악을 기워 갚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매일의 참회 행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성실한 회개가 드러나면 하느님께서는 사제의 직무를 통해 참회자의 사죄를 위해 교회를 중재로 하여 용서를 베푸신다. 그리고 사죄의 형식은 개별적 화해 예식, 개별 고백과 개별 사죄로 거행되는 공동체적 화해 예식, 일괄 고백과 일괄 사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화해예식 등으로 구분된다. → 고해성사 ; 죄)
※ 참고문헌  《가톨릭 교회 교리서》 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6, PP. 521~544/《교회법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9/ 《사목》

78호(1981. 11), pp. 4~481 이희승 감수, 《국어 사전》, 민중서관, 1990/S. Lyonnet,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 1984, pp. 536~544/Adolf Adam, Sinn und Gestalt der Sakramente(최윤환 역, 《성 사와 전례》, 수원 가톨릭대학 출판부, 1991), pp. 92~106/ 《신학 전망》 34호 (1976. 가을), pp. 3~781 Bernhard Haering, Morale e sacramenti, Edizioni Paoline, 1976, pp. 166~194/ Dizionario enciclopedico di Teologia Morale, Edizioni Paoline, 1981/ Dizionario Garzanti della lingua italiana, Garzanti editore, 1981, p. 153. 〔李容勳〕